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바이오메디컬 분야 글로벌 리더 고려대의료원

1부 - 자랑찬 역사, 희망의 미래 ㅣ 2부 - 미래의학 10대 선도 기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8-12-1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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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학을 향한 힘찬 도약 고려대학교의료원 비전 선포식
    미래형 병원 청사진, 미래의학 선도 10대 기술 공개

    2018년 12월 1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고려대의료원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내빈들. 왼쪽에서 세번째부터 김재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나춘균 고려대 의대 교우회장. [조영철 기자]

    2018년 12월 1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고려대의료원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내빈들. 왼쪽에서 세번째부터 김재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나춘균 고려대 의대 교우회장. [조영철 기자]

    “미래의학, 우리가 만들고 세계가 누린다(Enabling Future Medicine).”

    2018년 12월 1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선포된 고려대학교의료원(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이기형)의 미래 비전이다.

    1928년 설립된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의 역사를 이어받은 고대의료원은 이후 만 90년간 민족을 위한 박애의 의술을 펼쳐왔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바이오메디컬 융복합 연구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의료기관 중 연구중심병원 두 개를 보유한 곳은 고대의료원이 유일하다.

    고대의료원은 앞으로 이처럼 자랑스러운 역사적 자산과 현재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의학을 선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날 고대의료원이 밝힌 미션 ‘생명존중의 첨단의학으로 인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바로 이런 의지를 담고 있다.


    스마트 인텔리전트 미래 병원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 고대의료원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 고대의료원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비전선포식에는 김재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과 염재호 고려대 총장,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 나춘균 고려대 의대 교우회장, 임영진 대한병원협회장 등 내빈 700여 명이 참석했다.



    고대의료원은 이들 앞에서 향후 완성할 미래형 병원의 청사진도 공개했다. 2017년 공사비 3500억 원 규모의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를 착공하는 등 병원 곳곳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고 있는 고대의료원은 지속적인 투자로 ‘스마트 인텔리전트 병원(Smart Intelligent Hospital)’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차세대 바이오메디컬 분야를 이끌어갈 기술 10개를 선정하고 공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암 정밀 진단·치료(Cancer Precision Medicine) △클라우드형 공유 병원정보시스템(Cloud-Hospital Information System) △AI 기반 신약 설계(AI-based Drug Design) △체액생검(Liquid Biopsy)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유전자 가위(Genome Editing) △페이션트 온 어 칩(Patient-on-a-chip) △3차원 장기 프린팅(3D Organ Printing) △착용형 소프트 로봇(Wearable Soft Robot) △메모리 에디팅(Memory Editing) 등 10개 기술을 바탕으로, 그동안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던 미래의학 기술을 현실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은 “오늘 발표한 비전은 우리의 꿈과 이상을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의 표현”이라며 “고대의료원이 모두가 꿈꾸고 상상하는 미래의학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nabling Future Medicine
    고대가 만들고 세계가 누린다


    ● 4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 국내 정상급 연구 인프라
    ● 세계 최초 항생제 어드바이저 인공지능 3A 개발
    ● 90년 이어온 민족 건강 지킴이, 인류 건강 수호자로 도약

    고대의료원 의료진이 인공지능 항생제 처방 프로그램인 3A 활용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사진제공·고대의료원]

    고대의료원 의료진이 인공지능 항생제 처방 프로그램인 3A 활용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사진제공·고대의료원]

    2018년 12월 12일 비전선포식은 미래의학을 향한 고대의료원의 각오와 자신감을 생생히 느끼게 하는 자리였다.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은 이날 ‘미래의학, 우리가 만들고 세계가 누린다(Enabling Future Medicine)’를 비전으로 선포하며 “그동안 철저히 준비하고 내부 역량도 충분히 갖췄다. 지금이 미래의학을 선도하는 초일류 의료기관으로 도약할 적기”라고 선언했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고대의료원은 최근 몇 년간 그 어떤 대형병원보다도 두드러진 성장을 거듭해왔다. 2008년 5200억 원 수준이던 예산이 2018년 1조28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회계연도 기준 연평균 성장률이 11.8%에 달한다.

    연구 분야 성과도 두드러진다. 고대의료원은 2013년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유일하게 두 개의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됐다. 2016년에는 안암병원 1위, 구로병원 4위 성과를 바탕으로 연구중심병원 재지정에 성공했다.


    미래 의료 선도하는 융합 연구의 산실

    남다른 연구 인프라로 높은 수익도 올리고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구과제 2124억여 원, 기술이전금액 45억여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이는 직전 3년에 비해 연구과제 수주는 26.7%, 특허출원 및 등록은 78.9%, 기술이전금액은 15배 증가한 수치다. 연구진의 노력에 발맞춰 고대의료원 또한 총 공사비 3500억 원 규모의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를 착공하는 등 대규모 시설 투자로 연구 역량 강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 및 투자 결실은 각종 국가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졌다. 고대의료원은 2017년 정부가 국가전략프로젝트로 추진하는 정밀의료사업 두 가지 세부사업에 모두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유수 의료기관이 참여한 정밀의료사업단은 미래 우리나라 의료 발전을 이끌 기구로 주목받는다. 고대의료원이 그 중심에서 주도적 구실을 담당함으로써 연구 역량 및 인프라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 됐다.

    고대의료원의 연구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SK C&C와 협력해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AI) 항생제 어드바이저 3A(Aibril Antibiotics Advisor)를 개발하고 있다. 3A는 환자의 증상 및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항생제 종류, 처방 방법, 추천 근거 등을 의료진에 제공하는 AI다. 최신 의학 논문을 분석하고, 고대의료원의 노하우 등을 종합해 최적의 항생제를 찾아낸다.

    IBM 왓슨 기반 에이브릴로 개발된 3A가 상용화하면 2015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항생제 소비국인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에 긍정적 변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기초의료기관 의료진이 질병 종류와 상태에 최적화된 항생제 종류 및 용량을 일일이 검토해 처방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항생제 오남용 문제가 생긴다. 항생제 처방에 앞서 3A에 조언을 구하면 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최근엔 세계 선진국들도 앞다퉈 항생제 오남용과 내성 문제를 경고한다. 하지만 내성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항생제 개발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불필요한 항생제 복용을 줄여 내성균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최선이다. 고대의료원이 3A 개발을 통해 항생제 내성균 문제를 극복할 한 가지 길을 제시한 셈이다.

    고대의료원은 12월 12일 비전선포식에서 ‘생명 존중의 첨단 의학으로 인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미션도 발표했다. 생명 존중이라는 인문학적 키워드에 첨단 의학이라는 과학적 키워드를 접목해 따뜻하면서도 실력 있는 의료기관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한 것이다.


    생명 존중의 첨단 의학

    2016년 장내 미생물과 아토피 피부염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혀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김희남 고려대 의대 교수(오른쪽).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2016년 장내 미생물과 아토피 피부염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혀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김희남 고려대 의대 교수(오른쪽).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1928년 민족 최초의 여자의학 교육기관 ‘조선여자의학강습소’로 문을 열 때부터 소외된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존중한 고대의료원의 정신은 한결같았다. 유교적 관습이 엄존하던 시절, 여자 환자는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이지 못해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선교사 로제타 홀 여사가 ‘여의사 양성’을 목표로 세운 것이 바로 조선여자의학강습소다.

