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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프랑켄슈타인’ 출간 200년

인공장기 넘어 인간 복제 꿈 프랑켄슈타인이 된 과학자들

  • |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프랑켄슈타인’ 출간 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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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괴물’을 만든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 장기이식, 성형수술 통해 탄생한 新인류
    ● 눈부시게 발전하는 동물 복제, 뇌이식 기술
    ● 프랑켄슈타인은 왜 자신의 피조물을 혐오했을까
메리 셸리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삼아 1931년 개봉한 영화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의 모습(위)과 소설 표지. [동아DB]

메리 셸리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삼아 1931년 개봉한 영화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의 모습(위)과 소설 표지. [동아DB]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인 아이는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른다. 오즈의 마법사, 알라딘과 요술 램프, 신드바드의 모험 같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이야기에다가 백설공주, 인어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신데렐라 등 각종 공주를 거쳐 미녀와 야수까지 왔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즈음에 아이가 갑자기 묻는다. 

“아빠, 프랑켄슈타인 이야기 알아?” 

“알지.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이름이 아니야.” 

“나도 알아.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만든 박사 이름이잖아.” 

깜짝 놀라서 어디서 들었는지 물었더니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봤단다. 좀비부터 시작해 온갖 괴물에 몰두해서 약간 걱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철들고 나서야 알았던 상식을 아이는 벌써 습득한 것이다. 아무튼 그 뒤로 이어진 아이의 질문이 더 도발적이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왜 괴물 이름을 안 지어줬을까?” 

그러게, 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을 안 지었을까?

‘프랑켄슈타인’의 엄마 메리 셸리

마침 올해는 메리 셸리(1797~1851)가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펴낸 지 딱 200년 되는 해다. 셸리는 만 스무 살이던 1818년 1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이 소설을 익명으로 펴냈다. 그가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로 세상에 알려진 건 한참 뒤인 1923년 프랑스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출간되면서였다. 

많은 사람이 ‘프랑켄슈타인’을 읽지도 않고 내용을 안다고 착각한다. 소설이 워낙 유명하거니와 1910년 최초로 영화화된 뒤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수많은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과학자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이 있다. 

오늘날 신(神)에 도전한 과학자의 상징이 된 프랑켄슈타인은 모델이 있다. 바로 셸리와 같은 시대를 산 유명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1778~1829년)다. 독학으로 화학을 공부한 데이비는 잘생긴 외모와 유려한 입담으로 당대의 유명 인사가 됐다. 귀부인을 상대로 한 그의 강연은 인기가 하도 많아서 강연장 주변이 마차로 막힐 지경이었다. 

셸리 역시 데이비의 화학 강의를 들은 귀부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특히 ‘생명의 정수’가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데이비의 주장에 매혹됐다. 셸리는 소설을 쓰면서 그의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인조인간(괴물)을 창조한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그것에 생명의 정수를 불어넣는 대목은 그렇게 태어났다. 

오늘날 과학자 대다수는 생명의 정수 같은 것이 따로 없다는 데 동의한다. 생명의 정수는 다시 말하면 ‘영혼’이다. 과학자, 종교인을 포함한 수많은 이가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을 계승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가 다양한 도전을 진행 중이다.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후배 한 명은 오래전 교통사고가 나서 왼쪽 다리뼈가 으스러졌다. 지금 그의 왼쪽 다리뼈 상당수는 티타늄 합금으로 만든 인공 뼈다. 젊은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가슴 성형은 어떤가. 미용 목적의 가슴 확대 수술은 20세기 후반부터 진행됐으나 지금처럼 인기를 끈 것은 21세기 벽두부터다. 실리콘 재질의 주머니(외피)에다 실리콘 겔(젤)을 채운 보형물을 사용하는 게 대세다. 

타인의 장기나 인공장기 이식 또한 최근엔 일반적인 일이 됐다. 1950년 처음으로 신장 이식이 이뤄졌고 이제는 간, 심장, 췌장, 소장 등 다양한 장기를 타인에게서 이식받는 게 더 이상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비단 장기뿐 아니라 인체를 이루는 기관 대부분을 이식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장기이식 자체보다 오히려 장기 확보가 문제다. 음성적인 장기 매매 시장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과학자 여럿은 줄기세포에서 개인에게 맞춤한 장기를 배양하는 일을 꿈꾼다. 인간 배아에서 뽑아낸 줄기세포는 이론상으로는 인체 어떤 조직으로든 분화할 수 있다. 실제로 과학자가 줄기세포를 배양해 소장, 대장, 위 세포 등으로 분화하도록 유도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기관으로 발달하는 과정을 관찰하기도 했다.

