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정신과 의사 이나미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2015-10-20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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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갑이고 가해자라는 사실 알아야
    • 헬조선? 긍정적 변화 이끌 것
    • 외모지상주의, 젊음지상주의 벗어나야
    • 보여주는 삶보다 나를 만족시키는 삶
    “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정신과 의사 이나미는 많은 사람의 멘토 노릇을 한다. 서울대 의대에서 정신의학과 박사학위,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학위, 미국 융 연구원에서 디플롬(석사학위)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외래 교수, 한국 융 연구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을 운영한다.

    그는 신문과 방송 활동을 통해 대중과 친밀하게 소통해왔을 뿐 아니라, ‘여자의 허물벗기’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한국사회와 그 적들’ ‘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 등 다양한 책을 통해 바람직한 삶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심리적 조언과 성찰을 선사해왔다. 광복 70년을 맞아 그에게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인지를 물었다. 인터뷰는 9월 25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에서 진행됐다.

    김호기 1961년 태어나고 서울에서 성장하셨죠. 어느 고등학교를 다니셨습니까.

    이나미 마포에 있는 서울여고를 다녔어요. 내신이 없어서 예비고사하고 본고사만 잘 보면 학교를 잘 가던 때예요. 당시 공동학군이었는데 공립이라 선생님들이 참 좋으셨어요.

    김호기 79학번이지요. 서울대 의대를 간 걸 보면 공부를 무척 잘했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의학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이나미 어릴 때 꿈 중 하나였죠. 집이 워낙 대가족이라 복잡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세계가 불행하다는 걸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 프로이트 책을 봤는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싸우는지, 왜 불행한지에 대한 답이 거기에 다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프로이트처럼 정신과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외할머니께서 저를 키웠는데 치매에 걸리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부터 정신병원이란 데가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됐고, 그냥 정신과 의사가 나한테 맞나보다 생각했죠.

    14대 宗婦의 유학

    김호기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하셨지요. 어떤 계기로 유학을 갔습니까.

    이나미 고등학생이 될 무렵 아버지가 바레인에서 항만 일을 했어요. 아버지가 “의대를 나오면 평생 편하니까 유학 가지 말고 혼자 여기서 졸업해라” 그렇게 얘기하시고 나머지 가족을 데리고 떠난 거예요. 제가 3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분석치료를 받게 됐죠. 제가 14대 종부(宗婦)예요. 시누이들과 시동생들이 굉장히 끈끈해 주말이면 열 명 이상의 식구에게 밥을 해줘야 했어요. 힘들다고 생각한 게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피크였던 것 같아요.

    김호기 정신과 의사이면서 분석가이기도 한데요.

    이나미 분석가가 되고 싶었는데 못했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거든요. 의사 일을 해도 집에 가면 소고기를 입에 넣을 수 없었어요. 식구가 많다보니 두 근 사 가도 싹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더는 미룰 수 없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부영 교수님(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이 융 연구소를 만들면서 분석가 과정으로 들어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님이 점을 쳤더니 제가 없어져야 신랑이 출세한다는 거예요. 저는 유학을 갈 생각도 안 했어요. 남편이 “당신이 14년 동안 너무 힘들었다. 유학도 다른 형제들은 다 갔는데 당신만 못 갔고. 그러니 가서 공부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애들까지 데리고 갔어요.

    김호기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 뉴욕 융 연구소에서 분석심리학 디플롬을 받으셨어요.

    이나미 원래는 뉴욕 융 연구원에 지원했어요. 문제는 융 연구원이 외국인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아시아 여자가 가서 환자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못한 거죠. 그래서 비자를 안 주는 거예요. 마침 융 연구원에 있는 교수 몇 분이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같이 가르쳐서 유니온 신학대학원으로 유학을 갔어요. 융 심리학은 신학에 대한 베이스가 없으면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뉴욕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어요. 융 연구원에서는 첫해에 환자를 못 보겠더라고요. 2년째부터는 환자를 봤고, 디플롬을 마친 거죠. 2005년까지 융 연구원에 있다 한국에 왔어요.

    베스트셀러 저자

    “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김호기 1990년대 초반부터 왕성하게 책을 냈습니다. 정신과 의사와 문필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나미 1985년 졸업하고 1988년 정신과 의사가 됐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여의사가 취직하기가 힘들었어요. 아이 딸린 아줌마는 안 쓴다는 병원이 많았어요. 용인 정신병원에서 근무할 때, 남편이 검사였어요. 강력부에 들어가면서 “스폰서 검사는 하기 싫으니 수사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결혼할 때 딱 100만 원 가지고 화장실도 없는 옥탑방에서 시작했는데. 애들 때문에 응급실 근무도 못하니 번역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때 ‘문학사상’에서 번역 말고 책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첫 번째 책이 ‘여자의 허물벗기’였고 두 번째 책이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였는데,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어요. 그러면서 책을 쓰게 됐어요.

