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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 평창, 그 후 |

46년째 동계올림픽 자원 활용, 삿포로

“동네 뒷산 내려오듯 스키 타는 곳”

  • | 삿포로=이상훈 동아일보 기자·일본 와세다대 방문학자 January@donga.com

46년째 동계올림픽 자원 활용, 삿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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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겨울올림픽 중 가장 성공한 대회로 평가받는 1972년 삿포로 겨울올림픽. 삿포로 올림픽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당시의 숨결과 환희를 고스란히 이어가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하기에 따라 삿포로의 오늘은 평창의 내일이 될 수 있다.
삿포로 겨울올림픽 스키 알파인 경기가 열렸던 테이네 스키장 슬로프와 삿포로올림픽박물관(작은 사진). [이상훈 동아일보 기자]

삿포로 겨울올림픽 스키 알파인 경기가 열렸던 테이네 스키장 슬로프와 삿포로올림픽박물관(작은 사진). [이상훈 동아일보 기자]

대한민국의 2018년 2월을 뜨겁게 달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리에 마무리돼가고 있다. 하지만 ‘겨울올림픽 이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뾰족한 수가 없다.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2011년 이후 7년간 정부와 강원도, 조직위원회 모두 ‘어찌 됐든 무사히 개최는 잘해보자’는 심정으로 임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고민을 안고 역대 겨울올림픽 중 가장 성공한 대회로 평가받는 1972년 삿포로 겨울올림픽 현장을 찾았다. 삿포로 올림픽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당시의 환희를 고스란히 이어가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하기에 따라 삿포로의 오늘은 평창의 내일이 될 수 있다.

등산 가듯 스키 타러 간다

1월 24일 오전 삿포로 데이네(手稻) 스키장. 삿포로시 중심인 삿포로역에서 자동차로 30분, 전철로도 여섯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한국에서 스키 마니아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이 스키장은 1972년 스키 알파인 남녀 대회전 경기가 열린 곳이다. 스키장 입구에는 비스듬한 모양의 성화대가 지금도 서 있다. 

이날 데이네 스키장에는 온종일 눈발이 날렸다, 삿포로 시민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자랑하는 ‘파우더 눈’이다. 눈에 습기가 없어 차지지 않고, 바람이 불면 가루처럼 훅 날린다고 해 ‘아스피린 스노’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키 타기엔 최상의 설질. 지난해 12월 개장 이후 정상 적설량만 275cm에 달한다.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의 2017~2018년 누적적설량이 64cm(2월 10일 기준)이니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리는 곳인지 실감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주 고객인 한국 스키장과 달리 데이네 스키장은 수업 중인 학생들로 붐빈다. 학교 이름이 새겨진 조끼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스키를 배운다. 대부분 삿포로 및 인근 지역의 초·중·고교생들. 홋카이도 학생들에게 스키는 가장 쉽고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생활 스포츠다. 특별히 운동부에 가입하지 않아도 겨울철이면 학교마다 ‘스키 학습일’을 잡아 데이네를 비롯한 삿포로 인근 스키장 곳곳에서 운동을 한다. 한국의 중년 아줌마가 등산을 가듯, 이곳의 백발 할머니는 장비를 짊어지고 스키장에 간다. 



이날 데이네에는 삿포로 북쪽 소도시 이시카리(石狩)시의 난센(南線)소학교 4학년 학생들이 스키장을 찾았다. 왁자지껄 떠들며 장난을 치는 모습은 한국의 초등학교 4학년생과 다를 바 없지만, 리프트에서 내려 선생님 지도를 받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다. 수업은 지역 자원봉사자와 데이네 스키스쿨 강사들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초등학생은 초보 코스인 ‘올림피아 코스’에서, 중·고교 스키 수업은 대부분 중급 이상인 ‘하이랜드 코스’에서 진행된다. 

