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연탄 한 장에 울고 웃는 백사마을 사람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연말 가격 인상에 직격탄

  • 김솔 인턴기자

    thf3704@hanmail.net

    입력2019-01-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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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탄값 3년 연속 10%대 인상

    • “난방비 아까워 텐트 치고 살아요”

    • 정부 지원책 ‘에너지 바우처’ 몰라서 못 받는다

    • 저소득 가구 배려하는 세심한 정책 설계 필요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에서 한 주민이 연탄재를 버리고 있다. [뉴스1]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에서 한 주민이 연탄재를 버리고 있다. [뉴스1]

    2018년 12월 31일 오후 7시께,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을 찾았다. 가파르게 경사진 골목 곳곳에 하얀 연탄재가 쌓여 있었다. 지번이 중계동 104번지라 백사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통한다. 이미 어둑해져 인적이 드물었지만 연탄집게를 든 주민들이 연탄재 또는 새 연탄을 들고 집 안팎을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400여 가구가 연탄 난방으로 겨울을 난다. 최근 연탄값이 크게 오르면서 이 지역 서민은 한층 더해진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연탄값 오르는 만큼 불구멍을 좁히게 되는 거라.”

    주민 이모(60) 씨가 “작년 이맘때에 비해 집 안이 싸늘하다”며 한 말이다.


    “연탄값 감당 못 해 불구멍 좁혔어요”

    백사마을 곳곳에 쌓여 있는 연탄재. [사진 제공·연탄은행]

    백사마을 곳곳에 쌓여 있는 연탄재. [사진 제공·연탄은행]

    우리나라 연탄 가격은 산업자원부가 발표하는 ‘무연탄 및 연탄의 최고판매가격 지정에 관한 고시’에 따라 정해진다. 2017년 장당 534.25원이던 연탄 공장도 가격은 지난해 11월 639원으로 껑충 뛰었다. 인상률이 19.6%에 달한다. 배달료를 포함한 연탄 소비자가는 장당 700원에서 800원 수준으로 올랐다. 그날 이후 이씨는 연탄 타는 속도를 늦추려고 불구멍을 좁혔다고 한다. 연탄 곳간이 비는 것보다는 조금 춥게 지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다.

    고지대에 살면 고민이 더 깊어진다. 백사마을 ‘윗동네’ 주민 최모(67) 씨는 “골목길이 어는 등 배달 여건이 나빠지면 업체에서 추가 비용을 요구해 연탄 한 장 가격이 950원까지 치솟는다. 그게 부담돼서 예전에는 하루 4장씩 쓰던 연탄을 요즘엔 2장 반 정도로 줄였다”고 털어놓았다. 연탄 한 장은 보통 6시간 정도 탄다. 최씨는 하루 15시간 정도만 온기를 느끼는 셈이다. 그는 “현재 연탄이 40장 정도밖에 안 남아서 당장 열흘 뒤가 걱정”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백사마을 주민 김정염(83) 씨 집에 들어서자 커다란 비닐 텐트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연탄 값이 오르면서 난방비를 아끼고자 김씨가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바람막이다. 김씨는 “며칠 전 민간단체로부터 연탄 150장을 기부받았다. 그 덕에 지금은 그나마 집이 따뜻해졌지, 그전까지는 방에 들어와도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고 밝혔다. 그는 “나뿐 아니라 마을 사람 상당수가 추위에 시달렸다. 50명 정도가 한꺼번에 근처 연탄은행에 몰려가 연탄을 더 달라고 아우성친 일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탄은행은 여러 기관 및 기업, 일반 시민의 후원금으로 연탄을 구매해 에너지 취약계층에 지원하는 사회단체다. 허기복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사이 후원액이 전년보다 20%가량 줄었다. 연탄 가격은 오르는데 중견·중소기업 경영난 등으로 기부액은 오히려 줄어 백사마을 주민 등 연탄 사용자에게 드릴 수 있는 연탄 양이 크게 적어진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서민의 난방수단인 연탄 가격은 최근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인상률이 2016년 14.6%, 2017년 16.6%, 2018년 19.6%로 3년 연속 10%대가 넘는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를 찾으려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정부는 세계 각국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계획’을 제출했다. 그동안 정부는 연탄 판매가격을 생산원가보다 낮게 정하고 차액을 생산자에게 보조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보조금을 줄이려면 연탄 판매가격을 올려 제조업체가 시장에서 생산비를 충당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연탄 출고가가 장당 534.25원이던 2017년, 정부는 연탄생산자에게 장당 254.25원씩 보조금을 지급했다. 지난해 연탄 출고가를 장당 639원으로 올리며 보조금을 182.50원으로 줄였다. 이렇게 2020년까지 연탄 가격을 현실화하는 게 정부 목표다.

    문제는 이 ‘장기계획’을 서민들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9년 이후 줄곧 동결 상태였던 연탄 가격이 급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연탄 사용자들은 이후 매년 가격 폭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저소득층의 난방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연탄 쿠폰’ 지원 금액을 기존 31만3000원에서 40만6000원으로 9만3000원(29.7%) 늘렸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등 소외계층에게 지원하는 이 쿠폰을 받은 이는 연탄공장에서 쿠폰 금액에 해당하는 연탄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액수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 대표는 “달동네 고지대에 사는 주민이나 보온시설이 열악한 판잣집 거주자는 보통 10월부터 4월 초까지 7개월에 걸쳐 난방을 해야 한다. 이 경우 가구당 연탄이 1000장 이상 필요한데 연탄 쿠폰으로는 400장 정도밖에 못 산다”고 꼬집었다. 백사마을 주민 서춘자(89) 씨도 “연탄 쿠폰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연탄 양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에너지 복지 제도인 에너지 바우처 또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에너지 바우처란 생계급여 또는 의료급여수급자이면서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등에 해당하는 에너지 취약 계층에 난방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약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금액으로 1인 가구 기준 8만6000원, 2인 가구 12만 원, 3인 이상 가구에는 14만5000원을 지급한다. 이에 대해 허 대표는 “연탄 사용자는 실물 카드 형태로 바우처를 받는데 판매자들이 보통 카드단말기를 안 갖고 다닌다.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기 불편하다. 또 상당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 자체를 모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백사마을에서 만난 연탄 사용 노인 20여 명 중 에너지 바우처를 쓴다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연탄 사용자 김형춘(64) 씨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연탄이 금탄 됐어요” 호소

    허기복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가 2018년 12월 31일 청와대 앞에서 연탄값 인상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솔 인턴기자]

    허기복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가 2018년 12월 31일 청와대 앞에서 연탄값 인상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솔 인턴기자]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연탄 가격 인상은 취약계층 노인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연탄 가격을 인상하고 정부가 지금처럼 지원금을 줄 수도 있지만 행정적으로 복잡한 작업이라 사각지대가 생길 소지가 크다. 정부는 연탄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부득이 인상해야 할 경우 공청회 등을 열어 이해관계자 및 시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연탄은행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은 지난해 12월 31일부터 1월 31일까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연탄값 인상에 반대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연탄값 너무 올라 금탄 됐어요’ 등의 피켓을 들고 선 시위자 발치에는 빽빽하게 채워진 원고지 더미가 놓여 있었다. 백사마을 주민을 비롯한 연탄 사용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모아놓은 것으로, 연탄값 인상을 막아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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