    이 학교는 이후 ‘경성여자의학강습소’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여성 의료 인력 양성’의 역사를 꾸준히 이어갔다. 1957년부터 남녀공학 교육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었지만, 민족을 위한 의학과 박애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이 정신은 1971년 고려중앙학원에 인수돼 ‘고려대 의대’가 된 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고대의료원이 부속병원을 의료 소외지역에 잇달아 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대 구로병원(1983년), 반월병원(1985년, 이듬해 안산병원으로 개칭)은 1980년대 초중반, 의료소외지역에 건설돼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며 지역민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고대의료원은 2017년 국가전략프로젝트로 추진하는 정밀의료사업 두 가지 세부사업에 모두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정밀의료사업의 세부 사업단을 이끄는 김열홍 교수(오른쪽)와 이상헌 교수.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고대의료원은 2017년 국가전략프로젝트로 추진하는 정밀의료사업 두 가지 세부사업에 모두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정밀의료사업의 세부 사업단을 이끄는 김열홍 교수(오른쪽)와 이상헌 교수.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고대의료원은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이제는 인류 전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할 의료기관으로 도약할 계획이다. 이미 두 개의 연구중심병원과 2014년 국내 의료계 최초로 설립한 기술지주회사 등을 통해 연구 역량을 강화해온 고대의료원은, 앞으로 바이오메디컬 분야 선도 기술을 바탕으로 융복합 연구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다.

    이를 실현할 구체적 전략은 △융합형 창의 인재 교육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글로벌 리더 △개인 맞춤형 특화진료 △사람 중심의 사회적 가치 실현 등으로 세웠다. 각각 교육, 연구, 진료, 사회공헌 측면의 실천 전략이다.

    교육 측면부터 순서대로 살펴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형 의료인은 의학뿐 아니라 공학, 경영학, 인문학 등까지 섭렵한 융합형 인재다. 고대의료원은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다양한 분야 인재들과 화합해 시너지를 창출할 줄 아는 ‘융합형 창의 인재’를 길러내 미래 의료를 열어갈 계획이다.

    고대의료원이 연구 측면에서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글로벌 리더’를 추구하는 건,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 동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분야 의료 기술은 진단, 치료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이전되거나 사업화됨으로써 국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고대의료원의 생각이다. 고대의료원이 비전선포식에서 바이오메디컬 분야 10대 선도 기술을 발표하고, 향후 연구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여기 있다.

    진료 측면에서 고대의료원은 ‘개인 맞춤형 특화 진료’에 주력할 계획이다. 미래 의료계 화두가 ‘정밀의료’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환자들이 ‘오직 나만을 위한 진료’를 원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사회공헌 측면에서는 ‘사람 중심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실천 전략으로 삼았다. 만 90주년을 맞은 고대의료원은 이 네 가지 핵심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선두 의료기관이 되기 위한 힘찬 전진을 시작한다. 90년을 이어온 민족 의료기관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가며, 인류 건강의 수호자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고려대 안암·구로·안산병원
    의료 혁신 이끄는 최첨단 연구기지


    ● 4차 산업혁명 선도하는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
    ● 새로운 의료 생태계 홍릉밸리, G밸리, 사이언스밸리
    ● 기금운영팀 직제화로 기부 활성화 첫걸음

    고대안암병원에 건설 중인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 조감도. [사진제공·고대의료원]

    고대안암병원에 건설 중인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 조감도. [사진제공·고대의료원]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글로벌 리더’를 향한 고대의료원의 꿈은 안암·구로·안산 등 3개 부속병원을 중심으로 커가고 있다. 고대의료원의 미래 전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은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안암병원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다. 2017년 가을 첫 삽을 뜬 이 건물은 완공 시 지상 11층, 지하 5층, 총면적 약 13만㎡(약 4만 평) 규모가 된다.

    눈에 띄는 것은 크기가 기존 안암병원 총면적의 두 배에 이르는 건물을 신축하고도, 병상 수는 현재 1051병상에서 1200병상으로 소폭 늘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고대의료원 관계자는 “미래 병원의 경쟁력은 병상 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공간을 ‘대한민국 의학 발전을 선도할 전초기지’로 삼아 최첨단 융복합 연구 역량과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는 고대의료원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라고 밝혔다.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는 향후 첨단기기와 의료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개선 및 발전시키는 요람이 될 전망이다. 안암병원은 고려대 캠퍼스와 맞닿아 있다. 고대 의대는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자랑한다. 1971년 우리나라 최초로 법의학연구소를 설립해 법의학 연구 기틀을 마련하고, 1987년 박종철 군 사망 당시 사인(死因)이 고문임을 규명해내기도 했다. 1976년 세계 최초로 신증후출혈열 병원체를 발견한 것도 이호왕 당시 고대 의대 교수였다. 고대 의대 연구진은 이를 한탄바이러스로 명명하고, 1989년 백신을 개발했다. 이 백신은 ‘한타박스’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고대의료원이 주도하는 연구 생태계 건설

    한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의료 기술 개발 중심지 구실을 하는 고대구로병원.

    한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의료 기술 개발 중심지 구실을 하는 고대구로병원.

    이외에도 고대에는 보건과학대, 생명과학대, 이과대, 간호대 등 여러 단과대가 모여 있다. 여러 분야 학자들이 상호 교류하며 융복합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주변 홍릉 지역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등과학원(KIAS) 등 대학 및 연구기관이 모여 있는 것도 안암병원이 누리는 입지적 장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바이오메디컬 기술을 개발하기에 적합하다.

    고대의료원은 고대 교수진과 외부 연구진의 네트워킹을 통해 ‘홍릉밸리’를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을 이끌어갈 선도 지역으로 키워간다는 목표다. 이미 임상의사와 의생명과학자, 공학자 등이 협력해 유전체 기술을 활용한 맞춤의료, 줄기세포를 이용한 환자 맞춤재생의료, 의료기기 및 신의료기술 개발 등 다양한 융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홍릉 의료클러스터를 바이오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2019년 관련 예산 158억 원을 편성했다.

    구로병원은 대한민국 의료계의 실리콘밸리가 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구로병원과 인접한 서울디지털단지에는 수만 개의 정보기술 및 바이오 기업이 모여 있다. 고대의료원은 구로병원 연구진이 이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공동연구 및 기술개발을 통해 사업화하는 ‘G-밸리 연구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브라피쉬 중개의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안산사이언스밸리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고대안산병원.

    제브라피쉬 중개의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안산사이언스밸리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고대안산병원.

    안산병원 또한 산업단지 및 정부출연연이 밀집한 지역 특성에 맞춰 연구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코호트 데이터를 보유한 인간유전체연구소와 제브라피쉬 중개의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안산사이언스밸리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안산시와 더불어 지역 클러스터 기반의 민관협동 헬스케어 R&D 플랫폼을 구축하고 ‘연구혁신병원’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대 세종캠퍼스 과학기술대 및 약대와 충북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연구자 등과 함께 ‘오송-세종-안산’을 아우르는 가칭 ‘오세안 보건의료기술(HT) 광역 클러스터’ 구축도 추진 중이다.

