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국 사회 구성원이 되는, 이른바 ‘중도입국자녀’가 급증하고 있다.
- 한국인과 재혼한 외국인 어머니가 본국 자녀를 데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어린 시절 가족 해체를 경험하고 조부모 손에 자라다 갑자기 낯선 언어와 환경에 놓이게 된 아이들의 한국 사회 부적응 실태를 취재했다.
도시 속 인간 소외를 다룬 영화 ‘에쿠메노폴리스’의 한 장면.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말하는 표정이 진지하다. 그러고는 뭐가 쑥스러운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웃어버린다. 눈썹 선에 맞춰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가 미소를 따라 찰랑거렸다. 수줍음 많고 잘 웃는 게 여느 한국 여고생과 다를 바 없는 A양(18)은 중국에서 나고 자랐다. 친부모도 모두 중국인.
그가 한국에 온 건 우리나라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한국인 새아버지와 재혼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조부모와 살던 A양을 2010년 2월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새아버지에게 입양된 그는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됐다. 동시에 평범한 학생으로서의 삶과 작별했다.
“집에 있었어요. 동생이랑 그냥 있었어요.”
한국에 온 뒤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대한 A양의 답이다. ‘엄마’만 믿고 왔는데, 어머니는 늘 바빴다. 새아버지와 함께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고 나면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A양은 그저 멍하니 집을 지켜야 했다. 함께 입국한 한 살 아래 남동생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그렇게 6개월쯤 지내다 집 근처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자란 뒤 접한 외국어인데다 쓸 데가 없으니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중국에서 중학교를 중퇴한 이들은 현재 둘 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상태다. A양의 꿈은 한국어능력시험에서 중급 자격을 획득한 뒤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에 다니는 것. 그러나 그의 꿈이 실현될지는 요원하다.
A양 남매처럼 외국에서 태어나 일정 기간 생활하다 한국에 들어온 다문화가정 아이를 ‘중도입국자녀’라고 한다. 이들은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해 우리나라에서 낳은 자녀, 혹은 외국인 부부가 우리나라에서 낳은 자녀를 가리켜온 기존의 ‘다문화가정 자녀’와 출발부터 다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미 다른 나라에 터 잡고 살다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로 이주했기 때문에 대부분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한국에 오기 전 본국에서 가정해체를 경험한 경우가 많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고교학령기 10명 중 8명 脫학교
중도입국자녀 수는 최근 급증세다. 2012년 1월 말 현재 출입국관리소에 귀화를 신청한 19세 이하 부모 동반입국 자녀는 5828명. 2010년 말 3468명과 비교하면 1년 새 68.1%가 늘었다. 부모가 둘 다 외국인이거나 불법체류자여서, 혹은 자녀의 귀화 신청을 하지 않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경우까지 고려하면 실제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을 하는 서울온드림다문화가족교육센터 이현정 센터장은 “중도입국자녀 수를 최대 2만 명 선으로 집계하는 이들도 있다. 현장에서 보면 외국인 재혼 가정이 늘면서 해외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들어오는 어린이·청소년이 확실히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A양처럼 정규 교육 체계 밖에 머문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 사는 초·중·고교 학령기 중도입국자녀는 모두 4480명. 이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이는 2540명으로 전체의 57%에 불과하다. 이 수치를 초·중·고교별로 나눠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 잘 드러난다. 초등학교 연령대의 중도입국자녀 재학률은 91%에 달하는 반면, 중학교 연령대는 65%, 고등학교 연령대는 15.8%인 것. 17~19세 중도입국청소년 10명 중 8명 이상이 학교 울타리 밖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중도입국청소년의 학교 이탈 실태를 더 어둡게 진단한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서울시 중도입국청소년 현황과 지원방안’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서울시에 거주하는 7∼18세 중도입국 청소년 875명의 초·중·고교 재학률은 21.7%다. 초등학교 재학률은 56.4%, 중학교는 18.1%, 고등학교는 3.1%에 그쳤다.
