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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장벽·따돌림 학교 밖 떠도는 아이들

한국 속 이방인 중도입국자녀 실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언어장벽·따돌림 학교 밖 떠도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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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인 뇌관

이는 일반적인 다문화가정 자녀의 재학률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민주통합당 인재근 의원이 행정안전부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자녀의 올해 고등학교 취학률은 35.33%다. 초등학교·중학교 취학률은 각각 78.22%, 56.32%로 조사됐다. 이들의 초·중·고등학교 전체 취학률은 66.86%로 우리나라 전체 취학률(96.1%)의 3분의 2 수준이지만, 중도입국자녀에 비하면 훨씬 높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실의 이민정 보좌관은 “중도입국자녀들이 일반적인 다문화가정 자녀보다 교육적으로 훨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존의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한국문화를 접하며 자라기 때문에 다소 차별을 당할지언정 진학 자체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반면 외국에서 나고 자란 중도입국자녀는 현행 교육 체계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중·고교 진학률은 99%를 상회한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실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99.9%가 중학교에 진학했고, 중학생의 99.7%가 고등학교에 갔다. 대학진학률도 72.5%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중도입국자녀의 고교재학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조혜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활동·역량연구실장은 “교육은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라며 “이 통로가 막히면 중도입국자녀와 일반 국민 사이에 계층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도입국자녀가 우리 사회의 잠재적인 불안요소가 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들을 교육체계 안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조 실장의 생각이다.

탈학교 청소년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 중도입국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사회적응교육도 시키는 서울시작다문화학교 김지선 교사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대부분은 집이나 PC방에서 컴퓨터 게임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일을 시작하는데,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하듯 여러 직종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언어 문제다. 11월 초 서울시작다문화학교에서 만난 B군(16)은 중국에서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성적이 좋았다고 했다. 로비에 앉아 중국어 신문을 읽고 있던 그는 “한국에 들어오고부터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뻔히 아는 수학 문제도 ‘방정식’ ‘유리수’ 같은 단어 뜻을 몰라 틀리기 일쑤라는 것. “중국어는 16년 했어요. 한국어는 2월부터 배웠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는 “언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진학을 포기한다고 해도 어려움은 남는다. 2006년 중국인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온 C양(20)은 미용전문가가 되고 싶어 메이크업 기술을 배웠지만 자격시험에 연거푸 떨어져 꿈을 포기했다. 지금은 식당에서 일한다. 한국어 시험 문항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높은 언어의 벽

취재 도중 만난 베트남 출신 중도입국자녀 F군(16)은 “한국에 오기 전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아직 베트남에 사신다. 빨리 할머니 뵈러 베트남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다’와 ‘돌아오다’를 헷갈려 저지른 실수다. ‘안녕히 계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구별하지 못해 인터뷰를 마친 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며 교실을 나간 아이도 있다.

2010년 사회통합위원회가 중도입국청소년 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상당수가 한국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국어로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며 말하고 발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열 명 중 네 명 이상이 ‘그렇지 않다’(33명, 46.5%)고 했고, ‘교과서나 참고서를 포함한 읽기 교재를 잘 이해하는가’라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29명, 40.8%)는 응답이 40%를 넘었다. 반면 ‘고등학교 졸업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35명(49.3%)이 ‘매우 필요하다’, 21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29.6%)고 답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6명, 8.5%)와 ‘전혀 필요치 않다’(5명, 7.0%)는 의견을 압도했다. 김지선 교사는 “공부는 계속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중도입국자녀 중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수업을 이해할 만큼의 어학 능력을 갖춘 아이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재중동포의 자녀라 해도 한국어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절차상의 어려움도 있다. 다문화학생 지원 NGO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초등학생의 경우 국내 거주 사실만 확인되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학령대 청소년의 경우 제 학년에 맞춰 진학하려면 ‘몇 년 몇 월부터 몇 년 몇 월까지 어느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자녀가 본국에서 이런 증명서를 준비하지 않은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 들어온 뒤에는 서류를 준비하는 게 무척 어려워져요. 본국 학교에서 서류를 받은 뒤 우리나라가 인정하는 기관에서 공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많지 않거든요. 중국을 예로 들면 현지 우리나라 대사관의 공증이 필요합니다. 중도입국자녀의 보호자가 그거 받자고 본국을 왔다갔다 하거나 대리인을 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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