    이처럼 고대 안암·구로·안산 병원을 중심으로 한 연구클러스터가 활성화하면 우리나라 미래 의료는 한 단계 성장할 전망이다. 고대의료원은 미래 비전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의무부총장 직속의 기금사업본부도 신설한다. 사회 각층의 유력 인사들을 중심으로 의료원 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부문화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만나게 될 병원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대의료원이 주도해 개발 중인 ‘클라우드형 공유 병원정보시스템’이 상용화되면, 환자는 어떤 병원에 가든 본인의 의료 기록, 유전체, 그리고 라이프로그(생활습관 데이터)가 반영된 개인 맞춤형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AI 기반 신약 설계, 체액생검, 유전자 가위, 3차원 장기 프린팅, 착용형 소프트로봇 등 고대의료원이 선정한 ‘미래의학 10대 선도 기술’도 미래 의료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을 게 분명하다.

    의대 90주년을 계기로 ‘미래 병원’을 향해 힘찬 도약을 시작한 고대의료원이 ‘미래의학, 우리가 만들고 세계가 누린다’는 비전을 머잖아 실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1 / 암 정밀 진단·치료Cancer Precision Medicine
    김열홍 고려대 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 “암 정밀의료 서비스로 맞춤형 치료 길 연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과거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질병 치료 기술과 신약 발전 속도가 눈부시다. ‘암에 걸리면 곧 죽는다’는 인식도 점점 바뀌고 있다. 2017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1~2015년 사이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7%다.

    이 기간을 더욱 늘리고 나아가 암 자체를 ‘정복’하는 데 정부가 팔을 걷어 붙였다. 2017년 6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 주관해 개인 맞춤의료 실현과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정밀의료 사업단’을 출범한 것. 사업단은 세부적으로 ‘정밀의료 기반 암 진단·치료법 개발 사업단(K-MASTER 사업단)’과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P-HIS) 개발 사업단’으로 나뉘며, 두 개 사업을 진행할 의료기관으로 고대의료원이 선정됐다. 김열홍 고려대 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이 중 K-MASTER 사업단장과 총사업단장을 겸하고 있다. 난치암 환자 유전변이에 맞춘 표적 치료제 개발을 추진하는 게 그의 임무다.

    김 교수는 고대의료원이 국가프로젝트 수행 기관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2001년부터 보건복지부 지정 폐암, 유방암 및 난소암 유전체연구센터 사업을 10년간 진행하며 암유전체 연구에 집중해왔다. 또 연구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연구 인력을 꾸준히 관리해 임상시험, 유전체, 암 관련 분야에서 대내외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평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정밀의료는 유전체 정보와 생활환경, 습관 정보 등을 토대로 좀 더 정밀하게 환자를 분류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는 치료법을 제공하는 차세대 의료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의료기술과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관련 연구가 특히 암 분야에 집중되는 이유는 다른 만성질환과 구별되는 암만의 특수성에 있다. 김 교수는 “암은 고혈압, 당뇨, 치매 등과 달리 종양 조직을 떼어내 분석하면 유전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암 분야 연구를 통해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제를 찾아낸다면 향후에는 좀 더 복잡한 질병에 대해서도 비슷한 연구를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전국 환자 동일 의료 서비스 제공 플랫폼 구축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김 교수는 “암 정밀의료는 암세포의 변이를 찾아내 표적치료를 하는 의료 서비스”라며 “우리 사업단은 세포 변이(타깃)를 찾아내 타깃을 억제할 약물을 찾고, 그 약물을 임상시험해 환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정밀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것은 똑같은 약이라도 환자에 따라 반응과 치료 결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항암 치료의 경우 제대로 효과를 보는 환자는 25%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75%는 큰 효과가 없는데도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항암 치료를 받는 게 현실이다.

    김 교수는 “K-MASTER 사업단은 전국 각지에 있는 모든 환자가 자기한테 맞는 표적치료제를 빠르고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돕고,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협력해 임상시험 중인 약제를 환자와 연결하는 일을 수행할 것”이라며 “이 사업이 성공하면 지방에 사는 환자가 굳이 서울 의료기관을 찾지 않아도 동일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이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는 지방 암 환자가 거주지 근처 중소병원에서 진단 및 치료를 받는 것과 서울 대학병원에서 받는 것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려면 유전자 변이검사를 해야 하는데, 소요시간이 길고 높은 수준의 기술력도 필요하다는 것. 김 교수는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우리 사업단은 기존 검사 패널의 장점만을 모아 새로운 NGS(차세대 염기서열분석) 패널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유전체 검사를 과거보다 좀 더 빠르고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NGS 패널 최적화 및 액체생검 플랫폼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국적 제약사와 협력해 지방 중소병원에서 치료받는 암 환자도 자기에게 적합한 항암제 임상시험에 참여할 길도 열어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전국 암 환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잘 맞는 표적치료제를 구할 수 있게 하려면 전국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지난 1년 6개월간 이 작업에 역점을 뒀다. 그 결과 전국 49개 병원에 연결망이 구축됐고, 해당 병원에서 진행하는 환자 임상시험과 유전체 분석에 대한 데이터가 한곳에 집적되고 있다.

    K-MASTER 사업단은 이렇게 수집한 유전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알맞은 치료법을 제시하고, 환자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임상시험에 참여할 기회도 제공한다. 2018년 11월 말 현재 1850명이 정밀의료를 기반으로 한 임상시험에 참가했다. K-MASTER 사업단은 임상시험 참여자 수를 향후 5년 동안 1만 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맞춤형 의료기술의 미래

    정밀의료가 발전하면 암환자 생존율이 높아지고, 암 치료 부작용이 줄어들며, 사회적 의료비 또한 감소한다. 결과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편익이 커진다. 김 교수는 “암 정밀의료를 통해 모든 암 환자가 완치될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암 환자가 독성 심하고 자신에게 효과도 없는 항암제를 맞으면서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줄어든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K-MASTER 사업단은 2019년 암 유전체 프로파일링 2000여 건을 추가로 수집하는 게 목표다. 이렇게 되면 관련 데이터는 4000건 이상으로 늘어난다. 김 교수는 “K-MASTER 사업단의 공식 사업기간이 끝난 후에도 5만 명, 10만 명 이상의 빅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국내뿐 아니라 외국 제약 회사도 관심을 갖게 되고 사업이 다각도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우리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와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연구진이 환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찾고, 우리나라 바이오 헬스 기업들이 차세대 먹거리를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 프로젝트가 환자에게 희망을 전해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의사로서 가장 큰 기쁨은 내가 치료하는 환자 예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서 앞으로 환자 생존율, 치료율을 높일 수 있게 되면, 환자들이 희망과 의지를 갖고 치료받을 것으로 믿습니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2 / 클라우드형 공유 병원정보시스템
    Cloud-Hospital Information System
    이상헌 고려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의료정보 공유로 맞춤형 치료법 도출”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미래 의료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다. 개인 유전체, 임상정보, 생활환경 및 습관 정보 등을 토대로 환자에게 맞춤형 예방·진단·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밀의료는 정부가 2016년 발표한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에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인공지능 등과 함께 포함됐다. 

