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돋보기’로 본 ‘광주형 일자리’ 처음과 끝

지대수취형 약탈적 노조가 ‘혹시나’를 ‘역시나’로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입력2018-12-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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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조 제외 모든 이해관계자 반긴 정책

    • 정상-비정상 구분 못 하는 文정부

    • 청년에게 기회·희망 주는 사회 꾸려야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순항하는 것 같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누구나 알고, 우려하던 암초를 만나 좌초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광주시와 현대차가 합작법인을 설립해 빛그린산단에 7000억 원을 투자, 연간 10만 대 규모의 1000cc 미만 경형 SUV 공장을 건설하고, 주44시간 기준 연 3500만 원의 초임을 받는 근로자 수천 명을 채용하는 게 골자다. 이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올라서면 고용 효과가 1만~1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 후보로 나서 당선된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선거 공약(‘사회협약을 통한 광주형 좋은 일자리 1만 개 창출’)이 시작점이다. 선거공약서는 이 사업 개요를 이렇게 설명한다.

    “평균 급여를 1인당 국민소득 2배 내외로 맞추는 노사정 간 사회협약을 통해 기업은 해외로 나가지 않고, 이곳 광주에서 최적의 투자처를 찾게 됩니다. 벤츠 자동차로 유명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시를 기아차 노조위원장과 방문해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 일이 완성되면 광주의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6만 개 이상 갖게 됩니다. 시민대표, 시청, 기아차, 노조, 협력업체 대표, 정부, 관계부처 등으로 광주자동차밸리 건설추진위원회를 구성해 (…) 사업완료 시 (…) 세계적인 명품자동차 도시로 제2의 탄생을 하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윤 전 시장의 갖은 노력에도 재임(2014년 7월 1일~2018년 6월 30일) 중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윤 전 시장 공약을 받아들여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년 7월)의 ‘국정과제 16번(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에 “사회적 대화를 통한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과 “노사상생형 일자리 모델(예:광주, 담양 등) 전국적 확산’을 명기했다.

    문재인 정부의 고용 및 노동 정책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물밑 작업이 주효해서인지, 현대차는 2018년 6월 광주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 지역 노동계는 9월 사업 불참을 선언했다가 10월 ‘현대차 투자유치 성공을 위한 원탁회의’를 구성하면서 다시 참여했다. 지역 노동계와 광주시-현대차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11월 27일 지역 노동계가 협상 전권을 광주시에 위임해 12월 4일 광주시와 현대차가 잠정 협약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튿날(12월 5일) 열린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에서 광주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광주시는 일방적으로 잠정 협약안을 수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대차가 “광주시가노사민정 협의회를 거쳐 제안한 내용은 투자 타당성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광주 노동계-광주시와 현대차의 핵심 갈등 지점은 임금·단체협약을 사실상 5년 동안 유예하는 내용이 담긴 ‘노사상생발전협의서 1조 2항’이다. 5년 동안 노사 단체협상을 하지 않고,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임금을 인상한다는 것이 1조 2항의 요지다.

    현대차가 사업 포기를 선언한 표면적 이유는 협상 전권을 가졌다는 광주시와 맺은 잠정협약안이 일방적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암초가 있었다. 잠정협약안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현대차노조는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노조지부장 명의로 “광주형 일자리 철폐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한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현대차노조는 11월 1일 대의원 대회를 열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었다. 총파업 명분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과잉중복투자”이며 “지역별 저임금 기업 유치 경쟁으로 인해 임금이 하향평준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노조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총파업으로 저지”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설이 남아도는 판에 과잉중복투자로 모두가 함께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또 지역형 일자리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부활로 지역별 저임금 기업유치 경쟁으로 기존 노동시장 질서가 무너지고, 임금은 하향평준화돼 경제파탄을 불러올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현대차 재벌의 약점을 잡아 기어이 굴복시켜 도장을 찍게 만들고 (…) 문재인 정권의 반노동 친재벌 정책은 박근혜보다 더 나쁜 일자리를 만들기에 (…) 재앙적인 경제파탄을 저지하기 위한 역사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다.”

    현대자동차지부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도 동일한 취지의 반대 성명을 냈다. 금속노조는 광주형 일자리 정책을 “한국노총을 제외한 노동계도 모두 한목소리로 반대한 자동차 산업의 중복·과잉투자 정책”으로 규정하고, 이 정책의 핵심을 “낮은 임금의 일자리와 생산성을 맞바꾸겠다는 구상”으로 규정한 후 “끔찍한 반사회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1조 2항에 대해서는 이렇게 밝혔다.

    “어떻게 공무원 머리에서 5년간 임단협 교섭 일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 3권이 부정당한 공장은 바로 자본가들이 꿈꾸던 ‘낙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 지난 대선 기간 분명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금 똑같은 현대자동차의 로고를 달고 나오는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을 차등하겠다는 발상에 청와대는 제동을 걸기는커녕 후견인이 되어 반대하는 지자체를 압박하고, 노동조합의 손발을 묶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민주노총도 12월 4일과 5일에 걸쳐 광주형 일자리 합의를 격렬히 비난했다. 성명 제목은 다음과 같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략적 광주형 일자리에 5000억 공적자금 투입, 누가 책임질 것인가’(12월 4일) ‘무노조 특구, 노동 3권 프리존을 만들겠다는 위법한 광주형 일자리 합의는 폐기돼야 한다’(12월 5일).

