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와 미국의 화해 주선
- 교육이 바뀌어야 사회 혁신
- 朴 대통령 中 열병식 참석 부적절
- 한국 지식인 너무 정치화
김형우 기자
김호기 언제,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신기욱 1961년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어요. 부평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좋은 학교였어요. 1979년 연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다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로 유학 갔습니다. 박사논문 주제는 ‘일제강점기 사회운동’이었고요.
김호기 미국 여러 대학에서 가르친 것으로 압니다.
신기욱 1991년 아이오와주립대 조교수로 자리를 잡았고, 1994년 UCLA(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로 옮겼어요. 스탠퍼드대에는 2001년에 갔고요.
김호기 세 학교를 비교하면 어떤 것 같습니까.
신기욱 개인적으로, 후배들한테 처음 자리 잡을 곳으로 중부를 추천해요. LA, 샌프란시스코와 달리 중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2개의 포럼
김호기 UCLA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신기욱 2000년 ‘광주항쟁 20주년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한 것입니다. 국제 학술회의로는 처음일 거예요. 1980년 당시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부르고, 광주 민주화운동에 핵심적으로 참여한 정동년 씨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왔어요. 글라이스틴 대사와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이 처음 만난 자리였는데, 저로서는 광주와 미국의 화해를 도모하고 싶었어요.
김호기 UCLA를 떠나 스탠퍼드대로 간 이유는 뭔가요.
신기욱 개인적인 면, 학문적인 면 두 가지가 있었어요. LA는 교통과 분위기가 좋지 않아 사는 게 힘들었습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었고요. 스탠퍼드대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을 맡기로 했는데, 스탠퍼드대가 제공하는 조건이 UCLA보다 좋아서 떠나게 됐습니다.
김호기 신 교수는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이면서 아태연구소(Shorenstein Asia-Pacific Research Center) 소장을 맡았는데, 소장을 맡은 지는 얼마나 됐는지요.
신기욱 2005년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10년이 됐어요.
김호기 소장을 맡아 한 일 가운데 뜻깊은 것들은 어떤 게 있는지요.
신기욱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교토포럼이에요. 과거에는 아시아 사람들이 아시아를 배우려 미국에 왔는데, 이제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도 아시아에 가야 한다고 제가 주장했어요. 2013년까지 5년 동안 매년 일본 교토에서 아시아의 여러 분야 리더 30명 정도가 모여 심층적인 대화를 나눴습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서부지역 전략 포럼’이에요. 한미관계를 더 발전시키자는 의도에서 2006년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1년에 두 번씩 했는데, 주로 한미관계, 북한 문제, 동북아시아 세 가지 주제를 다뤘어요. 이 회의는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저로서는 중요한 포럼이에요.
서울 연세대 캠퍼스에서 대담하는 신기욱 교수(왼쪽)와 김호기 교수. 김형우 기자
혈통적 민족주의
신기욱 교수는 “한국 사회는 합리적 토론이 잘 안 되고 좌우를 먼저 가른다”고 진단했다. 김형우 기자
신기욱 사회학자로서 고민한 것 중 하나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것이었어요. 저는 민족주의가 그 답이라고 생각해요. 책에서는 한국 민족주의의 핵심을 ‘에스니(ethnie)’라고 표현했는데, 거칠게 말해 ‘혈통적 민족주의(blood nationalism)’가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가장 큰 힘이라고 봐요. 이런 민족주의의 긍정적·부정적 면을 모두 검토하고, 21세기에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전망했습니다.
김호기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우리나라 민족주의를 근대주의적 시각보다는 영속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점이에요. 다문화사회의 도래를 지켜볼 때 민족주의를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요. 다른 저작인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는 어떤 내용을 담았습니까.
신기욱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과 미국의 주요 일간지에서 다룬 한미관계를 분석한 것이에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런 것이에요. 과거에는 미국의 렌즈를 사용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어요. 한국의 민주화, 냉전 종식, 미국의 9·11 사태 등을 거치면서 한국과 미국은 다른 렌즈를 갖게 됐어요. 렌즈가 다른 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렌즈는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있고, 미국의 렌즈는 불확실하다는 게 중요해요. 한국의 렌즈는 갈라진 것을 모을 필요가 있고, 미국의 렌즈는 더욱 클리어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어요.