    우리나라 정밀의료 프로젝트는 2개 사업단(정밀의료 기반 암 진단·치료법 개발 사업단(K-MASTER 사업단),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P-HIS) 개발 사업단)이 주도한다. 이상헌 고려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는 이 중 P-HIS 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P-HIS의 P는 Post(차세대), Precision(정밀), Personalized(개인화)를 의미하며, HIS는 ‘병원정보시스템’의 약자다.

    맞춤형 치료 가능하게 하는 빅데이터

    이 교수에 따르면 정밀의료의 기본은 빅데이터다. 환자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있어야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따라서 해당 정보에 빠르고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면 전국 어느 의료기관에서든 환자 편익이 더욱 커진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개별 의료기관이 환자 진료를 위한 프로그램(병원정보시스템)을 따로 사용하고, 서로 다른 형식의 환자 정보를 자체적으로 보관했다. P-HIS 사업단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의료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수 있는 표준화된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SW) 인프라 조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각 병원이 의료 정보를 교류·활용하고 어느 의료기관에서나 환자 정보에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클라우드 기반의 P-HIS를 구현하고, 이를 실시한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미 미국 영국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정밀의료를 핵심 미래사업으로 생각하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P-HIS 사업단이 관련 프로젝트를 주도한다”며 “클라우드형 공유 HIS가 완성되면 환자 맞춤형 진단·치료를 통해 국민건강수명을 연장하고, 의료비 등 사회 비용을 줄이며, 나아가 관련 기술을 선도해 세계 정밀의료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활의학 분야 전문가로 수술 없이 허리 디스크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개발해 국내외 특허를 받은 이 교수는 P-HIS가 질병의 예방·진단·치료뿐 아니라 ‘환자 맞춤형 재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사업에는 주관기관인 고대의료원 외에도 삼성서울병원, 아주대의료원 등 국내 주요 병원과 삼성SDS 등 관련 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다. 이 교수는 “병원과 기업이 정밀의료 구현을 목표로 각자 역할에 충실하면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구축된다”며 “P-HIS를 완성하면 2019년 고대의료원을 시작으로 컨소시엄에 참여한 의료기관에 적용한 후 전국 1·2·3차 병원으로 확대 적용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도 도모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P-HIS가 상용화하면 환자의 식생활, 생활방식, 운동량, 음주 습관 등에 맞춰 지금보다 훨씬 정밀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전국 모든 국민이 동일한 수준의 의료 혜택을 제공받게 되는 것도 장점이다. 미래에는 고위험군 환자를 찾아내 질병을 예방하는 조치도 취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 교수는 “P-HIS를 통해 우리나라의 정밀의료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면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개발한 의료 시스템 솔루션이 해외로 진출하는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세계로 뻗어갈 대한민국 솔루션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P-HIS가 상용화하려면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현대 의학은 자기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한 분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서 발전했다. 환자 의료정보 제공은 오늘날의 시신 기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디지털 아바타’ 기증”이라며 “의학기술이 지금보다 한 단계 발전하려면 환자 임상정보에 더해 유전체, 식생활, 생활방식 등 다양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특히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희귀난치질환자들이 관련 정보를 연구진에 제공하면 후손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의료정보 제공을 꺼리는 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들은 현대 과학기술을 활용해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P-HIS도 그 일환이다. P-HIS가 상용화하고 더 많은 의료정보가 축적, 활용되면 미래 의료는 더욱 크게 발전할 것인 만큼, 더 많은 환자가 의료정보 제공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3 / AI 기반 신약 설계 AI-based Drug Design
    최준 고려대 의대 이비인후과학교실 교수 “질병 치료제 개발의 획기적인 전환점”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기존 제품보다 효과가 뛰어난 약, 후유증 없는 중증 질환 치료제, 수요는 많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치료제 등에 대한 갈망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약 1만 개의 후보물질 탐색이 필요하다. 이 중 200~300개의 후보물질을 1차적으로 선별, 세포나 동물을 이용한 전임상시험 단계도 거쳐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최종 임상시험까지 끝나야 최종 치료제 형태로 개발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10~15년, 비용은 1조 원이 넘는다. 이토록 막대한 시간과 비용은 대부분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데 소요된다.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을 이용한 신약 개발이 현재 의·공학계 전반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방대한 양의 계산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AI를 활용하면 신약 개발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국가 지정 연구중심병원인 고대의료원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최준 고려대 의대 이비인후과학교실 교수(고려대 안산병원 이비인후과전문의)는 이상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와 함께 귀 질환 치료제 후보약물 탐색 시스템을 개발한 인물이다. 두 교수는 공동 연구를 통해 효율적인 신약 개발을 위한 계산 모형과 플랫폼을 구축했다.

    “신약 개발은 모든 질병 연구자의 관심사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이비인후과 임상의이기 때문에 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직접 만나면서 치료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치료기법이나 약을 개발하려면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테스트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죠. AI 솔루션이나 공학 기법을 다루는 전문가들과 공동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는 건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AI 활용해 효율적 연구 진행

    최 교수 얘기다. 그가 이 교수와 함께 진행하는 ‘뉴턴-집단연구’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최 교수 연구팀이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청각이상과 어지럼증에 대한 연구다. 연구진은 문헌 연구를 통해 해당 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과를 보인 후보물질 4000여 개 중 400여 개를 선별했다. 그다음 자체 계산 모형을 통해 60개 물질로 후보군을 좁혔다. 이 과정에서 AI 기반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을 활용했다. 최 교수는 “세계 각국 논문과 임상 정보 빅데이터를 분석할 때 AI가 큰 도움이 됐다. 사람이 실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횟수의 연구를 단시간에 진행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AI를 통해 치료제 후보물질을 추려낸 뒤엔 제브라피시(zebrafish) 행동 패턴 분석 기법을 통해 치료 예후와 효과를 예측했다. 제브라피시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열대어로, 성장 속도가 빠르고 개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제브라피시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널리 이뤄지고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제브라피시는 유전자를 변형해 특정 장기에서 선택적으로 형광물질을 발현하도록 만드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고대의료원에서는 귀 질환뿐 아니라 심장, 간, 피부, 신경계, 안과, 신장 등 다양한 분야 치료 물질을 발견하는 데 제브라피시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래 의학 핵심은 확장과 융합”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최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고려대 안산병원 ‘제브라피쉬 중개의학연구소’(2018년 11월 현재 준연구소로 운영 중이며 2019년 연구소로 재편할 예정이다)가 그 중심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임상의사와 기초연구자들이 제브라피시를 활용한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소 이름 중 ‘중개의학’이 바로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의 간격을 줄이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를 일컫는 말이다.

