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으면 빚 갚는 게 재정원칙…왜 ‘마이너스통장’ 쓰나”
“국가 재정 경각심 일깨운 신재민, 수백 편 논문보다 큰 반향”
‘애타는 사연’ 어렵게 말했는데 고소하고 핀잔 줘서야…
“국회에 낸 4지선다 연금개혁안, 정답 없는 ‘출제자 오류’”
“일자리 없앤 주범은 ‘소득주도성장’…유아독존 프레임 벗어나야”
“한국 경제 나침반은 시장과 경제원리, ‘한강의 눈물’ 되기 전에…”
[김도균 기자]
1월 12일 서울 충정로 ‘신동아’ 인터뷰룸에 들어선 최광(72) 성균관대 초빙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는 모직코트와 중절모를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 말하는 게 상식’
“2017년에 적자국채가 발행됐다면 감사원 정기 감사에 걸렸을 거예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인데, 김 전 부총리의 ‘정무적 판단’은 지극히 비상식적이거든요. 원칙대로 한 당시 기재부 국고국이 대한민국을 살렸다고 봐요. 그런데 (신 전 사무관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으니….”최 교수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초대 국회 예산정책처장, 한국조세연구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지낸 재정·조세·복지 전문가다. 연금공단 이사장 시절에는 기금운용본부장 연임을 반대하다 청와대와 주무 장관과 갈등을 빚다가 자진 사퇴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신재민 사건’은 재정 문제와 청와대 인사 개입 등 여러 이슈가 나와 연관된 거 같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요즘 어떻게 지내나.
“1972년 미국 유학 이후 내가 생각해도 참 열심히 살아온 거 같다(웃음). 요즘도 대학(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학회, 세미나에 참석하고, 자는 시간 빼고는 서재에서 원고를 쓴다. 학술회의는 발표자가 10년 고민한 얘기를 한두 시간 만에 들을 수 있어 서울 시내에서 열리는 중요한 포럼이나 세미나에는 다 참석한다.”
- 대학에선 어떤 강의를 하나
“부국안민론(富國安民論)인데, 45년간 내가 고민한 결과물을 강의에 쏟아붓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두 가지다. 하나는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거다. 두 번째 일이 교수가 하는 일인데, 적어도 하루 3시간 강의를 한 학기 15번 하다 보면 내 생각이 전달되는 거 같다. 그런데 학교 규정이 만 70세까지는 석좌교수를 주지만 이후는 초빙교수라더라. 석좌교수를 하다가 2018년부터 초빙교수를 하니 내 월급도 3분의 1로 줄었다(웃음).”
- ‘신재민 사건’도 ‘부국안민’으로 가는 ‘성장통’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참 안타깝다. 못 본 척 지나쳤더라면 전도양양했을 젊은 공직자의 양심선언은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채 발행 시도는 무산됐지만 그런 ‘조짐’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신 전 사무관이 민간기업 KT&G와 서울신문에 대한 청와대 인사 개입이 ‘부당했다’고 말하는 건 건전한 상식이다. 현 정부도 ‘정의’ ‘법대로 하겠다’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본질은 청와대 개입이 실정법 위반인지의 여부, 즉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판단이 국기를 문란하게 했는지 여부다. 신 전 사무관 말대로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게 상식이다. 그게 사람의 도리다’.”
- 청와대와 기재부의 ‘국채 추가 발행 시도’는 국기문란 행위인가.
“청와대와 김 전 부총리가 적자국채 발행을 압박했다는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본질적으로 초과세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이다. 김 전 부총리의 소위 ‘정무적 판단’에 따른 국채 추가 발행 시도가 사실이라면, 국가 건전재정원칙과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것이고, 이는 곧 국기문란(國基紊亂) 행위에 해당한다.”