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린 곳답게 슬로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금이 저려 내려갈 엄두를 못 내는 필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고교 학생들은 깔깔대며 슬로프 한 켠에 줄지어 섰다. 용평 스키장 최상급 슬로프(레인보우1·최대 29.7도)를 가뿐히 뛰어넘는 최대 36도의 상급 슬로프에서 스키부도 아닌 일반 학생들이 ‘동네 뒷산 내려오듯’ 여유 있게 스키를 탄다.

전쟁 준비하다 스키 도입

다음 날 오전, 삿포로역에서 차로 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일본 스키점프의 상징’인 오쿠라야마(大倉山) 스키점프대. 일본에서 스키점프는 국민 스포츠로 차원이 다른 대접을 받는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대표팀 최고 스타로 ‘한국의 김연아’에 비견되는 다카나시 사라(21), 8회 연속 올림픽에 참여하며 평창올림픽 개막식 일본팀 기수로 나온 가사이 노리아키(45) 등이 모두 스키점프 선수다. 

삿포로 올림픽의 영광을 안고 있는 올림픽박물관은 스키점프대 바로 밑에 자리한다. 일본 겨울 스포츠와 겨울올림픽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며 스키점프, 봅슬레이, 스케이팅 등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관람객이 어설픈 포즈로 스키점프 체험에 나설 때마다 박물관 직원들과 다른 관람객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해준다. 매년 시내 30여 곳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올림픽과 스포츠에 대해 배우고 즐긴다.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프로야구팀 니혼햄 파이터스는 지난해 11월 이곳 스키점프대에서 신인선수 입단식을 열며 신인 선수들에게 가상 스키점프 체험을 하게 했다. 

1972년 삿포로 겨울올림픽은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시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지역의 관광자원이자 도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단지 삿포로가 일본 5대 대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이들이 얘기하는 삿포로의 겨울스포츠 역사는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가 깊고 스토리가 길다. 

일본 스키는 1900년대 초반 ‘침략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조선을 차지하겠다며 러일전쟁에 나선 일본은 전쟁 준비를 위해 1902년 혼슈(本州) 최북단 아오모리 핫코다산에서 혹한기 훈련을 하다가 1개 중대 210명 중 199명이 얼어 죽는 대참사를 겪는다. 이후 일본군은 “겨울에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스키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럽에서 스키 전문가를 초빙한다. 일본 스키의 창시자 테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1869~1945)다. 

오스트리아 제국 중령 신분으로 일본에 온 레르히는 1911년 일본군에게 처음으로 스키 타는 법을 전수하고 이후 1년 넘게 홋카이도 등 일본 전역을 돌며 스키를 가르쳤다. 1923년 제1회 전일본 스키 선수권 대회가 열리며 스키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겨울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삿포로 시민들은 1928년 2월, 히로히토 일왕의 친동생인 야스히토 친왕이 홋카이도를 방문한 것에서 자신들의 스키 역사를 찾는다. 활달한 성격에 스포츠를 즐겨 일본 국민에게 ‘스포츠의 왕자’로 불린 야스히토는 홋카이도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장래 일본에서 겨울올림픽을 개최한다면 설질이 좋고 대학도시이기도 한 삿포로가 가장 적당하다”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대형 점프대가 필요하다. 내가 점프대 건설을 도와주겠다.” 그리고 3년 뒤인 1931년, 오쿠라 점프대가 완공된다. 

제국으로 팽창하던 일본에 거칠 것은 없었다. 1938년 3월 삿포로는 도쿄와 함께 1940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예외가 없진 않았지만 당시에는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한 나라에서 여는 게 통상적인 관례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올림픽은 취소됐고, 일본은 패전국으로 전락한다.