    최 교수는 “우리 연구진은 다양한 자극원을 이용해 제브라피시 측선과 내이 손상을 유발한다. 그러면 소리에 대한 반응이 떨어지고, 평형기능을 상실해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린다. 이때 치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물질을 주입해 트레이닝하고, 같은 실험을 반복한다. 이런 방식으로 신약 최종 후보물질을 찾아내면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안전한 임상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물속에서 제브라피시의 미세한 움직임과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하는 건 공학의 영역이다. 이 때문에 공학자들은 AI 신약 설계에서 의학자와 더불어 한 축을 담당한다. 확장과 융합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AI를 기반으로 한 신약 설계 및 개발은 그 자체로 미래 의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 교수를 중심으로 한 고려대 연구진의 AI 기반 신약 설계 프로젝트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4 / 체액생검 Liquid Biopsy
    고선영 고려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혈액 검사로 암 찾는다”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2018년 1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혈액으로 8가지 암을 동시에 진단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혈액 검사로 난소암, 간암, 위암, 췌장암, 식도암, 대장암, 폐암, 유방암을 한꺼번에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후 암 환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난소암과 간암 진단은 정확도가 98%에 달했다. 위암, 췌장암, 식도암 진단 정확도는 70%를 웃돌았다. 의료계는 혈액 등 체액을 이용해 암을 진단하는 ‘체액생검’이 머잖아 더욱 정교해지고, 대중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널리 쓰이는 암 진단 방식은 조직생검이다.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에서 조직을 떼어낸 뒤 분석하는 기술로 정확도가 높은 반면 불편한 점도 적잖다. 고선영 고려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조직생검을 하려면 미세침주사나 개복 수술 등을 통해 조직을 획득해야 한다. 그 과정이 위험하고 환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어 검체를 자주 얻기 어렵다. 암을 조기에 진단하거나 암 재발 여부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기에도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검체 채취 안 하고 암 전이 모니터링 가능

    체액생검은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할 대안으로 꼽힌다. 혈액 등 체액은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검사로 암을 찾아낼 수 있다면 항암제 치료 도중 치료 효과를 평가하고, 약을 계속 사용할지 바꿀지 결정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암수술이나 방사선치료 후 종양 크기가 작아져 조직생검을 받기 어려운 환자, 암치료 도중 쇠약해졌거나 뇌종양 등으로 검체 채취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자 등도 지금보다 좀 더 쉽게 자기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암은 조기 진단하면 치료 확률이 높아진다. 자각증상이 없는 암의 경우 환자들이 암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발병 사실을 몰라 치료 시기를 놓치곤 하는데, 체액생검이 일반화되면 더 많은 환자가 좀 더 쉽고 빠르게 암을 진단받고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혈액 속에서 어떻게 암을 찾아내는 걸까. 고 교수는 체액생검을 가능하게 하는 바이오마커로 순환종양세포(CTC·Circulating Tumor Cell)와 순환종양DNA(ctDNA·cell-free tumor DNA)를 소개했다. 암 환자의 혈액 속에는 종양에서 흘러나와 체내를 떠돌아다니는 종양세포, 즉 CTC가 있다. 혈액 속에서 이 세포를 찾아낼 수 있다면 암 진단이 가능한 셈이다.

    ctDNA도 마찬가지다. 인체 혈류 안에는 장기에서 떨어져 나온 DNA 조각이 무수히 떠돌아다닌다. 그중에서 암세포에서 유래한 DNA 조각, 즉 ctDNA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고 교수는 “현재까지 암 진단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조직생검이다. 체액생검의 경우 검사 결과가 조직생검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없고, 공인된 도구(키트)도 많지 않다. 그러나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정규 검사로 인정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혈액 넘어 소변, 타액까지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현재는 암수술을 받았거나 항암치료를 한 환자의 예후 관찰, 재발 방지 모니터링에 사용하는 게 적절하지만, 추후 좀 더 많은 영역에서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 교수가 밝힌 체액생검의 가장 큰 장점은 ‘비침습성 검사’라는 점이다. 그는 “안전하고 빠르며 자주 시행할 수 있어 암뿐 아니라 다양한 질병 진단과 변이 추적에 유용하다. 가까운 미래에 태아 체액생검을 통해 출생 전 질병을 미리 진단하고 예방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대의료원은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진행하는 ‘융복합 신개발 의료기기 제품화 지원을 위한 안전성·성능 평가기술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고 교수는 이때 혈액에서 채취한 암 유전자를 이용한 동반진단 의료기기의 유효성을 확증하기 위한 임상시험 프로토콜 작성 가이드라인 개발에 참여했다고 한다. 고 교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폐암 중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혈액으로 체액생검을 실시해 항암제 감수성 예측 변이를 검출하는 키트의 유효성을 평가하고, 의료기기 허가를 위한 확증적 임상시험 프로토콜 개발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은 앞다퉈 체액생검 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고 교수는 “처음에는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가 주로 진행됐는데, 최근에는 적용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장기이식 환자의 소변 검체에서 기증자의 세포를 검출해 거부반응을 예측하려는 연구도 있다”고 소개했다. 머잖아 혈액, 소변, 타액 등 체액을 이용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이 개발될지 지켜볼 일이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5 /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김희남 고려대 의대 교수“장내 미생물을 통해 병의 진짜 근원을 찾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1990년대 중반 ‘인간의 모든 유전자와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완벽히 읽어내겠다’며 시작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첫발을 뗐을 때 인류는 질병과의 지난한 싸움이 곧 끝날 것처럼 들떴다. 하지만 아쉽게도 30억 쌍에 달하는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에서 우리가 찾은 해답은 많지 않았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대체할 또 다른 질병 연구가 절실해진 이유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의 합성어로, 주로 장내 미생물을 가리킨다. 인간 몸속에 공존하는 수많은 미생물의 유전 정보 전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체내 미생물이 인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은 가장 유력한 세컨드 게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희남 고려대 의대 교수팀은 2016년 장내 미생물로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유발되는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주목받았다.


    세컨드 게놈,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염색체의 유전 정보(chromosomal genome)에서 모든 질환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휴먼 게놈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모든 시퀀스를 분석하고 그 속에 질병을 대입해봤는데도 우리가 원한 답을 찾기 어려웠어요. 의학계는 우리가 그동안 ‘잘못된 게놈(wrong genome)’을 연구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연구 대상을 찾았죠. 그것이 바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입니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 앓는 수많은 질병 원인이 미생물이라는 사실은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 밝혀졌다. 이후 1928년 ‘기적의 약물’로 불리는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탄생했다. 유해 미생물(세균)에 의해 감염 질병이 시작된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이후 수많은 항생제가 개발됐다. 인류는 오랫동안 미생물을 ‘죽이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진행되면서 큰 변화를 맞는다. 인간 몸, 그중에서도 장(腸)은 미생물로 이뤄진 거대한 생태계이며, 이를 어떻게 건강하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의 핵심 개념은 공생 미생물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과 미생물은 공생 관계로 ‘미생물을 뺀 인간은 완전체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교수는 “신체 장기에 탈이 나면 병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 몸속 미생물한테 문제가 발생하면 생리현상 장애, 각종 질환이 유발된다. 그것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관점”이라고 밝혔다.

    미생물은 신체 모든 기관에 있다. 그중에서도 의학계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장내 미생물이다. 거의 모든 질병이 장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벽은 유해물질과 인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구실을 한다. 이 벽에 누수가 발생하면 그 틈을 통해 각종 유해물질이 체내에 유입돼 염증을 일으킨다. 장내 미생물은 이러한 누수를 막아 건강 유지를 돕는 구실을 한다.

