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도시를 외부와 차단한 분리 장벽.
‘유대의 전통은 이곳이 천지창조의 중심이라고 가르친다. 언덕의 중심엔 세계를 떠받드는 주춧돌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나왔다. 이곳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신을 섬겼다.’
여러 나라 유적지와 관광지를 둘러봤지만 이런 식의 안내문은 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다. 안내문은 세계와 역사와 인간 그 자체의 발원지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창세기 이야기가 ‘자뻑’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구약성서로 이어져 지금도 21억 기독교인을 동화시키고 있다.
서기 70년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된 뒤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1948년 이들은 옛 땅에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을 세웠다.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는 2만766㎢로 그리 넓지 않은 데다 70% 이상은 사막화가 진행돼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 스스로는 이 땅을 ‘거룩한 땅(holly land)’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복지’이자 ‘소돔과 고모라의 땅’이며 ‘모세가 영도하고 다윗과 솔로몬이 번영을 구가한 시오니즘의 본산’인 것이다.
만약 장엄하면서도 디테일한 유대교의 서사가 없었다면 유대인들은 그 오랜 기간 민족의 혈통을 유지하지도, 국가를 세우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그 고난과 굴곡의 역사를 떠올리면 유대인들이 자신의 종교에 특별한 애착과 자긍심을 갖는 것이 그럴만해 보이기도 한다.

하늘에서 본 분리장벽. 오른편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포위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곽을 나와 신시가지로 갔다. 2005년 포스트모던 스타일로 단장한 기념비적인 건물이 보였다. ‘야드 바홀로코스트 박물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600만에 이르는 유대인이 독일 나치에게 어떻게 학살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면 ‘야누스 코르자크와 아이들’이라는 군상(群像)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야누스 코르자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어느 마을의 교사였다. 독일 군이 어린 유대인 학생 200여 명을 잡아갈 때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두려워하는 아이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다고 한다. 코르자크는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와 아이들은 트레블렌카 수용소로 옮겨져 1942년 8월 독가스실에 들어가게 됐다. 군상은 코르자크가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죽음을 맞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코르자크는 민족과 종교를 초월한 사랑을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이 코르자크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은 공감할 만하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세계사에 영향을 준 유구한 종교적 전통을 가졌고, 박애와 희생 같은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공유하는 것으로 비친다. 예루살렘 시내의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서 잠시 인터뷰한 모 장관의 여성 보좌관은, 상당수 유대인이 그렇듯이, 매력적인 외모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예루살렘 성곽.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