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式 소극적 커뮤니케이션 벗어난 김정은
- 집단정체성 강조 사진은 불변… 체제안정 도구화
- 안정적 권력이양 위해 새 지도자 ‘이미지 메이킹’ 서둘러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오너가 바뀌거나 전략목표가 바뀌면 CI(Corporate Identity)를 교체한다. 시각적으로 변화를 알리기 위해서다. 북한 김정은 사진의 변화는 기업이 CI 교체작업을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2008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대두된 후 약 3년이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제 북한은 김정은 시대로 들어섰다. 아버지 김정일이 살아 있던 2010년 9월 김정은은 당대표자회의 참석을 계기로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 후 2년간 젊은 지도자의 모습으로 신문과 방송에 얼굴을 비치고 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매스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 김정일식 ‘소극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적극적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등장은 생방송이라는 파격적인 방식을 택했고, 현지지도에서 그가 보여주는 행보 역시 거침이 없다. 이것은 북한의 변화이기도 하다.
북한은 왜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노출하는가? 이를 북한의 진정한 변화의 증거로 볼 수 있을까? 이 글은 김정은 사진이 김정일 시대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왜 변화가 일어 났는지, 그리고 사진이 북한의 변화를 어떤 측면에서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김정은 사진의 ‘3S 코드’
김정일 시대와 확연히 차이 나는 점은 ‘속도(Speed)’다. 김정은 사진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배포되고 있다. 김정은이 북한 사회에 등장한 지 열흘 정도 지난 후인 201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65주년 열병식은 CNN 등 세계 방송사들이 공식 초청된 가운데 생중계되었다. 또한 2011년 12월 김정일 영결식에서 김정은은 직접 장례차량을 붙잡고 평양 시내를 걸었고, 이 모습도 국내외로 생중계되었다. 조선중앙TV는 또 올해 김 위원장 생일(2월 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진행된 약식 열병식과 3월 2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사망 100일 중앙추모대회 등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김정은의 현지지도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하루나 이틀 만에 편집되어 방송된다. 짧게는 보름, 길면 6개월 후에 기록 영화 형식으로 방송되던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김정은의 행보가 곧바로 북한 사람들과 세계에 전해진다는 점에서 빨라진 속도는 예전과는 다른 특징이다.
둘째, 웃음(Smile)이다. 김정일 사망 후 북한 신문과 방송에서는 죽음을 애도하며 통곡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이때 김정은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간혹 눈물을 닦는 모습이 비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영결식 당일 김정은은 슬퍼하기보다는 단호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영결식이 끝난 직후부터 북한은 김정은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자신감이 넘치고 환한 모습이다. 심지어는 놀이기구를 타며 웃는 김정은의 모습도 보인다. 이때는 김정일 사망 후 49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우리 정서상 상주(喪主)인 아들이 웃음을 보인다는 것은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먹고살기 빠듯한 북한이 엄청난 돈이 드는 폭죽 행사를 연이어 열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정보당국 등에 따르면 폭죽 행사 비용이 수백억~19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셋째, 위성통신(Satellite)이다. 김정은의 이미지는 인공위성을 통해 곧바로 세계로 전송되고 있다. 이미 김정은은 두 차례의 생중계 방송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 AP통신은 올해 1월 16일 서방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북한 평양에 종합지국을 개설했다. AP 평양지국은 북한 출신 박원일, 김광현 2명의 기자가 상주하며 각각 기사와 사진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 AP통신은 지난 2006년 5월부터 동영상 콘텐츠를 전문으로 송출하는 계열사인 APTN 상설지국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북한이 생산해 공급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송출하던 기존 AP 상설지국은 이제는 기사와 사진, 영상을 모두 송출하는 종합지국으로 확대되었다.
김정은 김정일 사진 다른 이유
또 노동신문은 2011년 2월 17일부터 PDF 서비스를 하고 있다. PDF 서비스란 신문 지면을 디지털 파일 형태로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중국 항공편을 통해 배달된 노동신문을 발행 1주일 후에야 볼 수 있었다. 북한에서 아침에 발행되는 노동신문을 서울에서도 아침에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북한과 김정은의 이미지는 이제 국내용이 아니라 글로벌화를 겨냥하고 있다.
