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유전자 변형 인간’ 기술, Go? Stop!

중국 과학자가 불붙인 생명과학계 논란 분석

  •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8-12-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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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가 최근 한 학술대회에 참석해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가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계 최초 유전자 변형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과학자 다수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인류 업그레이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생명과학기술은 머잖아 ‘유전자 변형 인간’을 ‘GMO 곡물’처럼 일상적으로 만들어내게 될까. 그럴 경우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영화 ‘가타카(Gattaca)’(1997)가 제작됐다. ‘유전자 변형(Genetically Modified)’ 인간이 등장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 ‘빈센트’는 유전자 변형 없이 태어났다. 그는 출생과 동시에 “심장 질환 발생률 99%.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예상 수명은 31세”라고 낙인찍힌다. 사회적으로 ‘부적격자’ 취급을 받는다. 유전자 변형으로 태어난 빈센트의 동생이 완벽한 미래를 약속받는 것과 천지 차이다. 

    하지만 우주비행사가 되고자 하는 빈센트는 유전자가 정해놓은 자기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동생과 수영 시합을 하다 바다 한가운데서 익사할 뻔한 동생을 구해낸 빈센트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가 미래를 개척하고자 택한 길은 동생처럼 유전자 변형으로 태어난 ‘머로’의 유전자 정보를 구매하는 것이다. 머로는 사고로 장애를 얻자 자기 정보를 빈센트에게 판다. 그 덕에 빈센트는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존재로 행세할 수 있다. 물론 세상을 속이는 게 쉽진 않다. 빈센트는 항상 머로의 혈액, 소변을 갖고 다니며 신분 확인에 대비한다. 나쁜 시력, 작은 신장 같은 신체 결함을 감추는 데도 안간힘을 쓴다.

    현실이 된 ‘가타카’

    유전자 편집 시대의 위험을 보여준 영화 ‘가타카’ 포스터와 스틸컷. [사진 제공· IMDb]

    유전자 편집 시대의 위험을 보여준 영화 ‘가타카’ 포스터와 스틸컷. [사진 제공· IMDb]

    ‘가타카’는 인간 유전자를 마음대로 변형하는 미래의 어두운 면을 경고한 영화다. 이 영화가 나온 1990년대 후반에는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이 컸다. 그 때문에 오히려 이 영화가 더욱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 다수는 이 영화가 예고하는 미래가 머잖아 현실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가타카’ 이후 21년 만에 세상이 달라졌다. 2018년 11월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가 홍콩에서 열린 학술 대회에서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가 태어났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계 최초 유전자 변형 인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가타카’에서 예고한 세상이 현실이 되는 걸까?



    허젠쿠이가 설명한 내용은 이렇다. 그는 사람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 뒤 배아(아기씨) 단계에서 에이즈 바이러스(HIV)와 달라붙는 면역세포의 수용체 단백질(CCR5)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제거했다. 이론적으로 보면 CCR5가 없는 인간은 에이즈에 면역력을 갖는다. 허젠쿠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자 다수는 그의 주장이 허언이 아니라고 여긴다. 과학기술에만 초점을 맞춰보면 유전자 변형 아기가 태어나는 게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한 요구르트 회사에서 시작됐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요구르트 회사 다니스코가 있다. 요구르트의 원료가 되는 유산균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다. 다니스코의 과학자들은 당연히 유산균이 바이러스에 어떻게 저항하는지에 관심을 뒀다. 필리프 호바스(Philippe Horvath)와 로돌프 바랑고(Rodolphe Barrangou)도 그런 과학자군에 속했다.

    2000년대 중반, 이들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다. 유산균 가운데 바이러스에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있었다. 그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이들은 살아남은 유산균의 유전체(genome·유전 정보 전체) 안에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염기 서열) 일부가 저장된 사실을 발견했다. 그 바이러스의 흔적은 ‘크리스퍼(CRISPR)’로 알려진 특정한 유전자에 저장됐다.

    두 명의 과학자는 인간 같은 고등동물의 면역 작용을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퍼 유전자의 존재를 2007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으로 발표한다. 이후 또 다른 두 명의 과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가 크리스퍼 유전자의 작동 방식을 상세히 파헤친다.