    김호기 소설도 썼지요?

    이나미 ‘우리가 사랑한 남자’가 장편소설이고요. ‘물의 혼’이라는 단편소설로 문학사상 신인상도 받았어요. 문학은 제가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별로 없고 소설을 다른 장르보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김호기 겸손한 말씀입니다. 선생께서 ‘한국사회와 그 적들’에서 다룬 한국인의 콤플렉스 부분을 재미있게 봤어요. 우리 사회가 경제도 발전하고 민주화도 됐다고 하는데, 정신의학과 심리학 측면에서 볼 때 현재 많은 사람이 불만과 불안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불안의 심리적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북유럽 3국 시나리오

    이나미 불만이 많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불안 때문에 굉장히 역동적인 변화가 이뤄지고요. 그래서 저는 그걸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아요. 콤플렉스는 긍정적인 면이 있거든요. 지금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저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1970~80년대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북유럽 3국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정서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이었죠. 외국 정신과 의사들이 “한국이 전쟁도 겪고 기아 상황인데 어떻게 대가족이 살아있냐. 왜 우울증이나 자살이 없느냐”고 연구하러 온 적도 있어요. 지금 부탄이나 네팔에 가면 우리보다 못살지만 훨씬 더 안정적이에요.

    우리가 지금 이런 것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낙오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큰 영향을 미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게 저는 중진국의 특징이라고 보고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북유럽 3국처럼 되는 거잖아요. 사회보장 안전장치가 잘 작동되고 경제 성과가 균등하게 배분되면 사람들의 불만이 줄어들면서 자살률도 낮아지고 인성이 달라지게 돼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 달러 정도 되면 물질주의에서 정신주의로 가게 돼요.

    김호기 사회과학에서는 ‘탈물질주의적 가치(post-materialist value)’라고 합니다. 경제적 성공보다는 자아의 실현을 중시하는 경향을 말하는데, 젊은 세대가 갖는 삶의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콤플렉스의 양면성

    이나미 영성이나 불교 쪽으로 가치가 이동하죠. 북유럽 3국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덜 물질주의적이에요.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물질주의적이죠. 20~30대는 자식들한테 지금처럼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 거예요. 내가 해봤는데, 경쟁 제일주의로 하니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것을 아는 거죠. 이렇게 바뀌는 데 한 세대가 걸린다고 봐요. 나쁜 시나리오는 경제 성과가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고 아르헨티나, 필리핀, 인도처럼 잘사는 사람은 굉장히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살게 돼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거예요.

    김호기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불안이 국민에게 불행하다는 느낌을 안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나미 저는 지금 양 갈래 길에 있다고 봐요. 좋은 징후는 민간에서 봉사하고 나누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에요. 사회적 기업 같은 것은 좋은 징후죠. 그리고 자기 아이 교육이 달라지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나쁜 징후는 젊은 세대든 장년 세대든 냉소주의에 빠지는 것이에요. 무기력, 무관심, 이기주의와 같은 게 나쁜 징후예요. 좋은 징후와 나쁜 징후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갈지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리더라고 생각해요. 리더는 대통령에서 오피니언 리더까지 다양하겠죠.

    김호기 각종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나미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적이 될 수 있거든요. 항상 남의 문제점을 찾는데 내가 일으키는 것도 많아요. 상담을 해보거나 소셜 미디어를 보면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만 생각하지 자기가 가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갑이었고 가해자였다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 각자 자신의 문제를 먼저 보기 시작하면 사회갈등이 많이 해소될 수 있거든요.

    콤플렉스도 융 심리학 이론에서 보면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 여러 잘못, 미숙한 부분, 오류 같은 것들이 거름이 돼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원이 되거든요. 한국 사회를 크게 보면 광복 이후 저지른 잘못이 훨씬 많을 거예요. 후회스러운 부분도 많을 거고요. 역설적으로 그런 것들 중에 나중에 큰 자원이 된 게 적지 않아요.

    김호기 콤플렉스의 양면성을 말씀하시는 거죠.

    “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우리 사회의 불안과 콤플렉스를 주제로 열띤 대화를 나눈 김호기 교수와 이나미 박사.



    프로이트, 융, 아들러…

    이나미 사고가 나면 우리나라만큼 자기반성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어요. 우리 공동체가 죽은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활기차게 살아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세월호 사건도 이렇게 오랫동안 애도하는 것을 외국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김호기 앞서 융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정신분석학이라면 흔히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융, 알프레드 아들러 세 사람을 먼저 떠올리게 돼요. 이 세 사람 가운데 선생님은 융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가요.