각기 다른 연구결과에서 보듯 현재 우리 정부는 중도입국학생의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법무부·교육과학기술부 등 8개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저마다 다문화가족 정책을 다루다보니 관련 통계도 제각각이다. 이중 교육과학기술부와 법무부 등의 발표 자료를 분석해 중도입국자녀의 재학률을 계산한 설동훈 교수는 “기존 통계의 경우 중도입국자녀 중 상당수가 학령보다 낮은 학년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한국어 실력이 또래에 비해 떨어지는 아이들은 학년을 낮춰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례들을 찾아 반영한 결과 국내 초등학교의 중도입국자녀 재학률은 106%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중학교에 가야 할 아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간 탓에 해당 연령대의 아동 총수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수가 더 많게 나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고교에 올라갈수록 재학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 이 연구도 마찬가지다. 설 교수는 “같은 방법으로 계산한 결과 중도입국자녀의 중학교 재학률은 73%, 고등학교 재학률은 18%였다”고 했다. 다른 통계에 비해 전체 재학률이 다소 상승했을 뿐, 고교 학령 대 청소년의 재학률은 채 20%에 미치지 못했다.
중도입국청소년 교육기관 서울시작다문화학교에서 한국어, 다도, 합창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왼쪽부터) .
잠재적인 뇌관
이는 일반적인 다문화가정 자녀의 재학률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민주통합당 인재근 의원이 행정안전부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자녀의 올해 고등학교 취학률은 35.33%다. 초등학교·중학교 취학률은 각각 78.22%, 56.32%로 조사됐다. 이들의 초·중·고등학교 전체 취학률은 66.86%로 우리나라 전체 취학률(96.1%)의 3분의 2 수준이지만, 중도입국자녀에 비하면 훨씬 높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실의 이민정 보좌관은 “중도입국자녀들이 일반적인 다문화가정 자녀보다 교육적으로 훨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존의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한국문화를 접하며 자라기 때문에 다소 차별을 당할지언정 진학 자체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반면 외국에서 나고 자란 중도입국자녀는 현행 교육 체계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중·고교 진학률은 99%를 상회한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실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99.9%가 중학교에 진학했고, 중학생의 99.7%가 고등학교에 갔다. 대학진학률도 72.5%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중도입국자녀의 고교재학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조혜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활동·역량연구실장은 “교육은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라며 “이 통로가 막히면 중도입국자녀와 일반 국민 사이에 계층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도입국자녀가 우리 사회의 잠재적인 불안요소가 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들을 교육체계 안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조 실장의 생각이다.
탈학교 청소년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 중도입국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사회적응교육도 시키는 서울시작다문화학교 김지선 교사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대부분은 집이나 PC방에서 컴퓨터 게임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일을 시작하는데,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하듯 여러 직종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언어 문제다. 11월 초 서울시작다문화학교에서 만난 B군(16)은 중국에서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성적이 좋았다고 했다. 로비에 앉아 중국어 신문을 읽고 있던 그는 “한국에 들어오고부터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뻔히 아는 수학 문제도 ‘방정식’ ‘유리수’ 같은 단어 뜻을 몰라 틀리기 일쑤라는 것. “중국어는 16년 했어요. 한국어는 2월부터 배웠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는 “언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진학을 포기한다고 해도 어려움은 남는다. 2006년 중국인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온 C양(20)은 미용전문가가 되고 싶어 메이크업 기술을 배웠지만 자격시험에 연거푸 떨어져 꿈을 포기했다. 지금은 식당에서 일한다. 한국어 시험 문항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높은 언어의 벽
취재 도중 만난 베트남 출신 중도입국자녀 F군(16)은 “한국에 오기 전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아직 베트남에 사신다. 빨리 할머니 뵈러 베트남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다’와 ‘돌아오다’를 헷갈려 저지른 실수다. ‘안녕히 계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구별하지 못해 인터뷰를 마친 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며 교실을 나간 아이도 있다.
