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샌프란시스코 통신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주친 ‘넷플릭스의 시대’

비디오 대여점에 이어 또 사라질 것들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19-01-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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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프란시스코는 영화인이 사랑하는 도시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꾸준히 제작돼 인기를 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또한 영화를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 안에서 해마다 크고 작은 영화제가 40회 가까이 열릴 정도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부상은 이 도시의 영화 감상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샌프란시스코 미션돌로레스 공원 근처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 겸 커피숍 파예즈(Fayes) 외부(위)와 내부 풍경.

    샌프란시스코 미션돌로레스 공원 근처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 겸 커피숍 파예즈(Fayes) 외부(위)와 내부 풍경.

    샌프란시스코는 영화의 도시다. 금문교를 비롯해 차이나타운, 감옥 섬 앨커트래즈 등 아름다운 풍광은 영화 ‘베놈’(2018),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2015),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 ‘고질라’(2014),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015) 등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위키피디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한 영화 80여 편을 정리해놓은 별도 페이지가 있을 정도다.

    또한 샌프란시스코는 영화제의 도시다. 해마다 4월이면 50여 개 국가의 작품 200여 편을 선보이는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SFIFF)가 2주 동안 진행된다. 2019년 4월 62회째를 맞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권위 있는 영화제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연간 40회 가까이 열린다.


    비디오 대여점을 찾아라

    영화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1988년 발행된 전화번호부엔 비디오 대여점 160개 이상의 명단이 있었다. 현지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조사한 내용이다. 영화가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도시 주민들에게 동네 비디오 가게가 사랑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 인구 87만 명의 대도시에 남은 비디오 대여점은 단 두 곳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 곳이 생존해 있었는데 최근 한 곳이 폐업하면서 두 곳으로 줄었다. 영화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보는 대신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관람하는 게 대세가 된 시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업하던 비디오 대여점도 사양길을 피하지 못했다. 단 둘 남은 샌프란시스코의 비디오 대여점은 어떻게 생존하고 있을까.

    피크닉 장소로 인기 있는 시내 중심 미션돌로레스 공원(Mission Dolores Park). 2018년 12월 2일 일요일, 축구장과 테니스장, 농구장이 있는 이 공원에 갔다. 아이 손, 연인 손을 잡고 놀러 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바로 이 공원 근처에 ‘파예즈 비디오(Fayes Video)’가 있다. 두 개 남은 샌프란시스코 비디오 대여점 중 하나다. 그렇게 알고 찾아갔는데 성소수자(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린 상점 간판에는 ‘파예즈 커피’라고 쓰여 있었다. 간판을 바꿨기 때문이다.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매장에 들어서자 손님 6명이 줄을 서 있었다. 기다리는 건 커피였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바로 커피 주문을 받아 커피를 만드는 공간이 있다. 일반 커피, 카페오레, 차이(Chai·차 음료), 핫코코아, 그리고 에스프레스 음료 등을 팔았다. 가격은 다른 커피숍보다 저렴했다.



    커피숍 한구석에 영화, 드라마 비디오 대여 코너가 있다. DVD와 블루레이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0여 장쯤 될까. 한쪽엔 새로 나온 비디오, 다른 한쪽엔 감독별로 정리한 오래된 비디오가 진열돼 있는 게 보였다. 팀 버튼부터 데이비드 린치까지, 한때 좋아했던 감독들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손때 묻은 비디오 케이스만큼 오래된 이름들이었다.


    커피, 책, 기념품 그리고 비디오

    샌프란시스코 비디오 대여점 ‘비디오 웨이브(Video Wave)’ 매장 외부(오른쪽)와 내부. 운영자 콜린 허튼 씨가 손님을 맞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비디오 대여점 ‘비디오 웨이브(Video Wave)’ 매장 외부(오른쪽)와 내부. 운영자 콜린 허튼 씨가 손님을 맞고 있다.

    그쪽에 한 여성이 앉아 있길래 비디오 대여를 담당하는 직원인가 싶어 전부 몇 편이나 진열돼 있는지 물었다. “나는 직원이 아니고 매장 한쪽에 의류를 진열해놓고 파는 상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매장 한구석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장에선 커피 말고도 다양한 상품을 팔고 있었다. 티셔츠, 책, 신문, 기념품, 액세서리 등이 있고, 자체 브랜드의 볶은 원두도 팔았다. 카운터에 가서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비디오가 몇 편이나 있죠?”

    “글쎄, 1만 편 정도 될 겁니다. (진열돼 있는 건 그보다 훨씬 적어 보인다고 했더니) 매장 뒤쪽에 보관해두는 곳이 따로 있어요. 왜 빌리시려고?”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런데 여기는 커피숍인가요 아니면 비디오 대여점인가요?”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해 나중에 커피도 팔기 시작했어요. 비디오 대여로는 먹고살기 힘들게 돼서요. 이젠 커피 파는 게 주업이에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계속 들어오는 손님도 단골 커피 손님들이었다. 일반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셔보니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향이 느껴졌다. 커피로 생존할 만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가게 이름을 딴 커피 원두 한 봉지를 샀다. 주인은 “우리가 직접 볶은 건 아니지만 레시피를 만드는 데 참여해 우리가 원하는 맛의 커피를 만들어 팔고 있다”고 했다.