    김 교수는 “장벽 기능(gut barrier function)이 무너지면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논문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성장 환경, 식이습관, 유전질환, 생활습관, 항생제 남용 등에 따라 개인마다 나타나는 질병이 다르지만 근본 원인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게 바로 장벽 누수”라고 강조했다.

    인간을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 중 김 교수 연구팀이 먼저 주목한 건 아토피 피부염이다. 그의 연구팀은 2016년 장내 미생물 패칼리박테리움 프라우스니치균(Faecalibacterium prausnitzii)과 대표적인 면역질환인 아토피 피부염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혀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생활습관 등 외부 요인에 거의 차이가 없는 아기들이 오직 내부, 즉 장내 미생물의 영향만으로 아토피 피부염을 앓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질병 진단 및 치료의 새로운 지평

    김 교수팀 연구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패칼리박테리움 프라우스니치균이 장내 미생물 중에서도 대장 격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미생물의 아종 또는 변종이 장벽 기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이 미생물을 잘 관리할 경우 수많은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 연구팀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낸 뒤 고려대는 우리나라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후속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면 장내 미생물 불균형 정도를 파악해 병의 원인이나 중증도를 확인하고, 타깃치료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그때는 아토피 피부염을 넘어 각종 대사질환, 면역질환은 물론 암까지 예방 및 치료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6 / 유전자 가위 Genome Editing
    김경미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난치병, 불치병 환자의 새로운 희망”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1932년 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를 보자. 인공 자궁을 통해 사람이 태어난다. 유전자 조작을 거쳐 잉태된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계급과 지위, 직업이 결정된다. 이 이야기가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미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맞춤형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가위’는 그 핵심 도구다. 

    유전자 가위는 DNA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혁신적인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의미한다. 2012년 미국 UC버클리 연구팀이 크리스퍼 카스나인(CRISPR/Cas9)이라는 효소를 이용해 염기서열 일부를 잘라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후 본격적인 3세대 유전자 가위 시대가 열렸다.

    유전질환,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하면 문서를 편집할 때처럼 잘못된 유전자를 잘라내고 바람직한 유전자로 새로 바꿀 수 있다. 동시에 여러 군데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과거에도 유전자 가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1, 2세대 기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면서, 정밀성과 신속성, 습득 용이함 등까지 갖추고 있어 세계 각국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김경미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는 “유전자 가위 연구가 더 진행되면 미래에는 난치병이 발현하기 전 유전적 위험을 파악하고 문제 유전자를 정상 상태로 ‘편집’함으로써 원천적으로 난치병을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현재는 유전자 가위를 통해 어떤 치료가 가능할까. 2015년 국내 연구팀은 피가 잘 멎지 않는 혈우병 환자의 세포를 이용해 역분화줄기세포를 만든 뒤, 혈우병 돌이변이를 교정해 혈액 응고 인자를 만드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혈우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교정했다. 이 연구를 통해 유전자 교정을 통한 혈우병 치료 가능성이 입증됐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불치병으로 알려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이즈) 치료에 진일보한 성과를 낸 학자들도 있다. 201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팀이 에이즈 바이러스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환자의 유전자를 조작한 것. 그 효과가 항구적이진 않았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한 HIV 감염자 12명 가운데 6명은 3개월간 항바이러스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의료진은 HIV에 모태 감염된 영아를 생후 4시간 만에 조기 치료하는 데 성공한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임상시험 결과는 세계 의학계뿐 아니라 에이즈 환자 커뮤니티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미국에서는 2017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암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시험도 허가됐다.

    2017년 한국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실험용 동물 눈에 직접 주입해 노인성 황반변성 질환을 수술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김 교수는 바로 이 연구에 참여한 학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수술법은 간이나 근육 등 다른 장기에도 적용할 수 있어 앞으로 다양한 전신질환 치료에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맞춤형 아기’ 탄생 위험성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하지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상용화되려면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맞춤형 아기’ 탄생 등에 대한 윤리 논란이다. 2015년 중국 연구팀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한 인간 배아의 유전체 편집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2016년에는 영국에서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 연구를 승인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에는 한 중국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 과학자는 국제 학술대회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배아에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함으로써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아기가 태어나게 했다”고 밝혔다.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연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뛰어난 지능과 훌륭한 체격 및 외모 등 이른바 ‘우월한’ 속성만을 인위적으로 선택해 만들어내는 ‘맞춤형 아기’ 혹은 ‘디자이너 베이비’가 탄생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내 연구진은 이미 세계 최고의 유전자 가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생명윤리법 등의 영향으로 배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가위 임상연구가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과거 시험관 아기 시술이 개발됐을 때도 윤리적 논란이 많았다. 관련 우려를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2017년 세계 주요 선진국이 모여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교정 기술’을 난치병 치료 및 배아 연구에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유전자 가위 기술로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7 / 페이션트 온 어 칩 Patient-on-a-chip
    선웅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환자 장기 모사로 최적의 치료 전략 수립”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내 아바타 장기를 이용해 나를 위한 치료약을 찾아낸다?!

    SF 영화에서 볼 법한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삶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이야기다. 기술 이름은 ‘Organ-on-a-chip’(장기 칩)으로, 미세 칩 위에 인간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장기 구조와 기능을 모사하는 기술이다.

    일명 ‘아바타 칩’이라고도 한다. 나의 특정 장기를 대신하는 ‘아바타’를 이용해 여러 가지 약물에 대한 효능을 분석하고 약물 독성 및 부작용, 대사 분석 등도 해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보통 임상시험은 동물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그러나 동물실험은 많은 돈과 시간이 소요되고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있다. 게다가 ‘동물과 사람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문제도 있다. 동물 실험에서는 아무 이상 없던 약물이 인체 적용 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가 적잖다. 과학계는 그동안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Organ-on-a-chip’은 그 결과물이다. 이미 간, 폐, 장, 신경계, 이자, 콩팥, 피부 등을 모사한 칩이 개발됐고, 그중 피부 칩은 상용화돼 화장품 개발 시 필요한 독성 검사 단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최근 미국 MIT대 등 세계 각지 연구진은 부위별로 나눠진 장기 칩을 하나로 연결한 이른바 ‘Human-on-a-chip’을 만들려는 시도 또한 진행 중이다.

