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19살 北 마타하리 “오빠~ 사랑해” 남자는 눈이 멀어 두만강을 건넜다

북한 여인에 빠져 간첩 된 두 男子 사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2-11-21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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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여인 성관계 미끼로 한국 남자에 접근
    • “나와 북조선서 함께 살아요” 유혹
    • 중국 통해 북에 다녀온 뒤 어설픈 스파이 행위
    • A씨 변호사 “비슷한 사례 생각보다 많아”
    19살 北 마타하리 “오빠~ 사랑해” 남자는 눈이 멀어 두만강을 건넜다
    “홍천 여자”라고 했다. “이은주, 열아홉 살”이라면서 웃었다. ‘오빠’라고 그를 불렀다. 2009년 6월 중국 선양(瀋陽) 보석호텔에서 그녀와 처음 몸을 섞었다. A씨(35)는 경기 북부의 한 도시에서 음식점, 인테리어 사무실, 전기용역 회사를 전전하면서 일했다. 삶은 고단하고 버거웠다. 아내, 자식을 부양하기에 일당 5만 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내는 벌이가 넉넉하지 않다면서 A씨를 타박했다. A씨도 아내가 못마땅했다. 냉장고에서 음식 썩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었다. A씨는 아내와 금전 문제로 수시로 다퉜다. 이은주는 그런 아내와는 달랐다. 나긋나긋한 데다 젊었다. ‘오빠~’라는 속삭임이 귀를 간질였다.

    B씨(57)는 2010년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3형사부 법정에 섰다. 재판부는 이렇게 판결했다. “피고인을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에 처한다. 피고인으로부터 1211만8000원을 추징한다.” B씨는 1990년대 중반 중국 칭다오(靑島)로 건너가 완구 업체에서 일했다. 그러다 중국에서 필로폰에 손을 댔다. 한국, 중국을 오가면서 마약을 투약하다 붙잡혀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B씨는 1999년 3월 중국 옌지(延吉)에서 40대 후반의 ‘김수옥’이라는 여인을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이후 함께 살았다. B씨는 김수옥과 함께 중국에서 대남 공작활동을 벌이다 2010년 4월 서울로 돌아와 자수했다.

    “사랑했다, 진심으로”

    김수옥의 미끼에 걸려든 B씨의 죄목은 국가보안법(간첩, 목적수행,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 및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이다. A씨는 올해 5월 국가보안법 위반(자진지원·금품수수, 목적수행, 잠입·탈출, 회합·통신)으로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았다. A씨, B씨가 사랑한 이은주, 김수옥은 북한 여인이다. A씨는 “은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에게 고백했다. B씨는 옌지 최대 재래시장인 서시장 인근 아파트에서 김수옥과 오랫동안 동거했다. 이은주, 김수옥도 A씨, B씨를 사랑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을까? 두 여인은 ‘공화국의 스파이’다.

    이은주, 김수옥의 행태는 2008년 붙잡힌 여간첩 원정화의 그것을 닮았다. 원정화는 2001년 재중동포로 위장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 후 임신한 채 한국에 들어와 탈북자로 위장 자수했다. 군 부대 등을 돌며 반공 강연을 하면서 친해진 국군 장교 3, 4명에게 이성교제와 성관계 등을 미끼로 접근했다. 탈북자 정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동향, 군사기밀 등을 수집했다.



    원정화는 반공 강연 때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을 전파한 적도 있다.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원정화가 한국에서 사용한 수법과 이은주, 김수옥이 중국에서 벌인 행태는 유사하다.

    A씨는 1996년 육군 사병으로 입대해 복무하다 부사관에 지원했다. 2002년 ○○부대에서 전역했다. “신문을 보니 30세 미만은 제대한 사람도 다시 입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 돈벌이가 별로이니 다시 군에서 일하는 게 좋겠다”는 아내의 조언을 듣고 2004년 하사로 다시 입대했다. 2년 8개월간 통신과에 배치돼 일하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2008년 강제 전역됐다. 전역 후 부부관계는 실망스러웠다. A씨는 “젊은 여자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고 변호사에게 말했다. A씨와 이은주는 인터넷 메신저로 알게 돼 전화통화로 사랑을 키웠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메신저에서 처음 대화했을 때는 강원도 홍천에 산다고 했어요. 그런데 홍천 사정을 잘 모르더라고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것저것 물으니 조선족이라고 하더군요. 북한 여자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중국으로 유인해 성관계

    이은주는 A씨가 전방부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했다는 말을 듣고 A씨를 중국으로 유인한 후 사랑, 성관계를 미끼로 간첩짓을 했다. 이은주는 A씨가 선양에 도착하자마자 성관계를 맺었다(2009년 6월 24일). A씨는 보석호텔에서 이은주와 2박 3일간 함께 머물렀다. 이은주와 사랑을 나누고 한국에 돌아온 A씨는 아내를 버리고 이은주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주택청약예금을 해지하고, 트라제XG 승용차를 처분해 경비를 마련했다. 2009년 7월 6일 중국 남방항공 비행기를 타고 선양으로 다시 날아갔다. 이번엔 이은주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잠자리를 가졌다.

