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유통 인사이드

“목 좋은 점포 편의점주, 만세 불러”

편의점 시장 왜곡 김상조 공정위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1-30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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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의점 신규 출점 어려워져

    • 창업자들에게 큰 진입장벽

    • 고수익 상권에 절대 유리

    • 업계 수위 시장지배력 커질 것

    • 공정위 “도리어 창업자 보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2018년 12월 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편의점업계 ‘근거리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 선포식에서 편의점업계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2018년 12월 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편의점업계 ‘근거리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 선포식에서 편의점업계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5층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나타났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편의점 자율규약 제정 선포식에서 격려사를 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6개 편의점업체 대표들도 모두 모였다. 협회 소속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씨스페이스와 협회 소속은 아니나 협약에 참여한 이마트24다. 또 우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도 자리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과잉 출점은 가맹점주의 수익성 악화와 ‘제살 깎아먹기’ 식의 무모한 경쟁으로 편의점 경쟁력을 악화시켰다”면서 “포화지역에 대한 성급한 진입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규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업체가 상생협약 이행평가에서 우수한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연 공정위는 수장의 공언대로 ‘을을 지키는 길’(을지로)의 내비게이션을 충실히 마련했는가.

    담합이 상생으로

    편의점 출점을 제한하는 업계의 자율규약이 18년 만에 부활한 2018년 12월 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 편의점들이 영업하고 있다.

    편의점 출점을 제한하는 업계의 자율규약이 18년 만에 부활한 2018년 12월 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 편의점들이 영업하고 있다.

    자율규약의 골자는 이렇다. 신규 출점은 어려워졌고, 폐점은 쉬워졌다. 지방자치단체 소관인 담배소매인 거리제한(50~100m)을 출점 기준으로 삼았다. 즉 이 거리 안에서는 브랜드와 상관없이 추가 출점이 어려워졌다. 또 자율규약에는 경영 악화로 인해 폐점할 경우 위약금을 감경·면제하는 ‘희망폐업’도 포함됐다. 김 위원장은 규약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6개 업체 대표의 서명이 담긴 확인서를 직접 받고 기념사진까지 촬영했다.

    당초 편의점업계는 1994년 경쟁 브랜드 간 근접 출점을 막기 위해 거리제한 기준을 80m로 기재한 협정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2000년 이 협정에 대해 ‘경쟁사 간 담합행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18년 사이에 공정위의 입장이 확연히 달라진 꼴이다. ‘담합’이 ‘상생’으로 탈바꿈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업계에서 2000년 당시처럼 80m 이내에 출점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자율규약을 마련해 7월에 승인을 신청해왔다. 2000년과 입장이 바뀐 게 없어 반려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자율규약에는 ‘80m 내 금지’라는 내용은 없고 상권특성, 유동인구, 담배소매인 지정 등을 고려하게 돼 있다. 신규 출점을 못 하는 게 아니다. 출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만약 업계가 80m 내에서는 상호 출점하지 말자고 이면 합의를 했다면 그때는 공정위가 담합으로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공정위 측 주장대로라면 자율규약에 “50~100m 안에서 신규 출점할 수 없다”와 같은 명시적 문구가 없기 때문에 과거의 판단을 뒤집은 게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공정위도 인정한 대로 자율규약에는 이미 담배소매인 지정거리가 적혀 있다. 50~100m 출점 제한이라는 보도가 봇물처럼 잇따르는 건 이 때문이다. 일부 가맹점주 단체는 “거리 제한 200~250m를 기대했는데 이에 못 미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 자율규약이 명시적인 거리 제한을 두고 있다는 걸 업계가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출점 제한이 기득권을 보호하는 용도로 쓰일 거라는 전망도 많다. 새로 창업하려는 이들에게는 거대한 진입장벽이 생겨버린 셈이다. 이는 당연히 기존 편의점, 그중에서도 목 좋은 지역 점포를 선점한 점주들에게 절대 유리한 조건이다. 고수익 상권 가맹점이 큰 혜택을 볼 전망이다. 그간 최저임금 인상으로 정부와 각을 세워온 가맹점주 단체가 이번 규약을 두고 아쉽지만 ‘조건부 환영’ 입장을 낸 배경이다.


    “뭐 이런 아마추어 같은 정책이 다 있나”

    한 편의점주는 이번 규약에 대해 “신규 진입이 어려워져 이 정부가 위한다는 약자에게는 도리어 불리한 정책”라고 단언했다. 그와의 문답이다.

    - 이번 자율규약대로라면 목 좋은 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 앞에는 기존 점포를 인수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데요.

    “물론이죠. 권리금이 오르겠죠. 뭐 이런 아마추어 같은 정책이 다 있나 생각했어요.”

    - 기존 목 좋은 곳을 선점한 점주들에게는 상당히 좋은 상황이네요.

    “크게 만세를 부르고 있죠. 저도 매출 상위권 수준인 목 좋은 곳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제가 환호성을 지를 만한 정책이죠. 저희 점포 반경 100m 안에 신규 출점하려면 제 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그걸 써주겠습니까? 동의서를 써주는 대신 이제는 억대를 부르겠죠.”

    - 억대?

    “한 동네에 편의점이 있는데 경쟁 점포가 또 들어올 때가 있잖습니까. 왜 승인해주겠어요. 회사에서 지원금을 줘요. 가령 ‘100m 이내에 또 출점을 해야 하는데, 시너지 효과가 날 겁니다. 동의해주십시오’ 그러면서 기존 점주에게 최소 수백만 원을 줍니다. 보통 1000만~2000만 원은 기본으로 받아요. 많게는 5000만~6000만 원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출점 제한으로 그 돈이 더 올라가지 않겠어요?”

