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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일본 혐한(嫌韓) 광풍의 속살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대마도에서 사라지는 ‘한국 흔적’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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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조선통신사 행렬을 그린 일본의 옛 그림.

대마도 곳곳의 한국 DNA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대마도에는 아직 한국 관련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우리 역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대마도 도주의 아들과 정략결혼한 고종 황제의 딸 덕혜옹주의 결혼봉축비, 옛 이즈하라 성문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맞기 위해 만든 고려문, 조선통신사 행렬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통신사비, 백제 승려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수선사(修善寺), 항일운동을 하다 붙잡혀 대마도로 압송되면서 “왜놈들이 주는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다”며 버티다 목숨을 잃은 면암 최익현 순국비, 조선 숙종 때 조난당해 목숨을 잃은 역관사 108명을 기리는 역관사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대마도 사찰에서는 신라 불상, 고려 불상, 조선시대 범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즈시마 흑뢰성산(黑瀨城山) 꼭대기의 금전성(金田城)은 일본의 전통적인 성이 아닌 한국식 산성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성 안에는 하나같이 우물이 없는데 금전성 안에는 우물과 인공 개울이 있다. 이는 한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토성들과 유사하다. 연구자들은 금전성이 백제가 망한 뒤 백제 부흥군과 한반도에서 퇴각한 백제 유민들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쌓은 것으로 밝혀냈다. 이를 통해 백제계 유민들이 대거 대마도로 이주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대마도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부옥(釜屋·부산댁)’‘부산(釜山)’‘아비류(阿比留)’를 성씨로 한다. ‘부산 씨’는 일본에서도 대마도에만 있는 성씨이고, 아비류는 아사달·아직기·아사녀·비류백제 등과 어원이 같은 백제 계통 성씨다. 대마도 주민의 혈통이 한국, 특히 백제에서 유래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언어에서도 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대마도에서도 지게를 가리켜 ‘지게’라고 한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쓰지 않는 대마도만의 말이다. 임영주 위원장은 “‘지게’를 비롯해 일본 본토와 달리 대마도에서만 통용되는 한국어(한국산 단어)가 300개가 넘는다”며 “대마도 주민들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소설가 이원호 씨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대마도의 유전자(DNA)는 곧 한국이라는 걸 현지에 가보면 바로 알게 된다”고 한 적이 있다. 2박3일 동안 대마도 구석구석을 돌면서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백제 승려가 창건했다는 수선사.

이 씨는 최근 출간한 소설 ‘천년恨 대마도’(맥스미디어)에서 역사적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대마도는 엄연한 조선 땅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마도는 1867년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쓸모없는 땅으로 사실상 버려져 있었다. 그러다 일본이 어수선한 국제 정세를 틈타 1871년 이즈하라현으로, 1876년엔 다시 나가사키현으로 편입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후 일본은 끊임없이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리와 그들 자신을 세뇌했다”며 “우리가 그렇게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을 여전히 지닌 채 대마도를 일본 땅이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한탄했다.

임 위원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마도가 우리 땅이냐’고 묻는다면 ‘대마도는 우리의 옛 땅’이라고 답할 수 있다”면서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는 무수히 많다”고 했다. 먼저 조선 세종실록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대마도라는 섬은 본시 계림(신라의 별칭으로 지금의 경상도)에 속한 우리나라 땅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 데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네 나라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일본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들의 소굴이 됐다.”

‘양국의 영토’

조선 영조 때인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 설명문에는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라고 쓰여 있다. 심지어 일본의 여러 고지도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으로 표기돼 있다. 1592년 일본인이 제작한 ‘조선팔도총도’와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 등이 그렇다. 특히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발견된, 1785년 일본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만든 ‘삼국접양지도’의 원본에는 독도와 대마도가 우리나라와 같은 색깔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이 지도를 흑백으로 위조해 쓰고 있었고, 이에 대해 묻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부터 6·25전쟁 전까지 60여 회에 걸쳐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을 통해 물자를 공급받아야 했던 한국은 더 이상 대마도 반환을 거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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