    B씨와 옌지에서 동거한 김수옥은 북한 정보기관인 보위사령부 소속 공작원이다. 이은주의 소속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은주 역시 보위부 소속일 소지가 커 보인다. 보위부는 평양 대성구역 용북동에 본부가 있다. 본부조직은 1처(종합처) 2처(군 담당) 3처(국내반탐) 4처(도청전담) 5처(수사처) 6처(미행처) 7처(해외반탐처)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해외반탐처 소속 공작원 중 일부는 무역일꾼이나 해외 북한식당 봉사원으로 나와 한국인을 상대로 포섭 및 정보수집 공작,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남파 등 대남 공작활동을 전개한다.

    중국에서 5년 넘게 살다 한국으로 들어온 한 탈북자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판 마타하리가 상당히 많다. 조선족으로 위장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반(反)김정일·김정은 세력을 색출하거나 포섭, 납치하는 일도 한다”고 말했다.

    마타하리는 여간첩의 대명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프랑스를 오가면서 스파이로 일했다. 본명은 마그레타 G 젤러. 마타하리는 말레이어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의 별칭이다. 마타하리는 프랑스 파리의 물랭루즈에서 무희로 활동하며 성(性)을 이용해 군사정보를 빼냈다. 프랑스 국방장관, 외교관, 군 장교에게 접근해 정보를 수집했다. 41세 때인 1917년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됐다.

    거의 모든 국가의 정보기관이 공작활동을 한다. 한국은 국가정보원, 국군정보사령부가 대북 공작에 나선다. 정보사가 북한 군사정보 수집과 대북 침투공작을 담당한다. 북한에서 이은주, 김수옥은 ‘애국자’일 것이다. 소녀티를 갓 벗은 열아홉 살 여인(이은주가 실제로 19세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에게 성관계를 이용한 공작에 나서게 하는 집단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은주는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나하고 함께 북조선에 가요. 오빠는 환영받을 거예요. 돈이 많지 않아도 평생을 잘살 수 있는 곳이에요.”

    손 꼭 붙잡고 두만강 건너

    A씨는 사랑에 눈이 멀었다. 결심했다, 이은주와 함께 북한에 들어가기로. “북조선에선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탕발림에도 혹했다. 두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선양에서 옌지로 이동했다. 시장에서 옷, 구두를 구입했다. 두만강변으로 이동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강폭은 생각보다 좁았다. 이은주가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았다. 그러곤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수심 역시 생각보다 낮았다. 15분 남짓 걸었을까? 두만강 남안에 도착했다. 이은주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넘었다. 이은주는 자주 이 길을 오간 듯 지리에 밝았다. 북한 국경 경비대원이 두 사람을 불렀다. 군대 막사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았다. 북한 군인은 A씨와 이은주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차량에 태웠다. 안대를 풀자 ‘혜산여관’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A씨는 이곳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군대에서 취득한 정보를 A4 용지에 그리거나, 글로 쓰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일러줬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정착해서 계속 살 생각이었으므로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는 군사기밀, 일반 현황을 가리지 않고 아는 한도 내에서 다 알려줄 생각이었습니다.”

    A씨는 “본인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헌신하여 당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충성 결의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보위부는 A씨에게 한국에 돌아가 할 일을 일러줬다.

    첫째, 남과 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게끔 고향에 가서 친한 친구와 선후배에게 잘 이야기해라. 둘째, 미군이 철수하게끔 거리 시위나 반미 서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라. 셋째, 인터넷을 통한 반정부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북조선을 찬양하는 사이트를 찾아 글을 많이 올려라. 넷째, 북조선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해 북조선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올 수 있도록 잘 이야기하라.

    김수옥의 미끼에 걸린 B씨도 두만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갔다. 김수옥은 북한에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B씨에게 거듭 권했다.

    “북한에 아는 보위부 오빠가 많아요. 안전은 내가 보장할 수 있어요.”

    김수옥은 “한국 사람과 동거한다는 이유로 중국에 나와 있는 보위부 요원에게 체포됐다 풀려났다”면서 “우선 내 안전을 위해 보위부 요원 이상우를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B씨는 동거녀의 안전을 위해 이상우를 만났다.

    이상우는 B씨에게 “북한에 다녀오면 김수옥의 안전을 보장한다. 북한산 필로폰도 공급해주겠다”고 말했다.

    “변절하면 끝까지 따라가겠다”

    B씨는 김수옥의 신변 안전을 보장받고 필로폰을 얻고자 북한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두만강을 건너 도착한 곳은 함북 무산군 칠성리. 보위부 간부가 마중 나와 있었다. 관사에 도착하자 보위부 간부가 말했다.

