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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잊고 하루 19시간 강행군 ‘강대국에 약하다’ 단점 꼽혀

반기문 유엔 총장 리더십 논란의 실체

  • 박현진│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

휴일 잊고 하루 19시간 강행군 ‘강대국에 약하다’ 단점 꼽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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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퍼먼 편집장은 이를 ‘반 총장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스스로 인정했다’는 식으로 왜곡했다. 인신공격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반 총장이 영어를 잘 못해 메모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를 꼬집어 ‘어설픈 의사전달자(Clumsy communicator)’라고 비판했다. 전직 유엔 외교부문 고위 직원의 말을 인용해 여러 국가의 고위 관료들이 반 총장과 대화를 나눌 때 그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는 반 총장이 유엔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에 든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무력한 관찰자’‘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이라고 혹평했다.

얼마 후 기자는 뉴욕 맨해튼에서 유엔 사무총장실 및 주(駐)유엔 한국대표부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던 중 이 칼럼에 대해 물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다소 놀라웠다. 한마디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였다. 태퍼먼은 뉴욕에서 그다지 비중 있는 칼럼니스트도 아닐뿐더러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칼럼을 쓴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이미 첫 번째 임기 동안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반 총장이 실제 막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기사가 많다”고 덧붙였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반 총장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진 시기는 첫 번째 임기의 반환점을 돈 2009년이다. 여러 매체가 반 총장의 업적을 조명했지만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해 6월 13일자에 게재한 중간성적표가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축에 든다. 이 매체는 반 총장이 “강대국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꺼린다”며 껄끄러운 상대와는 부딪치려 하지 않는 태도를 약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4개 평가항목 가운데 하나인 ‘소신도(Truth to power)’에서 10점 만점에 3점을 줬다. 세계 각국의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평화유지군 활동도 6점에 그쳤다. 반면 기후변화, 식량위기 및 기아 해결 등 세계 발전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분야인 ‘보다 큰 조망(The bigger picture)’에 대해서는 8점의 후한 점수를 주면서 “반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의 리더십은 ‘총장 또는 지도자(General)’보다는 ‘행정가(Secretary)’ 스타일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2009년 6월 14일 WSJ는 ‘유엔의 보이지 않는 남자(The U.N.′s Invisible ma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반 총장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고 강한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달 22일에는 미국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어디에도 없는 남자 : 반기문은 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반 총장에게 직격탄을 던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해 5월 WSJ와 NBC방송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미국인 응답자의 81%가 반 총장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달지 않거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한 것.



당시 언론의 비판을 요약하면, 사람들이 반 총장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이 점에서 흔히 비교되는 인물이 코피 아난 전임 총장이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미국 등 강대국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한때 ‘속세의 교황’으로 불릴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그는 미국이 유엔의 동의 없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은 아난으로 인해 이라크전 당시 시간과 비용에서 막대한 손실을 봤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보다 고분고분한 총장을 원했고, 한국인 총장을 내기 위해 열심히 뛴 한국 정부와 이해가 맞물려 반 총장이 취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초인적인 현장방문 일정

반 총장은 자신의 리더십을 코피 아난의 ‘카리스마 리더십’과 비교하는 것을 취임 초기부터 못마땅해했다. 대신 그는 자신만의 ‘묵묵하고 성실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분쟁지역과 재난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을 중시하는 총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비판의 대상이 된 온유한 리더십에 대해서도 그는 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 개선 중이라고 수차 밝혔다. 여러 매체에서 그의 연임 실패를 점쳤지만 그는 보란 듯이 회원국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유엔의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 모든 회원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셈이다.

2012년 12월 반 총장이 마련한 뉴욕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그는 전에 없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평소보다 와인을 많이 마신 반 총장은 그해 11월 중동에서 거둔 외교 성과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11월 19일 이집트로 날아가 20일 하루 동안 이스라엘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라말라, 이집트 카이로, 요르단 암만, 다시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주파하는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냈다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당시 외신들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을 각기 대변하던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나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달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반 총장의 중재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반 총장의 리더십이 서방과 중동 주변국들로 하여금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도록 한 원동력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9년만 해도 서방 언론들은 반 총장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냈지만 4년 뒤 같은 언론들은 그를 달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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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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