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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제조업 / ②반도체

메모리 강국 한국에 기업은 있고 사람은 없다

美는 격차 벌리고, 中은 맹추격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메모리 강국 한국에 기업은 있고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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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크로스 포인트는 메모리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폭발력을 내재했다. 비단 인텔뿐만 아니라 IBM, 휴렛팩커드 등도 구글 등이 원하는 인공지능 구현에 다가간 반도체, 대형 컴퓨터를 노트북만한 크기로 만들 수 있는 기술 등을 한창 개발하는 중이고 일부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래에는 D램 자체가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중국이 한국을 추격 중이라면, 미국은 한국에 유리한 현재의 ‘판’을 깨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래저래 한국 반도체 업계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인력도 줄고, 지원도 줄고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대장정’에 나선 것은 1985년 정부가 ‘반도체산업 종합육성대책’을 수립하면서부터다. 정부가 이끌고, 기업이 투자하고, 학계가 뒷받침한 결실로 미국에서 일본으로 옮겨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이 1990년대 들어 한국으로 넘어왔다. 국내 반도체 학계 원로인 김형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신화를 이룬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1970년대 초반 학번들로 유학 후 반도체에 투신한 이윤우, 황창규, 임형규, 진대제, 권오현 등 반도체 1세대가 아니었다면 현재와 같은 성공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 또한 서울대 71학번으로 반도체 1세대에 속한다. 정년퇴직을 2년 앞둔 그는 “내 후임으로 반도체 교수가 뽑히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43명 중 반도체 전공은 5명뿐이다. 반도체 전공 교수를 마지막으로 뽑은 것은 15년 전. 다른 대학들도 비슷한 사정이라고 한다.



대학에 반도체 교수의 씨가 마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대학이 두뇌한국21(BK21) 등의 영향을 받아 논문 실적 위주로 교수를 채용·평가하다보니 반도체 연구자들이 불리해졌다. 반도체는 성숙한 학문이라 새로운 이론을 고안해 세계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정부가 반도체를 ‘이미 완성된 산업’으로 판단하고 각종 연구비 지원을 줄여나가는 것도 대학의 반도체 교수 ‘홀대’에 한몫했다. 황철성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나노 등 연구비가 몰리는 분야로 연구 방향을 튼 반도체 전공 교수들도 있다”고 했다.

반도체 교수들 사이에선 ‘30대 교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올 초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에 합류한 이윤명(34) 조교수는 “미국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도 국내 대학에서 자리를 구할 수 없어 반도체 전공 유학생들은 주로 미국 반도체 회사에 취업한다”고 전했다. 박재근 교수는 최근 다녀온 국제반도체소자학회(IEDM) 논문 심사에서 목격한 일을 들려줬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10여 개 대학이 IEDM에 논문을 제출했다. 올해는 한양대와 서울대, 카이스트밖에 없었다. 중국이 제출한 논문의 숫자가 국내 논문보다 예닐곱 배 많았다.”

장비 등 저변 키워야

메모리 강국 한국에 기업은 있고 사람은 없다
교수가 없으니 반도체 인력 양성에도 제한이 걸린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가 2008년 배출한 석·박사는 100명이 조금 넘었는데, 지난해에는 40명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반도체를 전공하지 않고도 삼성반도체(삼성전자 DS부문)에 박사급 인력으로 채용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국내 유수 대학 교수들에게 실력 있는 박사급 인재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고개를 젓는다. 쓸 만한 인재는 삼성이 싹쓸이해간다고.”(이문용 원익IPS 부회장)

원익IPS는 매출액 4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증착장비 및 장치업체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 출신인 이 부회장은 “반도체 장비업체는 R&D가 핵심인데, 이를 맡길 인재 확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석·박사급 반도체 인력이 적게 배출되는 상황에서 그나마도 다들 삼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 분야는 국가적 차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다. 반도체 공장을 하나 짓는 데 15조 원이 투입되는데, 그중 건설비는 3조 원에 그치고 나머지 12조 원은 장비 마련에 쓰인다. 장비 국산화 비율은 20%에 불과한데, 그나마 부가가치가 높은 전(前)공정장비보다는 후(後)공정장비에 몰려 있다. 최근 완공한 SK하이닉스 M14 공장의 경우 총 투자비 15조 원 중 해외에서 반도체 장비를 사오는 데 10조 원 이상을 썼다.

인텔이 앞서 거론한 3D 크로스 포인트 기술을 개발한 데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Intermolecular Inc.’의 기여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는 “미국은 반도체 인력이 인텔, IBM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관련 분야로 진출해 서로 시너지를 낸다”며 “우리나라도 인력이 충분히 양성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물론 장비업체 등 저변으로도 진출해야 반도체 산업의 내실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력을 다 가져간다는 삼성에도 고민은 있다. 신입 직원들을 재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그룹이 공채 전형에서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없애고 서류 전형을 부활한 것도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SSAT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서류 평가에서 직무 관련 전공 지식을 얼마나 쌓았는지 보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한국공학한림원 주최 코리아리더스 포럼에서 이봉주 삼성반도체 인사팀장(전무)은 이렇게 밝혔다.

“업무 평가에서 상위 20%에 든 사람들의 고(高)성과 요인이 대학 시절 전공과목을 많이 듣고 해당 과목의 점수도 좋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 하반기 채용부터는 전공과목을 얼마나 많이 듣고 점수가 얼마나 좋은지를 주로 볼 생각이다.”

운동 마니아인 R군. 얼마 전 새로 구입한 스포츠 의류를 갈아입고 달리기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R군의 심장 박동 수와 달린 거리, 이동 코스 등이 옷에 기록된다. 티셔츠 위에 얇게 프린트된 메모리 덕분에 옷이 컴퓨터로 변신한 것이다. R군은 태블릿PC를 잘 접어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넓은 화면이 마치 작은 수첩처럼 작아졌다.

2017년 R&D 예산 0원

위의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블로그에 실린 산업기술 R&D 우수사례 중 두 번째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도입 부분으로, ‘휘어지는 메모리’ 덕분에 이러한 미래가 가능하다는 예시다. 정부는 2004년부터 7년간 산자부 주도로 차세대 메모리 개발 사업을 벌였다. 총 사업비는 593억 원으로 정부가 322억 원, 기업이 271억 원을 투자했다. 이 사업으로 특허가 2365개 확보됐고, 논문은 622건이 나왔다. 이 사업 단장을 맡았던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반도체 관련 대형 프로젝트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벌이는 R&D 사례를 찾아볼 수 없고, 정부 단독으로 벌이는 R&D 사업도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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