    이나미 저는 융 분석가예요. 세 사람을 분석가로 꼽는 것은 우리나라만 그럴 거예요. 미국만 해도 융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김호기 융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융의 정신분석학이 갖는 장점은 어떤 것입니까.

    이나미 고등학교 때까지 융을 몰랐어요. 대학에 들어가서 스승 이부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 프로이트보다 융이 더 좋았어요. 융은 종교와 동양 사상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요. 예술에 대한 태도도 프로이트는 병적인 걸로 파악하지만, 융은 예술, 신화, 종교의 가치를 많이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 게 제게 도움이 됐어요. 프로이트가 심리학이라는 틀에서 세상을 봤다면, 융은 심리학이라는 그릇에 굉장히 많은 걸 담은 거죠.

    김호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책 ‘미움 받을 용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그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아들러 열풍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이나미 일본이나 우리 사회의 특징일 거예요. 아들러는 권력 콤플렉스에 집중한 사람인데, 우리나 일본인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자신감이에요. 위계질서, 권위, 이런 것들에 대한 콤플렉스가 서양에 비해 굉장히 심한 편이죠. 우리 사회는 매우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이에요. 그래서 아들러가 더 이해하기 쉬운 거죠. 아들러가 대인관계에서 역동성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와 닿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여요.

    김호기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선생께서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요.

    이나미 20세기 후반까지는 역사도 남성 위주였고 사회도 남성 위주 사회였는데, 21세기부터는 여성이 빠른 속도로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런 정치경제적인 움직임은 빨라지지만 심리적인 것은 아직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 않아요. 그래서 여성 스스로 주류사회로 들어가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혼란을 느껴요. 그것을 보는 주변 남성들의 시선 역시 혼돈스럽죠. 여성의 역할이 지금처럼 규정되기 힘든 적이 없었다고 봐요. 규준을 각자 찾아야 해요. 그걸 해줄 수 있는 선배나 멘토도 많지 않고요.

    한국 여성이 선 자리

    김호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부딪히는 문제가 세대별로 다를 텐데요.

    이나미 20대 여성이 부딪히는 장벽 중 하나가 외모지상주의라고 봐요. 미의 기준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서양 중심이에요. 그래서 많은 한국 여성이 스스로의 외모나 신체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느껴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프레임이 굉장히 답답해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 기상 캐스터는 하나같이 마르고 예뻐요. CNN 기상 캐스터는 뚱뚱한 여자, 마른 여자, 나이 든 여자 등 다양하잖아요. 그런 다양성을 누릴 수 없다는 게 20대가 가진 첫 번째 문제고요. 두 번째는 교육과 현실의 불일치예요. 교육은 남녀가 평등하다고 가르치고 여자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가르치는데 실제로는 차이가 크죠.

    김호기 그래서 정체성의 혼란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이나미 사랑도 배운 것, 기대한 것과 다르죠. 그런 데에서 오는 불편함이 커요. 또 20대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독립해야 하는데 여성의 경우 늦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어머니하고 훨씬 밀착된 편이죠. 20대에 독립적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못 한 채 중년으로 들어가 버려요. 그게 20대 여성의 과제이자 숙제이죠.

    김호기 30대 여성에겐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이나미 30대로 들어서면 결혼과 육아를 해야 하는데 훈련을 받은 경험이 없죠. 계층에 따라 어머니 말이 달라요. 고소득층은 그런 거 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는 반면, 저소득층은 돈을 벌어야 하니 육아나 가사에 대한 교육을 시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30대 여성 대부분은 육아나 가사에 대한 정보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해요. 힘들죠. 그러면 그 투사(投射)를 남편, 시댁, 아이에게 하죠.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아버지나 남편 노릇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하고, 갈등이 있으면 아내, 장인, 장모에게 투사하거든요.

    김호기 30대의 경우 주거, 사교육을 포함한 경제적 어려움도 작지 않습니다.

    이나미 경제적으로 30대가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주범은 부동산이에요. 몇 천(만 원)이라도 모아 독립하는 똑똑한 친구가 많지 않아요.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인데, 제가 상담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살아도 강남에서 살겠다는 30대 남성이나 여성이 있어요. 지금 월급으로 도저히 될 수가 없는데도.

