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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게으름뱅이의 천국’ ‘농부의 결혼식’

피테르 브뢰헬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게으름뱅이의 천국’ ‘농부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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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쿡방 열풍의 심리

먹방 열풍을 이은 쿡방 열풍도 바로 이런 ‘일상의 재발견’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쿡방 열풍이 일어난 까닭은 먹방 열풍과는 다소 다릅니다. 먹방이 개인의 욕망과 정신적 고통과 관련이 있다면, 쿡방은 사회적 상황과 더 관련돼 보입니다. 여러 사람은 최근의 경기 불황과 1인 가구의 증가가 쿡방 열풍을 가져왔다고 지적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집밥’이 외식보다는 저렴합니다. 빠듯한 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은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습니다. 그러니 싼 재료를 가지고도 맛난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코치해주는 쿡방에 매료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이들의 경우 반복되는 매식에 지치게 됩니다. 홀로 식당에 가서 외롭게 식사하느니 TV 속의 셰프와 함께, 혹은 아프리카 TV와 같이 화면 속에서 많은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요리를 만들어 먹는 방식을 택합니다.

또한 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은 다소 번거롭지만 그 나름대로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들 때 창조의 기쁨을 느낍니다. 그게 엄청난 예술 작품의 창조일 필요는 없습니다. 평범한 집밥이라도 정성 들여 만드는 것은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줍니다. 쿡방 열풍에는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결합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브뢰헬의 ‘농부의 결혼식’(Peasant Wedding, 1568) 역시 먹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잔칫상에는 죽과 맥주가 놓였고, 결혼식에 참여한 축하객들이 먹고 마시며 흥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작품 한가운데 오른쪽에는 신부가 다소곳이 앉은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혼식 풍경과 아주 유사합니다. 브뢰헬은 농부로 가장하고 시골에 가서 결혼잔치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는 이러한 그의 체험이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농부의 결혼식’을 두고도 ‘게으름뱅이의 천국’에서처럼 견해가 엇갈립니다. 한편에선 브뢰헬이 이 그림을 그린 이유가 당시 농민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꾸짖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대식(大食)을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해석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러한 견해가 지나치게 도덕주의적 시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죽과 맥주가 피로연의 주 메뉴입니다. 이런 소박한 피로연의 모습은 오히려 농민 생활에 대한 브뢰헬의 따뜻한 시선과 공감, 그리고 유머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게으름뱅이의 천국’ ‘농부의 결혼식’
농민에게서 성자를 보다

제가 보기에 아마도 진실은 이러한 두 해석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농민의 삶이 갖는 소박함과 소란스러움, 그런 공동체적 정서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지나치게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경고를 하려 했던 게 브뢰헬의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브뢰헬의 작품을 볼 때마다 회화의 의미에 대해 그가 품은 생각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브뢰헬은 이 기획에서 다룬 적이 있는 엘 그레코와 동시대인입니다. 브뢰헬이 16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화가였다면, 엘 그레코는 16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엘 그레코는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한 화가입니다. 그는 은혜와 감동이 넘치는 종교화를 우리에게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브뢰헬은, 비록 기독교의 도덕적 교훈을 중시했더라도, 농민을 포함한 당시 사람들의 일상에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브뢰헬에겐 매일의 일상이 종교생활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브뢰헬은 제게 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늘 비슷하고 지루한 일상을 소중히 생각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종교적인 감동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브뢰헬이 그린 거칠고 소박한 농민들의 얼굴과 손에서 엘 그레코가 그린 성스러운 성자의 얼굴과 손을 보았다고 한다면 제가 과장하는 것일까요.



박상희

‘게으름뱅이의 천국’ ‘농부의 결혼식’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신동아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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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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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의 천국’ ‘농부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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