김호기 신 교수는 한국에서 20여 년, 미국에서 30여 년을 살아왔는데, 광복 70년을 어떻게 봅니까.
신기욱 외국에서 볼 때 한국은 1945년 이후 가장 성공적인 나라 중 하나입니다. 좌우갈등, 전쟁, 빈곤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어요. 물론 여러 문제가 있고 아직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이 존재하지만, 자랑스럽다고 자부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김호기 민주화 시대는 어떻게 보는지요. 관련된 연구도 많이 한 것으로 압니다.
신기욱 민주화는 결국 한국 사람들의 힘이라고 봐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투쟁해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산업화나 민주화나 한국인의 저력으로 이룩했다고 봐요. 산업화의 경우 필리핀 같은 국가들은 실패했어요. 민주화의 경우, 선진국과 비교하면 뒤처질지 몰라도 선거제도 정착, 수평적 정권교체 등은 외부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성공한 사례입니다.
김호기 한국에서 처음으로 연구년을 보내는데, 오랜만에 살아보니 어떤가요.
신기욱 한국 사람들의 근면함과 부지런함이 좋습니다. 밤늦게까지 술 먹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게 인상적이에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국제 정세에 밝습니다. 1990년대 초 아이오와주립대에 있을 때 90% 이상이 백인인데, 그 가운데 50%가 아이오와 주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인은 주변국이나 국제 정세에 관심과 이해가 큰 것 같아요.
개인에서 제도로
김호기 한국의 제도적인 면은 어떻게 보는지요.
신기욱 정치, 경제, 교육 등의 각론에서 보면 한국은 금방 쓰러질 것 같아요. 그런데 총론으로는 그래도 잘 굴러가지 않나요? 제가 요즘 쓰는 책의 퍼즐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그 힘이 무엇인지가 제 질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제도보다 개인 중심으로 움직여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미국과 유럽 국민은 나라에 큰 관심이 없어요. 반면 한국은 개인의 의식 수준이 높아요. 이런 의식을 어떻게 제도화하느냐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김호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두 가지만 지적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신기욱 하나는 좌우로 너무 갈라졌다는 거예요. 합리적 토론이 잘 안되고 좌우를 먼저 가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신 교수는 좌냐 우냐’고 대놓고 묻기도 해요. 그러면 저는 ‘안보나 경제는 보수고, 사회와 문화는 진보’라고 이야기하는데, 지나친 이념갈등이 큰 문제입니다.
김호기 지구적으로는 탈이념적 경향이 강화되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의 시대에 갇혀 있어요.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신기욱 민족주의 문제예요. 20세기 한국 사회를 둘러보면 식민지, 분단,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발휘한 힘·기능·효용성은 분명히 있었어요. 문제는 미래인데, 앞으로 과연 민족주의가 얼마나 중요할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저출산과 고령화의 도전 앞에서 한국이 더욱 발전하려면 결국 외국의 우수한 인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현재처럼 민족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는 배타적인 분위기에서는 그러기 힘들 겁니다. 미국의 강점은 ‘글로벌 인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나 제도가 있다는 것이지요.
김호기 민족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지는 우리 사회에 부여된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신기욱 그동안 미국의 주류 사회에 있으면서 동시에 마이너리티를 느끼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더 잘 보일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자나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약합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나 외국인·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한국 사회가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을 거예요.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생각을 해서는 ‘이노베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아요. 이제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 다른 인종과 소수자를 포용하면서 가야 해요. 이 과정에서 글로벌 인재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김호기 우리 사회는 현재 저출산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신기욱 이민정책을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리콘 밸리는 백인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가 함께 세운 거예요. 절반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은 이민자가 세웠어요. 미국의 강점은 그런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여 미국 사회에 공헌하게 만든 것이에요. 한국에도 외국인 유학생이 10만 명 정도 되는데, 그중 한국에 남아서 일하는 비율이 채 5%도 되지 않아요. 이민자에 대한 문화적·제도적 변화가 없으면 21세기에 한국이 도약하기어렵다고 봅니다.
