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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 리포트

최고의 노후대책은 재테크 아닌 情테크

황혼이혼 위기 지혜롭게 극복하려면…

  • 김지은 객원기자 | likepoolggot@empal.com

최고의 노후대책은 재테크 아닌 情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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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33만 쌍, 이혼 11만 쌍. 2012년 이혼한 부부 11만 쌍 중 26.4%가 동거 기간 20년 이상의 ‘황혼이혼’이었다. ‘신혼이혼’ 비율을 훌쩍 앞질렀다. 오랜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이혼 선언. 전문가들은 “부부가 함께 행복한 노년을 맞으려면 돈보다 ‘마음’을 저축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어떻게?
최고의 노후대책은 재테크 아닌 情테크
8년 전, 일본 사회의 결혼과 이혼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드라마 한 편이 열도를 뒤흔들었다. ‘숙년이혼(熟年離婚)’. 우리말로 ‘황혼이혼’을 뜻하는 단도직입적인 제목의 이 드라마는 20%대를 웃도는 시청률을 올릴 만큼 커다란 반향을 이끌어냈다.

드라마는 한 가장이 정년퇴직 당일 저녁, 온 가족이 함께하는 만찬 자리에서 아내로부터 보기 좋게 이혼을 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결정적 요인은 누가 봐도 번듯한 남자주인공 캐릭터에 있다. 폭력적이거나 무능력하지 않고 이혼당해 마땅한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노년 신사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중견기업 중역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그의 정년퇴직은 분명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는 가족과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좋으면 가족 모두가 좋고, 자신이 싫으면 가족도 다 싫어할 거라는 오만, 가족 구성원이 자기의 생각과 통제 속에서만 행복할 것이라는 그의 확신은 당시 황혼이혼에 내몰린 일본 남성들의 공통적인 착각이자 ‘실수’였다. 소통 부재가 불러온 가족 해체, 그것은 이제 일본뿐 아니라 우리 이웃, 내 가족의 뼈아픈 자화상이 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한국에서도 비슷한 콘셉트의 드라마들이 속속 방영돼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을 보면 황혼이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참고 살 이유가 없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늘그막에 무슨 이혼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히 평균수명 증가는 황혼이혼을 고려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삶의 질이 윤택해지고 의료 수준이 높아지면서 50~60대는 더 이상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야 할 30여 년 세월을 새롭게 준비해야 할 터닝포인트로 바뀌고 있다. 더욱이 황혼이혼을 결심하는 부부는 대개 자녀가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더 이상 자식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할 이유마저 크게 줄어든다. 오롯이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혼 시 여성에 대한 재산분할 비율이 높아진 것 또한 과거엔 막연하게만 생각됐던 황혼의 홀로 서기를 결심하게 하는 이유다. 황혼이혼의 경우 젊은 세대의 이혼과 달리 자녀 양육권이나 양육비 문제로 싸울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노년에 대비하기 위해 재산분할, 위자료 등 경제적 부분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과거 20~30%에 불과했던 전업주부 재산분할 비율이 최근엔 여성의 자산증대 기여도에 따라 50%까지 높아진 사례가 많은 데다, 분할연금제도에 이어 공무원 출신 남편의 퇴직연금도 분할자산에 포함하라는 판례까지 나오면서 황혼이혼 이후 여성의 경제적 자립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현행법상 혼인기간이 5년 이상이면 국민연금은 이혼 시 별도의 재산분할청구를 하지 않아도 노령연금 수급권자가 됐을 때 배우자였던 사람의 노령연금을 분할 지급받을 수 있다. 분할연금액은 혼인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의 절반이며, 연금수급연령 도달 후 3년 이내에 신청하면 된다. 다만 분할연금 청구권 발생 연령인 60세 이전에 배우자였던 사람이 사망하거나 재혼을 했다면 수령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이러한 법·제도적 맹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다, 선진국에선 이혼 시 퇴직금이나 주택연금, 개인연금까지 분할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경우가 많아 한국도 이런 흐름에 편승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여성에 대한 재산분할 비율이 높아진 것이 직접적인 경제활동을 해온 남편 처지에선 억울할 수도 있지만 아내의 가사노동과 육아, 자산증대 기여도 등은 이혼 시 재산분할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위자료는 황혼이혼이라고 해서 더 많이 받기보다는 잘못의 경중(輕重)에 따라 금액이 정해진다. 외도를 했거나 폭행 등이 이혼사유로 전제되면 위자료 액수는 당연히 늘어난다.

남편 이혼 청구도 늘어

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이혼 이후의 삶을 좀 더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것일 뿐, ‘이 사람과 참으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결정적 이유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황혼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의 권위와 의견이 가정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던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의 가족 역시 구성원 간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가족의 의식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가부장적 사고에만 사로잡힌 가장의 고집스러운 모습이 가족에게 결코 달가울 리 없다. 특히 아내 처지에선 퇴직 후 더는 경제활동을 못하게 된 남편이 가사를 분담하기는커녕 아내를 수족 부리듯 하며 시어머니마냥 시시콜콜 잔소리만 해대는 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억압으로 다가올 수 있다.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건 언제나 아내 쪽일 것이라는 사회통념도 깨지고 있다.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권리 신장이 빠르게 이뤄지는 만큼 남성도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와 가족 부양의 무거운 짐을 벗고픈 욕구 등으로 이혼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 최근엔 평생 생활비와 교육비 요구에 시달린 남편의 이혼 청구가 받아들여진 판례가 나오는 등 황혼이혼 형태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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