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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눈 뒤집어 까고 화장만 하면 달라 보일까

겉만 화려해지는 속물들의 세상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눈 뒤집어 까고 화장만 하면 달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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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복장이 한복에서 양장으로 바뀐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1882년 개화파 관료 박영효가 상투를 자르고 양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은 것을 한국인 양장의 효시라고 한다면 양장은 불과 130년 전에 시작된 일이다.

그러나 그건 앞서가는 개화파 남성 엘리트층의 이야기고 일반인은 6·25전쟁 이후에도 대부분 한복을 입었다. 6·25전쟁 당시 피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거의 대부분 한복 차림이다. 그러고 보면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한국인의 의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국민소득의 향상과 식생활의 변화로 한국 젊은이들의 신체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양 사람들의 신체처럼 상체에 비해 하체가 점점 더 길어지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롱다리’라는 말이 생겼고 그 롱다리를 과시하기 위해 미니팬츠를 착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얼짱’보다 ‘몸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긴 다리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이 아름다운 여성미의 과시인 모양이다.

그런데 파리에선 초미니 반바지 착용으로 여성성을 과시하는 이가 드물다. 파리 여성들은 양 가슴 사이에 갈라진 부분(고르주·gorge라고 하는 데 원뜻은 협곡이란 말이다)을 살짝 보이게 내놓는 것으로 여성다움을 과시한다. 여성의 상징은 다리가 아니라 가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여성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초미니 바지 패션이 미국에서 들어온 것임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1970년대 중반 이화여대에는 해외 교포 자녀들을 위해 영어로 수업하는 ‘여름학교(summer school)’가 운영됐는데 그곳에 온 수강생들 가운데 무릎을 훨씬 올라가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그때 학교 당국에서는 그런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도 생각났다. 한국 여성들이 여성다움을 과시하는 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이 된다.



풍경 #29 성형 열풍

눈 뒤집어 까고 화장만 하면 달라 보일까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몰려있는 성형외과 의원들.

근대(modern times)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지배가 끝나고 ‘보이는 존재’의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신비한 힘이 사라진 자리에는 보이는 세상의 화려함이 자리 잡게 된다.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갈수록 눈에 보이는 미세한 부분까지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파고든다. 건물 외관이 점점 더 화려해지고 사람 얼굴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얼굴 성형도 그 하나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 내리면 주변에 성형외과 광고가 즐비하다. 지하철 계단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동호대교가 끝나는 육교 양옆으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성형외과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성형외과의 광고 문구들은 얼굴과 외모를 고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를 자신 있게 해주는 곳, KKK성형외과’

‘아름다운 얼굴, 자신 있는 미소’

‘좋은 인상, 좋은 만남, 꿈의 실현’

성형외과마다 전공 분야를 자랑스럽게 광고한다. 안면 윤곽 전공 성형외과의 광고에는 “이마 윤곽, 광대뼈, 돌출입, 주걱턱, 무턱, 비대칭턱, 사각턱” 등이 적혀 있고 코 전문 성형외과 광고에는 “긴 코, 낮은 코, 매부리코, 복 코, 넓은 코, 휜 코, 짧은 코, 코끝 성형”이라고 적혀 있다. 눈 전공 광고에는 쌍꺼풀은 기본이고 “눈매 교정, 앞트임, 뒤트임, 눈밑 애교” 등이 적혀 있다.

얼굴만이 아니라 몸매가 중요해진 세상이다. 짧은 손가락, 발가락 교정도 가능하고, 휜 다리를 고치면서 키도 크게 만들어준다. “휜다리 +사지 연장수술로 7cm를 늘린 후 S라인을 형성시켜드립니다”라는 광고도 있다. “배꼽 통한 가슴 성형” “가슴확대, 가슴축소, 처진 가슴, 지방 흡입, 힙업, 종아리 알 관리, 종아리 알 축소”에서부터 뼈 안 깎고 안면 윤곽을 교정하는 양악수술에 이르기까지 운명적으로 정해진 얼굴을 버리고 원하는 얼굴로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기술은 끝 모르게 발전하고 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완벽한 기술과 안전성으로 시술해 완벽한 만족감을 준다는 성형외과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모순이자 특이한 한국적 열풍이다.

풍경 #30 괴물 마스크

파리에는 가끔씩 눈만 내놓고 온몸을 가린 포대자루 같은 옷(부르카)을 입은 이슬람 여성들이 눈에 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오싹할 뿐만 아니라 불쾌한 느낌마저 든다.

서울 거리에도 가끔씩 눈만 내놓고 얼굴을 다 가린 괴물 같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여자들이 보인다. 아마도 껍질을 벗겨내는 피부시술이나 성형수술한 후에 집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여성들일 것이다. 여름철이면 피부를 망가뜨리는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괴물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여성들도 있다. 햇빛이 얼굴에 닿으면 잡티, 기미, 주근깨를 만들기 때문이란다. 그런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 소름이 오싹 돋는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얼굴은 지위의 상징이다. 동창회 결혼식 등 사람들이 모여 지위를 과시하는 장소에 “나 이런 여자다”라고 고개를 쳐들고 나타나기 위해 보통 때는 괴물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일까.

풍경 #31 버려진 보호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현대고를 지나 한남대교 남단을 지나다보면 오른쪽 길가에 먼지를 쓰고 서 있는 제법 큰 보호수(保護樹)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건물 바로 앞에 서 있는데 건물과 붙어 있어 매우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나무는 한창 기운을 쓰며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려야 할 계절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잔뜩 풀이 죽어 있는 형국이다. 죽지 못해 살아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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