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연극에 산다

  • 장두이 | 배우, 연출가

    입력2015-10-21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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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에 산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우리 연극 ‘옛날 옛적 훠어이 훠어이’.

    서울 세종로 한복판 커다란 전광판에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명멸해간다.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동 전광판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필자도 출연한 ‘리어왕’의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고. 이쯤 되면, 근래에 목이 터져라 외치던 ‘인문학의 현장’은 비단 교육을 담당하는 강의실만이 아닌 연극 공연 현장이라고 멋지고 당당하게 시위(?)를 하는 셈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 C가 툭 던진 말이 있다. “요즘 연극이 엄청 많이 공연되더라?” 친구의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1970년대를 함께한 그 친구 생각대로 30~40년 전보다 우리 연극과 공연은 엄청 많아 보인다. 사실 그러하다. 당시 대한민국연극협회 정단체로 등록된 극단이래야 15개를 넘지 못했지만 지금은 등록된 단체 말고도 개인적 연극 단체나 기획,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연이 연간 80여 편에 달할 만큼 크게 늘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이번엔 나를 제법 아끼고 연극 인생에 대해 애처롭게 생각해주는 P가 말문을 연다. “가족과 연극을 보려 해도 볼 만한 연극이 별로 없어. 아주 많이 알려진 작품이면 몰라도…. 또 영화보다 비싸! 뮤지컬은 10만 원이나 하더라? 시간도 없고.”

    갑자기 친구들이 부담스러워진다. 그러다 살짝 미워진다.

    그러나 모임이 끝나고 귀가하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연극을 한 지 어느덧 46년째. 3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고, 연출하고, 희곡까지 쓰고, 지금도 하루의 대부분을 연극 속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만족하는가’, 그리고 ‘행복한가’. 또한 내 공연장을 힘들게 찾아온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연을 통해 진실로 ‘즐거움을 주는가’. ‘연극을 통해 지금의 삶을 생각하며 되짚어보게 만드는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처럼 성공과 실패가 뒤범벅이 되는 연극 시장(?)에서 물론 완벽한 만족은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공연을 통해 관객과 라이브로 교감할 때 나는 그보다 더한 행복을 발견한 적이 없다. 아직도 ‘연극은 정말 좋은 것이야!’ 왜? ‘우리 삶에 최고의 거울이고 교훈을 주는, 더욱이 격조 있는 예술행위이며 행동인문학이니까!’라고 스스로 최면 아닌 자긍심을 걸어본다.

    배우는 철학자, 신학자, 참된 인간이라야

    필자는 지난 5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제작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9월 세종문화M 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 두 편에 출연했다. 두 작품 모두 연극의 고전이며 대작인데, 둘 다 작가가 말년에 쓴 명작이다. 두 작품의 연습 기간 내내, 삶의 모든 시간을 무대에서 살아온 내겐 숨 가쁜 행복의 절정이 아닐 수 없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뼛속에 스미는 것처럼 절절이 녹아들고, 몸속에 진동으로 남게 줄줄이 외웠다. 그러면서 느낀 마지막 탄식! “아직도 멀었구나!”

    시(詩)가 문학의 함축이라면 연극 대사는 그 캐릭터의 함축된 삶이다. 남의 삶을 이해하고 경청해야 연기자로서 진정한 캐릭터 변신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철학자요 신학자요 참된 인간이라야 한다. 그래서 ‘배우가 되려면 사람이 되어야 한다’란 말이 생겼지 않나 싶다.

    이 지구상에 가장 오래된 연극이 있다. 1만 년의 역사를 가진 페르시아 연극 ‘타지에(Taziyeh)’다. 필자가 경험한 가장 생생하고 싱싱한 연극으로 실제 말(馬)만 30여 마리 등장하는 대하 서사연극이다. 수년 전 이란 테헤란에서 이 연극을 보면서 ‘연극이란 삶의 스토리텔링과 스펙터클한 서사시’임을 느꼈다. 그뿐인가.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에도 엄청난 연극의 보물들이 지금도 각각 노(能)와 경극(京劇)이란 이름으로 오늘날의 관객들과 함께 숨을 쉰다.

    흔적조차 사라진 우리 연극 유산

    그러고 보면 우리 연극에도 2000년 전 신라시대의 처용 가면무에서부터 200년 전의 봉산 가면극, 1인 모노뮤지컬 드라마 격인 판소리, 그리고 이제 100년의 역사를 넘긴 ‘은세계’ 등의 신극과 오늘날의 연극이 있다. 우리 민족의 거대한 유산이다. 그러나 정작 70여 개가 넘는 우리 대학 연극과에서 이런 우리의 유산을 넘겨보는 곳은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 이제 우리 연극도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부흥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 일본 도쿄에 있는 가부키좌(歌舞伎座) 극장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우리의 연극 극장 유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사실 신극의 남상(濫觴)이던 원각사도, 신파 연극의 발원지인 동양극장도 이제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실 한국 연극의 르네상스는 단순히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연극인들의 뜻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정부는 물론 관객들, 제작자, 언론, 교육단체 등 여러 분야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후원으로 그에 맞는 공급과 수요가 함께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연극에 산다
    장두이

    1954년 경기 고양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미국 뉴욕시립대 브루클린대학원 연극과 석사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뉴욕드라마클럽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연기상, 미국 소수민족 아시아 예술인상

    現 한국국제예술원 교수


    경제성장 일변도 세상에도 절대 필요한 것이 문화 향유와 인문학적 바탕이다. 이러한 것이 우리 삶에 중요한 활력과 창조의 원동력이 되듯이, 이제 다가올 2016년엔 우리 삶의 여유로움과 사변의 풍족한 언저리가 보다 굳건히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 연극과 뮤지컬의 세계적 도약은 유진 오닐이란 노벨상 수상 극작가와 리처드 로저스, 오스카 해머스타인이란 작곡가와 작사가의 활약에 그 근본이 있었다”라는 연극학자 브로켓의 말은 우리에게 뛰어난 한국 연극인의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우리 연극예술의 도약이 절실하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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