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제 맥주는 계절을 떠난 술이 되었다. 서기전 3000년경 수메리아인 기록에도 나올 정도로 긴 역사를 가진 맥주는 국적과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사랑받는 술 중 하나다. 세계에는 많은 맥주가 있다. 해외여행을 하다 만나는 것을 차치하고, 국내에서도 세계의 각종 맥주를 전시한 전문 술집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맥주만큼 기본 종류가 단순한 술도 없다. 맥주는 크게 ‘라거(Lager)’와 ‘에일(Ale)’ 두 종류로 나뉜다. 구별은 어떤 효모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라거는 발효 때 밑으로 가라앉는 ‘하면발효’ 효모를 사용해 저온에서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라거는 한 맥주의 상품명이 됐지만, 실은 맥주의 양대 종류 중 하나를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다. 에일은 전통적인 양조 방식으로 제조한다. 발효 과정 중 위로 떠오르는 ‘상면발효’ 효모를 사용해 실내온도에서 만든다.
오랫동안 맥주는 에일 형태로 만들어졌다. 냉장 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저온 활동 효모로 만들어지는 라거의 존립은 불가능했다. 15세기 중부 유럽의 양조업자들이 더운 여름에도 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맥주를 저온 환경에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독일 양조업자들은 여름에도 서늘한 동굴에서 맥주를 만들다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효모를 발견했다. 당시에는 효모라는 것은 모르고, 발효를 일으켜 술을 만들어 주는 자연 성분으로만 알고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 봐왔던 효모는 맥아즙 위로 떠올라 며칠 만에 발효했다. 그러나 새로운 효모는 용기 바닥에 가라앉아 몇 주에 걸쳐 천천히 발효했다. 바로 라거 맥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라거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상업화가 이뤄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 같은 황금빛깔의 맥주가 체코에서 ‘필스너(Pilsn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면서 라거는 인기를 끌게 되었다.
독일 맥주 상징 맥주순수령
저온 발효는 과일 향을 내는 ‘에스테르(esters)’ 같은 발효 부산물의 생성을 억제하므로 깨끗하고 가벼운 맛을 낸다. 긴 숙성과정은 맥주 맛을 부드럽게 해준다. 라거는 섭씨 4~7도의 낮은 온도에서 마셔야 최적의 맛이 난다. 에일은 묵직한 느낌을 준다. 과일 향을 풍기며 쓴맛이 강하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맥주 옹호론자들은 에일을 진정한 맥주로 평가한다. 그러나 라거가 주는 청량감에 밀려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라거에 밀리고 있다. 위기를 느낀 에일 옹호론자들은 1970년대 초 영국에서 ‘진정한 에일을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Real Ale)’ 단체를 만들어 부흥운동을 벌였다. 에일은 10~13도의 낮지 않은 온도에서 마셔야 제맛을 볼 수 있다.
맥주 하면 독일을 떠올린다. 독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제일의 맥주대국이다. 라거 맥주에서는 역사나 전통, 소비량을 볼 때 가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맥주와 소시지를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은 독일의 상징이 되고 있다.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축제 ‘옥토베르페스트(Octoberfest)’는 꽤 유명하다. 1810년 10월 바이에른 황태자인 루트비히(Ludwig)의 결혼에 맞추어 시작된 이 축제는 700여 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맥주가 독일의 대표 술이 된 데는 한 원칙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바로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이다. 이 원칙은 1516년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가 맥주의 품질 향상을 위해 공포한 법안이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맥주 제조에 보리와 홉, 그리고 물 3가지 원료 이외 다른 재료는 일절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해외로 수출되는 독일산 맥주의 상표에는 ‘Brewed in strict accordance with the German purity law of 1516’이란 영문이 적혀 있는데 ‘German Purity Law’가 맥주순수령이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 다른 국가의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법령이 있었기에 독일 맥주는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 세계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이트맥주가 ‘프라임’이라는 상표를 내놓으면서 맥주순수령 기준으로 만든 제품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맥주순수령을 공포한 빌헬름 4세(1493~1550)는 어떤 군주였는가.
종교개혁에 반대한 군주
그는 독일 남동쪽의 바이에른이 독립국이었을 때 그 지역을 통합한 알브레히트 4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재 바이에른은 독일 면적의 거의 20%를 차지하는, 독일에서 가장 큰 주다. 인구는 약 1250만 명으로 독일에서 두 번째로 많다.
1506년 그는 장남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부친의 뜻에 따라 후계자인 ‘바이에른 공작’직에 올랐다. 그러자 동생 루트비히가 계승권에 관한 부친의 칙령이 공포되기 전에 태어났으니 그 칙령에 관계없이 자신도 상속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루트비히는 어머니와 의회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빌헬름 4세는 이에 굴복해 1516년부터 동생과 함께 바이에른을 공동 통치하다, 란츠후트와 슈트라우빙을 동생에게 분할해주었다. 그 후 동생은 루트비히 10세가 된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자신이 강의해온 비텐베르크대학 정문에 내걸면서 종교개혁의 열풍이 전 유럽에 휘몰아쳤다. 빌헬름 4세는 종교개혁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했으나 신교도의 세력이 강해지자 생각을 바꾸게 됐다. 1522년 그는 바이에른에서 마르틴 루터의 추종자들을 모두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1524년에 교황인 클레멘스 7세와 협정을 맺으면서 그는 강력한 반(反)종교개혁 지도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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