    우리 몸은 여러 장기의 결합체다. 장기들은 체내에서 저마다 영향을 주고받는다. ‘Human-on-a-chip’이 개발되면 바로 이 부분까지 실험실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상대적으로 인체 구조 및 기능과 유사도가 높고 대량 생산 및 자동화 공정 등에 접목하기 유리해 산업화로 이어지기 쉬운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기술 개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고려대 의대에서는 선웅 해부학교실 교수와 박용두 의공학교실 교수, 금동호 의과학과 교수 등이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정석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 남윤기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조일주 KIST 박사 연구팀 등 외부 연구진과 협력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래 의학 솔루션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이 외에도 임도선 고려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 이경미 고려대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 등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연구개발을 진행 중인 연구진이 많다. 고대의료원은 이들을 활용해 환자 각각의 장기를 모사하는 Patient-on-a-chip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분야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고대의료원에 따르면 사람이 보유한 장기는 유한하고, 각자 체질에도 차이가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약물 임상 모니터링에는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장기 세포를 추출해 반도체 제조 공정과 결합해 배양하는 Organ-on-a-chip은 대량 생산이 가능해 다양한 임상시험에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약물 반응과 흡수율의 표준을 산출하면 질병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Patient-on-a-chip은 Organic-on-a-chip에 환자의 질병 세포를 이식한 장치다. 이렇게 만든 칩으로 약물 반응을 테스트하면 개인별 맞춤형 치료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작은 칩이 기존 의료의 한계를 극복하는 ‘미래 의학의 솔루션’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선웅 교수 연구팀은 2016년 미세패턴 뉴런칩 개발에 성공해 과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이 뉴런칩을 활용하면 신경세포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연구하고, 신경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 효능을 대량으로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선 교수는 “현재의 Organ-on-a-chip 기술은 세포를 배양하는 칩 시스템을 개발하는 쪽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개인 맞춤형 치료를 위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는 추세를 볼 때 조만간 환자 각각의 장기를 모사하는 Patient-on-a-chip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학과 공학, 고대와 외부 연구진의 융합 시너지

    Organic-on-a-chip 연구 발전에 현실적 장애가 없진 않다. 우리나라는 학문 분야 간 장벽이 높은 편이다. 의생명공학 관련 학과도 많지 않아 대부분 공대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선 교수는 “고려대에는 융합연구를 위한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고대의료원은 환자 의료정보를 확보하고 소중히 다루는 데 노하우를 갖고 있다. 기존에 개발된 Organ-on-a-chip 기술을 Patient-on-a-chip 기술로 ‘업그레이드’ 하고, 임상과 접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데 강점이 있다”고 자부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대의료원은 국내외 많은 연구자와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고대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겠다는 것. 이를 위해 KU-KIST 공동연구, 의대·공대·정보과학대 네트워크 연구사업, 해외 유수대학과의 공동연구 프로그램 등을 추진 중이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8 / 3차원 장기 프린팅3D Organ Printing
    김상대 고려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교수“3D 장기 프린팅을 넘어 4D로”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 2025년 고대의료원 진료실 풍경

    “몸에 심어둔 얇고 긴 관이 스스로 얼마나 자랐는지 볼까? 네 키 성장에 맞춰 5㎝가 자랐네.”

    의사 선생님 말에 동현이가 활짝 웃었다. 아이는 5년 전 뇌에 물이 차는 수두증 치료 수술을 받았다. 머리부터 배까지 관을 연결해 뇌척수액이 소변으로 빠지게 만드는 수술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두증 수술에는 실리콘 관을 이용했다. 아이가 해마다 성장하는 데 반해 실리콘 관이 길어지지 않는 게 문제였다. 성장을 예측해 매우 긴 관을 몸에 넣거나 성장 상황에 맞게 재수술을 해야 했다. 동현이는 ‘혁신적인 4D(4차원) 장기 프린팅 기술’의 혜택을 받았다. 의료진이 동현이 키 성장에 맞게 스스로 자라도록 설정한 4D 관을 삽입한 덕에, 동현이가 5cm 자라는 사이 배수관도 딱 5cm가 자랐다. 이 관은 동현이 몸 세포에서 떼어낸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해 ‘출력’한 것이다.


    마술 같은 미래 기술

    서두의 이야기 같은 상황이 머잖아 현실로 이뤄질까. 분명한 건 헬스케어 분야에서 3D(3차원) 프린팅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 환자 신체 구조를 파악한 뒤 맞춤형 의수·의족뿐 아니라 귀·코·눈·두개골 등까지 출력해 이식하는 기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고대안산병원 신경외과가 머리뼈가 없는 사람에게 3D 프린터로 출력한 인조합금 두개골을 이식해준 사례도 2015년 이후 40건이 넘는다. 과거에는 결손 부위를 플라스틱 재질의 골 시멘트로 메웠다. 수술 의사가 두개골 형태를 10분 안에 만들지 못하면 시멘트가 굳어 변형이 불가능했다.

    의료 현장에 3D 프린팅 기술이 도입되면서 보철물 제작에 필요한 비용과 기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의수의 경우 과거엔 미국에 주문해 일주일~한 달씩 기다리기 일쑤였다. 비용도 5000~5만 달러에 달했다. 이제는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몇백 달러 수준의 의수를 주문 후 하루 만에 받을 수 있다.

    환자 세포를 잉크로 활용해 생체조직을 인쇄하는 3D 장기 프린팅 기술도 개발돼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과거엔 인체에 필요한 조직을 티타늄이나 폴리머 등으로 만들었다. 바이오 잉크를 이용한 장기 프린팅은 이에 비해 감염이나 이물감 등의 문제 발생 소지가 적다.

    미국 생명공학회사 오가노보는 수만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바이오 잉크를 원하는 모양으로 적층하는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인공 간(肝)을 만들었다. 화장품 업체 로레알은 오가노보와 협업해 인공 피부 세포 조직을 개발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연구진은 코·귀·무릎 등에 쓸 수 있는 생체 연골을 만들었다. 중국 바이오프린팅 업체 레보텍은 인공 혈관을 만들어 원숭이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 또한 외형과 기능이 실제 혈관과 거의 유사한 혈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최근 영국 뉴캐슬대 연구진은 사람의 각막을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해 주목받았다. 이처럼 장기의 3D 프린팅 기술이 속속 개발됨에 따라, 이제는 장기 공여자를 기다릴 필요 없이 자신에게 적합한 인공장기를 공산품처럼 구매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완벽한 프린터 잉크를 찾아라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아직 기술적 한계는 있다. 인공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해 거부반응 없이 생착시키려면 좀 더 완벽한 프린터 잉크가 필요하다. 김상대 고려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교수(고대안산병원 신경외과 전문의)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한 3D 장기 프린팅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피부와 같은 체세포에 외래 유전자나 특정 단백질을 가해 줄기세포의 성질을 갖도록 유도한 세포다. 배아줄기세포처럼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고, 분열 능력에 한계가 없다. 난자를 이용하지 않아 윤리적 논란도 피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 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장은아 교수 등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줄기세포를 이용한 3D 장기 프린팅 기술을 더 발전시켜, 출력한 인체기관이 특정 조건에서 저절로 변하도록 하는 4D 프린팅 기술 개발도 시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기술이 개발되면 손가락이 잘려 없어진 어린이에게 스스로 자라는 손가락을 출력해 거부반응 없이 붙일 수 있다.

    3D는 평면 X축과 Y축에 Z축을 더해 3차원 입체 효과를 얻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비행·이동 등 움직임을 더해 자기 조립이 가능하도록 만든 게 4D다. 처음 구조물을 출력할 때 ‘물에 닿으면 저절로 오그라든다’ 등의 조건을 입력하면 된다. 김 교수는 “관련 기술이 개발되면 그동안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 영역까지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9 / 착용형 소프트 로봇 Wearable Soft Robot
    김승종 고려대 의대 의공학교실 교수 “로봇 기술, 고령화 시대 쓰임새 더욱 커질 것”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김승종 교수는 서울대와 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자다. 2010년 개발한 ‘얼굴로봇’으로 세계적 화제를 모았다. 사람 표정을 읽고 감정을 파악하며 대화를 나누는 이 로봇은 그해 미국 ‘TIME’지가 선정한 세계 50대 발명품에 들었다.

