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게임 아닌 진흙탕 게임 될까 전전긍긍”
김동연·신재민 고발 사건 서울서부지검 수사
“김동연 전 부총리, 바이백 취소 몰랐다”
신 전 사무관 극단적 선택에 동정 여론
“부총리, KT&G 사장 교체 건 보고받은 적 없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지난해 12월 29일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청와대가 민간기업인 KT&G 사장 교체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문제 제기로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 한 기재부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큰 시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전부인 양 목숨을 걸고 ‘공익제보’를 한 신 전 사무관,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잘못한 게 없다는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이것을 지켜보는 국민 모두에게 득 될 게 없는 사안이라는 얘기다.
또 기재부 내부에서는 직원 상하 간 소통과 신뢰 문제 등에 대해 논쟁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간부는 “신 전 사무관이 똑똑해 예뻐해주던 상사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그들 대부분이 매우 허탈해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무엇보다 신 전 사무관이 건강을 되찾아야 이 모든 안개가 걷힐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의 개인사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지만 병원 입원 이후 기재부 사람들은 신 전 사무관 개인에 대한 비난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신 전 사무관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월 9일 “고발 취하 검토”까지 언급했다.
검찰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신재민 전 사무관을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서울서부지검으로 이송됐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고발 사건도 서부지검에서 수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1월 7일 김 전 부총리와 차영환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민간기업인 KT&G와 서울신문에 사장 교체 압력을 넣고, 적자국채 발행을 지시한 의혹이 있다며 직권남용과 국고손실 혐의로 고발했다.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체를 봐야’
퇴임 후 관조의 시간을 갖기 위해 지방에 머물던 김동연 전 부총리는 자신을 겨냥한 신 전 사무관의 문제 제기에 침묵을 지키다 1월 3일 오후 페이스북에 심경을 올렸다. 신 전 사무관에 대한 당부, 정책 결정 과정의 복잡함 등을 담았다.‘많이 망설이다가 페북에 글을 올립니다. 신재민 사무관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걱정이 남아서입니다…
우선 신 사무관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신 사무관. 앞으로도 절대 극단의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신 사무관은 공직을 떠났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우리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청년입니다. 또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극단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신 사무관 또래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남은 가족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 아끼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음으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고민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기재부에서 다루는 대부분 정책은 종합적인 검토와 조율을 필요로 합니다. 어느 한 국(局)이나 과(課)에서 다루거나 결정할 일도 있지만 많은 경우 여러 측면, 그리고 여러 국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최근 제기된 이슈들도 국채뿐 아니라 중장기 국가 채무, 거시경제 운영, 다음 해와 그다음 해 예산 편성과 세수 전망, 재정정책 등을 고려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국고국뿐 아니라 거시, 세수,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의 의견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특정 국 실무자의 시각에서 보는 의견과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체를 봐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그 충정도 이해가 됩니다. 공직자는 당연히 소신이 있어야 하고 그 소신의 관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도 34년 공직생활 동안 부당한 외압에 굴한 적은 결단코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이 담긴 정책이 모두 관철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신과 정책의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조율은 다른 문제입니다. 부처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특정 실·국의 의견이 부처의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처의 의견이 모두 정부 전체의 공식 입장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부처, 청와대, 나아가서 당과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완될 수도,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정책형성 과정입니다.(중략)’
적자국채 발행 시도한 정무적 이유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전 부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문 대통령은 “김동연 전 부총리가 아주 적절하게 해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젊은 공직자가 자신의 판단에 대해 소신을 갖고 자부심을 갖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신재민 전 사무관의 문제 제기는 자기가 경험한 좁은 세계 속에서 판단한 것이며, 정책 결정은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또 “(신 전 사무관이 언급한 적자국채 발행 여부 등은) 결정 권한이 장관에게 있는데 장관의 결정이 본인의 소신과 다르다 해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기자들에게 “기재부 내에서 이뤄진 의사결정 과정이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고 정상적으로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함께 고려되면서 결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답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페이스북 글 아래 붙은 수많은 댓글은 △적자성 국채 발행 시도한 정무적 이유 △바이백 취소 이유 △GDP 대비 채무 비율 고의 악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체를 봐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 △KT&G와 서울신문에 사장 교체 압력 등에 대한 진실을 듣고 싶어 했다. 실체적 진실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신동아’는 특히 기재부 내부에서 이 사안을 어떻게 보는지 파악해봤다.
