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20대 리포트

인스타그램 우울증

“화려하게 사는 친구 모습에 자괴감”

  • 한가연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hky980@naver.com

    입력2019-01-06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금수저 게시물 보며 박탈감”

    • “‘엄청난 공부량’ 공스타그램 보며 초조함”

    • “‘꾸며낸 일상일 것’ 위안”



    한 여자 대학생이 잠자리에 들기 전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모습.

    한 여자 대학생이 잠자리에 들기 전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모습.

     “관둘래, 이놈의 정보화 시대…원래 이리도 힘든가요?”

    가수 딘의 노래 ‘인스타그램’ 속 한 구절이다. ‘인스타그램 우울증’을 호소하는 젊은이가 부쩍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이와 관련, 10월 15일부터 11월 5일까지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링크를 SNS로 배포해 10대 12명, 20대 86명 등 총 98명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신세 처량함” “슬픔” “원망”

    응답자의 90.8%(89명)는 현재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SNS 플랫폼 중 가장 높은 이용률이다. 응답자의 65.3%(64명)는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SNS를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 있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느낀 부정적 정서를 묻는 항목에는 “자괴감” “우울” “신세 처량함” “슬픔” “자존감이 낮아짐” “원망”이라고 응답했다. 신모(20·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명품만 쓰는 ‘인스타 스타(팔로어가 많은 인스타그램 유저)’를 자주 접한다. 신씨는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저들이 명품을 사는 거랑 내가 500원짜리 ‘새콤달콤’ 캐러멜을 사는 거랑 소비 체감도가 똑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모(20·고려대 미디어학부) 씨는 매일 비싼 음식 후기를 올리는 스타들을 보면서 “나는 월말에 용돈이 모자라 편의점을 전전한다. 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뭘까’하고 자문한다”고 했다.



    인스타 스타가 아닌 주변 친구들의 게시물은 더 큰 박탈감을 준다. 이들의 해외여행 사진이나 애인과의 데이트 사진은 빈부격차를 쉽게 드러낸다고 한다. 김모(19·서울시립대 건축학과) 씨는 “같은 대학생인데, 한 지인은 인스타그램에 매일 놀러 다니고 비싼 거 먹고 쇼핑하는 게시물을 올린다. 빈부격차를 실감한다”고 전했다. 이모(21·한국외대 EICC학과) 씨는 “‘금수저’ 친구들의 게시물을 보게 된다. 멋있게 사는 모습이 마냥 부럽다”고 했다. 다른 한 설문조사 응답자는 “나는 커피 한 잔 사 먹는 것도 망설이는데 다른 친구들이 멀리 놀러간 사진을 올릴 때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상용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상대적 박탈감은 SNS로도 충분히 촉발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난다. 더불어 그 사람과 같아지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친구는 척척 붙는데”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면서 아르바이트와 과제에 치이는 자신의 ‘혐생’과 비교하는 윤모(21) 씨.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면서 아르바이트와 과제에 치이는 자신의 ‘혐생’과 비교하는 윤모(21) 씨.

    금수저 친구들의 게시물이 박탈감을 안긴다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의 게시물은 초조함을 준다. 몇몇 응답자는 ‘공스타그램(공부와 인스타그램의 합성어로, 공부량을 인증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면서 그렇게까지 많이 공부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설모(19·숙명여대 미디어학부) 씨는 “대입 수험생 시절 친구들의 공스타그램 때문에 불안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한 사람들과 함께 수능을 봐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모(23·충북대 아동복지학과) 씨는 “친구들의 공스타그램을 보면, 항상 그들이 공부한 시간이 나보다 많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고 무기력해졌다”고 했다. 친구들이 공모전 입상을 자랑한 게시물에 박탈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김모(20·고려대 미디어학부) 씨는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거나 도전하는 것마다 척척 붙는다는 게시물을 자주 본다. ‘비슷한 또래인데 난 뭘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박모(18·숙명여대 미디어학부) 씨는 “아는 언니가 대외활동에, 봉사활동에, 연합 동아리 활동까지 하는 게시물을 많이 올렸다”며 “‘그걸 보면서 의욕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밝혔다.


    “내 혐생과 곧잘 비교”

    물론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일상의 행복을 과장하는 측면이 있다. 김모(20·고려대 미디어학부) 씨는 “고민 같은 것은 의도적으로 올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내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아마 내가 즐겁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모(20·서울여대 현대미술과) 씨는 “내 인스타그램에 올린 여행 사진이 내 실생활을 모두 반영하지는 않는다. 내 삶은 과제와 시험, 노동으로 점철돼 있다. 수업이 끝나면 자정까지 알바를 한다”고 했다. 팔로어가 5만이 넘는 인스타 스타의 계정에는 고급 카페 후기, 명품 화장품 후기, 코스 요리 후기 같은 것이 올라온다. 동시에 실제 친구와 소통하는 이들 인스타 스타의 비공개 계정에는 괴로움과 우울감을 표출하는 글도 게재된다.

    박희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SNS 업로더들은 물 밖에서는 우아하지만 물속에서는 힘겹게 발을 움직이는 백조와 같다”고 말했다. 생활 속 가장 좋은 부분만 추려 게시하는 것을 백조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부 응답자들은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에 대해 “꾸며낸 일상일 것”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다가도 이내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서울시내 한 대학 재학생 윤모(21) 씨는 “친구들의 멋진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면서 아르바이트와 과제에 치이는 나 자신의 ‘혐생(혐오스러운 인생)’과 곧잘 비교한다”고 말했다. 이런 윤씨도 최근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즐긴 음식 사진을 올렸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수업(담당 허만섭 강사·신동아 기자) 수강생이 작성했습니다.



    사바나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