    유전자를 정확히 자르는 ‘신의 기술’

    2018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제2회 국제인류유전자편집회의.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2018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제2회 국제인류유전자편집회의.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다우드나 등이 2012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산균에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크리스퍼 유전자가 활동을 시작한다. 크리스퍼 유전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정확히 찾아가 특정 단백질(Cas9)로 해당 부분을 절단한다. 이 과정을 통해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다우드나 등은 크리스퍼 유전자에 바이러스가 아닌 다른 생명체, 예를 들어 인간 유전 정보를 집어넣어도 똑같은 일이 가능함 또한 확인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 크리스퍼 유전자는, 바이러스든 인간이든, 기억하고 있는 유전 정보를 정확히 찾아가 틀림없이 잘라냈다. ‘내비게이터’와 ‘가위’를 합쳐놓은 듯한 ‘유전자 가위’가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사실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자르는 기술은 1970년대부터 과학계에 알려져 있었다. 인류가 유전자 변형 옥수수나 유전자 변형 콩을 만들 수 있던 것도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잘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과학자의 노력에도 원하는 부위만 ‘정확히(!)’ 자르는 유전자 가위는 개발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우드나 등의 논문은 마침내 ‘그’ 유전자 가위를 찾아냈음을 세상에 알렸다.

    크리스퍼의 가치를 알아본 생명과학계는 곧바로 유전자 가위 개량에 나섰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장펑 미국 MIT대 교수 등 여러 과학자가 잇따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성능을 개선하고 특허도 출원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신의 기술’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왜 이렇게 세계 과학계가 열광했는지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으니 ‘돈’ 이야기도 해보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등장하기 전까지 생명과학 연구에 주로 사용하는 ‘유전자 변형 생쥐’를 만들려면 5000달러(약 6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면 소요 비용이 30달러(약 3만6000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제작’ 기간은 어떨까? 유전자 변형 생쥐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과거 1년에서 두 달로 줄었다.

    원하는 유전자만 정확히 잘라낼 수 있는 데다 연구 시간을 단축하고 결정적으로 돈까지 적게 든다! 심지어 기술 장벽도 높지 않다. 약간의 훈련만 받으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실험실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자를 수 있다. 생명과학 분야에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이번에 중국의 이름 없는 과학자(허젠쿠이)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변형 아기를 만들 때 사용한 기술도 바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다. 허젠쿠이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에이즈 바이러스가 달라붙는 수용체 단백질(CCR5) 유전자를 제거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유전자를 변형한 배아를 여성 자궁에 착상시켜 아기로 태어나게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유전병 치료의 새로운 해법?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뉴시스]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뉴시스]

    유전자 가위가 있으면 실상 다양한 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신생아 500명 가운데 1명꼴로 발생하는 ‘비후성(肥厚性) 심근증’이라는 병이 있다. 선천적으로 심장 좌심실 벽이 지나치게 두꺼운 병이다. 이 결과로 심장 내부 공간이 좁아지면 몸에 피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 아이는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통증을 호소하다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비후성 심근증은 우리 몸속 23개 염색체 가운데 11번째 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MYBPC3)의 돌연변이로 발병할 개연성이 높다. 엄마 아빠 가운데 한 명이라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50% 확률로 자식에게 발병한다. 이렇게 유전자 하나에만 문제가 있어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질환을 흔히 ‘유전병’이라고 한다.

    비후성 심근증, 혈우병, 낭포성 섬유증 같은 질환이 유전병이다. 만약 아이를 낳기 전 유전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유전자 가위는 바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자 가위 기술을 자랑하는 김진수 IBS 단장은 2017년 8월 미국 과학자와 공동으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 유전자를 배아 단계에서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김 단장은 여기서 멈췄지만 만약 그 배아를 엄마 혹은 다른 여성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까지 했다면 ‘비후성 심근증’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가 변형된 아이가 탄생했을 것이다. 김 단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CCR5 유전자를 제거하면 에이즈에 면역력을 가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기술적으로는 허젠쿠이에 앞서 유전자 변형 아기를 태어나게 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면 유전자 변형 아기 탄생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김 단장이나 유전자 가위가 가져올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과학자가 머릿속에서 구상하던 일(유전자 변형 인간의 탄생)을 호기심 많은 중국 과학자가 상대적으로 규제가 허술한 틈을 타 현실로 밀어붙였을 뿐이다.

    사실 중국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현실 적용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다. 허젠쿠이의 이번 ‘실험’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선을 긋고 그의 연구 활동 금지 조치도 했지만,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인간 배아 실험을 2015년 가장 먼저 허가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허젠쿠이가 유전자 변형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일탈’을 감행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안전성과 효율성