    - 점주 사이에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불만 가진 분도 여럿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격앙됐다가 이제는 ‘살 만해졌다. 권리금 장사도 할 만하겠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점주들 모인 인터넷 카페 분위기가 그래요. 복수 점포 가진 점주들은 권리금 올라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거죠.”

    이에 대해 공정위 측에 문의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해왔다. 현장의 점주와 인식의 괴리가 크다.

    “신규 진입하려는 곳이 이미 포화 상태라면 결국 창업해서도 매출이 안 나오고 영업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희가 이를 막아 창업자를 보호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곳이라면 지금도 들어갈 수 있으니 창업자의 신규 진입을 막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목 좋은 점포 독점력을 보호해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도 있는데, 정말 목이 좋다면 상권이 우수하고 매출이 잘 나오는 곳이니 본부가 출점을 하면 됩니다.”


    “일시금 5000만 원”

    수위권 업체의 시장지배력이 더 커질 공산도 높다. 현재 편의점 점포 수 기준 업계 1, 2위는 CU와 GS25다. CU는 1만3100여 개, GS25는 1만3000여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그 뒤를 세븐일레븐(9450여 개), 이마트24(3560여 개) 등이 잇고 있다. 5위 미니스톱은 2500여 개의 점포를 갖고 있는데,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업계는 후발주자들의 추격에 장애물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이러다 보니 미니스톱의 몸값이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20일 진행된 미니스톱 인수 본입찰에는 롯데의 코리아세븐과 신세계 이마트24가 모두 참여했다. 시장에는 롯데가 4300억 원 수준의 인수가를 적어냈다고 알려졌다. 당초 증권가에서 관측했던 3000억 원대를 훌쩍 웃돈 수치다. 롯데 입장에서는 미니스톱을 품지 않는 이상 CU와 GS25를 추격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마트24가 처한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에 불경기가 겹쳐 출점 속도가 이미 더디다. 여기에 (자율규약으로) 신규 출점이 어려워졌으니 3~4위가 1~2위를 따라가기 수월치 않은 조건에 놓였다. 목 좋은 곳에 점포를 둔 점주들의 기존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쟁탈전이 치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점주들이 1, 2위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 CU나 GS25로 갈아타는 점주들도 나타날 거다. (이번 자율규약이) 산업을 재편할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BGF리테일과 GS리테일은 가맹점 상생지원책으로 전기료 지원을 포함해 연간 450억 원 규모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면서 “영업이익 규모를 감안할 때 업계 3위인 세븐일레븐의 지원금 추가 여력은 크지 않다. 가맹점주들이 빅2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본사와 점주가 맺는 가맹계약은 5년이다. 목 좋은 점포 점주는 통상 계약기간이 끝날 때쯤 기존 브랜드와 재계약하거나 타 브랜드의 유치 제안을 받는다. 신규 출점 자체가 어려워지니 목 좋은 점포의 몸값은 더 뛰었다. 본사는 브랜드 전환을 조건으로 점주들에게 일시금을 내미는데, 최근에는 그 금액이 크게 올랐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점주는 “인근 점주가 5000만 원 이상의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다. 강남 상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점포도 계약기간 종료가 다가오고 있어 앞으로 시세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정 경쟁을 감독해야 할 공정위가 되레 시장 경쟁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 경쟁을 감시해야 할 정부 당국이 기존 사업자를 보호하는 식으로 정책을 펴서는 곤란하다. 기존 목 좋은 점포나 1, 2위 업체에 유리한 구조”라면서 “공정위가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데 사실상 경쟁제한 조치를 취했다. 공정위 본연의 업무와도 거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최저임금 인상의 파편

    고수익 상권 쟁탈전이 시장에 미칠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경쟁이 격화돼 본사가 권리금, 일시금에 쓰는 지출이 늘수록 본사의 수익성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이 늘면 어디선가 이를 보전해야 한다. 불경기가 지속돼 별다른 매출 반등의 여지가 없는 이상, 선택지는 점포 축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신규 창업자의 시장 진입은 더 어려워진다. 고수익 상권은 진입이 어렵다. 매출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권은 본사의 출점 승인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벽에 부닥친 꼴이다.

    공정위는 오히려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본사가 (목 좋은 곳의) 점주를 유치하기 위해 보다 좋은 거래 조건을 제시한다면 가맹점주에게는 도리어 좋은 것 아니겠나”며 “당사자 간 거래관계이고, 점주 의사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유리한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3~4위권 업체가 왜 자율규약 협약에 나섰느냐는 점이다. 1~2위권 업체가 현재 파이 안에서 시장지배력을 유지·확장하는 상황에서 이들 3~4위권 업체들은 그간 구사해온 공격적 출점은 할 수 없게 됐다. 3~4위권 편의점 본사의 한 관계자는 “점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토로해왔고, 본사만 이익을 취한다는 사회적 시선이 많아 자율규약 협약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1월 7일 김상조 위원장에게 “편의점 과밀 해소를 위해 업계 자율협약을 공정위가 잘 뒷받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업계 자율의 외피를 둘렀지만 그 속에는 정부·여당의 그림자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모양새다.

    성태윤 교수는 “시장 왜곡 이슈가 자꾸 불거지는 건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비용 충격이 편의점에 가해졌는데,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정부가 자꾸 다른 일을 벌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시장 왜곡을 발생시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도 그렇고 이번 출점 제한 조치도 그렇고 정부가 보호하려고 하는 계층에게 도리어 피해를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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