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중국교포 여성과 결혼 후 아내의 잦은 가출로 4년 전 협의이혼을 한 50대 초반의 A씨. 큰아이를 애지중지 키웠지만 클수록 자신과 닮은 구석이 없자 고민 끝에 친자 검사를 의뢰했다. 아이는 A씨의 자식이 아닌 걸로 판명됐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결혼 생활 중 아이를 임신한 채로 가출한 아내는 이후 둘째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 역시 확인 결과 A씨의 자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첫째는 물론이고 아내가 가출해서 낳은 둘째 아이까지 자신의 자식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오르자 충격을 받은 A씨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현재 직장을 휴직한 상태다.
#사례 2. 2년 전 이혼녀와 동거를 시작한 30대 중반의 B씨.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지만 여자는 자식을 돌보는 데 소홀해 B씨가 양육을 도맡다시피 했다. 어느 날 구청에 아이를 ‘혼인 외 자’로 출생신고 하러 간 B씨는 경악했다. 그동안 이혼녀라고 믿고 살았던 동거녀가 사실은 유부녀였던 것.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면 동거녀 남편의 자식으로 올라간다는 말에 B씨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후 아이 엄마가 B씨와 다툰 후 가출까지 해 B씨는 돌 지난 아이의 출생신고도 못한 채 속을 끓이고 있다.
#사례 3. 사귀던 여자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결혼을 서두른 30대 초반의 C씨. 출산 뒤 아이의 혈액형이 자신과 아내 사이에 나올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추궁한 끝에 아이 아빠가 다른 남자임을 확인했다. 엉뚱한 남자의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삼을 수 없었던 C씨는 아이가 친자식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친생부인(否認)의 소’를 제기했다. 그와 동시에 아내와는 협의이혼하기로 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아내를 사기결혼으로 처벌하고 그동안 들어간 아이의 양육비까지 몽땅 받아내고 싶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진짜 아빠(생부)’와 ‘법률상 아빠(친부)’를 둘러싼 갈등으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법 제844조 ‘친생추정’ 조항에 따르면 ‘처(妻)가 혼인 중에 포태(胞胎)한 자는 부(父)의 자(子)로 추정한다. 혼인 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남편 아닌 다른 남자의 자녀임이 명백한 아이가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남편의 법률상 친자로 기재되면서 논란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례 1의 A 씨가 ‘법률상 친부’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남자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부분은 “아내(혹은 전처)가 다른 남자 아이를 낳은 것도 황당한데 그 아이를 왜 내 자식으로 올려야 하나” “잘못은 아내가 저질렀는데 왜 내가 소송을 걸고 재판을 받아야 하나”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재판에 참석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하나” 등이다. 이 때문에 아내나 전처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청구를 하겠다고 나서는 남자들도 적지 않다.
친부·생부·생모·자녀 4중고
‘진짜 아빠’ 논란으로 인한 피해는 법률상 친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부 역시 고통을 받는다. ‘사례2’의 B씨의 경우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면 자동적으로 동거녀 남편의 자식으로 서류에 등재되기 때문에 친권과 양육권이 없어진다. 출생신고와 함께 법률상 친부가 되는 동거녀의 남편, 또는 생모인 동거녀가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도 어렵다. 스스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해 확정판결을 받은 후 시·군·구 등 지자체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을 내서 법률상 친부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아이를 빼낸 다음 다시 지자체에 자신이 아버지임을 인지신고한 후라야 비로소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를 등재할 수 있다. 재판을 통해 양육권을 가져온다 해도 친권은 회복하기 어렵다.
생모 역시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기는 마찬가지다. D씨의 사례를 보자. 남편에 의해 간통죄로 고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이혼당한 그는 이혼 전 외도로 둘째를 임신, 출산했다. 이 아이는 본인과 남편 모두 혼외 자녀인 것을 알고 있지만, 친생추정 조항 때문에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남편의 자식으로 기재됐다. 이혼 당시 남편은 “이 아이를 빼가라”고 이씨에게 통고했지만 소송비가 드는 데다 아이의 생부와도 연락이 끊긴 상태라 어찌 하지 못하고 있다. 행방을 감춘 생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를 올리기가 쉽지 않고, 가능하다 해도 자신을 버린 남자의 자식으로 만들기도 싫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문제로 재혼 가정이 파탄 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30대 초반인 E 씨는 전남편과의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이후 아이의 생부인 동갑내기 F씨와 재혼한 정씨는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가족관계등록부상 전남편의 자식이 된다는 것. 현재 F씨의 부모는 며느리가 재혼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E 씨는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이런 법 규정으로 누구보다 큰 피해를 보는 건 당사자인 자녀다. 20대 초반 여성 G씨는 최근 자신의 출생신고가 이중으로 돼 있을 뿐 아니라 가족관계등록부도 두 개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생모가 외도로 자신을 낳은 뒤 친부의 자녀인 것처럼 출생신고를 하고, 생부는 생부대로 또 출생신고를 해 벌어진 일이다. 2008년 호적법 개정 당시 전산상의 착오 등으로 두 개의 호적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가족관계등록부로 옮겨지면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
이 외에도 자녀가 보는 피해는 또 있다. 부모가 친생추정 조항을 피하려고 아이의 출생신고를 미루는 바람에 출생신고 상의 나이보다 실제 나이가 더 많아 고통 받는 경우 등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법률구조 1부장(상담위원)은 “상담 사례 중 10살짜리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 경우가 있었다. 그 때문에 아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