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호

골프와 스피치

  • 김미성 | ㈜엔트리컨설팅 대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입력2015-08-21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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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를 포함해 ‘386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젊은 시절을 보낼 때 골프는 대중과는 거리가 먼 부자들의 전유물, 가진 자들의 사치스러운 취미 정도로만 인식됐다. 그런데 요즘에는 필자도 중요한 골프 소식에는 저절로 눈과 귀가 가는 것을 느낀다. 필자는 사실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를 시작했고, 실력도 원하는 대로 늘지 않아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도 골프를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니 유레카! 골프라는 운동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가 늘 부르짖고 가르쳐온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바로 거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는 교감과 소통이 있었고, 인생과 스토리가 있었다. 20여 년간 ‘말하기’에 대해 강의와 코칭을 해오면서도 스피치와 골프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골프의 매력을 이해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박인비 스윙의 비밀

    골프의 기본기는 이론을 잘 이해하고 연습을 통해 스윙을 체질화해야 완성된다. 골프 선수들은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해낸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골프연습장에서 하루 종일 스윙 연습을 하는데, 주말 골퍼가 연습도 제대로 안 하면서 스윙 자세도 좋고 비거리도 늘어나기를 바란다면 그저 욕심일 뿐이다. 박세리는 담력을 키우려고 심야에 공동묘지에서 연습한 것으로 유명하고, 최경주는 하루 4000개의 연습 볼을 치고 남보다 하루 최소 1시간 더 훈련했다고 한다. 골프는 무엇보다 우선 기본기를 갖춰야만 여러 가지 상황에 따른 변형과 응용이 가능해진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말하기에 무슨 기본기가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한국 사람이 영어도 아닌 한국말을 하기 위해 따로 연습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렇다. 따로 연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음식을 주문하고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의사소통, 그리고 의미 전달을 넘어 상대방에게 말하는 이의 의도를 전달하고 그에게 동기를 불러일으켜 마침내 화자가 의도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말하기 모두 기본기를 충실하게 다져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분석, 효과적인 제스처, 적합한 용모와 복장, 목소리의 톤과 세기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준비와 훈련은 당신의 무기이자 경쟁력이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품격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성공적인 스피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기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억센 비바람을 이겨내고 생애 메이저 대회 석권을 의미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 그의 스윙 자세는 여느 선수들과 다르다. 코킹(손목 꺾음)이 거의 없이 백스윙 톱에서 클럽이 수직에 가깝고, 이어 힘없이 대충 치는 듯한 자세가 무척 어설프게 보일 수도 있다.

    박인비는 선천적으로 손목이 약해서 푸시업도 제대로 못하고 무리하게 코킹을 하다 다친 적도 있어 코킹이 별로 없는 자신만의 스윙자세를 갖게 됐다고 한다. 골프 평론가 잭 커켄달은 “박인비는 어드레스로부터 릴리스까지, 투어 골퍼 중 어느 누구보다 가장 심플한 스윙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자신의 단점을 효과적으로 극복해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골프와 스피치
    장점을 강점으로

    말하기에서도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장점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장점(잘하는 것)을 어떻게 강점(비교우위의 것)으로 바꿔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말을 못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잘 찾아보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기만 했는데도 스스로 힐링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상대방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기 이야기를 할 때는 좀 어눌해도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초점을 매우 잘 파악하는 사람이 있다.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여러 사람이 토론할 때 각자의 처지를 잘 헤아려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토론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 중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신의 장점을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지 말고 강점으로 키워보자. 말하기는 단순히 말을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기 안에 숨은 차별화된 역량을 인지하고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하다보면, 분명히 멋진 스피치를 할 수 있다.

    골프는 멘털 스포츠다. 골프에서 극복해야 할 상대는 동반자나 코스, 날씨 등에 앞서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요즘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 “경기를 즐겼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기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긍정적인 생각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경기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와 에너지를 갖게 해준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평상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스피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내 의지나 의사를 온전히 다 전달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첫 강의를 위해 강단에 섰을 때의 떨림과 공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실 이 단계에서 ‘즐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 MC’라는 유재석도 데뷔 초기에 무대 울렁증으로 고생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연습을 많이 하고 상대를 진정으로 배려하고 이해한다면 저절로 마인드 컨트롤이 되면서 진심 어린 스피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기본기에 진정성을 더하라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경기는 순환이 잘돼야 하는데 어느 한 곳이 막히면 그 흐름이 끊어진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17홀을 아무리 잘 쳐도 한 홀에서 무너지면 속수무책이다. 스피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사회를 건강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파이프라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스피치로 시작하고 스피치로 완결된다. 말하기, 즉 스피치의 기본기를 익히고 타인을 배려하는 진정성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덧씌운다면 이 사회가 좀 더 밝고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도 동반자들과 즐거운 라운딩을 함께할 생각을 하니 스코어보다는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김미성

    골프와 스피치
    ● 이화여대 공공정책학 석사, 인하대 문화경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수료

    ● 대통령실 관광정책자문위원

    ● 現 ㈜엔트리컨설팅 대표,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초빙교수

    ● 저서 : ‘백전불패 프레젠테이션’ ‘나는 골프에서 리더의 언어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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