    그런데 정말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인류에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까? 이를 놓고는 과학계 내부에서도 논쟁이 한창이다. 다수의 과학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생명 현상의 신비를 밝히는 과정에서 아주 유용한 도구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기술의 응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따져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지금 다수의 과학자는 유전병 치료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다. 배아 단계에서 유전병을 진단하는 데는 이미 ‘착상 전 유전 진단’(PGD·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같은 유용한 검사 방법이 있다. 엄마 아빠 가계에 유전병이 있는 경우 ‘시험관 아기 시술’ 같은 인공수정이 권장된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배아가 분화를 시작할 때 세포 하나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를 미리 하면 유전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검사를 통해서 유전병 없는 배아만 엄마 자궁에 착상시키면 이후 태어날 아이는 유전병 걱정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이미 안전성과 효율성이 검증된 방법이 있는데 굳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물론 엄마 아빠 양쪽 다 유전병 유전자를 가진 경우에는 착상 전 유전 진단이 무용지물이다. 이 경우에는 배아 단계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병 원인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 같은 ‘교정’만이 해법이다. 하지만 똑같은 유전병을 가진 엄마 아빠가 만나 아이를 낳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장밋빛 미래를 회의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또 있다. 우리는 여전히 30억 쌍의 염기 서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약 2만5000개의 인간 유전자가 정확하게 어떤 구실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당뇨, 치매 등의 질환 발생에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오리무중이다.

    현대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유전자라고 판별해 제거했는데, 알고 보니 그 유전자가 몸속에서 다른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중국 과학자가 손댄 에이즈 바이러스 수용체 단백질(CCR5)만 해도 그렇다. CCR5를 없애거나 변형했을 때 에이즈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인간 업그레이드’라는 꿈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사진 제공·IMDb]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사진 제공·IMDb]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진수 IBS 단장을 비롯한 세계 과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중국 과학자의 일탈을 강하게 비판한다. 반면 조지 처치 하버드대 교수 같은 유명 과학자가 드물게 허젠쿠이 편을 들고 있기도 하다. 맥락이 있다. 처치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유전자 변형을 강하게 옹호한다. 심지어 처치는 2012년 펴낸 저서 ‘리제네시스(Regenesis)’에서 유전자 변형 기술을 활용해 지금보다 나은 인간종(種)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과학자에게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야말로 인간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맞춤한 기술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처치의 비전은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다. 여전히 우리는 (좁은 의미의) 지능, 외모, 신장, 수명 등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유전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중요한지, 또 어떻게 작용하는지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떤 유전자를 자르고 붙여 인간을 업그레이드한다는 말인가?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질문도 있다. 처치 같은 과학자가 주장하는 ‘더 나은’ 인간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수한 것이고 무엇이 열등한 걸까? 지능지수는 얼마나 높은 게 적절할까? 남자 키 약 180cm, 여자 키 약 170cm면 충분할까? 얼굴은 얼마 전 부부가 된 송혜교, 송중기를 모델로 삼으면 될까?

    ‘우수함’의 기준이 시대나 장소에 따라 항상 변해온 사정을 염두에 두면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 ‘유럽’에서 사는 남성에게 송혜교를 보여주면, 또 그 시대 여성에게 송중기를 보여주면 선뜻 호감을 느끼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신기한 동물 보듯이 구경거리로 삼을 개연성이 더 크다. 유전자를 변형해 인간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처치 같은 과학자의 비전은 이렇게 시대나 장소에 따라 변하는 우수함의 기준을 당대에 맞춰 영구화한다.

    한국의 성형수술 열풍을 꼬집는 이들은 서울 강남 거리 미인의 눈, 코가 다 똑같다고 비아냥거린다. 안타깝게도(!) 성형수술로 바꾼 눈, 코는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전자 변형 인간의 눈, 코는 대대손손 유전된다. 다시 영화 ‘가타카’로 돌아가 보자.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니 주인공 빈센트 말고도 눈에 밟히는 등장인물이 있다. 완벽한 미래가 보장된 유전자 변형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사고로 장애인이 된 머로다. 자신의 혈액, 소변 등을 빈센트에게 제공하며 신분을 파는 머로의 삶은 유전자 변형 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이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된 머로는 자포자기한 채 살아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비장애인이라도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은 존재는 ‘부적격자’로 낙인찍히는 사회에서 장애인이 설 자리는 지금보다 더욱 더 좁을 테다. 그런 사회에서 장애인은 ‘비정상’ 가운데서도 가장 열등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유전자 변형 인간의 등장은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새로운 시도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그 기준은, 변형된 유전자를 통해 대대손손 전달되기까지 한다. 노예제, 신분제, 인종차별 등을 폐지하며 인류가 지난 수백 년간 안간힘을 다해 넓혀온,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분투의 역사가 뿌리째 흔들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번 중국 과학자의 일탈 이후 과학계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인간 적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하지만 정작 인류 대다수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런 틈에 국가와 기업을 등에 업은, 창조와 성공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과학자 여럿이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미래의 역사가는 21세기 초반의 어느 시점을 인류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뉜 분기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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