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이웃과 함께 노후를”

지역사회 돌봄 ‘커뮤니티 케어’ 시대 열린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1-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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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 10명 중 9명 “살던 집에서 살고 싶다”

    • 안전사고 걱정 없는 ‘케어안심주택’ 4만 호 공급

    • 방문의료인력 2025년까지 현재의 3배로 확대

    이복순 할머니가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35단지 자신의 아파트 화장실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이복순 할머니가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35단지 자신의 아파트 화장실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A(76)씨는 지난해 9월 화장실에 가다 넘어진 뒤 뇌출혈이 발생해 병원 신세를 졌다. 집 안에서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사고다. A씨만의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균형감각이 떨어져 신체 중심을 잡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문지방을 넘다가 실수로 넘어지는 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다.

    청년기 때면 가벼이 털고 일어났을 정도의 충격이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지는 일도 흔하다. 근육이 줄고 관절 기능이 저하된 노인은 작은 충격에도 골절상을 입기 쉽다. 회복 또한 더딘 게 보통이다. 골절로 입원했다 욕창이나 혈전증, 폐렴 등 각종 합병증까지 번져 건강을 해치는 일이 적잖다.

    2016년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고령자 안전사고 건수는 5795건으로, 그중 60.5%(3506건)가 ‘주택’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유형은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는 ‘낙상’(47.4%, 2746건)이 가장 많았다. 이처럼 집 안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보니 상시적으로 돌봐줄 보호자가 없으면 독립 생활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노인 상당수가 생의 후반기를 병원 또는 요양시설에서 보내는 이유다.


    케어안심주택 확충

    그러나 노인들의 속내는 ‘노후에도 내 집에서 살고 싶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전국 65세 이상 남녀 1만2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88.6%)이 ‘건강이 유지된다면 지금 사는 집에 계속 살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현재 집에서 살고 싶다는 응답 또한 57.6%로 절반이 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11월 20일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의 핵심 내용은 ‘노인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종 건강관리 및 돌봄서비스가 제공되는 ‘케어안심주택’ 확충 △노인 낙상 사고 방지를 위한 집수리 사업 실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방문의료 제공 등 다양한 세부 정책을 내놨다.



    노인,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평소 자신이 살던 곳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누리며 지역사회와 어울려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것을 ‘커뮤니티 케어’라고 한다. 정부는 현재 기관 중심으로 이뤄지는 복지·돌봄 서비스 및 보건의료 서비스 패러다임을 지역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노인을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한국 사회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 이상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통계청은 2026년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20% 이상)가 오고, 206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의 41.0%가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인 돌봄 문제는 대다수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이 행복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라는 게 정부 생각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8년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요양병원 환자의 약 30%는 이른바 ‘사회적 입원’ 환자다.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는데 집이 없거나,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요양병원에 머문다. 대부분 병원에서 할 일이 없어 하루 종일 병상에 누워 계신다. 이런 분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국가 비용도 절감할 방안이 있을까 고민하다 커뮤니티 케어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면 여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2019년 이러한 구상을 현실화할 첫걸음이 시작된다. 보건복지부는 63억9300만 원을 투입해 전국 8개 시군구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모델 마련을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신규 공급되는 노인 공공임대주택(2022년까지 약 4만 호 예정)을 모두 비상벨, 동작감지센서 등을 갖춘 ‘케어안심주택’으로 짓고, 노인 주택 수리 사업도 대대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 27만4000세대 주택에 미끄럼방지 안전바닥재, 안전손잡이 등을 설치해주는 게 목표다.


    노인이 안전한 나라 청사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8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8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케어안심주택이 어떤 형태로 지어질지는 경기 성남시 위례35단지 공공실버주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 아파트에 들어서면 복도 벽에 붙어 있는 단단한 안전손잡이가 먼저 눈에 띈다. 노인 보행에 도움을 주는 설비다. 각 세대 현관 벽에도 안전손잡이가 있어 신발을 신고 벗을 때 균형을 잃고 넘어질 위험을 줄여준다. 거실의 ‘동작 감지 센서등’은 어두울 때 화장실 등에 가려 이동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장치다. 화장실 내부에도 미끄럼방지 바닥재, 사용자 키에 따라 높이가 조절되는 세면대 등이 설치돼 있어 노인의 일상생활을 돕는다.

    이 아파트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가까이 성남위례종합사회복지관(복지관)이 있다는 점이다. 복지관에서는 노인 대상 물리치료실을 운영하고, 혼자 사는 이들이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공용 주방을 개방해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 구실을 한다. 이렇게 교류하며 안면을 튼 노인들은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살피게 된다. 지역사회 돌봄이 이뤄지는 셈이다.

    현재 위례공공실버주택엔 164세대가 입주해 있는데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권자다. 정부는 향후 이런 시설을 더욱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정부는 의료진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의료도 확대한다. 수혜자를 2018년 110만 가구 125만 명에서 2025년 346만 가구 390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2018년 현재 전체 노인 인구의 8%(약 58만 명)만 혜택을 받고 있는 장기요양보험 적용 비율도 2025년 11% 이상(약 120만 명)으로 올리려 한다. 정부에 따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을 때 독일(11.3%)과 일본(12.8%)의 장기요양보험 수급률은 우리보다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차량 서비스, 집 문턱 제거 등 주거환경 개선 등을 장기요양보험으로 지원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2019년은 정부의 커뮤니티 케어 구상이 현실화하는 첫해다. 보건복지부는 노인을 시작으로 장애인, 아동, 정신질환자, 노숙인 등으로 대상을 점차 확대한다는 목표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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