“빚부터 갚자 vs 경기 대응용 실탄 확보해야”
- 왜 그런가.“기재부 1월 1일자 보도 참고자료(‘적자국채 추가발행 등에 대한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 관련’)에 따르면, 2017년 적자국채 발행 한도 28조7000억 원 중 이미 20조 원을 발행하고 남은 한도인 8조7000억 원의 처리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온 거 같다. 남은 한도 전액을 발행하지 말자는 주장과 ‘4조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 세계잉여금(예산을 초과한 세입과 쓰고 남은 예산을 합한 금액)으로 남기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세금 징수 전망치에 비해 23조여 원이 더 걷혔고, 당시 14조 원가량 세수가 남았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당시 국가 채무 비율(38.3%)은 그해 예산안 제출 당시 채무 비율 목표치(39.6%)보다 낮아, 김 전 부총리는 ‘적자국채 확대를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 향후 경기 전망도 나쁘니 대북 지원 등을 위한 ‘경기 대응용 실탄’을 마련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청와대도 국채를 추가 발행해 재정여력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법은 그렇지 않다.”
- 국가재정법 말인가.
“그렇다. 세금이 초과 징수돼 국채를 추가 발행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실정법이 ‘정무적 판단’을 앞선다. 국가재정법 제86조는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건전재정 유지를 강조한다. 세계잉여금 처리 관련 우선순위도 같은 법 제90조에 ①해당 연도에 이미 발행한 국채의 금액 범위에서는 해당 연도에 예상되는 초과 조세수입을 이용하여 국채를 우선 상환하고 ②교부금 정산에 사용하고 ③공적자금상환기금에 우선적으로 출연하고 ④남는 자금은 기존 국채 또는 차입금의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물론 이를 우선적으로 사용한 뒤 남은 세계잉여금은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해 사용할 수 있지만 ‘나랏법은 남은 돈은 우선적으로 나랏빚 갚는 데 써라’고 규정한다.”
건전재정원칙 위반, 국기문란 이유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1월 2일 오후 서울 역삼동의 한 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공개한 카톡 대화록 화면. [뉴시스, 고파스 캡처]
“국가재정법은 굉장히 애매하고 허점투성이인 것은 맞다. 5년 단임 정권에선 초과세수를 추경이든 어떤 방식이든 쓰고 싶으니까 그런 여지를 만든 거다. 그러나 어느 법이나 그러하듯 입법 취지는 ①~④항이 우선이고, ‘추경 편성할 수 있다’는 ⑤항이다. 그리고 초과세수를 ‘공돈’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 왜 그런가.
“우리네 어머니가 그러하듯, 정부의 한 해 수입(세수)은 아주 보수적으로 잡아야 나가는 돈(세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돈이 남았다면 당연히 보수적인 세입 전망으로 늘어난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적자국채를 발행한다? 배 기자는 예상 못한 많은 돈이 들어와 여유가 있는데도, 이자를 내야하는 빚을 내거나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할 건가.”
- 마이너스통장까지 쓸 이유는 없을 거 같다.
“당연하다. 재정건전성은 ‘기채금지의 원칙’(국가 세출은 차입금 이외의 세입을 재원으로 한다)과 ‘감채의 원칙’(잉여금이 있을 때에는 국채 원리금과 차입금을 우선 상환한다)으로 유지된다. 세금이 더 걷히면 부채를 조기 상환해 세계잉여금을 줄이는 게 기본인데, 빚까지 내가며 세계잉여금을 더 쌓자는 건 재정 운용 원칙은 물론 법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물론 추경예산을 짤 때 ‘돈이 있다’면 야당 설득하기에는 편하겠지만, 이자까지 물어가며 적자국채를 찍어 ‘세계잉여금’을 부풀려놓고, 이 돈을 추경으로 요청하는 것은 불법적 행태다. 그러니 김 전 부총리의 정무적 판단과 청와대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건전재정의 두 원칙과 국가재정법 위반이기에 ‘범법행위’이고, 재정 운용이 국가 운영의 기본이기에 그 기본에서의 일탈은 ‘국기문란’에 해당한다. 4조 원의 국채가 발행됐더라면 이자만 연간 1000억 원 냈을 거다.”
