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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3인이 말하는 ‘조기 영어교육’

“우리말 숙련 후 ‘하고 싶을 때’, ‘집중적으로’!”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전문가 3인이 말하는 ‘조기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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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부터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이 금지된다. 2014년 제정된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른 것이다. 이미 3년여 전 관련 조항이 만들어졌고, 2016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도 내렸다. 그러나 시행 시기가 다가오자 청와대 청원게시판 등에는 학부모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 정책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훨씬 많은 비용을 들여 사교육기관에 아이를 보내야 한다”는 것으로 모인다.
‘초등 3학년’. 

우리 정부가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에 적당하다고 보는 나이다. 1997년 초등교육에 영어 과목을 도입한 첫해부터 그랬다. 2014년 제정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일명 선행학습 금지법) 8조는 이렇게 규정한다. 

‘학교는 (중략)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방과 후 학교 과정도 또한 같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는 올해부터 ‘초등 3학년’ 미만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반면 상당수 학부모는 이보다 어린 자녀에게도 영어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영어는 일찍 시작해야 쉽게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영어 조기교육을 받는 게 진학과 취업 등에 유리하지 않을까 △아이가 평생 영어 걱정 없이 살게 하려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학부모들이 궁금해하는 이 세 가지 질문을 들고 전문가들을 만났다.


Q1 영어는 일찍 시작해야 쉽게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_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등의 책을 펴낸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나라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공연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실이 뭔가. 

“영어를 배워도 쓸 일 없는 환경이다. 우리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영미권 국가의 식민 지배를 받은 적도 없다. 이 조건에서 하루에 겨우 몇 시간씩 영어에 노출시킨다고 영어가 술술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잘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유아는 학습 능력이 매우 낮다.” 

‘초등 3학년’이라는 연령 기준이 거기서 나온 건가. 

“외국어 공부의 적기가 만 9~10세 이후라는 건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다. 캐나다에서 진행된 연구를 보면 유치원 때부터 프랑스어를 시작해 4000시간 배운 아이들과 초등 3학년 때부터 2000시간 학습한 아이들 수준이 비슷하다. 이런 연구 결과가 매우 많다. 모국어를 읽고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습득한 뒤 외국어를 시작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빨리 배운다. 그러니 굳이 일찍부터 아이를 괴롭힐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이 든 뒤 영어를 배우면 원어민처럼 발음하는 게 힘들지 않나. 

“초등 3학년이 정확한 발음을 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다. 또 외국어에서 발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도 아니다. 영어 잘한다는 한국인, 또는 영어를 전공한 교수들이 영어하는 걸 한번 보라.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에게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게 읽기, 듣기다. 인터넷에 영어로 된 좋은 정보가 정말 많다. 그걸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영어를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 ‘일찍’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다. 우리가 한국어를 습득하기까지 얼마나 한국어에 노출됐을 것 같나. 약 1만 시간이다. 그런데 영어는 ‘학교에서 10년 넘게 배웠다’고 해봤자 800시간 안팎 공부했을 뿐이다. 하루에 10시간씩 마음먹고 하면 80일 분량이다.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외국인들을 보라. 한국어 조기교육을 받았을 리 없는데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없는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한다.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울 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Q2 영어 조기교육을 받는 게 진학과 취업 등에 유리하지 않을까
                                                    _김승현 서울 숭실고 영어교사

1998년부터 교단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김승현 서울 숭실고 교사는 “과거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전국방과후법인연합 등 관련자들이 초등 1, 2학년 방과후영어
금지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전국방과후법인연합 등 관련자들이 초등 1, 2학년 방과후영어 금지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뉴스1]

한국 학부모들이 일찍부터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이유 중 하나는 진학과 취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아닌가. 

“우리나라에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일어난 원인 중 가장 큰 게 외국어고(외고) 입시였다고 생각한다. 과거 외고는 지원자에게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영어 능력을 요구했다. 외고 진학이 명문대 진학과 좋은 일자리를 갖는 데 도움이 되니까 학부모들이 일찍부터 자녀에게 영어 공부를 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고 입시제도가 변했다. 대학의 영어특기자 전형도 줄어드는 추세다. 입시에서 영어 조기교육 유발 요인은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교교 내신 영어는 여전히 중요하지 않나. 