‘부채 비율 연도별 추이 파악 요구’
2017년 11월 당시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았는데 국세가 많이 걷혔다. 늘어난 세금은 주로 법인세였다. 기재부는 그해 세수가 242조3000억 원이 될 것으로 봤지만 연말까지 23조가 더 걷혔다. 초과 세수가 많아지면서 기재부 내부에서뿐 아니라 청와대에서도 추가 국채 발행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차영환 국무조정실 2차장(차관급·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1월 3일 이렇게 전했다.“당시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히면서 재정이 경기에 긴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경기 상황을 고려해 국채를 추가 발행함으로써 재정여력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수가 예상보다 많은 상황에서 일정 부분은 국채 발행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국가 재정 규모를 잡을 때 기재부 내부에서는 세제실, 예산실, 경제정책국이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치열한 기싸움을 한다. 이때 국고국의 의견은 참고용이다. 정책국은 국채를 최대한 발행해서 돈을 풀어야 경기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도 원하게 된다. 세제실은 세수 예측치보다 규모를 많이 잡지 않으려 한다. 예산실은 통화를 남겨서 쓸 때는 쓰더라도 재정건전성이 훼손되는 것을 싫어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보니 최종 결론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그해 국회는 28조7000억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11월 전까지 20조가 발행됐고, 11월 당시 8조7000억 원이 미발행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국고국은 애초 4조 원대 발행을 염두에 뒀지만, 김 전 부총리는 ‘정무적 고려’를 언급하며 8조7000억 원의 발행을 요구했다는 게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다. 신 전 사무관의 청와대 청원글에 따르면 정무적 고려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정권 말로 이어지면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기에 그 때를 위해 자금을 최대한 비축해두어야 한다는 것. 국채 발행 후 세계잉여금으로 비축해 다음 다음 연도 예산 편성에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두 번째는 금년 국채 발행을 줄이게 된다면 GDP 대비 채무 비율이 줄어든다는 것. 정권이 교체된 2017년도에 GDP 대비 채무 비율이 줄어든다면 향후 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이 가기에 국채 발행을 줄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확대재정과 적정 부채 비율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이 지난해 12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KT&G 인사 개입 및 적자국채 발행에 대한 청와대 압력설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해 기재부 한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김 전 부총리가 국채 발행 규모에 대해 실무자들을 질책한 것은 국채 발행을 단순히 그 자체로만 보지 말고 재정운용 차원에서, 더 크게는 거시경제 운용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김 전 부총리가 국가채무비율(39.4%)을 언급한 것도 중기 재정운용계획상의 추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더욱이 실국장들과 토론할 때 김 전 부총리는 반대 측의 입장에서 공격하는 화법을 쓰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이 들을 경우 오해하기 쉽다.”