-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11월 15일 국고국이 ‘적자국채를 7조8000억 원까지 발행할 수 있지만 큰 무리가 따른다’고 보고하자 김 부총리는 ‘국가 부채 비율을 39.4% 위로 끌어올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왜 ‘부채 비율’을 꺼냈을까.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39.4%’라는 언급과 (신 전 사무관이 1월 1일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중) 차관보(조규홍 재정관리관)가 ‘핵심은 2017년 국가 채무 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겁니다’라고 한 걸 보면, 청와대가 국가 채무 비율을 높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신 전 사무관 등이 이 비율에 맞춰 적자국채 4조6000억 원을 발행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만들었을 거다. 내 생각에는 2017년 3분기 ‘깜짝 성장률’이 변수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 깜짝 성장률?
“2017년 추경안에 따르면, 그해 말 국가 부채 비율은 39.1%로 2016년에 비해 0.9%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10월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성장률(1.4%)이 예상치(0.8%)보다 훨씬 높게 나오면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2016년과 같은 38.2%로 ‘의도치 않게’ 떨어졌다. 2017년 국가 부채 비율이 너무 낮으면 임기 말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한 청와대와 기재부 책임자들이 ‘부채 늘리기’에 나섰다고 유추할 수 있다.”
- 임기 후반 부담 때문에?
“그렇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 부채 비율이 몇 %p 올랐다’는 식의, ‘나랏빚만 늘렸다’는 비판을 피하고 싶을 거다. 돈 쓸 데가 많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로 볼 때 초과세수는 ‘여유자금 비축’에 무게가 실린다.”
“적자국채 발행, ‘미수’여서 괜찮다니…”
- 결과적으로는 적자국채가 발행되지 않았다.“적자국채 발행 압박이 ‘미수’에 그친 건 맞지만 각 부처의 요청에 따라 시재금(時在金·지출하고 난 뒤 남은 돈)을 조율하는 신 전 사무관에게 그릇된 강요를 하고 ‘의무가 아닌 일’을 시킨 것은 따져봐야 한다. 전직 대통령 사건이나 최근 ‘김태우 사건’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게 ‘직권남용’ 아니었나.”
형법 제123조(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 신 전 사무관의 폭로로 ‘바이백 취소 사건’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2017년 11월 14일 기재부는 그달 22일 예정된 1조 원 규모의 국채 바이백(buy back·국채 만기 전 되사는 것)을 전격 취소해 시장은 혼란에 빠졌는데.
“이 건도 적자국채 발행과 맞닿아 있다. 이미 12월로 예정된 국채발행액(4조6000억 원)외에 추가로 수조 원대의 적자국채 발행이 검토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 예정대로 (11월 15일) 바이백을 실시하면 12월에 바이백 자금 조달용 국채를 그 금액만큼 추가 발행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채권시장 ‘비수기’인 12월에 예정된 국채 발행과 수조 원의 적자국채 추가 발행, 바이백 비용 조달용 국채까지 쏟아지면 채권시장은 어떻게 되나. 당연히 충격을 받을 거라고 보고 (바이백을) 취소했을 거다.”
- 시장참여자들이 보기엔 ‘황당한 이유’였다.
“물론이다. 설명도 없었다. 이 또한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바이백 취소’로 당일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급등했다. 일부 증권사 중개팀이 손절매하면서 채권시장 지표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1%에서 2.211%로, 5년물은 2.3%에서 2.417%로 뛰었다. 금리 0.001% 차이로 수억, 수십억 자금이 움직이는 시장참여자들은 황당했을 거다. 당시는 미국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채권 금리도 조금씩 상승세여서 바이백을 하면 시장 안정화에 도움을 줬을 거다. 예고나 설명 없이 전격 취소해 정부 신뢰도가 떨어졌다. 이러한 시장 교란에 의한 민간 부문 이익과 손실 교체는 누가 책임지나. 정부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은 결코 작은 잘못이 아니다.”