김정은 사진의 기본 코드를 속도, 웃음, 위성통신(Speed, Smile, Satellite)로 나눠 살펴보았다. 그럼 이제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가 궁금해진다.
그것은 전략적 필요성 때문이다. 북한에서 사진과 매스미디어는 정치적 상황에 대응하는 특징이 있다. 정치가 매스미디어를 잘 활용한다는 것은 2008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라는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하고 현지지도를 다시 시작한 김정일의 사진이 노동신문을 도배하다시피 채웠다. 6~10면에 불과한 신문에 한꺼번에 40장이 넘는 사진이 게재되면서 신문 지면은 마치 김정일과 김정은 가족 앨범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다른 뉴스를 제외하고 ‘1호 사진’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김정일의 건재와 사회주의의 완성 과정을 강변했다. 그리고 김정일 사진 중간에 김정은 사진을 끼워 넣음으로써 단계적으로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권력이양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의 체제 위기 상황은 일차적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그리고 김정은은 현재까지 별탈 없이 권력을 차지해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버지와 달리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권력을 이양받았다. 준비기간은 짧았고 후견인은 더 이상 생존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짧은 시간 내에 확보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를 갖고 있다. 이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미디어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북한이 김정은의 이미지를 빨리, 그리고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화면 속 김정은은 이미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아주 여유 있다. 김정은의 웃음은 김정일 시대를 빨리 지우고자 하는 김정은과 측근들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던 김정일 시절, 북한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그 기억을 지우고 싶은 열망이 투영된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김정일 말년의 어색한 모습 때문일 것이다. 뇌졸중으로 다리를 절고, 물건을 잡을 때의 부자연스러움이 화면에서 완전히 가려지지는 못했다. 새로운 지도자, 젊은 지도자를 내세워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져보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평양 시내에서 대규모로 이뤄지는 폭죽놀이 역시 희망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의례로 보인다. 폭죽놀이는 북한에서는 축포야회라고 하는데, 해마다 김정일 생일에 백두산 정일봉에서 한 차례씩 치러졌다. 하지만 김정은이 등장한 이후 2009년 4월 16일, 2010년 1월 8일, 2010년 4월 15일, 2012년 4월 16일 노동신문을 통해 평양 시내에서 치러진 대규모 폭죽놀이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젠 김일성의 생일과 김정은의 생일을 맞아 치러지는 행사가 되고 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출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에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북한은 2012년이 강성대국의 원년이 될 것이며, 사회주의 살림살이가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선전해왔다. 김정은과 국영 미디어들은 급하게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가시적 형태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김정은이 택한 방식이 화려한 불꽃놀이인 것이다.
4월 21일자 노동신문. 기념사진에 등장한 사람들은 열병식 행사 후 인화된 사진 한 장씩을 선물(사랑의 기념사진)로 받는다. 4월 16일자에는 대규모 폭죽놀이를 소개했다.
김정일과 김정은 사진이 다른 두 번째 이유는 김정은이 카메라에 대한 공포가 없다는 점이다. 카메라 공포증이라고 할 만큼 북한 정치인들은 외부 카메라를 거부해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전의 지도자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의 사진을 대중에게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이전 지도자들과는 달리 나이가 어린 상태에서 권력을 잡았고, 따라서 젊음을 과시할 만큼 건강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의 복장과 헤어스타일, 걸음걸이는 할아버지 김일성을 많이 닮았다. 하지만 김정은의 포즈와 행동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차이가 크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하거나 다리를 벌리고 있으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까지 공개되고 있다. 만수교 고기상점 준공식이 열린 4월 26일에는 비가 왔다. 고모 김경희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은 우산을 쓰고 있지만, 김정은은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모습이 공개됐다. 김일성, 김정일보다 나이가 젊은 상태에서 지도자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들이다.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를 전격 공개한 것도 이설주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이설주의 복장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이며 머리핀과 브로치를 하고 등장하기도 한다. 9월 1일의 팝콘을 먹는 사진에서 그는 초상화 배지 대신에 꽃 모양의 브로치를 하고 있었다.
