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가의 탄생 |
어느 배짱 좋은 유럽 자본가의 대모험
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노승영 옮김, 부키. 384쪽, 1만8000원.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한자동맹의 붕괴,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격화 등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야코프 푸거가 있었다. 콜롬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시대에,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았던 푸거의 삶은 흥미진진을 넘어 감탄까지 나온다. 가업을 물려받아 직물 매매를 하던 푸거가 부자로 거듭난 발판 중 하나는 채권 방식의 대출이었다. 푸거는 종종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았는데, 무역이 활발해지고 전쟁이 빈발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큰 권리는 바로 은과 구리 광산의 채굴권과 소유권이었다.
푸거는 유럽 최대의 은광 도시인 슈바츠에서 사치스러운 생활로 빚을 많이 진 지기스문트 대공에게 자신의 가문과 주변 지인들의 자금까지 합쳐 거금을 빌려주는 모험을 택했다. 그 대신 상환할 때까지 슈바츠의 모든 수입을 갖는 조건을 내걸었다. 지기스문트가 높은 지위를 이용해 돈을 갚지 않고 버티면 그만이었지만 다행히 푸거는 지기스문트에게 수시로 돈을 꿔주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배후에도 푸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교황 레오 10세에게 돈을 주고 대주교 자리를 따낸 알브레히트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면죄부 판매를 고안해냈는데, 알브레히트에게 돈을 대준 사람이 바로 푸거였다. 하지만 면죄부를 팔아서 번 돈을 푸거에게 갚는 것은 신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었기에 교황은 수익금의 절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갖고, 나머지는 푸거가 갖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 뒤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루터는 이에 격분해 95개조 반박문을 썼고, 대주교 알브레히트를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그가 바로 면죄부의 원흉임은 몰랐다. 현재 푸거 가문 사람들은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푸거가 독일 최초로 세운 복지시설, 푸거라이에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야코프 푸거를 추모하고 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10대의 뇌
프랜시스 젠슨·에이미 엘리스 넛 지음, 김성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60쪽, 1만8000원.
우리 아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 10대 자녀를 둔 부모의 공통된 고민이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 등을 지낸 신경과학자 젠슨과 과학칼럼니스트 넛이 그 질문에 답한다. 10대가 반항하고 욕망하고 좌절하며 고민할 때 그들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괴로운 부모에게 실용적 충고를 건넨다.
춘추전국시대
고승철 지음, 나남, 188쪽, 1만2000원.
동아일보 출판국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 작가의 첫 시집. 2008년 소설 ‘서재필 광야에 서다’로 제1회 디지털작가상(팩션 부문)을 받으며 문단에 나선 저자는 이후 ‘은빛까마귀’ ‘개마고원’ ‘여신’ 등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첫 시집을 펴내며 ‘쇳덩이를 벼려 날카로운 보검을 만들 듯, 일상의 입말을 시적 언어로 조탁하려 안간힘을 썼다’고 밝혔다.
| 대한민국 규제백과: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것들 |
기승전(起承轉) 4차 산업혁명
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 248쪽, 1만9800원
“규제혁신은 기업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 발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규제 때문에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거나 신기술을 제품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적, 사회적 현실이 바뀌고 있는데도 과거의 가치를 고집하는 사례가 왕왕 있다.”
2019년 1월 10일 청와대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저자 말마따나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지금 한국의 규제는 ICT 융합이 이루어지기 전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기술이 나오기 전의 사회 환경에 알맞게”(9쪽) 맞춰져 있어서다.
이날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을 논하며 카풀을 언급했다. 규제를 풀어야 할 핵심과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 그렇다면 카풀은 AI(인공지능), 블록체인, 핀테크처럼 한국 경제의 판도를 바꿀 혁신적인 비즈니스일까? 아직 오리무중이다. 공유경제라는 명분은 가득 담겨 있다. 하지만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할지는 미지수다. 수출경쟁력을 키우는 데 득이 될지 여부도 뚜렷하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교통수단의 효율화나 소비자 편익을 꾀할 수 있을 뿐이다.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 체류하는 며칠간 우버를 쓴 적이 있다. 제조업 여건이 미비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였다. 일자리 없는 청년들이 자신의 차를 활용해 우버 기사로 일했다. 우버에 대한 규제는 없었다. 하지만 우버 기사는 ‘남는 차량으로 남는 시간에 차를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으로 치면 택시 기사 같았다. 그것이 과연 4차 산업혁명인가?