‘페카토 모르탈레’
- 기재부는 국고채 바이백 취소와 관련해 1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적자국채 추가 발행 여부 논의, 국채시장에 미치는 영향, 연말 국고자금 상황 등을 종합 고려해 불가피하게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구차한 변명이다. 결국은 국가재정법 내용의 엄중함을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내부 논의 자체가 일관성 있게 이뤄지지 못하는 거 같다. 그러니 전하려는 메시지가 불분명하고 설명 자체도 오락가락한다. 기재부와 청와대 당국자들의 해명이나 설명을 들을수록 더 혼란해진다.”
최 교수는 테이블에 놓인 국화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잠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잠시 뒤 그의 입에서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라틴어 ‘페카툼 모르탈레(Peccatum Mortale)’에서 유래한 이탈리아 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 라는 뜻이다. 중세 천주교에서는 ‘큰 죄’라는 의미로 사용하다가 점차 사회적 용어로 바뀌었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에 이 말이 나오면서 많이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죄’,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한 죄’를 일컫는다. 그만큼 큰 잘못이라는 얘기다.”
- 왜 그런가.
“예산을 낭비하고 방만 운영하는 건 국가를 파멸에 이르게 하고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죄’다. 그만큼 나랏돈 운용은 엄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작은 규모의 예산을 가진 나라는 효율적으로 자원 관리를 했지만, 국가예산이 방대하고 민간 부문에 원칙 없이 개입하는 ‘큰 나라’는 난관에 봉착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예산 규모를 줄이고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시금석을 놓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국가재정, 국채 관리의 중요성과 경각심을 크게 일깨웠다고 본다. 재정학자들의 논문 수백 편보다 큰 반향을 불러왔으니까.”
-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 지시로 ‘KT&G 사장 인사 개입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시절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사 개입(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연임)을 반대하는 등 갈등을 빚다가 2015년 10월 사임한 걸로 알려졌다. 청와대 인사 개입 문제는 어떻게 보나.
“이번 사건을 보면서 신 전 사무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나의 억울한 과거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사실 청와대와 정부가 공기업·공공기관 운영에 개입한다는 건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은 다른 문제다. 청와대가 정부 관할인 기업은행을 통해 ‘민간기업’인 KT&G의 사장을 바꾸려 한 건데, 기재부는 ‘안 된다’며 버텨야 했다. 기재부가 대응 방안을 만들고, 기업은행을 움직인 것은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할 대목이다. 이런 때에 압력을 받은 담당자는 난처하다. 나도 본부장 교체 권한을 가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서 교체를 결심했는데, 청와대 보좌진과 일부 정치인의 연임 압력에 저항하다가 자진 사퇴했다. 공공기관 평가와 기관장 평가에서 모두 ‘우수(A)’를 받았는데, ‘외압’으로 물러난 건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그때 외압에 휘둘렸다면 지금 나는 ‘신동아’ 인터뷰를 하고 있을까. ‘국립호텔’에 가지 않았을까. 진실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신재민 폭로’는 공직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아무도 ‘방울’ 달려고 하지 않으니…”
최 교수는 2017년 9월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퇴 배경에 대해 ‘글로벌 감각을 가진 본부장을 새로 뽑으려는데 정치권에서 대통령의 뜻을 팔아서 장난을 쳤다’고 주장했다. 홍 전 본부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 투자위원들에게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즈음 기자는 국민연금으로 화제를 돌렸다. 지난해 8월부터 논란이 된 국민연금은 문 대통령의 ‘국민 눈높이에 맞춰라’는 지시를 받고 보건복지부가 ①현행 제도 유지 방안 ②기초연금 강화 방안 ③소득대체율 45%와 보험료율 12% 방안 ④소득대체율 50%와 보험료율 13% 방안의 4가지 대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현 제도는 올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생애평균 소득대비 연금지급률) 44.5%에서 4매년 0.5%포인트 내려가도록 해 2028년에는 40%가 된다. 40년 동안 꼬박 부어야 평균 소득의 40%를 받을 수 있다. 20년 가입했다면 평균 소득의 약 25%를 받는다. ‘용돈 연금’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 4가지 안 중 몇 번이 정답인가.