    파예즈 커피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 누밸리(Noe Valley). 번잡하지 않고 고풍스러운 거리에 멋들어진 상점과 음식점, 커피숍이 많아 샌프란시스코 주민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 지역에 또 하나의 비디오 대여점 ‘비디오 웨이브(Video Wave)’가 있다. 1983년 개업 당시엔 다른 건물에 있었는데 그자리에서 20년 넘게 영업하다 2015년 지금 장소로 옮겼다. 건물주가 월세를 두 배 올려달라고 요구해 할 수 없이 이사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꽁지머리를 한 주인 콜린 허튼 씨가 인사를 건넸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동네에 사는지라 비디오를 빌렸다간 연체료를 물 게 뻔해 아이스크림만 하나 샀다. 가게에선 비디오를 보면서 먹을 수 있는 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팝콘, 캔디 등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메인 비즈니스는 파예즈 커피와 달리 비디오 대여다.

    이곳이 샌프란시스코에 남은 두 개의 비디오 대여점 중 하나가 맞느냐고 주인에게 말을 건넸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얼마 전 한 곳이 문을 닫아서 이젠 우리까지 두 개만 남았다”고 답한다. 비디오 대여만 해서 가게를 운영할 만한지 다시 물었다.

    “글쎄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살만하니까 해온 거겠죠. 그런데 월세가 너무 올라 힘들어요. 한 달 임차료가 4000달러예요. 그 돈을 내면서 먹고사는 게 정말 힘듭니다.”

    심지어 건물주가 월세를 더 올리려 하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이런데 5000달러 내면서는 장사 못 해요.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나도 모릅니다. 할 수만 있으면 계속 하고 싶은데…. 지금도 한 달에 50, 60명씩 새 회원이 들어와요. 꾸준히 대여하는 회원 수도 8200명가량 되고요. 물론 한창 많을 때 4만3000명 수준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들긴 했죠.”


    폐업하지 말라고 기부하는 단골들

    비디오 웨이브 근처 한 요가학원. 2015년 초 폐업한 전자제품판매점 라디오셱(Radioshack)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다.

    비디오 웨이브 근처 한 요가학원. 2015년 초 폐업한 전자제품판매점 라디오셱(Radioshack)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다.

    허튼 씨는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애플 아이튠즈, 구글플레이 등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온라인 대여·구매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비디오 대여점이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영화, 드라마 타이틀이 2만4000개 정도예요.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는 작품을 많이 갖고 있죠. 또 손님이 찾는 작품이 있으면 나서서 구해주기도 합니다. 이 동네에서 영화제가 많이 열리잖아요. 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을 구할 방법이 없느냐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최대한 찾아서 구매합니다. 동네 장사라 가능한 일이죠.”

    비디오 웨이브는 2016년 9월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기부금을 받았다. 현재 건물에서 공간을 나눠 쓰던 공동세입자가 사업을 중단하고 나가면서 갑작스레 월세 보증금(추후 월세를 미납할 경우에 대비하고자 건물주가 미리 요구하는 한두 달치 월세 금액) 8000달러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허튼 씨는 사업을 계속하게 도와달라며 기금을 모았고, 다행히 단골 고객들의 도움으로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월세를 내고도 생존할 만큼 영업이 되지 않아 다시 모금에 나섰다. 이 모금은 2018년 12월 4일 현재도 진행 중이다. 허튼 씨에게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계속 영업하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 장사를 35년째 해오고 있느냐고요? 동네 장사라서 그래요. 동네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사람들과 인연을 쌓고, 그러면서 살아왔거든요. 어릴 때 부모 손잡고 비디오 빌리러 오던 친구들이 부모가 돼 아이 손잡고 옵니다. 그런 걸 보는 게 동네 장사예요. 우리 가게는 그들이 원하는 영화, 드라마를 찾아서 볼 수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문 닫지 말라고 기부도 해주고, 계속하라고 팁도 주고 가는 것이죠.”

    허튼 씨와 얘기를 마칠 무렵 한 중국계 여성이 들어왔다. 후앙(Huang)이라는 성을 가진 그는 단골 회원인 듯했다. 그가 최근에 우연히 본 인도 영화를 찾자 허튼 씨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영화 DVD를 찾으러 갔다.

    비디오 웨이브를 나와 주차해둔 곳으로 걸어가던 중 낯익은 간판과 마주쳤다. 라디오셱(Radioshack). 1921년 문을 연 회사다. 전자제품 판매점으로 100년 가까이 운영했지만 아마존 같은 온라인 상점이 등장하면서 2015년 초 파산했다. 라디오셱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엔 요가학원이 입주해 있었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익숙한 것들이 종종 사라지곤 한다.


    시대와 함께 사라지는 것들

    샌프란시스코 비디오 대여점의 생존 투쟁은 아마도 ‘넷플릭스의 시대’가 가져온 변화의 일부일 것이다. 비디오 대여점만의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예컨대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시간 맞춰 방송하는 TV 프로그램’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대고 TV와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문득 떠올랐다. 이런 드라마가 점점 더 늘어나는 세상에서 방송사는 비디오 대여점과 확실히 다른 미래를 갖고 있을까.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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