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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늙어가는 옛 선후배들, 해발 4260m에서 우리, 살아있네~

5060 ‘야산회’는 왜 차마고도로 갔나

  • 김종욱 | 자영업자 gayain@nate.com

함께 늙어가는 옛 선후배들, 해발 4260m에서 우리,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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琴·棋·書·畵·煙·酒·茶

세계 3대 트레킹의 시발점치고 일출소우의 풍경은 지극히 소박했다. 헛간쯤 되는 벽돌 건물의 벽에 ‘고로, 합파설산(高路, 哈巴雪山)’이라는 낙서와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말 두 마리가 전부였다.

호도협 트레킹은 합파설산 중턱의 한갓진 나시족 마을을 잇는 오솔길을 걷는 코스인데 계곡 건너편에 우뚝 솟은 옥룡설산을 건너다보고, 저 아래 까마득한 계곡물을 내려다보며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하는 멋진 트레킹이었다. 이동하는 데 오래 걸려 이내 점심시간이 됐다.

해발 2100m 산봉우리 중턱에 자리 잡은 나시객잔은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나시족 남자들은 금기서화연주차(琴棋書畵煙酒茶), 이 일곱 가지에만 능하면 아무 일을 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남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나시족 여인과 10대 후반의 딸이 내 입맛에 딱 맞는 점심을 내놓았다. 아니, 고도의 중심 잡기 능력이 요구되는 널빤지 의자에 앉아 맨눈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먹은 점심이라 더더욱 맛이 좋았던 것은 아닐까.

배를 든든히 채우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28밴드로 향했다. 28굽이 길이라 이름이 그렇단다. 아무튼 풍경에 취하고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에 취해 타박타박 길을 걷는데, 언제부터인지 노린내가 폴폴 나면서 은근한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뒤돌아보니 말 몇 마리와 40대로 보이는 남녀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돈 내고 탄다는 그 말이구나.



몇 밴드나 올랐나 서로 물으며 가쁜 숨을 몰아 쉴 즈음에 나귀는 “쯧쯧…얼른 타시오, 얼른 타…”라는 듯이 방울을 더 딸랑이는 듯했고, “이래도 안 탈 거야?”라는 듯이 노린내를 더 진하게 풍기며 우리 뒤를 바짝 쫓았다. 하지만 우리 팀은 아무도 그 나귀를 타지 않았다. 미안하게도. ‘아니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그 먼 길을 따라온 그들의 무심한 눈길에서 세상사를 초월한 기인의 풍모가 느껴졌다.

허망하게 돌아간 마부만큼이나 마음 아픈 일이 있었다. 전망 좋은 산모퉁이에는 으레 오이, 호두, 사과 등을 판매하는 ‘농상공’(‘농민공’에 빗대어 농작물 판매도 간간이 하는 노파들에게 내가 붙인 이름이다)이 있었는데, 그들의 다정한 인사에도 물건을 하나도 사주지 못했다. 그들의 살가운 몸짓이 너무 정겨워 웬만하면 한번 사 먹어보자고 마음먹다가도, 벌여놓은 물건들을 보는 순간 사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버리곤 했다. 저 아래 집에서 한참을 올라와 한나절은 족히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 텐데.

함께 늙어가는 옛 선후배들, 해발 4260m에서 우리, 살아있네~

차마고도에서 보이는 히말라야 자락.

함께 늙어간다는 것

28밴드의 끝자락은 다소 허무했다. 그저 갑자기 천길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저 밑에 길게 이어진 호도협 계곡을 내려다보며 우리는 “저 계곡이 그 옛날 제갈공명이 위연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려다 실패한 바로 그 계곡인가” “저 계곡이야말로 화공(火攻)의 적지(適地)다” “저 산 너머 살았을 맹획의 부인 이름은 뭐였지?” 등등 삼국지를 중구난방으로 휘적거리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갑자기 거적때기와 싸리나무로 지붕을 엮은 노점상에서 인민해방군 상의를 입은 사나이가 튀어나왔다. “한국인은 5위안입니다”라는 한글 알림판을 들고서. 말인즉,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중국인은 8위안을 받는데 한국인은 특별 할인을 해준단다. 그것 참, 봉이 김선달보다 심한 것 아닌가. 그러나 정성스레 위치를 잡아 사진을 찍어주는 센스는 만점이었다. 또한 그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리 싸게 잡아도 5위안 이상이어서 그의 귀여운 꼼수에 즐거이 속아 넘어갔다.

28밴드를 넘어서자 숲길과 절벽길이 뒤섞이며 계곡 건너의 설산을 즐길 수 있는 길고 긴 길이 이어지고, 마치 우리나라의 절집처럼 단아하고 여유로운 규모의 산골 농가가 산자락에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그들의 살림살이는 남루한 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잘 정돈돼 있었다. 우리는 조금 어이없어하며 “이것이 사회적 약자 보호책, 소수민족 우대책인가?” 하는 의견도 나눴다. 그런 한편, 이 적막강산에,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저들은 누구든 만나면 반갑고, 나누는 것이 행복한 삶일 것이니 삶이 곧 수행인 구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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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 자영업자 gaya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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