“4지선다형 문제를 출제했지만 정답이 없는 ‘출제자의 오류’다. 정부안 목표는 공적연금을 통한 최저 노후생활 보장인데, 노후소득보장 강화와 재정안정화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지가 빠졌다. 재정안정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빠졌는데, 기금 소진을 늦추고 미래세대 보험료 부담을 덜어줄 방안이 빠진 건 치명적 약점이다. 지난해 12월 (국민연금심의위원회 공익대표인) 김수완 강남대 교수가 ‘재원 고갈 예방 방안이 반영되지 않은 안을 심의할 수 없다’며 사퇴했고, 앞서 9월에는 ‘재정 안정 방안이 빠졌다’며 오건호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이 사퇴하지 않았나.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끊임없이 국민연금에 핵폭탄을 던지고 있는데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
- 최 교수가 생각하는 ‘방울’은 뭔가.
“현재 연금 수급액과 보험료 지급액의 소득배율은 1.8인데, 소득배율이 평균 1이 돼야 한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 외에 대안이 없는데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에 훨씬 못 미치는 9% 보험료율을 매년 0.5%씩 올려 2030년경까지 20%로 올려야 하고, 이를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경제 문제없다니…유아독존 프레임”
2018년 1월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신년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작금과 같이 성장과 분배 그리고 여타의 모든 지표에서 빨간 불이 켜지는 것은 초유다. 활력이 넘쳐야 할 기업이 탈진했고, 수동적 입장이어야 할 정부가 ‘만용(蠻勇)의 칼’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문제 해결사가 되기는커녕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다. 대통령이, 장관이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기업가들의 역할과 어려움을 인지하고 어떻게 도와줄지, 어떻게 하면 방해하지 않고 핍박하지 않는지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 문 대통령은 12월 31일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했고, 1월 8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는 “2기 경제팀은 현장에서 답을 찾아라”고 강조했다. ‘경제 실패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나.
“‘프레임’인지 ‘현실’인지는 당장 점심 때 ‘국숫집’에만 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과 참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우주에서 온 외계인 같다.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프레임으로만 세상을 보는 건가. 문 대통령은 (2018년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가장 높은 편’ ‘세계가 우리 경제성장에 찬탄을 보내고 있다’고 하다가 ‘대외 여건 악화로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책을 강구해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대통령이 ‘저성장이 고착화된다’는 식으로 전망해서야….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면 옛날 방식으로 회귀하자는 거냐’(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 ‘경제위기론을 앞세운 기업 기(氣) 살리기 요구가 개탄스럽다’(김현철 대통령경제보좌관)고 말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개탄스럽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는 소득주도성장이론이 아니라 정통 경제이론에 바탕한 정책으로 성공을 손에 쥐었고, 문재인 정부가 이어받은 한국 경제도 그 기적의 결과다. 이를 부인하고 ‘적폐’라는 이름으로 비하하는 건 오만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도 그렇다. 정책 우선순위가 모호하고, 정책 목적과 수단 간의 부조화 문제가 심각하다. 오히려 일자리를 없앤 주범은 소득주도성장 아닌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54조 원을 퍼부은 결과치곤 일자리 성적표는 또 어떤가.”