    김호기 40대 여성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이나미 40대 여성의 경우에는 계층에 따라 삶이 완전히 이분화되죠. 남편을 잘 만나거나 본인이 돈을 벌면 40대에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는데, 자기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40대 여성의 문제는 공허감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호기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나미 자녀에게 온 정성을 쏟는데 요새 자녀는 이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없죠. 우리 사회는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에요. 남편이고 아내고 무지하게 바쁘다 40대가 되면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가 찾아와요. 또 40대의 장벽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너무 젊음 지향적인 사회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안티에이징을 종교처럼 생각해요. 젊어 보인다고 하면 칭찬이고,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하면 욕이 되는 사회죠. 나이 듦에 대한 저항과 불안이 있습니다.

    김호기 그러다 아무런 준비 없이 50대에 들어서는 것 같아요.

    이나미 50대의 경우에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퇴직 후 어떻게 살 것인지가 큰 고민이죠. 오십이 되면 계속 벌 수 없다, 아이들에게 투자한 것은 회수할 수 없다, 그런 걸 알게 되잖아요. 나머지 40~50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크죠. 새로 뭔가를 하기엔 사회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것 같아요.

    김호기 그래서 50대에 20대 못지않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것 같습니다. 매 시기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여성에게 어떤 메시지를 안겨줄 수 있을까요.

    이나미 저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봐요. 많은 사람이 은수저 물고 나오면 탄탄대로를 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상담하면서 느끼는 것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갈등과 좌절과 분노가 있다는 점이에요. 신데렐라처럼 좋은 남편과 결혼하면 잘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요. 오랫동안 부부생활을 잘하는 사람에게 비결을 물으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고 양보하고 타협했다고 해요.

    성공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성공을 지향해서 성공한 사람을 못 봤어요. 유명해지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가 목적이 되면 그다음에 각론이 없어져요. 오히려 내가 하는 일을 충실히 꾸준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도 있고 성취할 수도 있어요. 나의 내적인 만족감이나 보람이 중요하다고 하면 돈과 명예가 있든 없든 행복한 삶이거든요. 남에게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나를 만족시키는 그런 행복한 삶을 살면 좋겠어요.

    김호기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고 정신을 치료하는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사회가 돼야 한다고 봅니까. 과도한 공동체주의도 문제지만 과도한 개인주의도 문제라는 선생님의 주장을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이나미 과거의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공동체는 깨져간다고 봐요. 지금 젊은 세대의 경우 동창회나 향우회가 예전 같지 않거든요.

    환갑 때 피아노 콘서트 꿈

    김호기 나이 든 세대는 학연, 회사 등 네트워크를 여전히 중시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가족끼리 캠핑을 가는 등 생활문화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이나미 혈연, 지연, 학연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가 아니라 시민사회라는 나눔과 배려의 커뮤니티가 더욱 활성화하면 좋겠어요. 지구촌 전체가 하나의 시민사회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런 움직임이 있고요. 과거에는 사회적 기업이나 나눔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최근에 많아진 것 같거든요. 우리나라가 그동안 주로 성장, 발전, 물질적 향유에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코드는 나눔, 배려, 사랑과 같은 것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호기 문제는 현실입니다.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을 말할 때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나미 다른 나라와 비교해 두드러진 특징은 노인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에요. 노인들이 우울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자식한테 폐 끼치기 싫어서, 자식에게 버림을 받아서 스스로 안락사를 택하게 돼요. 빈곤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지 못하는 노인이 많아요. 이런 현상을 저는 과도기라고 보는데, 지금 70~80대 노인은 노후를 준비하지 않은 세대예요. 40~50대는 자신의 노후생활에 대한 의식이 있어요. 앞으로는 과거처럼 노년의 자살률이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봐요.

    김호기 저는 50대 중반인데, 저희 세대도 노후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나미 공동체가 살아 있다면 노인, 병자, 장애인이 내몰리지 않는 사회가 되잖아요. 지금 그런 조짐이 있는데,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에 노인이 많아서 젊은이들이 부담스러울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젊은이들은 노인을 부양하지 않아요. 통계적으로 봐도 노인을 돌보는 돌보미 대부분이 60대예요. 노인이 많아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걸 재앙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50대가 노인이 됐을 때의 생산성은 지금의 80~90대와는 다를 거예요.

    김호기 준비하는 책으로 어떤 게 있습니까.

    이나미 신화를 다룬 책이 올겨울에 나올 거예요. 죽음에 대한 책도 내려 해요. 이제는 죽음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준비해야 할 것 같고, 사회적으로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거죠.

    김호기 열심히 살아왔는데,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지요.

    이나미 피아노가 그중 하나예요. 지난해 다시 시작했는데 환갑에 콘서트를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악기를 두 개 더했는데, 플루트와 아코디언이에요. 그것도 더 열심히 해서 시니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그동안 살면서 제대로 쉬고 놀아본 적이 없는데, 여유 있게 한번 쉬고 노는, 그런 게 또 하나의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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