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20대 리포트

대학생 해외자원봉사의 민낯

“칠한 페인트 나중에 도로 벗겨내”

  • 백송이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ashleybb60@gmail.com

    입력2018-12-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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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찍기 적합하게 봉사”

    • “초등생 대상 발표 준비했는데 청중이 대학원생”

    • “높은 경쟁률, 깊은 자괴감”



    대학생들에게 해외자원봉사는 인기 만점이다. 기업과 단체, 학교의 해외봉사단에 참여한 경험은 취업에 쓸모 있는 스펙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항공과 숙박까지 제공받으니 일석이조다.


    “40도 더위에…”

    A대학 기계전자공학부에 다니는 이모(25·경기도 시흥시) 씨는 B비영리법인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갔다. 이씨는 이 도시의 2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포토샵, 파워포인트, 엑셀 같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활용법을 가르쳤다. 이씨는 “배우려는 학생들의 열의가 넘쳤는데 기초적인 활용법밖에 가르쳐주지 못했다”고 했다. 2주 안에 벽화 봉사, 대학 교류, 문화 교류 등 너무 많은 세부 활동이 짜여 있어 소프트웨어 활용법 교육에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에 2시간, 1주일 정도만 가르쳤다. 많은 학생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못했다. 우리가 쓴 비용에 비해 현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해주지 못했다. 봉사 프로그램 구성에 아쉬움이 있다.”

    몇몇 대학생은 자신이 수행한 해외봉사활동이 무의미한 것으로 밝혀져 자괴감이 들었다고도 했다. C대학 경영대 재학생 박모(24·서울시 동대문구) 씨는 “인도 델리에서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엄청난 면적을 칠해야 했다. 페인트칠이 익숙지 않았고 시간도 촉박해 다 칠하고 나서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6개월 후 박씨는 자신이 칠한 페인트가 다 벗겨내지고 새로 칠해진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40도 더위에 탈진해가면서 했는데 황당했다”고 말했다.



    D대학 재학생 김모(여·23) 씨는 E봉사단이 주관한 우즈베키스탄 학술 콘퍼런스 봉사에 참여했다. 봉사단 측은 “현지 초등학생과 중학생 수준에 맞게 발표 내용을 구성하라”고 공지했다. 김씨 팀은 미세먼지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면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구성했다고 한다.

    “미세먼지란 아주 작은 먼지랍니다. 자동차와 공장 굴뚝에서 주로 나오죠. 미세먼지 때문에 사람들은 폐가 나빠져요. 그러니깐 우리는 더 이상 미세먼지가 안 생기도록 해야 해요~”

    그러나 실제로 콘퍼런스에 참가한 사람들은 주로 환경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었다. 이들은 수년간의 연구 결과와 논문을 바탕으로 발표했다. 김씨는 “우리 팀과 발표 수준 차이가 크게 났다. 우리 팀은 너무 창피했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에 도움이 안 되는 이런 봉사활동을 왜 한 것인지 모르겠다. 팀원들끼리 이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했다.

    F대학 재학생 조모(25·서울시 동대문구) 씨는 G봉사단체의 지원으로 필리핀에서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 인식 개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조씨는 “한국에서 준비를 많이 했는데, 막상 필리핀에 와서 보니 코피노 문제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조씨는 “코피노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희망을 주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러나 의미가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스스로 페이스북을 하는 그런 디지털 키즈였다”고 했다.

    몇몇 봉사자는 해외봉사 프로그램이 보여주기식으로 작위적으로 흐르는 부분을 지적했다. 김모(여·22·서울시 종로구) 씨는 “내가 참여한 해외봉사활동에서 가장 우선시된 것이 사진과 영상이었다. 팀별로 사진-영상 제출 의무가 있었기에 봉사활동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주관한 기업 측도 현장에 봉사자들을 배치할 때 ‘사진 찍기에 적합한 구도’를 권유했다”고 전했다.


    “최우선은 사진과 영상”

    김모(여·23·서울시 성북구) 씨는 ‘편집의 마술’을 체험했다고 한다. 김씨는 “해외봉사 첫날 콘퍼런스는 정말 끔찍했다. 발표를 맡은 현지인 4, 5명을 빼곤 현지인 청중이 아예 안 왔다. 발표자들끼리 서로 발표 내용을 공유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콘퍼런스를 소개한 영상은 전혀 딴판이었다고 한다. 

    “봉사단 측이 찍고 편집한 영상은 ‘야 어떻게 이렇게 편집을 잘했지?’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콘퍼런스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처럼 보이게 각도를 잘 잡아서 찍었더라. 실제로는 20~30명밖에 없었는데 100여 명이 있는 것 같은 느낌? 우리나라 언론에도 이 행사가 엄청 성황리에 진행된 것처럼 보도됐다.” 

    H대학 사회과학대 강모(26·서울시 성북구) 씨는 대기업 I사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베트남을 다녀왔다. J사 측은 봉사단원들에게 현지에 지어준 복지시설 개관식에 참석해 축하공연을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강씨는 “문화교류를 위해 준비한 것을 개관식 공연으로 보여줘야 했다. 당초의 봉사활동 목적과 달라 거부감이 들었고 어색했다”고 말했다. 이모(25·경기도 시흥시) 씨는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나 사진 찍기가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해외봉사활동에 임하는 대학생들의 마음가짐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강모(26·서울시 성북구) 씨는 “몇몇 봉사자는 해외봉사 준비를 위한 국내 회의에 바쁘다고 잘 참석하지 않았다. 현지에 가선 툭하면 쉬고 힘든 일을 하지 않더라.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왔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해 팀워크에 지장을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취업 스펙 쌓으러”

    해외봉사를 경험한 학생들은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기업과 기관이 좀 더 내실 있게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모(여·23·서울시 성북구) 씨는 “‘기업이나 기관이 주관하는 해외봉사활동은 뜻깊고 기여하는 바가 많아 뿌듯할 것이다, 흥미가 있을 것이다, 봉사의 참맛을 알게 할 것이다’라고 기대하고 참여했는데 실망이 컸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해외봉사활동을 통해서 내가 그 나라 사람들에게 기여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시간 낭비, 비용 낭비였다. 다음번엔 주최 측이 현지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섭외도 제대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모(여·22·서울시 종로구) 씨도 “왜 이렇게 많은 대학생이 힘든 건축봉사를 지원했을까 궁금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알겠더라. 일도 쉽고 좋은 음식을 먹고 깨끗한 시설을 썼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봉사가 아니었다”고 했다. “나를 더 희생하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 생각한다. 봉사다운 봉사가 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해외봉사활동이란?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주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 중 하나로 추진돼왔다. 기업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수입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소외계층과 나눌 수 있다. 해외봉사활동은 이러한 사회공헌활동을 국내를 넘어 해외로 확장한 것이다. 취업 전 젊은이들에게 해외봉사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이중으로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기업은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는 비용에 대해 세금감면 혜택을 받기도 한다. 여기엔 법인세법 24조 2항, 조세특례제한법 73조, 사회적 기업 육성법 16조 등이 적용된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수업(담당 허만섭 강사·신동아 기자) 수강생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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