-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비행사가 조종을 할 때는 자신의 감각이 아니라 계기판을 믿어야 한다. 하늘에 올라가면 전후좌우 분간이 안 돼 감각은 믿을 만한 게 못된다. 사막을 건널 때도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을 따라가야 된다. 경제정책의 계기판, 나침반은 시장과 경제원리다. 동서고금 성공한 나라는 시장에 순응하고 경제원리를 존중하면서 경제적 기적을 일궜고, 국민 모두가 그 과실을 향유했다. 결국 정책 기조를 친시장적으로 잡고, 정책 우선순위를 제대로 책정하고, 정책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이 적절히 강구되어야 한다. 우선순위는 기업 투자활성화에 맞춰야 한다. 국내 자금이 국내에 머물게 하고, 세계 자본과 기술이 투자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잘나가는 나라는 그 나라 전체가 경제특구인데, 우리는 몇몇 지역에 특구를 만들어놓고도 그 민낯을 들여다보면 ‘보통구’와 다름없다. 대통령은 이룰 건 다 이뤘다. 이젠 역사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다 보니 앙금도 있겠지만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도 즐겁게 보듬고, 신 전 사무관 같은 젊은이도 감동할 정도로 안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한반도 최대 적폐’로 꼽는 북한 김정은은 ‘친구’라고 하면서 국민은 왜 포옹하지 못하나. 포옹해야 역사에 남는다.”
1. ‘신재민 사건’ 정리
적자국채, 바이백, KT&G 인사 개입… 3大 미스터리 수면으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폭로한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2017년 11월 세수가 많이 걷히고 있는데도 당시 청와대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가로 적자국채(예산 부족을 메우기 위해 발행하는 빚) 발행을 시도했다는 것, 이와 연관해서 1조 원의 국채를 ‘바이백(buy back·국채 만기 전 되삼)’하겠다고 했다가 예고 전날(11월 14일) 전격 취소했다는 것, 그리고 2018년 2월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을 동원해 민간회사인 KT&G 사장 연임 저지에 나섰다는 의혹이다. 이를 두고 기재부는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했다’며 신 전 사무관을, 시민단체는 ‘신 전 사무관은 내부고발자’라고 주장하며 기재부를 고발하며 진실 검증은 검찰의 손에 맡겨졌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와 기재부 해명을 종합해보면, 2017년 11월 14일 오전 당시 기재부 조규홍 재정관리관(차관보)은 김동연 부총리에게 초과세수를 이유로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보고했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오후 조 차관보와 박성동 국고국장, 이상규 국채과장, 신재민 사무관 등 4명이 함께한 보고에서도 김 부총리는 조 차관보에게 ‘“정무적 판단을 못 하느냐”며 화를 냈다. 김 부총리가 말한 ’정무적 판단‘은 △정권 말기로 갈수록 재정 역할이 커지는데 자금을 미리 비축해둬야 한다는 것 △적자국채 발행을 하지 않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을 너무 낮추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신 전 사무관이 1월 2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핵심은 2017년 국가 채무 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겁니다’고 말한 조 차관보의 대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공교롭게도 이날 ’4인방‘이 부총리 보고에 들어가기 직전, 채권시장 마감(오후 3시 30분) 직전에 ’기재부, 국고채권 매입(바이백) 취소 공고‘ 속보가 떴다. 이미 10월 말 공지된 1조 원 국고채 매입이 전격 취소되자 채권시장 금리는 급등했다. 정부에 팔려고 국고채를 모아놨던 채권 딜러들이 대거 매도에 나서자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리는 연중 최고치 (10년 만기 2.619%, 3년 만기 2.211%)를 기록하며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김동연 “종합 고려했다”…채무 비율, 바이백엔 침묵
조 차관보 등 4명은 다음 날(11월 16일) 다시 부총리 보고에 들어가 “7조8000억 원까지 적자국채를 발행할 수 있지만 무리가 따른다”고 했고, 김 부총리는 “GDP 대비 채무 비율을 39.4% 이상 맞추라”고 지시했다. 신 사무관은 이 수치에 맞춰 적자국채 4조6000억 원을 발행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결국 적자국채는 국고국의 설득으로 발행되지 않았고, ‘1조 원 규모의 바이백’도 11월 22일 시행했다.
