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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몰락? 한국인 유머감각 변했다

‘개그콘서트’도 시청률 곤두박질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코미디의 몰락? 한국인 유머감각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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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보편화

1990년대에는 시트콤도 정착했다. ‘남자셋, 여자셋’을 시작으로 ‘순풍산부인과’ ‘세 친구’ ‘논스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시트콤은 ‘시츄에이션 코미디’의 약자로, 장르상 코미디에 해당되지만 코미디언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간혹 등장하더라도 조연에 머물렀다. 여러 명의 작가가 공동집필하는 이런 방식은 코미디언 없이도 웃기는 시스템을 고착화했다.

현재 코미디를 포함한 예능계에선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들 가운데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은 신동엽 정도다. 나머지는 토크쇼, 버라이어티쇼의 진행자 역할을 맡는다.

방송에서 ‘예능’이란 보도, 드라마, 교양을 제외한 웃고 떠드는 모든 프로그램을 일컫는 모호한 개념이다. 예능의 영향력은 대선주자들이 출연해 ‘신고식’을 할 만큼 막강해졌다.

언뜻 보기에 코미디와 예능은 비슷해 보이지만 두 장르의 속성은 다르다. MBC와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은 ‘무한도전’과 ‘1박2일’이다. 정형돈과 이수근은 개콘에서 스타덤에 오른 실력파 개그맨이지만 무한도전과 1박2일에선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반면 노홍철이나 김나영은 별다른 전문성 없이도 예능 프로에 폭넓게 출연한다.



예능의 전성시대는 웃음의 보편화를 의미한다. 과거 서태지가 활동하던 시대만 해도 연예인에게는 신비주의가 유효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예능에 나가서 망가지기를 자원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웃음에 대한 코드뿐만이 아니라 유명인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아이돌 가수 중에는 ‘비주얼 담당’과 ‘예능 담당’이 따로 있다. 무한도전의 새로운 멤버 광희는 대표적 예능 담당이다. 그의 소속팀 ‘제국의 아이들’에는 ‘미생’의 주연 임시완이나 ‘상류사회’의 주인공 박형준 같은 잘생긴 멤버들이 있다. 반면 광희는 성형수술 중독남에 수다스러운 캐릭터로 예능 프로를 도맡는다. 슈퍼주니어는 아예 팀원 전원이 ‘예능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재미있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특, 희철, 신동, 은혁 등은 예능인으로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다.

한국 사회가 ‘예능 공화국’이 되면서 이제는 일반인의 예능감도 수준급이다. 최근 방송가의 대세가 된 ‘먹방’(먹는 방송)의 배경에는 백종원, 이연복, 최현석 같은 전문 셰프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예능 프로에서 기죽지 않고 순발력 있는 토크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들 이른바 ‘셰프테이너’의 등장은 전문성과 예능감을 함께 갖추는 것이 새로운 성공 공식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한때 인기를 끌던 정치풍자 코미디가 자리를 못 잡는 이유를 파고들면 코미디언의 자리를 대신하는 정치평론가들이 있다. 2011년 ‘나꼼수’가 인기를 끈 것은 정치적인 메시지보다 재미있게 접근한 방식에 있다. 종편TV에서 발굴해낸 정치만담가들도 비슷하다. 정치인에서 방송인으로 변신한 강용석이나 정치만담가 이봉규 등은 정치 프로그램도 낄낄대며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줬다.

절제되고 자연스러운

최근에는 ‘관찰 예능’이 또 다른 웃음코드가 되고 있다. 나영석 PD의 최근 프로그램엔 코미디언도, 개그맨도, 심지어 예능인도 나오지 않는다. ‘꽃보다 할배’는 중량감 있는 원로배우들이 해외여행에서 만들어내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웃음을 줬다. ‘삼시세끼’는 이서진, 차승원 같은 배우들이 고립된 산간 마을이나 어촌에서 하루 세끼 밥 해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놀라운 것은 이런 프로그램이 동 시간대 시청률에서 수위를 달린다는 점이다. 이렇게 웃음에 대한 코드가 변하고 전방위로 확산되고 너나 할 것 없이 웃기려 들다보니, 정통 코미디,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언, 개그맨의 존재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코미디의 위기는 공중파의 위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개콘과 웃찾사가 침체에 빠진 시기는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다. 이 무렵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으로 젊은 세대가 시청률 집계에서 빠져나갔다. 또 종편TV와 케이블TV가 약진했다. 종편TV와 케이블TV의 기획력은 여기서 히트한 프로를 공중파가 베낄 만큼 향상됐다.

개콘이 망가진 것은 광고 부담을 과도하게 짊어진 데 따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9년까지 개콘은 방송시간 80분에 평균 13개 정도의 코너가 방영됐다. 시청률이 오르자 방송시간 115분에 코너가 18개까지 늘었다. 당연히 겹치기 출연이 늘고, 코너의 길이도 길어지고, 웃음의 질도 떨어졌다. 2010년대 들어 공중파의 그 어떤 장르도 예전만큼의 시청률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해외 판권이라는 새 시장이 생겼지만, 국내 광고시장에서 공중파는 더 이상 절대강자가 아니다. 시청률과 광고 압박은 코미디 창작에 필요한 여유를 앗아간다.

대신 케이블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비교적 순항한다. tvN의 ‘SNL코리아’와 ‘코미디 빅리그’는 꾸준히 화제를 만들고 있다. ‘SNL코리아’는 섹시 코미디로 인기를 끌고, ‘코미디 빅리그’는 ‘나는 가수다’의 경연 방식을 코미디에 도입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MBC 공채 개그우먼으로 ‘중고 신인’이던 이국주는 김보성 흉내로 ‘으리’ 열풍을 일으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친정 MBC에서라면 기대하기 힘든 성공이다.

국제화와 脫권위

한국인은, 특히 젊은 층은 유머 감각에서도 미국 등 서구의 그것을 점점 더 폭넓게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과거엔 과장된 말이나 극단적인 동작에 낄낄거리며 웃었지만 요즘엔 ‘오버한다’고 여긴다. 대신 간결하고 위트 있는 톡 쏘는 표현에 더 호감을 보인다. 폭발하는 웃음보다 절제된 웃음을 즐기는 것. 또한 작위적 설정보다는 자연스러운 이야기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을 열려고 한다. 연예인 출연 토크쇼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실제 체험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유교적 권위주의가 팽배하지만 젊은 층은 탈(脫)권위를 지향한다. 최근 상대를 윽박지르는 까칠한 캐릭터가 인기를 끈다. 이경규, 박명수, 장동민의 ‘호통 개그’가 그것이다. 이는 젊은 층이 탈권위에서 한발 더 나아가 권위 자체를 웃음의 소재로 전락시키는 점을 반영한 결과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텔레비전에서 대통령과 같은 권력층은 더 활발하게 웃음거리로 활용될지 모른다.

젊은 층은 고정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웃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유머를 생활화하려 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이를 가속화했다. 이들은 고정된 개념을 뒤집거나 해체하거나 비트는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해석적 다양성을 즐긴다. 국제화가 더해갈수록 한국인의 유머 감각은 이런 방향으로 더 나아갈지 모른다.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코미디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즐길 거리가 넘치는 세상에서 희극인의 고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웃음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은 코미디의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 어느 시대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새로운 웃음을 원한다. 비록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코미디언이 등장하기는 어렵겠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희극인은 끊이지 않고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누군가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랬듯이.

신동아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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