한국 교육의 빛과 그늘
김호기 우리 사회 10대의 교육경쟁력은 세계 최고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들이 20대가 되면 그 경쟁력은 적잖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을 어떻게 보는지요.
신기욱 요즘 한국 아이들은 박스 안에서만 키워지는 것 같아요. 높은 점수와 훌륭한 스펙을 가진 똑같은 인재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이런 부분을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 한국 고교생에게서 봐요. 이들은 SAT와 같은 시험은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지만 막상 에세이를 쓰는 데는 약해요. 주어진 것은 잘 수행하는데 창의력은 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지쳐요. 이런 식의 표준화된 교육이 산업화 시대에는 좋을 수 있었겠지요.
누군가 제게 한국에서 이노베이션이 가능하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한국 고등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이노베이션은 불가능하다’고 답했어요.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될 수 있었지만 이노베이션은 불가능해 보이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김호기 발전사회학에선 한국 산업화를 ‘모방에 의한 산업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모방에서 혁신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셈이지요.
신기욱 제 질문은 21세기 동아시아 모델이 미국의 실리콘밸리 모델이나 제조업이 강한 독일의 모델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는지에 있어요.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모델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 리더가 일본인데 지금 주저앉았어요. 아베노믹스도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을 한 것이지 새로운 이노베이션을 한 것은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한국도 돌파구를 찾지 못해요. 창조경제를 제시했지만 잘 안 되고 사회적 기반도 취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호기 한미관계 70년을 돌아보면, 20세기 후반 한국에 미국처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국가는 없어요. 한미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신기욱 지난 70년 동안 한국이 이룬 성취에서 미국의 도움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박정희 시대가 공과 과가 있듯, 미국도 공과 과가 있습니다. 저는 7대 3 정도로 공이 더 크다고 봐요. 미국 원조도 있었고, 한국 인재가 미국에 가서 교육받고 왔어요. 미국은 제국의 면모도 있습니다. 전쟁도 많이 하고, 독재정권도 지원했어요. 하지만 6·25전쟁 때 많은 피를 흘렸어요. 그런 면에서 미국의 공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봐요.
김호기 현재 한미관계에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신기욱 최근 한미관계는 비교적 좋은데, 미중관계에 많이 좌우되는 면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는 것은 축복’이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언처럼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한국 안보의 중심축은 한미동맹이고, 그 안에서 동반자 관계로 한중관계를 보는 게 바람직하지, 두 관계를 동등한 수준에서 보는 것은 위험해요.
김호기 한미관계의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신기욱 MB 정권 때 한미관계가 가장 좋았다고들 해요. 바깥에서는 한중관계가 최근 급격히 가까워진 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앞뒤 안 맞는 ‘통일대박’
김호기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군열병식에 참석한 것은 어떻게 봤습니까.
신기욱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중국에 가는 것은 괜찮은데, 열병식에까지 참석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어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에 가서 참석은 하되 열병식에는 가지 않았어요. 한중관계가 중요하긴 하지만 6·25전쟁 때 중국의 참전으로 본 피해와 희생을 고려하면, 중국의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게 적절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김호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는 어떻게 보는지요.
신기욱 사드 문제도 다른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봐요. 북한의 위협이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사드를 포기하는 대신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하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협상에 나서면 좋을 텐데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김호기 북-중관계에 변화가 있는 건가요.
신기욱 북-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게 분명하지만, 저는 북한이 갖는 전략적 가치를 중국이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한국은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중국과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중요 하지만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직은 한미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호기 남북관계는 어떻게 보는지요. 우리 사회에서 대북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는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에요. 진보적 포용정책과 보수적 강압정책 모두 불만족스럽다는 게 적지 않은 국민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신기욱 MB 정부가 일종의 ‘배드 캅’ 역할을 한 셈이에요.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이 자신들에게 항상 호의적이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했을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은 방향을 잘 잡았다고 봅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정경분리 원칙이죠. 북한을 지원하면서 핵 문제는 무시한 것이지요. MB 정부 때는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지원을 안 하겠다고 둘을 연결한 것이고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핵 문제도 중요시하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은 계속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과거 두 정책을 절충한 셈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정책을 추진할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왔다는 점이에요.