김 전 부총리는 2018년도 경제가 어려울 경우를 생각해 추경 편성 여부에 대해 고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국채 발행을 통해 추가로 확보한 재원이 이듬해 추경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지가 적자국채 발행 규모를 정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보고하러 온 국고국장 등에게 추경재원 활용 가능 여부에 대한 법적 검토를 지시했다. 국고국은 관련 실국과의 협의를 거쳐 적자국채를 추경 재원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내용을 들은 부총리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말자고 결론을 냈다.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한 기재부의 결정을 전해들은 차영환 전 경제정책비서관은 조규홍 차관보 등에게 연락해 보고 번복 배경을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 외압’을 느꼈고, 청와대가 적자국채 발행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차 전 비서관은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맞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일”이라며 “결국 연말 경제 상황과 금융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 협의 끝에 기재부의 결정을 받아들여 국채 추가 발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신 전 사무관이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진력했다는 얘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가 부채는 현실적으로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기재부 직원들의 얘기다. 기재부의 ‘2017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보면 지방정부 부채를 포함한 국가 전체 채무는 660조7000억 원이다. 전년에 비해 33조8000억 원(5.3%) 늘었고, 국가 채무 비율은 38.2%였다. 기재부가 2018년 8월 발표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재정확장 기조에 따라 5년간 총지출이 연평균 7.3% 늘어나게 된다. 2018년 39.5%이던 채무 비율이 2022년에는 41.6%로 늘어난다. 그 이후에는 40%대로 관리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바이백 취소 이유
2016년 국가 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 채무까지 포함한 일반정부 부채는 43.2%였다. 미국(125.9%), 프랑스(108.3%), 영국(97.0%), 독일(71.2%)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을 투자해서 저소득층 등 서민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고, 그로 인해 경제가 살아나도록 하는 확대재정 기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2000~2016년 OECD 35개국 중 채무 증가율이 11.6%로 네 번째로 높아 재정 위기에 대한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될 듯하다.신 전 사무관이 제기한 다른 핵심 이슈는 ‘바이백(국고채 조기매입) 하루 전 취소’ 사건이다. 기재부는 2017년 10월 26일 발표를 통해 ‘11월 15일 1조 원 규모의 바이백’을 알렸지만 예정일 하루 전인 14일 갑작스레 취소한다.
신 전 사무관은 바이백과 관련해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먼저 청와대가 바이백 취소를 압박해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임기 연도인 2017년 국가 부채 비율을 높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또 기자회견에서 “바이백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1조 원 바이백 한다고 해놓고 하루 전에 취소한다면 어떤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고 생활인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첫째, 박성동 국고국장은 “당시 바이백 취소는 추가적인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이와 연계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해 상환시기를 조정했다”며 “청와대 요구는 없었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또 “김동연 부총리에게는 사전 보고를 하지 않았고, 조규홍 차관보와 상의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바이백 취소가 언론에 나가고 나서야 취소 사실을 알았고, 이후 자초지종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당시 바이백은 국가 부채 비율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 밝혀졌다. 신규 국채를 발행하면서 만기가 도래할 국채를 미리 갚는 방법(빚을 내 빚을 갚는 방법)이어서 국고채 잔액에 변동이 없게 될 것이었다.
박 국장은 “바이백은 만기도래 전 국채를 만기평탄화(분산)를 위해 차환 발행 자금으로 상환하는 것으로 국채이자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며 “당시 바이백 1조 원을 취소하지 않았다면 12월에 추가로 1조 원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발행해야 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바이백 취소에 대해 국가 부채 비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적자국채 추가 발행 여부 논의, 국채시장에 미치는 영향, 연말 국고자금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불가피하게 결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셋째, 기업 등 피해를 본 사람들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영향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내 채권시장 지표 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바이백을 취소한 날 0.031%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며 연 2.1%대에서 2.2%대로 상승했다. 하지만 하루 만인 11월 15일 다시 2.1%대로 돌아갔다.
KT&G 사장 교체 시도의 진실
채권운용사 A씨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좀 과장이 있다. 당시 바이백 취소는 시장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바이백을 하면 보통 금리가 내려가는데, 바이백을 취소해 금리가 올라갔다. 당시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시기였고, 한국은행도 인상 신호를 보내던 시기라 바이백 취소는 금리 인상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KT&G 사장 교체 시도 의혹과 관련해 기재부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구윤철 2차관은 지난해 12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기재부 출자관리과에서 담배사업법상 정상적인 업무처리 과정에서 KT&G 경영 현황을 파악한 것이고,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당시 KT&G 사장 교체는 없었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김동연 전 부총리, 김용진 전 2차관은 이와 관련된 보고를 일체 받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