장기이식의 미래는 인간 복제?

자, 그렇다면 환자에게 이식해야 할 장기를 말 그대로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 과학자 야마나카 신야는 다 자란 세포를 다시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일이 가능함도 보였다. 이런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만든 뒤, 그것을 이용해 필요한 장기를 만드는 일이 과학자가 꿈꾸는 장기이식의 미래다. 

또 다른 미래도 있다. 다른 동물(이종)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 간 장기이식이다. 예를 들어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해 활용할 수만 있다면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심각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의 면역 거부 반응이다. 사람과 돼지는 유전적 구성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기를 이식할 때도 면역 거부 반응이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데,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면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또 다른 잠재적인 문제는 돼지 안에 있는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다. 돼지에게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세균 또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균 돼지’를 만들었다. 그래도 문제가 남는다. 바로 일반인이 가진 거부감이다. 

돼지 심장을 내 몸에 이식하는 것을 흔쾌히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종 간 장기이식의 미래가 불투명한 결정적 이유다. 이 대목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소설이나 영화 속 상상력을 음미해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05년 펴낸 ‘나를 보내지 마’가 그에 대한 작품이다. 

이 소설 배경은 복제 인간으로 태어난 청소년이 교육받는 기숙학교다. 겉으로는 낭만적인 청춘 성장소설 모양을 한 이 소설에는 사실 끔찍한 반전이 숨어 있다. 소설 속 복제 인간 청소년은 성인이 되면 자신의 장기를 치료용으로 내줄 운명이기 때문이다. 마침 ‘나를 보내지 마’와 같은 해에 등장한 할리우드 영화 ‘아일랜드’도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었다.

인간 머리 이식은 가능할까

사람이 듣지 못하는 주파수 영역까지 들을 수 있도록 안테나를 달아놓은 ‘슈퍼 귀’. [사진제공·프린스턴대]

사람이 듣지 못하는 주파수 영역까지 들을 수 있도록 안테나를 달아놓은 ‘슈퍼 귀’. [사진제공·프린스턴대]

1월 25일 중국의 한 과학자가 원숭이 복제 성공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1996년 복제 양 돌리가 세상에 등장한 지 20년 만에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영장류 복제에 성공한 것이다. 과학자마다 전망이 다르지만 나로서는 ‘절실한 동기’와 ‘충분한 자원’만 확보된다면 인간 복제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어디선가 복제 인간이 등장한다면 그의 쓸모는 어디에 있을까. 항상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보다 더 나쁜 현실을 만들어온 인간의 역사를 염두에 둔다면, 그 쓸모는 바로 ‘원본’ 인간의 장기이식을 위한 ‘스페어’ 아닐까? ‘나를 보내지 마’ 같은 소설이나 ‘아일랜드’ 같은 영화가 뜬금없어 보이지 않는 건 이런 생각 탓이다. 

이제 좀 더 흥미로운 대목으로 넘어가 보자.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 시신에서 떼어낸 머리를 여러 시체의 짜깁기로 만든 몸통에다가 통째로 옮기는 장면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보다 더 극적인 일을 현실화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바로 한 사람의 머리를 다른 사람 몸에 그대로 이식하는 일이다. 

사실 이전에도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자극받은 동물 머리 이식 실험이 끊임없이 이뤄졌다. 소설이 나온 지 90년이 지난 1908년에는 개 한 머리의 머리를 다른 개의 목에 붙이는 실험이 있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1965년에는 개 6마리의 뇌를 다른 개에 이식해 뇌가 다른 개의 몸속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보였다. 

1970년에는 미국 과학자 로버트 화이트가 원숭이 머리 전체를 다른 원숭이의 몸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 원숭이는 며칠 동안 살다가 숨이 끊겼다. 시간을 최근으로 돌려보면 2002년 일본 과학자가 낮은 온도에서 갓 태어난 쥐의 머리를 성인 쥐의 허벅지에 이식했다. 머리는 3주나 더 성장했다. 