“물론이다. 그런데 조기교육을 받는다고 학교 영어 점수가 잘 나오는 건 아니다. 지금 고교에서 평가하는 영어 실력은 과거 우리 학부모 세대에게 요구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찍부터 영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좋은 점수가 나온다. 그러니 ‘외국 연수 다녀와도 학교 영어 성적이 안 나온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고교생을 보면 다른 과목 성적이 나쁘면서 영어 점수만 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 중고교에서 영어는 여전히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시험과목이다.” 

그럼 학교만 다녀서는 의사소통 능력 등 진짜 영어 실력을 쌓기 힘들다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상황에서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영어 사교육을 할 경우, 학교에 다니며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만 영어를 접하는 아이에 비해 분명히 영어를 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격차가 영원불변한 건 아니다. 영어를 외국어로 공부하는 환경에서 실력을 높이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동기다. 대학에 진학한 뒤라도 영어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진로 분야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춘다.” 

우리나라 학부모 중 상당수는 본격 입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영어를 미리 끝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자녀가 영·유아기 또는 초등 저학년일 때 집중적으로 영어 사교육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학년이 높아지면 수학 등 다른 과목 학원에 좀 더 신경을 쓴다. 하지만 영어는 절대 그렇게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현행 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일찍부터 영어 사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평생 영어를 잘하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도, 지금 같은 방식의 영어 조기교육은 별 의미가 없다.”


Q3 아이가 평생 영어 걱정 없이 살게 하려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_선현우 ‘Talk To Me In Korean’ 대표

‘Talk To Me In Korean’은 2009년 문을 연 한국어 학습 사이트다. 이를 제작한 공로로 2013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선현우 대표는 외국인에게 한국어, 한국인에게는 외국어를 가르친다.



공교육정상화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대. [뉴스1]

공교육정상화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대. [뉴스1]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달라.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고1 때 학교의 원어민 선생님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고3 때 전국 고교생 영어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외국어 특기자 전형으로 고려대에 입학했다. 이후에도 영어를 비롯해 여러 나라 말을 계속 공부 중이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EBSe 채널 ‘생활영어’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한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나. 

“사람마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이유가 다를 것이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이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문장 구조를 배우려고 문법책을 열심히 봤고, 원어민 발음도 열심히 흉내 냈다. 영어의 연음 같은 건 사전에 나오는 발음기호만 보고는 그대로 소리 내기 힘들다. 내 발음을 녹음해 원어민 것과 비교해 들으면서 모사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몇 만 번은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영어로 할 수 있게 됐고, 상대방도 내 말을 다 알아들었다.” 

고1이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었나. 

“어릴 때 영어를 시작하면 좀 더 편한 부분이 있긴 할 거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r발음과 l발음을 구별하지 않는다. 여기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영어를 배우면 이 둘을 떼어내느라 고생하게 된다. 반면 나이가 들면 아이 때보다 인내심이 생긴다. 운동이든 외국어든 ‘대의명분’을 위해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하는 게 효율적이긴 하다.” 

자녀가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즐겁게 공부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의 언어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영어를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 부모든, 가장 친한 친구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영어를 하면 아이는 자연히 그 말을 배우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 영어 조기교육의 문제 중 하나는 부모가 전혀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만 강요한다는 점이다.” 

부모도 자녀와 같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인가. 

“최소한 다른 사람 앞에서 영어 하는 것을 금기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태도를 본다. 집에서는 영어를 가르쳐주던 엄마 아빠가 엘리베이터 앞에만 나가도 영어를 안 쓰려하고, 공개된 자리에서 영어 얘기가 나올 때마다 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영어는 남 앞에서 하면 부끄러운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틀린 영어라도 자신 있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이한테 훨씬 좋은 영향을 준다.” 

외국인들은 우리말을 어떻게 배우나. 

“‘Talk To Me In Korean’ 사이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 중 상당수가 이미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안다. ‘엄마가 독일인이고 아빠가 미국인인데 집은 인도여서 어릴 때부터 3개 국어를 했어. 이번에 한국 친구를 만나서 한국어도 배우고 싶어 졌지’라고 하는 식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언어를 하나만 하는 ‘모노링구얼’보다 여러 언어를 할 줄 아는 ‘멀티링구얼’이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말을 배웠을 때 생기는 기쁨을 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언어를 배우려 노력하고, 결국 잘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영어를 스트레스로 느끼지 않으면 훨씬 빠르고 즐겁게 영어를 잘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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