    이후에도 김 교수는 하지 마비 환자의 보행 재활을 돕는 로봇 ‘COWALK’를 개발하는 등 사람과 함께하는 로봇 연구에 매진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단장으로 일하며 100명 이상의 연구원을 이끌었다. 그가 2018년 3월 고대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많은 이가 “대체 왜?” 하고 물었다.

    김 교수는 “원래 산업기계를 만들다 의공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재활로봇 개발을 시작했다. 그런데 공학자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창안해도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더라. KIST에 다닐 때부터 가까이 있는 고대의료원과 교류하면서 과학기술의 실제적 사용에 대해 모색했다. 그러던 중 고대의료원의 부임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때 김 교수 마음을 움직인 건 “미래 의학을 선도하려면 병상 수보다 ‘의료 기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고대의료원 경영진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뜻에 공감했고, 고대의료원에서 “공학자와 의사, 과학계와 의료계를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교수는 “융합연구 활성화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고대의료원 미래전략의 상징적 인물이 된 셈이다.


    사람 가까이에 있는 로봇

    김 교수는 “과거 로봇은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하는 기계 장치를 의미했다. 주로 산업 현장에서 쓰였다. 그러나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로봇 개념이 바뀌었다. 수술로봇처럼 사람과 협업하는 로봇이 개발됐고,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로봇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로봇 기술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미래지향적 융합 기술의 총체다. 의사와 과학자가 협업하면 이 분야에서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김 교수가 KIST 시절 개발한 ‘COWALK’는 하반신 마비 환자가 양쪽 다리 옆에 착용하면 고관절과 무릎, 발목 등을 움직여 보행이 가능하도록 돕는 장치다. 환자 상태에 따라 적절한 강도와 훈련 패턴을 조절하는 맞춤형 훈련이 가능해 주목받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처럼 인간 근육과 신경을 감지해 반응하는 로봇기술이 최근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로봇이 뇌파를 인식해 사용자의 의도대로 정밀한 움직임을 수행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골든타임 내 재활치료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김 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로봇의 쓰임새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람과 소통하는 서비스 로봇과 더불어 착용형 소프트 로봇 수요 또한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중년 이후 가장 두려운 병은 뇌졸중이다. 어느날 갑자기 한 사람의 모든 과거를 지우고 사회, 가족과 단절시킨다. 심각한 후유장애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뇌졸중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골든타임’ 내 적절한 처치를 해야 목숨을 구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라고 한다. 뇌졸중 환자가 마비 등 후유증을 겪지 않고 일상생활로 무리 없이 복귀하려면 ‘골든타임’ 내 재활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재활의학과 의사들은 재활훈련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한다. 만성기에 접어들면 신체 기능이 돌아올 확률이 점점 떨어진다. 현재 관련 인프라 부족으로 재활 시기를 놓쳐 장애인이 되는 환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최근 재활로봇이 개발되고 있으나, 대부분 고가이고 무거우며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김 교수는 “착용형 소프트 로봇이 상용화하면 좀 더 간편하게 재활치료가 가능해진다. 치료사는 정서 교감 등을 통해 환자 회복을 돕는 또 다른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제때 재활치료를 받고 집에서도 지속적으로 로봇을 입은 채 일상 훈련을 하면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뇌졸중에서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과학계는 손끝 감각까지 전달하는 의수 등 한 차원 높은 착용형 소프트 로봇도 속속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금은 장애인 또는 환자 대상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머잖아 일반인도 다양한 이유로 로봇을 착용하고 다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의학 선도 기술 10 / 메모리 에디팅 Memory Editing
    한창수 고려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 “초고령 사회 치매 문제 해결할 핵심 기술”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기억을 편집한다? ‘메모리 에디팅’은 기술 이름부터 공상과학영화 느낌을 물씬 풍긴다. 한창수 고려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영화를 통해 이 기술을 소개했다.

    “영화 ‘인셉션’은 타인의 꿈에 들어가 왜곡된 기억을 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안드로이드를 만들 때 인공적인 기억을 주입해 ‘인조인간’이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하죠. 폴 버호벤이 연출한 ‘토탈 리콜’에서는 반란군에 잠입하고자 스스로 기억을 지운 스파이가 나옵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주인공은 실연 후 병원에 찾아가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만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고요.”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정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한 교수는 “신경계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신경회로가 손상되면 기억 저장 및 추출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 이때 뇌 신경계를 모방하는 ‘뉴로모픽 칩’을 이식해 손상된 신경세포를 대체하면 새로운 기억 또는 지식의 생성, 기존 기억 삭제 등이 가능할 수 있다는 연구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초소형 컴퓨터를 뇌에 이식해 기억을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교수에 따르면 메모리 에디팅 기술의 핵심은 뉴로모픽 칩 개발이다. 인간 뇌는 수십억 개의 뉴런과 수조 개의 시냅스를 통해 시각·청각 등 감각 정보에 반응하고 이를 병렬 처리한다. 그 방식을 실리콘 칩 위에 구현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메모리 에디팅 기술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억을 조작하는 건 사람의 정체성을 갖고 장난치는 것과 마찬가지”(아서 카플란 미국 뉴욕대 의료윤리학 교수)라고 비판한다. 반면 한 교수는 “이 기술은 이미 심리학적 상담이나 최면, 정신분석 등의 고전적 방법으로 치료해오던 기억의 상처를 좀 더 잘 치료하기 위해 도입될 수 있다. 전쟁·고문·성폭력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 등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뇌졸중, 간질 환자 치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트라우마 극복, 정신질환 치료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사진 제공·고대의료원]

    관련 기술은 이미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최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뇌에 이식한 전극으로 전기 자극을 줘 환자의 기억력을 30% 이상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미국 UCLA 연구진은 바다달팽이 간의 기억 이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고려대 연구진도 관련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고려대 뇌공학과 신경계산연구실에서는 기억의 중추인 해마 영역 신경세포의 전기생리학적, 신경회로적 특성을 수리적으로 모델링해 해마의 구조와 기능을 컴퓨터에 모사하는 ‘뉴로모픽 기억 저장 해마 모델’을 개발했다.

    한 교수는 “메모리 에디팅 관련 기술이 상용화하려면 10년가량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억을 보조할 수 있는 칩 개발은 보다 빨리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이를 동물과 인간에게 도입해 안정성과 효과를 분석하는 임상연구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 성과를 보면 2020년대 초반에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며 “2050년에는 노인 7명 중 1명이 치매환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메모리 에디팅 기술이 신경 재활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고대의료원은 이미 세계적 규모의 신약 및 의료기기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험이 풍부하다. 의료윤리학을 포함한 인프라 구축도 해놓았다. 의학기술과 공학 발전을 임상현장에서 실현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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