    이 같은 성명에서 보듯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가 설사 광주시와 현대차가 맺은 잠정협약 원안을 추인했다고 하더라도 현대차지부-금속노조-민주노총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졌을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배경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등장한 배경은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한국 완성차 회사의 임금 등 근로조건이 수요와 공급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원화 기준 연봉(임금)은 한국 자동차 5사 평균이 9072만 원인 데 반해, 일본 도요타는 8391만 원, 독일 폴크스바겐은 8303만 원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연봉을 비교하면 한국 5사는 2.85배, 도요타는 2.04배, 폴크스바겐은 1.74배다.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한국 5사가 12.3%, 도요타는 5.8%, 폴크스바겐은 9.9%다. 임금 수준이든 인건비 비중이든 자동차 5사 평균보다 현대·기아차가 높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완성차 회사의 생산직 임금과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높다는 것은 다른 이해관계자(주주, 협력업체, 비정규직, R&D 분야 등)에게 갈 몫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경쟁사에 비해 높은 임금과 인건비 구조를 가진 현대·기아차 노조의 파업 성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설립 이후 1994년, 2009~2011년의 4년을 제외하고 32년간 매년 파업을 벌였다. 광주형 일자리 저지 파업을 감행한 2018년에는 2012년 이후 7년 연속 파업이 벌어진 것이다. 기아차 노조도 1991년부터 2017년까지 27년 중 25년 동안 매년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도요타는 1962년 무파업 선언을 한 이후 56년째 파업을 하지 않고 있다. 도요타 노조는 2003년부터 4년간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을 선언했다.

    하는 일(노동시장의 공정가격) 혹은 생산성(창출한 가치)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임금과 지대추구형 파업을 질기게 감행한 후과는 1996년 이후 완성차 회사들로 하여금 한국에 자동차 공장을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다. 적정 근로조건(임금, 근로시간, 복리후생 등)과 이를 담보하는 선진적 노사관계를 골자로 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노조를 제외한 모든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열렬히 환영을 받은 이유다.

    적정 근로조건은 한마디로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이요, 정상가격이다. 하지만 이는 하는 일에 비해 엄청난 고임금을 받는 한국 완성차 기업 노조원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반값 임금으로 경형 SUV를 생산하는 공장이 국내에 존재하면, 자신들이 엄청난 지대 수취자(약탈자)임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광주형 일자리를 결사반대하는 핵심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 등)와 노동시장의 정의=상식(적정한 근로조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가진 기본 철학, 가치와 집권 전략에 따르면 촛불혁명의 주력 부대를 자처한 민주노총과 연대해야 하지만, 국내 투자 및 고용 여건 개선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과 노동시장의 정의 실현 및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이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국정과제 16번 자체가 모순적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를 얘기하면서, 공공부문 일자리를 81만 개 창출하겠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눈높이는 다수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현대판 양반이나 다름없는 민주노총이나 공공부문 종사자의 눈높이다. 이를 정상으로 여기면 ‘노사상생형 일자리’가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대기업 노조원이나 공공부문 종사자만 살찌고 나머지는 피골이 상접해지게 돼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좌초시킨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후진적 노사관계 내지 노조문화(행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업횡단적 근로조건의 표준(노동시장의 공정가격) 형성이라는 소명을 망각한, 지대추구형 노조운동 탓이다. 노조의 단결투쟁력과 기업의 지불 능력이 결합하면 ‘생산성과 상관없이’ ‘한없이’ 근로조건의 상향을 추구함으로써 선진국이라면 주주, 협력업체, 비정규직, 연구개발직, 소비자, 미래세대 등에게 귀속돼야 할 몫을 지대추구형 노조가 약탈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 같은 구조가 완전히 합법적이다. 한국의 노동관계법이 지대추구형 노조운동을 조장·방치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노동관계법

    단적으로 한국의 노동관계법은 파업 시 공장 점거가 가능하고, 대체인력 투입은 불가능하게 해놓았다. 그래서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에서는 노조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다.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 노조들은 산업, 업종, 지역 차원에서 연대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폭넓은 연대 없이도, 기업을 궁박한 처지로 몰아가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얼마든지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 노조가 기업횡단적 근로조건의 표준을 위해 연대의 손을 내밀지 않으니, 중소기업에서는 자본이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후진적 노사관계 내지 지대추구형(약탈적) 노조운동을 개혁하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촛불혁명의 주역을 자처하는 이들과 연대를 공고히 하는 움직임을 일관되게 보여왔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비정상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순항하려면, 청년에게 기회와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사회와 정부가 정상과 비정상을 분별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를 현실에 맞게 끌어내리는 동시에 노조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1987년 이후 이해당사자 간 무기의 대등성 원칙을 무시하고 점점 노조 편향적으로 개정된 노동관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등 근로기준과 노동관계법을 광역 지방정부가 지역의 처지와 조건에 맞게 유연화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권의 확대가 필요하다. 보편 상식과 국민 여론의 힘을 업고 노조의 반발을 제압하지 않는 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불가능하다.


    김대호
    ● 1963년 경남 사천 출생
    ● 진주고·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 박영진열사추모사업회 간사
    ● 노동정책 잡지 ‘단결의 길’ 편집장
    ● 대우자동차 근무
    ● 現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저서 :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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