그런데도 2019년 한국에는 카풀 허용이 마치 규제혁신의 가늠자처럼 자리매김했다. 대통령 발언의 앞뒤 맥락을 놓고 보면 카풀에 반대하는 택시기사들은 마치 “과거의 가치를 고집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책에서도 “차량공유가 가능성 높은 사업 아이템이라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88~89쪽)고 적혀 있을 뿐, 카풀이 국가 경제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책의 부제는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것들’이다. 저자는 드론, 무인자동차, 에어비앤비, 블록체인, 인터넷은행, 원격의료 등의 신산업에서 어떤 현행법이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풀어놓는다. 한국이 “규제가 너무 발달해 사회 변화가 막힌 나라”라고 생각하는 저자에게는 처절한 집필이었을 터.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경향도 엿보인다. 카풀 얘기를 반복하려는 게 아니다. 가령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려면 주52시간만 일해서는 어림도 없다. (그러면) 세계에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는 꿈은 버려야 한다”(192쪽)는 식이다. “혁신에 몰두하는 회사는 누가 시키거나 말거나 일에 몰두”(192쪽)한단다. 이런 사고는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나? 판단은 독자 몫이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
뇌를 텅 비우는 순간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들
닐스 비르바우머·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오공훈 옮김, 메디치미디어, 320쪽, 1만7000원
윌슨은 이후 실험을 좀 더 발전시켰다. 피험자가 머무는 방에 위험하지는 않지만 사용자에게 적당히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수준의 전기충격기를 설치했다. 버튼을 누르면 9V 정도의 전류가 몸에 흐르게 한 장치다. 이후 다시 같은 실험을 진행하자 피험자 상당수가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전기 충격을 당하는 쪽을 택했다. 피학 성향을 가진 이가 실험에 참여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통제했음에도 그렇다. 피험자들은 평균적으로 15분 동안 7번 이상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 특히 남성의 경우 3분의 2가 적어도 한 번 이상 제 몸을 스스로 공격했다.
독일 출신의 뇌과학자 닐스 비르바우머와 저명 과학 저술가 외르크 치틀라우는 신간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에서 대체 인간은 왜 이토록 ‘텅 빈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지에 대해 논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건 현대인만의 특징이 아니다. 즐길 거리라고는 라디오와 흑백 TV 정도밖에 없던 1950년대 캐나다 학자가 설계한 실험에서도 피험자들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앉아 있는 것을 도무지 견디지 못했다. 당시 과학자는 사람이 외부 자극을 철저히 차단한 방에서 홀로 머물기만 하면 매일 20달러씩 지급하기로 약속했는데, 피험자 거의 전부가 사흘 안에 대가를 포기하고 방을 뛰쳐나가버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본질적으로 ‘인간 뇌’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뇌는 스스로 작동하는 추진체다. 뇌가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은 어떤 성과를 이루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킨다. 인간 뇌에는 약 86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있고, 시냅스라 불리는 접합 구조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 복잡한 ‘전기 장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가 무언가를 하도록, 외부 자극에 반응하도록 부추긴다. 자기도 모르는 새 과열돼 폭발하지 않으려면 때로는 ‘두꺼비집’을 내려야 한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그렇게 얻어낸 공허는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충만한 기쁨을 줄 수도 있다. 그동안 수많은 선승과 철학자 등이 해온 이 주장을 저자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출산 전 자궁 속에 있는 태아 뇌에서는 몽롱한 상태를 유발하는 ‘저주파 뇌파’가 생성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궁에 감금된 상태를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죽음 직전을 경험한 ‘임사체험자’ 대부분이 거대한 환희와 평화를 느꼈다는 사실도 ‘뇌의 휴식’이 오히려 인간에게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서울탄생기
송은영 지음, 푸른역사, 568쪽, 2만9000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현재 서울 경관 및 시민 삶의 근원에 관심을 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도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서울이 과거와 어떻게 단절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는지 추적했다. 저자에 따르면 1966년 18개에 불과하던 서울시내 10층 이상 건물이 1970년 122개로 급증했다. 각종 사료와 통계에 한국 소설을 접목해 풍성한 읽을거리를 직조했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지음, 안진이 옮김, 어크로스, 472쪽, 1만7000원.