11월 23일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직후에는 당시 차영환 대통령경제정책비서관이 기재부 국고국 박성동 국장과 선우정택 과장에게 전화를 해 보도자료 배포 취소를 압박했다는 게 신 전 사무관의 목격담이다. 보로자료 취소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차 비서관은 박 국장 등에 연락해 추가 적자국채 발행 계획 수립을 요구했고, 신 사무관은 상부 지시로 24일 ‘적자국채 추가 발행 검토’ 페이퍼를 작성했다. 그러나 결국 적자국채 추가 발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1월 2일 신 전 사무관의 기자회견 이후 김 전 부총리는 1월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제기된 이슈들도 국채뿐 아니라 중장기 국가채무, 거시경제 운영, 예산 편성과 세수 전망 등을 고려해야 하고, 국고국뿐만 아니라 거시, 세수, 예산 담당 부서의 의견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채무 비율 39.4% 이상 맞추라‘는 발언과 1조 원 규모의 바이백을 전격 취소한 이유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2. ‘신재민 사건’ 후폭풍… 술렁이는 공직 사회
“오히려 잘됐다…투명한 공직 사회로 가는 ‘성장통’”
[김도균 기자]
정부 부처의 A국장은 “각종 ‘블랙리스트’ 사건과 ‘신재민 사건’의 핵심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무형의 견제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라며 “두 사건은 결국 공무원 자신이 부당한 지시를 견디고 막아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정의에 민감하고 불합리한 지시에 맞서는 젊은 세대의 바뀐 문화도 배경이 됐을 것”이라며 “이런 사례가 쌓이면 서서히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지켜질 것”이라고 했다.
B과장은 “선배들이 못 한 일을 신 전 사무관이 해줘서 응원하고 싶다. 국민들도 왜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됐을 것”이라며 “그동안 청와대나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에 주변 사람과 조직이 다칠까봐, 혹은 ‘너만 잘났느냐’는 소리를 들을까 ‘속앓이’를 한 적이 많았는데, 이번 사건이 공무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고위 임원 출신의 C씨는 “최근 청와대를 나온 한 인사는 청와대 시절 자신의 지인들을 곳곳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려고 해 말을 못 할 지경인데, 이번에 신 전 사무관 사건을 보고 나도 ‘유튜브 고발’을 고민하고 있다”며 “예술 관련 일을 하는 공무원들은 정부지원금에 의존하는 습성이 있고, 예술과 사업 유지를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야 하니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제목만 바뀔 뿐 기본 생태계는 변하지 않는다. 기관 독립, 전문성에 따른 인사·심사가 지켜지지 않으면 제2, 제3 신재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한 사무관은 “기재부가 새해 벽두부터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다음 날(1월 2일) 신 전 사무관을 고발한 것은 그만큼 ‘신재민 사건’ 대응이 다급했기 때문”이라며 “젊은 사무관들은 부당한 지시에 ‘왜 따라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다. 부당한 지시에 참고 있지는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신 전 사무관이 봤을 때는 공명정대를 표방한 현 정부가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불합리한 지시를 하니 ‘권력기관 갑(甲)질’로 받아들였고, 그동안 참다가 일종의 ‘행동화(acting out)’로 나타난 거 같다”며 “복종의 의무, 비밀엄수주의 등을 이유로 수동적으로 끌려갔던 관료들도 '외부 요인'(신재민 사건)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문화는 공유하는 의식이고, 이러한 문제 제기 ‘관(官) 문화’가 공유된다면 언제든 ‘미투’ ‘공투’는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부연했다.
최 광
● 1947년 경남 남해 출생
● 부산고, 서울대 경영학과졸업
●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공공정책학 석사,메릴랜드대 대학원 경제학박사
● 공인회계사 합격(1969)
● 미국 와이오밍대 경제학과조교수, 한국외대 경제학과교수
● 한국조세연구원장, 보건복지부장관(김영삼 정부)
● 국회예산정책처장(노무현정부)
● 국민연금공단이사장(박근혜 정부)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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