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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경주’와 경주 오릉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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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둘은 여자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제야 남자는 여자에게 깊은 불행이 잠재해 있음을 눈치챈다. 그는 그녀에게 접근했지만 이제 간격을 느낀다. 남녀는 가깝게 느낄 때에야 비로소 때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법을 깨닫는다. 그건 위선이 아니다. 일종의 깨달음이다. 홀로 놔둠으로써 오히려 정서적으로 더 긴박될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것이다.

마치 독백을 하듯 한참을 얘기하던 끝에 여자는 자기 방으로 자러 들어간다. 그녀는 방문을 닫지 않는다. 이제는 당신이 선택할 차례라는 듯, 여자는 방문을 살짝 열어둔 채 침대에 몸을 누인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 방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다. 대신 그는 거실의 창문을 열고 자신의 전화에 부재 중 녹음이 된 중국 아내의 음성 메시지를 듣는다. 그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고 밖에는 어스름 새벽이 다가오는데, 창문 옆이 바로 누군가의 거대한 왕릉이다.

왕릉의 그림자는 철저하게 세상 속으로 버려진 남자, 그렇게 외롭게 잠이 든 여자를 마치 내가 다 잘 안다는 듯, 위무하듯 그냥 존재한다. 장률 감독이 창문 밖 왕릉을 배경으로 잡은 것은 나름 의미가 심장한 것이다.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저질러온 많은 잘잘못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못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며 살라고 그 왕릉을 대신해서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데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감은사지석탑과 경주 문무대왕릉.

천년 석탑이 나를 본다

경주에 오면 사람들은 대개 어릴 적 기억을 더듬는다. 그 기억 속에는 불국사가 있고, 석굴암이 있고, 감포가 있다. 그리고 문무대왕이 묻혀 있다는 바다가 있다. 석굴암 가는 길은 이제 매우 편리해졌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던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하다. 거의 코앞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석굴암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이젠 경이로움이 아니라 유희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생각의 깊이를 조금만 달리하면 신라 경덕왕 10년, 그러니까 751년이라는 시대에 어떻게 이런 석불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을 갖게 된다.



구도(求道)를 위한 인간의 의지는 때로 기적의 산물을 완성시킨다. 김대성이라는 신라의 인물은 무슨 집념으로 이 일을 해낸 것일까. 그것도 원시적인 도구만을 가지고 어떻게 저런 정교한 부처의 미소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러나 석굴암은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다소 초라한 느낌을 준다. 조금은 작아지고, 어쩔 수 없이 자꾸 낡아간다. 세월의 마모가 주는 속도감이 남다르게 빠르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감포로 가는 길목에는 감은사지삼층석탑이 있다. 신라 신문왕 2년인 682년에 지어져 역시 천년 가까이 이곳 한자리에서 세상을 지켜본 셈이다. 뛰어난 석탑건축 기술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탑은 동서로 두 개가 자리한다. 그 건너편에는 석탑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어마어마하게 오랜 세월을 같이했을 고목이 있다.

고목 밑에서 석탑을 바라보는 시점 샷이 좋다. 오랜 유적은 비교적 롱 샷(long shot)과 롱 테이크(long take)로 보는 게 좋다. 그는 나를 응시하고, 나는 그가 나를 쳐다보는 걸 즐긴다. 내가 유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쪽이 나를 본다. 그럼으로 해서 나는 긴 역사 속 조그맣고 조그만 인물로 편입된다. 주체는 내가 아니라 역사이자 시대임을 느끼게 된다.

감은사에서 동해로 나가면 문무대왕이 묻혔다는 해변을 만나게 된다. 신라를 통일한 김춘추, 곧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그를 수장했다는 천연 암초들이 200m 남짓, 저 건너 바다에서 드러난다.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혼령이 왜구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는 건데, 그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당시로서는 대단히 특이한 이벤트였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무덤이 그에게 복속당한 백제와 고구려의 잔여 세력들에게 끊임없는 공격 대상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늘 정치적 ‘사변’이 끊이지 않았을 터. 그럼으로 해서 이 수중릉은 일거양득의 정치적 행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삼국통일의 상징성과 초대 왕이 지닌 국가 이데올로기 강화 등등. 지나치게 현대 정치공학적으로 당시를 보고, 해석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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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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