물론 너무 많은 화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다보니 이설주의 가방이 명품이라든지, 김정은의 손목시계가 스위스제라든지, 여동생 김여정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이색적이라든지 하는 곁가지 분석이 나오긴 하지만 북한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다만 열병식 도중 군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화면을 한국 정보관계자들이 분석해 대화 내용과 수준을 파악하자 이에 대해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며 ‘원점 타격’을 거론한 것처럼 정치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셋째는 김정은의 해외 거주 경험이 사진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난 4월 양복을 입은 채 촬영한 증명사진을 전 세계에 배포한 적이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제작된 초상화를 공식적으로 배포했고 복장은 인민복이었다. 김정은이 양복을 입은 채 공식 초상사진 촬영에 임한 것은 국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의상을 선택함으로써 북한도 ‘정상 국가’라는 이미지를 전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공식 행사에 부인 이설주가 양장 차림으로 함께 등장한다.
넷째는 북한도 글로벌 시대라는 시대적 변화를 인정한 결과다. 노동신문 2011년 4월 12일자 6면에 실린 기사에서 북한은 ‘정보화 시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새 소식, 새 자료가 라지오(라디오) 및 텔레비죤 방송, 인터네트 등을 통하여 온 세계에 거침없이 퍼져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북한 역시 인터넷을 통해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북한에 대한 반응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외부 반응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형 김정남도 일본 도쿄신문 편집위원인 고미 요지(五味洋治)와 주고받은 e메일을 통해 ‘북한 젊은이들이 한류와 자본주의 바람에 이미 물들어 있다’고 진단했다. 남한의 드라마를 비롯한 소식들이 속속 북한 내부로 전해지는 상황에서 북한은 외부 세계 매스미디어의 보도 태도를 보면서 순발력 있게 홍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북한은 세계 언론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북한이 ‘후계자 김정은’을 생중계로 보여준 2010년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 열병식에는 미국 CNN을 비롯한 서방 언론사 취재단 약 80명이 초청됐다. 이 밖에도 영국 BBC, AP통신, NPR, 아랍권 위성방송 알 자지라, 스페인 공영방송인 TVE 등도 현장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복잡한 절차에 비해 효과가 미미한 한국 언론들에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열병식이 진행된 김일성광장 주변에는 인터넷 회선이 깔린 프레스센터까지 설치됐다.
북한 김정은의 이미지는 과거 북한 지도자들 이미지와 분명 차이가 있다. 주름살을 가리기 위해 초상화를 이용했던 김일성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의 증명사진은 숨김없어 보인다. 흰 한복을 입고 가끔씩 외교 현장에 등장했던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의 모습에 비해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의 모습도 솔직해 보인다. 게다가 김정일은 한 번도 부인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변화가 북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김정은은 아버지와는 다른 이미지 정책을 펴고 있지만 변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김정은 사진이 과거와 비교해 변하지 않은 것을 살펴보는 것도 현재의 북한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집단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진과 영상을 체제 안정화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노동신문에서는 김정은이 인민이나 군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사랑의 기념사진’이라고 한다.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2012년 3월 첫 방송된 기록영화 ‘소원’은 김정일과 관련된 마지막 기록영화로 소개되었다. 여기서 남자 주인공의 소원은 김정일과 단체 사진을 함께 찍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을 위해 인원이 동원되고 장비가 동원된다. 500명이 넘는 사람이 한꺼번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연단을 실은 대형 화물트럭과 조명이 동원된다. 하루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조별로 김정일을 ‘모시고’ 사진을 찍는다. 사랑의 기념사진에 포함되는 공장과 노동자 군인들은 최고지도자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것으로 간주해 이를 집안과 공장 사무실 중요한 곳에 부착해놓는다. 선물이라는 것은 주고받는(give and take)것이 원칙이다. 사랑의 기념사진을 선물받은 인민과 군인들이 김정은에게 무엇을 반대급부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북한에서 사진은 세습의 정당화와 체제 안정화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지도자는 대중에게 사랑의 사진을 ‘주고’ 대중으로부터 ‘충성과 노동력’을 ‘받는’ 구조로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바뀌지 않은 것은 또 있다. 