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필자는 올해 7월 그가 대선 출마에 대비해 내놓은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책을 탐독하면서 적잖은 충격에 빠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줄이라도,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하고 지적 자극이나 지적 열등감을 주지 못하는 그 ‘생각’!
‘빈 깡통’이었다. 아! 이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니 마니 하는 수준의 대한민국이구나 하는 장탄식이 절로 새어나왔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기술한 것도 아니면서 단순히 대담집에 불과한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사유체계가 구상유취(口尙乳臭) 수준임을 그대로 노출했다. 지금 안철수 캠프가 풀어내고 있는 정책 보따리라는 것도 실현 가능성을 세밀히 챙기지 않고 오직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기 위해 일단 질러보는 아마추어 집단의 밑바닥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야심 크지만 우유부단
공교롭게도 시인 김지하 선생이 안철수에 대해 애초에는 무엇인가 기대했지만 ‘어린아이’ ‘깡통’이더라고 실토하는 걸 보고, ‘IT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해서 중고교 교과서에까지 실어놓기에 이른 대한민국 국격(國格)의 그‘얕음(shallowness)’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안철수는 이번 12·19 대선에서 세계 10위 경제권 강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선장실에 앉아서는 안 되는가?
첫째, 결단력 박약! 안철수는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하는 데 무려 1년의 세월을 보냈다. 근본적으로 결단력이 박약하다고 평가하는 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결코 억지가 아닐 것이다.
그가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르게 된 건 지난해 9월 6일 서울시장선거 때 박원순 후보에게 야권 티켓을 양보한 직후부터. 물론 정치지도자는 신중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안철수가 지난해 9월부터 올 대선을 정확히 3개월 앞둔 9월 19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그의 캐릭터는 근본적으로 신중성 차원을 넘어 결단력 자체가 박약하다고 봐야 한다. 결단력이!
안철수는 자신이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자 일단 언론의 추적으로부터 회피한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대선 후보로 급부상할지 본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가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에게 선뜻 양보한 진정한 의도는 양보 카드를 통해 서울시장 자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리인 대권을 겨냥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한다. 왜?
그는 이미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 훨씬 이전부터 정치 입문 문제에서부터 대권 도전 문제를 포괄하는 ‘안철수 정치’에 관해 부단히 모색해온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김종인·윤여준, 승려 법륜과 같은 ‘정치 책사’들과 분주히 만나 ‘대통령 안철수’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왕도(王道)에 관해 깊이 토론했던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안철수는 3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을 찾아 ‘청춘콘서트’ 열풍을 일으킨다. 이 기간에 걸쳐 안철수는 ‘대통령’ 또는 ‘뭔가 큰 정치적 인물’이 되기 위한 자신의 야심을 본격화했다.
안철수는 ‘청춘콘서트’ 자리에서 시골의사 박경철이 21세기 리더십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길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기 때문에 인용한다. “예전에는 중요한 정보와 힘을 기득권이 독점했어요.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는 일반 사람들도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됐죠.…20세기까지의 리더십은 이랬어요. 아주 외향적이고 리더십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어떤 지위를 가지면 그 지위가 주는 고급 정보, 돈 등이 리더십을 발휘하게 해주었어요. 하지만 21세기의 리더십은 그 사람이 가진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서 나오는 것 같아요.…결국 리더십의 요체는 대중이 주는 것이죠.” 대중의 힘이 리더십의 요체라는 대목에서 안철수의 야심이 물씬 묻어난다.
안철수는 27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청춘콘서트’를 강행군해 무려 5만여 명의 청춘을 끌어 모으고 2700여 명의 청춘을 안철수 자원봉사자로 만든다. 결국 ‘대통령’ 또는 ‘뭔가 큰 정치적 인물’을 희구하며 준비해왔다고 봐야 하는데, 안철수는 막상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르자 1년여에 걸쳐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서 돌다리를 건너가는 것이었다.
안철수는 그 1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도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말을 이어간다.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직설적 화법은 피한 채 “사회 발전의 도구가 돼야 한다면 감당하겠다”는 식으로 연막을 피우며 국민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다가, 심지어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 며칠 전까지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도 몰라요. 죄송합니다”고 답했다. 안철수는 끝까지 재고, 또 재는 결단력이 빈약한 전형적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분단 상황이 이어지는 대한민국, 거기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결단력이 빈약하다는 사실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첫 번째 결격 사유라고 하겠다.
급조논리 달달 외며 국민 팔아
둘째, 안철수는 자기 철학이 없는 포퓰리스트! 왜 그를 포퓰리스트라고 볼 수밖에 없을까?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런 극단적인 질문을 해본다. 과연 안철수는 원래 자신의 철학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문재인과 후보 단일화를 할 만큼 생래적으로 ‘좌파 성향’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야말로 대한민국 ‘부르주아 원조 세력’의 대표적 아들이기 때문! 아버지가 부산에서 개업 의사였던 안철수는 신혼 초부터 어머니가 서울 사당동에 딱지 아파트를 사주어 살게 할 만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에서 박사학위 받으며 젊은 나이부터 승승장구하는 삶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