2010년 사회통합위원회가 중도입국청소년 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상당수가 한국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국어로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며 말하고 발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열 명 중 네 명 이상이 ‘그렇지 않다’(33명, 46.5%)고 했고, ‘교과서나 참고서를 포함한 읽기 교재를 잘 이해하는가’라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29명, 40.8%)는 응답이 40%를 넘었다. 반면 ‘고등학교 졸업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35명(49.3%)이 ‘매우 필요하다’, 21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29.6%)고 답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6명, 8.5%)와 ‘전혀 필요치 않다’(5명, 7.0%)는 의견을 압도했다. 김지선 교사는 “공부는 계속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중도입국자녀 중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수업을 이해할 만큼의 어학 능력을 갖춘 아이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재중동포의 자녀라 해도 한국어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절차상의 어려움도 있다. 다문화학생 지원 NGO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초등학생의 경우 국내 거주 사실만 확인되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학령대 청소년의 경우 제 학년에 맞춰 진학하려면 ‘몇 년 몇 월부터 몇 년 몇 월까지 어느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자녀가 본국에서 이런 증명서를 준비하지 않은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 들어온 뒤에는 서류를 준비하는 게 무척 어려워져요. 본국 학교에서 서류를 받은 뒤 우리나라가 인정하는 기관에서 공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많지 않거든요. 중국을 예로 들면 현지 우리나라 대사관의 공증이 필요합니다. 중도입국자녀의 보호자가 그거 받자고 본국을 왔다갔다 하거나 대리인을 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거죠.”
이 때문에 학교 복귀의 꿈을 품고 준비하다 좌절하는 청소년 수도 적지 않다. 서울시작다문화학교에서 학과 시험을 보면 늘 1등을 할 정도로 학업능력이 우수한 D양(18)도 관련 서류가 마련되지 않아 정규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한국에 온 지 2년이 넘은 그는 내년이 되면 고등학교 3학년생 나이에 중학생들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반면 한국에 온 지 1년 된 중도입국자녀 E양(17)은 정규 학교에 등록했으나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고민 중이다. 그는 “처음 교복을 받았을 때는 무척 기뻤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부러워해서 으쓱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틀 만에 ‘여기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어능력시험 중급에 합격했는데도 수업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자신보다 어린 동급생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사회”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의 전경숙 연구원은 “중도입국자녀는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크고, 부모들은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못한 무력감에 시달린다”며 “이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하려면 진학과 학교생활을 지원해주고 어려운 점을 상담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아이들이 정규학교에 들어가기 전 한국의 학교 문화를 체험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돕는 예비학교와 중도입국자녀에게 특화된 언어 및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력인정 대안학교 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여성가족부의 ‘레인보우 스쿨’, 서울시교육청의 ‘서울시작다문화학교’ 등 관련 기관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중도입국청소년의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3월 다문화학생교육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는 다문화 친화적 학교 육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주호 장관은 이날 “현재 57%에 불과한 중도입국자녀 재학률을 2012년 60%대, 2013년 70%대, 2014년 80%대로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0년 후에 저 28살이에요. 그때는 아마 지금 원하는 것처럼 중국어 선생님 될 것이다. 그때는 아마 몇 년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있을 것이다. 남자친구랑 엄마, 아빠, 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 좀 더 이따가 결혼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신혼여행을 갈 것이다. 아일랜드로 갈 것이다. 아일랜드는 이혼할 수 없는 국가입니다. … 시간이 좀 지나면서 애기도 있다. … 남자면 커서 기타도 배우고 태권도도 배울 것이다. 여자면 피아노랑 합창이랑 댄스랑 태권도 다 배울 것이다. 난 부족하는 것 애기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 그냥 일하다가 쉬고 여행하고 일하고 이렇게 큰 변화없이 죽을 때까지 살고 싶어요.”
A양이 ‘10년 후에’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다. 그는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 아래 행복한 신랑 신부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A양의 소박한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이제 한국 사회가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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