이제 이탈리아의 의사 세르지오 카나베로가 등장할 때다. 그는 2013년에 인간 머리 이식을 제안했다. 곧바로 2014년에 중국의 런샤오핑 등이 흰 쥐와 검은 쥐의 머리를 서로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인공호흡 장치가 제거되고 나서도 3시간을 더 살 수 있었다. 이들 두 과학자는 2016년에 원숭이 머리 이식을 시도했으나 혈관만 연결하고 신경 연결에는 실패했다. 

몇 차례 인간 머리 이식수술 계획을 밝혔던 카나베로는 지난해 11월 18일 “런샤오핑과 협업해 18시간의 수술 끝에 세계 최초로 시신의 머리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 사람의 시신에서 머리를 자르고 나서 신경과 혈관을 다른 사람 시신의 몸에 붙였다는 것이다. 거의 200년 만에 ‘프랑켄슈타인’ 속 수술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카나베로 등은 머리를 이식한 시신이 신경 전기 자극에 반응했기 때문에 실험은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다른 장기이식과 마찬가지로 머리 이식을 받은 사람이 생존하지 않는 한 성공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학계의 회의적인 반응과 상관없이 카나베로는 계속해서 머리 이식 수술에 도전할 계획이다.

인간적인 로봇과 기계적인 인간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영화 ‘아이로봇’의 한 장면. [동아DB]

인간적인 로봇과 기계적인 인간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영화 ‘아이로봇’의 한 장면. [동아DB]

머리 이식 수술은 ‘프랑켄슈타인’만큼이나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따져봐야 할 문제도 많다. 한때 머리 이식 수술에 자원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프로그래머 발레리 스피리도노프는 신경과 근육에 영향을 주는 유전병 탓에 한 살 이후로 걸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가 시신을 기부할 예정인 뇌사자의 몸을 이식받는다면 과연 걸을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만약 그 뇌사자의 몸이 스피리도노프의 머리에 이식되지 않는다면 심장, 신장, 간 등 장기 여러 개가 그런 장기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 여럿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건강한 몸 하나로 한 사람을 살려야 할까, 아니면 장기를 떼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할까? 

카나베로는 분명 머리 이식이 필요한 ‘절실한 동기’와 ‘충분한 자원’을 가진 어떤 이의 후원을 받아 끊임없이 그것에 도전할 것이다. 하지만 한 과학자의 탐구와 열정에 기반을 둔 연구가 공동체의 이익에는 반할 수도 있다. 머리 이식 수술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지금까지 살펴봤듯 지난 200년간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제안한 여러 아이디어는 대부분 현실이 됐다. 인류는 장기를 자유자재로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옮기는 능력을 획득했고, 머지않아 머리를 통째로 타인의 몸에 이식할 수도 있다. 맞춤 장기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며, 그보다 더 빨리 복제 인간이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로봇으로 시야를 넓히면 ‘프랑켄슈타인’의 아이디어는 더욱더 극적으로 현실이 됐다. 로봇 혹은 기계가 인간이 하던 일의 상당수를 대신하고 있으며 그 범위는 빠른 속도로 넓어질 것이다. 미래의 어느 순간이 되면 SF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하던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즉 안드로이드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분명히 들어올 테다.

매혹적 기술, 무거운 질문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자신의 피조물을 대하는 과학자의 태도다.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했건만 정작 과학자는 그 피조물을 혐오하고 외면한다. 그런 혐오와 외면이야말로 그 피조물이 괴물이 된 중요한 동기다. 결국 과학자와 괴물의 갈등은 최악의 비극을 낳는다. 

그 연장선상에서 셸리가 시간 이동을 해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정말 기이하게 생각할 대목이 한 가지 있다. 그가 소설에서 묘사한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갈등이 현재는 거의 없다. 대개는 새로운 피조물이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에만 관심을 둘 뿐 어쩌면 그것이 야기할지 모를 어두운 미래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짐작해보면 여전히 창조자와 피조물이 시선을 교환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그 순간이 오지 않아서가 아닐까. 지금은 소설과 비유하자면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도굴해온 시신을 이리저리 짜깁기해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있는 때다. 가까운 미래의 어떤 순간에 우리는 생명을 부여받아 창조자에게 눈을 부릅뜬 피조물과 맞닥뜨릴 것이다. 

그때도 우리는 지금과 같은 장밋빛 환상에 젖은 채 열광할 수 있을까.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우리는 그 피조물에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까. 셸리는 200년 전에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그가 ‘프랑켄슈타인’에서 한 음울한 예언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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