    “우리 앞으로 당과 김정일 장군님께 충성을 다하고 힘을 합쳐 조국통일 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해보자. 일단 우리가 의형제를 맺었으니 끝까지 변치 말자.”

    보위부 간부는 “변절할 때는 지구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겁박도 잊지 않았다. B씨는 “열심히 해보겠다”고 답했다. B씨 역시 “목숨을 바쳐 통일사업을 위해 헌신할 것이며 조국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고 당과 김정일 장군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충성맹세를 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소감문도 적었다. “북조선에 와보니 그간 내가 남조선에 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거리도 깨끗하고 잘사는 것으로 보인다. 장군님께서 조국을 잘 영도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B씨는 ‘연락부호 42번’을 부여받았다. 보위부 대남 공작원이 된 것이다. 이후 북중 국경지역에서 국가정보원의 중국 내 활동을 탐지하려고 시도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주선하는 한국인 K씨를 북한으로 유인하려고 하는 등 다수의 공작에 참여했다.

    보위부는 약속한 대로 필로폰 2㎏을 B씨에게 건넸다. 4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 북한산 필로폰 1㎏은 한국 돈 4000만 원가량에 거래된다. 필로폰은 생산지, 순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최근 생산지 기준으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게 북한산이다. 백반 같은 첨가물 함유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환각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세계 은어 중 ‘크리스탈’이라는 게 있다. 순도 70% 넘는 필로폰을 가리키는 것. 북한산 필로폰은 순도가 100%에 가까운 것도 있다고 한다. 유통되는 필로폰의 순도는 보통 50~60%다. 북한산은 A급 크리스탈인 셈이다. 북한 군부 등이 마약을 유통해 외화벌이를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B씨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북한 당국은 대외공작 활동 때도 마약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B씨는 이후에도 북한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김수옥의 자궁외임신 후유증 치료를 위해 둘이 함께 단둥(丹東)에서 압록강을 건넌 적도 있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김수옥이 중국 병원에 입원할 수 없어 북한 병원을 찾은 것이다.

    보위부는 B씨에게 선양의 국정원 안가 위치를 파악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으나 B씨 능력 밖의 일이었다. 국정원과 교류가 있을 것으로 보인 탈북자 한국 입국 브로커 등과 접촉했으나 허사였다. B씨가 간여한 공작 중 성공했다고 볼 만한 것은 거의 없다. 법원 역시 “피고인이 수행한 국가기밀 탐지·수집의 행위는 위험성이 크게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수에 그쳤다”고 봤다.

    병원 가려 압록강 건너기도

    B씨의 사례는 이렇듯 심각한 간첩 사건이라고 보기 뭣하다. A씨도 마찬가지다. A씨 변론을 맡은 변호사의 설명이다.

    “A씨가 북한에 넘긴 군사정보는 사실 별 게 아니에요. 기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법원은 자진해 북한에 들어가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을 엄격하게 다룹니다. 7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는 게 보통이에요. A씨 경우는 3년형 정도를 생각했는데, 4년형이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A씨 사건을 해프닝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생각보다 많은 것으로 알아요.”

    A씨가 검거된 과정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A씨는 성품이 순한 사람이에요. 한국에 돌아와 조용히 지냈어요. 그런데 지인을 만나 술을 마시면서 이따금씩 허세를 부린 겁니다. 폼 잡으려고 쓸데없는 말을 한 거죠.”

    A씨는 술김에 지인들에게 “북한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가보니 살 만한 곳이더라. 북한에 가고 싶으면 나한테 얘기하면 된다”고도 했다. 한 지인이 당국에 A씨를 신고했다.

    법원은 A씨가 “북조선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해 북조선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올 수 있게끔 잘 이야기하라”는 북한의 지령을 강요나 위협이 없었는데도 자발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봤다.

    “이은주, 열아홉 살”이라면서 웃던 여인이 유혹한 한국 남자가 A씨뿐일까? 이은주는 왜 어린 나이에 여성성을 미끼로 한 공작에 나서게 됐을까? A씨, B씨 사건은 해프닝일까, 심각한 일일까? 얼마나 많은 한국 남성이 그런 유혹에 빠졌을까?

    한국인이 무심코 들르는 해외 북한식당의 여성 접대부 중에도 공작원이 적지 않다고 정보당국은 밝힌다. 성매매를 빌미로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신동아 2012년 11월호, 해외 북한식당 美女 경계령, “성매매 유혹 정보 수집” 제하 기사 참조). 조선족으로 위장한 북한 여성이 중국에서 한국인에게 접근해 공작을 벌이는 일도 잦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겠으나 때로는 조심해야 할 사랑도 있다. “진심으로, 은주를 사랑했다”는 A씨의 말이 귓전을 안타깝게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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