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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경주’와 경주 오릉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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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의 미학

경주시 탑동에 있는 오릉에 갈 때는 평일인 데다, 문 닫기 직전 늦은 시각을 택하는 것이 좋다. 인적이 끊긴 상태에서 거대한 능과 올곧이 마주하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그의 왕비, 그리고 이름을 외우기 힘든 2대왕과 3대왕 등등이 묻혀 있다는 기록을 확연히 믿게 된다. 그렇게나 오래전에 어떤 위엄을 자랑하고 싶었기에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큰 무덤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 오히려 발굴을 하지 않은 채 다시 천년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지나간 일은 꼭 들춰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건 사랑도 마찬가지여서 상대가 과거에 어떤 사람과 정을 통했든 그것을 캐내는 게 꼭 좋은 일은 아니다.

물론 질투는 늘 화신 같아서 상대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고 생각하면 온몸과 마음이 활활 타오르는 듯싶지만 그건 잠깐만 참으면 되는 일이다. 들춰내는 자의 마음이 고통스러운 만큼 들춰내지는 상대의 마음은 더욱 더 지옥일 수 있는 노릇이다. 사랑은 고린도 전서의 진부한 표현처럼 참음으로 해서 온유해지는 법이다.

오릉의 정적이 엄습해올 때쯤이면 ‘경주’의 인물들이 왜 느닷없이 이곳을 오르려 했는지 알 것 같은 느낌도 스며든다. 아주 얕은 울타리를 풀썩 뛰어넘어 한 발짝이라도 더 옛사람들 곁으로 가고 싶어진다. 제1릉으로 불리는 원형 봉토분은 작은 산처럼 느껴지는데 그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진실로 달라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실로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되는 나날의 연속이다. 사람들 중 대다수는 꿈을 잃는다. 그래서 늘 다른 길을 찾게 되지만 어느 순간 눈을 떠보면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암투가 많고, 질시가 계속되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가 사람들 사이에선 몰이해의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사람들은 같이 살기 위해 일을 하지만 결국은 더불어 뭔가 이뤄낸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자각을 하게 된다. 신라의 도시 경주는, 천년을 경유하며 사람들의 그 같은 통증을 완화시켜 준다.

주변이 온통 유적지 천지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금씩이나마, 그리고 기이하게도, 자신의 궤도를 찾아갈 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 긴 역사에서 사람들이 어쨌든 견디고 살아온 만큼 자신 역시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위안을 얻는다.

고도가 좋은 것은 그 때문이다. 장률의 ‘경주’가 자꾸 기억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는 늘 그런 곳에 가고 싶어 한다. 영화는 고도와 함께 늙어간다.

그리고 그 늙은 도시는 늙어가는 사람들조차 다시금 사랑을 하게 만든다. 함께 늙어가는 무엇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고도를 위하여. 그리고 고도를 기다린다.

신동아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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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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