스키점프가 국민 스포츠 된 이유

삿포로올림픽박물관 모의체험관에서 스키점프를 배우고 있는 관광객. [이상훈 동아일보 기자]

삿포로올림픽박물관 모의체험관에서 스키점프를 배우고 있는 관광객. [이상훈 동아일보 기자]

패전 이후 빠른 경제 복구에 나선 일본은 올림픽 개최에 재도전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이어 1972년 삿포로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삿포로 겨울올림픽은 일본에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었다. 삿포로 겨울올림픽은 삿포로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시내교통의 중심인 지하철 개통과 지하상가 개관이 올림픽에 맞춰 이뤄졌다. 눈과 혹한의 도시 삿포로에서 지하망 건설은 도시 전체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홋카이도 최초의 지역난방 공급이 시작됐다. 당시의 선수촌은 지금도 ‘올림픽단지’라는 이름의 아파트로 불린다. 전 세계 언론이 모였던 프레스센터는 홋카이도청소년회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 일본 전역을 올림픽 열기로 뜨겁게 달군 종목은 단연 스키점프였다. 프랑스에서 열린 직전 겨울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수모를 겪은 일본은 안방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도 좀처럼 메달을 수확하지 못하며 전전긍긍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메달은 스키점프에서 나왔다. 남자 70m 점프(지금의 노멀힐)에서 가사야 유키오 등 일본팀 3명이 금·은·동메달을 모두 휩쓴 것이다. 동·하계를 통틀어 첫 메달 싹쓸이였다. 

일본 열도가 열광했고 미디어는 이들에게 ‘일장기 비행대(飛行隊)’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의미심장한 닉네임이었다. 공군을 의미하는 ‘비행대’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공격으로 악명을 떨친 ‘가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시킨다. 군국주의 냄새를 짙게 풍기며 금기시되던 단어가 전 국민적 열광 속에 하늘을 장쾌하게 뻗어나가는 스키점프팀의 별칭으로 쓰인 것이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에서 일본 남자 스키점프 단체팀이 폭설이 내리는 악천후를 뚫고 역전 우승 금메달을 일군 스토리는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지금까지도 일본 주요 TV채널에서 ‘추억의 그 순간’으로 방영된다. 올 초 일본 민영방송 TBS가 선정한 ‘역대 겨울올림픽 영웅’ 1위가 나가노 스키점프팀, 3위가 삿포로 스키점프팀이었다. 

평창과 삿포로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연간 적설량 200cm에 인구 4만 3000명의 평창과 연 적설량 600cm에 인구 195만 명의 삿포로는 자연환경과 경제적 배경의 차원이 다르다. 삿포로에서 스키장으로 향하는 관광버스에서는 일본어를 듣기 어렵다. 홋카이도에서 겨울을 나는 파란 눈의 서양 스키어, 겨울을 체험하러 온 중국 및 동남아 관광객 등이 버스와 스키장을 메운다. 일본의 국민 스포츠로 통하는 스키점프는 일본스키연맹이 인증한 A급 대회만 매년 25개가 열린다. 선수가 없어 20년 넘게 한 선수가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는 한국과 1000명 이상의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 경쟁을 벌이는 일본. 스키점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겨울올림픽의 의미’ 성찰하자

축제가 막을 내리고 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수들이 떠난 평창과 강릉의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백가쟁명식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변변한 스포츠 경기 하나 열기 어려운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폐막 이후 25년째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대전엑스포 개최장, 지자체와 정부에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한 전국 곳곳의 스포츠 및 박람회 이벤트 행사장이 산재한다. 

일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998 겨울올림픽을 개최한 일본 나가노는 12조 원에 달하는 지방채를 발행하며 20년 가까이 빚더미에 시달려야 했다. 성공적인 올림픽을 치렀다는 삿포로도 2026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며 2014년부터 지방자치단체가 공식적으로 나섰지만 제대로 탄력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30여 년간 찾지 못한 ‘포스트 대형 이벤트’ 해답을 평창에서 하루아침에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빚을 어쩔거냐’며 한탄만 해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삿포로의 오늘이 당장 평창의 내일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묵직한 교훈은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 겨울올림픽의 의미는 무엇인가. 평창과 강릉에 우리는 어떤 스토리를 입히고 어떤 볼거리로 활용할 수 있을까. 겨울 스포츠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언제나 친근하게 즐기며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는 스포츠인가, 반짝 이벤트를 위한 도구인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포스트 평창올림픽’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된 대형 이벤트의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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