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1월 5일 외교통일안보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종합 정책공약을 발표한 두 후보는 이번 발표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추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그날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기존에 진행 중이던 새정치공동선언 협상에 이어 경제개혁 공동선언과 안보평화 공동선언 협상을 추가하자고 제안했고 문 후보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모든 정책공약을 협의해서 하나로 만들자는 생각이다. 결국 후보 단일화 이후에나 최종판 정책공약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선수들이 뭘 하겠다는 건지…
유권자는 답답하다. 선수 명단 확정도 더딘 데다가 그나마 확정된 선수들조차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공약은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것인지 국민에게 빨리 내놓고 성적표를 받아야 하지만 그들은 성적표 받기를 두려워하거나 평가를 받을 준비조차 안 되어 있는 형국이다. 대선 투표일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인데도 차기 정부의 청사진을 제대로 알 수 없는 현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모독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좋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더 기다려줄 수 있다. 제대로 된 청사진만 만들어준다면.
그런데 이것이 문제다. 이미 공개한 정책공약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먼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대표적인 차기 정부 대표 비전으로 선언했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놓고 내홍을 겪었다.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박근혜 후보 국민행복추진위원회는 이미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약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국회의원들은 아예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지난 8월에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황이다.
박근혜 후보는 11월 8일 경제5단체장과 만난 자리에서 “기존 순환출자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적절하고 앞으로는 순환출자를 하지 않게 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후 경제민주화의 전도사로 알려진 김종인 위원장과 갈등을 빚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진정성이 정말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개헌 공약도 이랬다저랬다
박 후보는 11월 5일 외교안보통일 분야 공약을 발표했다.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 국가안보실 설치, 북한 지도자와의 만남이 핵심이다. 불과 열흘 전인 10월 24일 박근혜 후보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비공개 대화록이 존재한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 문제는 노무현 정권에서 책임졌던 사람들이 명확히 밝히면 되는데 의구심만 증폭시키고 있다”며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겨냥한 발언을 내놓았다.
NLL 문제를 제기해서 북한 당국을 격앙시킨 뒤에 내놓은 장밋빛 대북공약은 그래서 빛을 잃었다. 북한 당국은 지난 9일 “박근혜의 외교안보통일정책 공약이라는 것은 이명박 역도의 대북정책보다 더 위험천만한 불씨를 배태하고 있는 전면대결 공약, 전쟁 공약”이라고 반발했다. 북한의 이런 반응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박 후보 캠프 쪽에서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권자들로서는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박 후보는 11월 6일에 정치쇄신 공약도 내놓았다. 야권 후보자들이 새정치공동선언을 하려는 데 대한 맞대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개헌 방안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당내 일각의 제안에 대해 캠프가 거의 공개적으로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막판에 포함시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개헌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잘 포장된 공약, 하지만 실천의지가 없어 보이는 공약은 ‘헛 공약’일 뿐이다.
안철수 후보가 11월 11일에 발표한 정책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의 ‘비전Ⅰ. 문제가 아니라 답을 주는 정치’ 편은 아예 비어 있다. 다만 이렇게 쓰여 있다. ‘새정치공동선언에 의해 결정.’ 새정치공동선언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발표했기 때문에 제외했다는 설명이다. 답을 주는 정치라고 해놓고 정작 내용을 비워두다니. 대선 공약이 점점 코미디로 흐르는 느낌이다. 안 후보는 출마선언을 하면서 ‘정치혁신’을 미션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일련의 주목받을 만한(?) 정치공약을 제시했다.
안철수는 허경영 닮아간다
청와대 이전, 청와대가 임명하는 자리의 10분의 1 이하 축소, 국회의원 정수 축소, 중앙당 폐지 또는 축소,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최근의 선거비용 절반 축소가 그것이다. 이른바 ‘축소 시리즈’는 그러나 여기저기 결함을 드러낸다. 청와대 임명 자리를 축소하면 부처 관료의 권한이 비대해지고 국회의원 정원을 축소하면 행정부 권한이 너무 커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는 단일화 파트너인 문재인 후보 측에서도 “그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안 후보 측이 이러한 반론에 대해 적절한 재반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별 심사숙고 없이 후보 취향에 맞춰 급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