누스바움은 ‘포린 폴리시’ 선정 ‘세계 100대 지성’에 두 차례 이름을 올린 저명 법철학자다. 레브모어는 전 시카고대 로스쿨 학장으로 저작권 및 상법 분야 전문가다. 두 사람이 함께 쓴 이 책은 60대에 들어선 친구의 대화 형식으로, 철학·문학·경제학·법학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현명하고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을 알려준다.
| 삶에서 앎으로 앎에서 삶으로 |
공부의 길을 가는 가장 좋은 방법
문현선 지음, 책과 이음, 224쪽, 1만3000원.
그는 ‘앎’이라는 단어에서 ‘알맹이’라는 또 다른 단어를 떠올린다. ‘껍질을 벗기고 남은 여물어진 속 부분’ 즉 ‘사물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을 뜻하는 이 말이 실은 앎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 알의 곡식이나 과일이 ‘알맹이’가 돼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아주 많은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작물은 단단하게 언 땅을 비집고 나와 싹을 틔우고, 산들대는 바람과 딱 맞춰 내리는 비에 꽃을 피우며, 한여름 따가운 볕에 시달리다 겨우 열매를 맺은 뒤에도 매서운 가을 서리를 견뎌야 한다. 여물어 수확한 작물 껍질을 벗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볍씨 하나가 쌀알로 거듭나기까지 여러 번의 탈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앎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통찰이다. 그에 따르면 살아가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티나 검불을 날리고 껍데기를 깨고 껍질을 벗겨야 비로소 앎이라는 알맹이를 얻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이 지난한 과정을 통해 앎을 얻어내고, 그 결실을 책으로 남겼다.
이화여대에서 사학과 중문학을 배우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논어’ ‘맹자’ ‘장자’ ‘예기’ 등 여러 고전에서 앎과 삶을 다룬 명문장을 길어 올린다. 더불어 그에 대한 친절한 풀이를 통해 讀(어떻게 읽을 것인가), 學(어떻게 배울 것인가), 書(어떻게 쓸 것인가), 習(어떻게 익힐 것인가), 行(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등 다섯 가지 고민에 대한 선인들의 지혜를 펼쳐 보인다.
‘온종일 먹지 않고 밤새 자지 않으며 생각했으나 얻은 것이 없으니 배우느니만 못하구나’(논어)라는 구절 아래 ‘공부의 길을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가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식이다.
‘남이 한 번에 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을 한다’(예기)는 문장은 조선 시인 김득신의 일화와 함께 소개한다.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아 지능 발달이 늦었던 김득신은 열 살 무렵 글을 배우고 쉰아홉이 됐을 때 대과에 급제했다. 그가 쓴 ‘독수기(讀數記)’라는 글은 ‘‘백이열전’이라는 책을 1억1만3000번 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저자에 따르면 ‘독수기’ 전체에 1만 번 이하로 읽은 책 제목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수천 번 거듭 읽은 책은 읽은 것으로 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길을 알지 못한다’(예기),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는다’(장자) 등 곱씹어 읽을 만한 구절이 많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나는 세계일주로 돈을 보았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갤리온, 304쪽, 1만5000원.
런던 금융가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잘나가는 애널리스트 출신 저자는 ‘모니터 앞 숫자놀음’에 회의를 느끼고 사표를 낸 뒤 무작정 세계 일주를 떠났다. 세계 경제 현장을 몸소 체험하고 공정무역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 책을 발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후 이번엔 마약 매매·성매매·도박 등 범죄행위로 거대한 수익을 올리는 지하경제를 파헤쳤다.
동방의 부름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420쪽, 2만2000원.
서방에서는 성전(聖戰), 동방에서는 침략전쟁으로 규정하는 십자군전쟁을 다룬 책. 영국 옥스퍼드대 비잔티움연구센터 소장인 저자는 유럽 중세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그동안 서방의 역할이 중점적으로 연구됐던 십자군전쟁이 실은 이슬람 세계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전쟁 배후는 비잔티움 제국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였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