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20대 리포트

요즘 대학가 화두 ‘정치적 올바름’ 논쟁

“PC충” “프로불편러” vs “파시스트”

  • 민혜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heathermin@korea.ac.kr

    입력2018-12-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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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팅은 ‘동성애자’ 배려 부족?

    • ‘채식주의자’ 위해 단체메뉴 교체?

    • ‘암 걸리겠다!’ 말은 ‘암환자’ 모욕?

    • 소수자 배려 수위 놓고 PC논쟁 발발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주선자를 통해 서로 모르는 남녀 여럿이 만나 교제하는 ‘단체미팅’을 하곤 한다. 최근 이 단체미팅 문화가 격렬한 논쟁 소재가 됐다.

    서울 S대 기숙사 동에서 남녀 학생 간 단체미팅을 계획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단체미팅은 이성애 중심적 행사이고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행사 취소를 요구했다. 결국 기숙사 조교 측은 사과문을 올렸고 단체미팅은 취소됐다고 한다. 이후 다른 한 학생은 ‘S대 대나무숲’에 이 사연을 올리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론을 환기했다. 이 미팅 취소 사건에 대해 많은 찬반 의견이 달렸고,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졌다.


    “마라톤도 배려 부족?” vs “속 좁은 집단 매도”

    소수자인 채식주의자에 대한 과잉배려를 지적하는 ‘정치적 올바름’ 관련 글. 이 글은 요리경연 TV프로그램에서 고기 요리에 고기를 빼달라는 채식주의자의 요청을 비판한다.

    소수자인 채식주의자에 대한 과잉배려를 지적하는 ‘정치적 올바름’ 관련 글. 이 글은 요리경연 TV프로그램에서 고기 요리에 고기를 빼달라는 채식주의자의 요청을 비판한다.

    요즘 대학가에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논쟁이 활발해지면서 그 자체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학생들은 동성애자, 채식주의자, 애완동물 주인, 여성운동가,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같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에선 1990년대 소수인종에 대한 배려 등에 이 용어(PC)가 사용된 바 있다. S대 기숙사 미팅 취소 건에 대해 몇몇 학생은 “소수자를 위해 다수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왜 마라톤에 대해선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 중심적 행사이므로 배려가 부족하다’고 주장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미팅 취소에 열 받은 한 학생은 “어딜 가나 게이들이 문제”라고 쓰기도 했다.

    미팅 취소 요구에 대한 비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다. 김모(여·23·서울 S대 정치외교학과 수료) 씨는 “몇몇 학생이 성소수자를 ‘질투나 하며 이성연애를 훼방 놓는 속 좁은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밝혔다. 서울 D여대 중어중문학과 졸업생 최모(여·26) 씨는 “정치적 올바름에 피곤함을 나타낼 순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라면 정치적 올바름을 어떻게 발전시킬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K대학 학생들 사이에선 채식주의자 배려를 놓고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벌어졌다. 한 학생은 ‘K대 대나무숲’에서 “한 단과대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간식을 제공한다’면서 비건(vegan)용 간식만 준비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비건은 고기는 물론이고 우유와 달걀조차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이 학생은 “소수자인 채식주의자를 배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다수의 비채식주의자까지 비건용 간식을 먹어야 하는 건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여러 학생이 이 의견에 동조했지만, 이 대학 경영학부 재학생 박모(24) 씨는 “비건을 배려한 간식을 ‘정치적 올바름의 오용’으로 몰아가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K대학 학생들은 채식주의자에 관한 2차 논쟁도 벌였다. 요리경연 TV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채식을 한다면서 요리에서 고기를 빼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한 학생은 교내 재학생 커뮤니티에 ‘채식주의자가 나타났다’는 제목의 비꼬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채식주의자를 “먹는 걸로 유난 떠는 꼴깝러”로 비난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이후 반론이 이어지면서 논쟁이 붙었다. ID ‘기○○○○’를 쓴 이용자는 “요즘 ‘정치적 올바름’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면 그냥 딜넣고(비난하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ID ‘k○○○○○’를 쓴 이용자는 “고기를 빼달라는 게 욕먹을 일이냐? 채식주의자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일부는 채식주의자를 비난한 이용자들을 향해 “미개하다”고 공격했다.

    “매춘부 대신 성근로자”

    이슬람교도들과 관련해, 일부 대학 학생들 사이에선 “한국에 온 이슬람권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이들이 어디서든 편하게 할랄 식품(Halal food·이슬람 율법에 부합하게 제조된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여러 대학 학생들은 소수자를 암시하는 표현을 사용할지 여부와 관련해,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일환인 ‘언니, 이거 나만 불편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언니, 이거 나만 불편해?’는 몇몇 ‘여초(여성 이용자가 더 많은) 사이트’에서 여성차별 사례를 게시하면서 붙인 표현인데, 이것이 소수자 차별 표현 전반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먹금(병신에게 먹이 금지)’ 같은 신조어는 장애인 비하가 명백하므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매춘부’라는 말은 배려가 부족하니 ‘성근로자’ 내지 ‘성노동자’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은 암환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주장 중 몇몇에 대해선 “사소한 것까지 트집 잡아 고치려드는 정치적 올바름 과잉”이라는 반론이 나왔다. 반론을 펴는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때때로 “PC충(정치적 올바름에 매몰된 벌레)” “프로불편러(사소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사사건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라 부르며 비난한다.


    ‘이거 나만 불편해?’

    ‘PC충에 물든 애니메이션’이라는 제목의 한 커뮤니티 게시물은 애니메이션 ‘둘리’를 이용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받는 상황을 비꼬았다. 웹툰 작가 윤서인의 몇몇 풍자만화는 정치적 올바름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칼같이 잘 풍자했다” “사실이니까 불편한 것”이라는 평을 듣는다. ‘반(反)PC’ 진영은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소수자인 여성운동가를 지나치게 배려한다”고 주장하면서 ‘언니, 이거 나만 불편해?’ 용어에 맞서는 ‘형들, 이거 나만 불편해?’ 용어를 만들어 관련 사례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반면,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측은 반PC 진영을 “파시스트”라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해, 김성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는 논문에서 “미국에서도 PC지지자와 보수주의자들은 서로를 파시스트라 불렀다”고 했다. 서울 K대 경영학부 재학생 박모(24) 씨는 “사회적 다수가 그동안 쌓인 불만을 토로하는 장으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을 몰아가는 것 같다”면서 반PC 진영을 비판했다.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곳곳에서 격렬하게 전개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생 커뮤니티에서 이런 언쟁을 자주 봤다는 윤모(여·23·경기도 소재 S대 간호학과 재학생) 씨는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찬반 대결이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는 “PC논쟁이 독선과 억압, 마녀재판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수업(담당 허만섭 강사·신동아 기자) 수강생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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