비록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지만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같다. 김정은의 사진과 영상이 매스미디어에서 차지하는 사이즈와 빈도는 아버지 때처럼 여전히 대단하다. 김정일 건강이상설 이후 개인 앨범처럼 정치사진을 쏟아내는 관행이 생겼는데, 김정은 시대에도 여러 장의 김정은 사진이 하루치 신문에 반복해서 사용된다. 전체 지면의 80%가 사진으로 채워지는 경우도 여전하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편집 방식이다. 가운데 김정은이 위치함으로써 세상의 중심은 여전히 최고지도자 한 사람이다. 물론 과거 김정일 시대와 달리 인민들과의 신체접촉이 잦아졌지만, 최고지도자 중심의 정치 체제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러한 사진은 독점적 지위를 갖는 소수의 사진사에 의해 촬영된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전속 사진기자에게 그대로 자신의 사진을 찍게 하고 있다. 40대 중후반의 남자는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그대로 목격되고 있다. 홍보 일색이면서 비판적 사진은 없다. 여전히 특수한 그룹의 사진가들만이 김정은을 근접 촬영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정은과 측근 그룹들이 이미지를 통해 실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김정은에 대해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인인 것처럼 이미지를 ‘메이킹’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지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끝으로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군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경제 문제 해결과 관련한 실질적인 변화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같다. 북한 매체에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사회주의 부귀영화’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김정은은 건설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가 된 후 올 1월부터 현재까지 김정은은 대략 60회의 현지지도 장면을 노동신문에 공개했다. 이 중 경제와 관련된 현지지도는 15회 정도였다. 만수교 고기상점 준공(4월 26일), 대관유리공장(5월 2일), 개선청년공원 유희장(5월 26일), 중앙동물원(5월 28일),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7월 2일), 능라인민유원지(5월 1일, 7월 2·7·25·26일), 인민야외빙상장 (5월 26일, 7월 27일), 평양아동백화점 (5월 31일, 7월 3일), 운곡지구 종합목장(8월 6일), 평양 창전지구 가정집(9월 5일) 등이다. 경제 현장을 제외한 나머지 현지지도는 군대와 혁명유적지에서 진행됐다.
군부대·혁명유적지 현지지도
올해 1월 1일 김정은이 지도자가 된 후 선택한 첫 방문지는 105탱크 부대였다. 이곳은 김정은이 북한에서 공식 등장하기 이전인 2009년 1월 아버지와 함께 방문했던 부대로, 당시 북한은 남한의 도시 이름이 적힌 팻말 옆을 지나가는 탱크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나중에 공개된 기록영화를 통해 당시 그 탱크를 몬 것은 김정은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부대를 비롯해 동해와 서해, 판문점 등 전국 방방곡곡의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목선을 타고 섬에 위치한 부대까지 찾아가는 행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분야와 관련한 현지지도는 평양과 인근 평안도에 국한되어 있다. 그나마 현지지도를 나선 경제 현장도 물건을 생산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소비와 관련된 곳이라는 점에서 생필품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의 현실과 모순된다. 김정은은 자신의 시선이 닿는 곳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이곳 이외에는 실제로 사진으로 보여줄 만한 곳이 없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북한이 인민 경제 향상의 증거로 보여주는 각종 사업이 수도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점과 실생활 개선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북한 스스로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김정은이 떠안아야 했던 숙제는 체제의 조속한 안정화였을 것이다. 공백기 없이 강성대국으로 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김정은이 대내적으로 택한 전략은 미디어를 통해 인민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략적으로 관리된 이미지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전송되고 있다. 세련된 옷을 입은 젊은 아내와 팝콘을 먹으며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심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지도자는 북한 사람들과 세계인들에게 북한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외부에 ‘배급’하고 있는 사진들은 김정은에 대한 박수갈채가 군부대와 평양에서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은 역시나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북한이 노련한 홍보 활동을 통해 권력 세습을 기정사실화하고 세계 여론에 이해를 구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