신기욱 교수는 “한국 지식인이 너무 정치화해 있다”고 비판했다. 김형우 기자
신기욱 지난해 출간한 ‘남북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맞춤형 인게이지먼트’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이 논리적·정책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MB 정부 때도 그런 것 같은데, 지금 정부도 북한 정권이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경제적 이유에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만일 북한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중국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고, 그래서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 같아요. 문제는 북한이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붕괴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예요. 제 의견은 차라리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한중일과 미국의 기억 차이
김호기 동북아라는 지역적 차원에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에 대한 한국정부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 것일까요.
신기욱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를 수평적으로 놓는 건 잘못이에요. 한국의 안보에서 중요한 게 한미동맹임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어요.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야 중국에 대한 지렛대(leverage)가 생길 수 있어요.
김호기 ‘G2 시대’라는 말이 보여주듯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올해 중국의 기세가 다소 꺾이지만, 21세기 전반부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속 공존’ 시대가 될 것으로 보여요.
신기욱 이제 미국에서 대선 시즌이 시작돼서 중국 때리기를 많이 할 거예요. 대선 때 보통 미중관계가 좀 불편해져요. 남중국해 관련 이슈도 있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이 어떻게 할지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우리 나름의 원칙을 정해야 한다고 봐요. 중국도 한미관계의 특수한 성격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호기 한·중·일 국제관계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것으로 압니다.
신기욱 ‘Divergent Memories’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왔는데, 내년 봄 스탠퍼드대 출판사에서 출간할 거예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다룬 한중일 및 미국을 비교 연구한 책이에요. 각 나라 오피니언 리더 10여 명씩 인터뷰해서 썼어요.
김호기 책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무엇입니까.
신기욱 두 가지예요. 하나는 미국도 동북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을 포함시켜 다뤘다는 점이에요. 다른 하나는 역사적 기억의 형성에서 나라마다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에요. 한국이나 중국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인 데 반해, 일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에요. 한 예로 일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억은 미국의 공습이에요. 원폭 투하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일어났다면, 공습은 광범위하게 이뤄졌어요. 일본 사람에게는 그런 기억이 커요. 중국의 경우에는 난징 학살의 기억이, 한국은 식민지배의 기억이 중요하고요. 이렇게 각자의 역사적 기억을 형성하는 지점에서 미스매치(mismatch)가 있어요.
김호기 우리는 일본을 가해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아주 나쁜 가해자이지요. 저 역시 일본 소설에서 일본인이 피해자로서의 기억을 갖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신기욱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폭 피해를 받은 나라는 일본밖에 없어요. 독일은 유럽에서 유대인 인종청소를 했어요. 하지만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 사람들을 인종적으로 말살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유럽과 아시아에 차이가 있어요. 물론 일본이 벌인 전쟁과 식민지 지배가 면죄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식인 사회, 자율성 가져야
김호기 브루스 커밍스 교수 등의 1세대를 이어 신 교수 등의 2세대가 미국 내 한국학을 주도합니다.
신기욱 요즘 사회과학 연구가 활성화하면서 우리 같은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가 미국 정부에 전달됩니다.
김호기 앞으로 계획하는 연구 과제로는 어떤 게 있는지요.
신기욱 두 가지 정도 생각해요. 하나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글로벌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본 한국 사회인데, 요즘 쓰고 있어요. 미국으로 돌아가 정리한 다음 출간해서 한국 사회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김호기 한국 사회에 충고한다면 어떤 게 있는지요.
신기욱 지식인들에게 한마디 충고하고 싶어요. 밖에서 볼 때 한국 지식인은 너무 정치화해 있어요. 교수가 자기 전문성을 가지고 정책에 조언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봐요. 문제는 많은 지식인이 선거 캠프에 들어가고 정치권력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말을 하고 싶어도 눈치를 보게 된다는 데 있어요. 한국 사회가 힘을 더 가지려면 지식인사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강해져야 한다고 봐요.
김호기 한국에 지인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마지막으로 지인들에게 한말씀 전하겠습니까.
신기욱 한국에서 자라 미국으로 진학해서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한국과 미국 간 학계와 정책의 가교 구실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