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특집 | 김정은의 핵 군축 도박 |

‘선출자 이론’으로 본 北 김정은 정권의 운명

“생존 가능성 높이는 核도발 멈출 이유 없어”

  • 이한희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연구교수

    hanhee7@sm.ac.kr

    입력2019-01-23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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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리연합<핵심지지층>’ 보상해주면 정권 유지…민생경제 중요치 않아

    • 측근들의 갑작스러운 강등, 숙청은 고도의 전략

    • 도발은 ‘훌륭한’ 전략적 선택…美와 ‘경제 담판’ 연출 가능성

    • 현재는 ‘탈북’과 ‘쿠데타’ 중간…‘쿠데타’ ‘붕괴’ 상황 가장 우려

    [뉴시스]

    [뉴시스]

    북한이 20년 넘게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지만, ‘김씨 가문’은 꿋꿋이 정권을 유지해왔고,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지도 어언 7년이 지났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후 경제난이 지속되고, 무자비한 숙청과 엘리트층의 탈북, 국제사회의 제재 등이 잇따르면서 북한 정권의 유지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것도 ‘제재 탈출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신년사를 하는 모습도 정권 안정 과시용 연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출자 이론(Selectorate Theory)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왼쪽),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 [뉴시스]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왼쪽),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 [뉴시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김정은 정권은 어떨까. 정권 유지가 어려워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 나서는 걸까.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에 이어 최근 알려진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의 잠적은 북한 정권의 안정성이 흔들렸기 때문일까.

    정권 안정성을 보는 여러 잣대 중 ‘선출자 이론(Selectorate Theory)’이 있다. 미국 뉴욕대 석좌교수이자 미 정부 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해온 부에노 데 메스키타(Bueno de Mesquita) 박사가 주도해 만든 대표적인 정권 안정성 측정 모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느 국가든 두 개의 집단이 최고 지도자의 정치적 생존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하나는 모든 정체(政體) 내에 자리하고 있는 ‘선출자 집단(selectorate)’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선출자 집단에서 나온 ‘승리연합(winning coalition)’이다.

    선출자 집단은 말 그대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집단으로 ‘명목 선출자 집단’과 ‘실질 선출자 집단’으로 나뉜다. 승리연합은 지도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지지 집단이다. 가령, 한국 대선(大選)에서 명목 선출자 집단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19세 이상 유권자이고, 실질 선출자 집단은 그중 실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승리연합은 이들 중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인데, 지난 정부는 보수핵심 및 친박(친박근혜) 세력, 현 정부의 경우는 진보핵심 및 친문(친문재인)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의 대전제는 ‘최고 권력가의 가장 큰 목적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승리연합(적극 지지세력)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거나, 합법적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자리, 각종 법적 특권 같은 사적재(私的財)를 공여하거나 그와 같은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그 목적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특히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은 승리연합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지 대중을 관리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북한 정권에 선출자 이론을 들이대면, 김정은이 왜 그토록 잔인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핵심 측근들을 관리했고, 이들이 정권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어떻게 활용돼왔는지 조망할 수 있다.


    권력승계를 위한 장치

    1948년 김일성은 소련과 손잡고 북한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뒤 46년간 국가를 통치하고 1994년 아들 김정일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잘 알려진 대로 김정일의 권력승계 작업은 오랜 기간 사상적, 정치적, 법적, 제도적 장치를 단계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잘 짜인 각본에 맞춰서 이뤄졌다.

    반면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이런 사례에 비해 갑작스럽고 무계획적이었다. 김정은은 2010년 북한인민군 대장,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전격 임명됐고, 이듬해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 직후 최고 지도자로 등극했다. 2009년 1월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한다는 교시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필자가 만난 고위급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서 김씨 가문의 통치는 상수(常數)이며 단지 누가 통치할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김정은은 집권 초기(2012년) 자신의 권력 승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당의 공식 사상으로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채택했고, 2013년에는 ‘백두혈통’을 기반으로 하는 김씨 가문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아가 모든 과업은 ‘당의 유일적 지도’하에 ‘당 중앙’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그리고 스스로 당 중앙의 자리를 차지했다. 즉, 이제 북한은 김씨 가문의 국가이고 김정은이 당을 통해 통치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도 김정은은 왜 스스로가 최고 지도자가 돼야 하는지 증명하지 못한 채 권력을 승계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집권 초기 김정은은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정치적 생존, 나아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전략이 필요했다.


    김정은 정권의 승리연합

    2010년 10월 10일 평양 시내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퍼레이드를 참관한 김정일·정은 부자. [신화=뉴시스]

    2010년 10월 10일 평양 시내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퍼레이드를 참관한 김정일·정은 부자. [신화=뉴시스]

    다시 선출자 이론으로 돌아가보자. 선출자 이론은 민주정권, 독재정권 등 다양한 정체(政體)를 승리연합과 선출자 집단의 규모 차이로 구분하는데, 독재정권은 대규모 명목 선출자 집단(유권자)과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실질 선출자 집단(투표자), 그리고 특별히 작은 규모의 승리연합(적극 지지층)으로 구성된 정권이다. 독재정권은 소규모 승리연합에 의지하기 때문에 승리연합 구성원을 선출자 집단 누구와도 손쉽게 바꿀 수 있다. 또한 승리연합에서 이탈할 경우 모든 특권과 사적재(私的財)를 전부 잃기 때문에 정권에 충성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 따라서 독재자의 생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선출자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최소 4개의 기준으로 그 사회의 인적 구성원을 구분한다. 첫째는 개인적 출신과 가문, 혈통. 둘째는 개인의 특별한 기술과 지식, 능력. 셋째는 경제적 부(富)의 규모. 넷째는 성별과 연령이다.

    북한에도 3개의 엘리트 집단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집단은 김씨 가문 일가와 김일성과 함께했던 항일 빨치산 후예들이다. 두 번째 엘리트 집단은 항일독립운동가 일가와 친인척들인데, 김일성·김정일 정권은 사실상 이들 두 집단과의 공동 정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세 번째 집단은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친인척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다.

    이들 3개 집단이 북한의 실질 선출자 집단(투표자)과 승리연합(적극 지지층)을 구성하는 파워 엘리트들이다. 현재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국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데, 대다수 승리연합 인사도 당 내에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김정일 사망 직전이던 2011년과 김정은 정권 시기인 2016년 조선노동당의 핵심 권력기구 소속 인사들을 비교해보면 주요 권력기관 인사 대부분이 교체됐고, 그 규모가 눈에 띄게 축소된 것이다. 이는 옛 승리연합 구성원의 교체와 규모의 축소를 의미한다. 인사관리는 통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지만 김정은은 그간 주요 인물들을 갑작스럽게 승진, 강등, 교체, 숙청해왔다. 이러한 독특한 인사 방식에 대해 김정은의 포악함, 정권 불안정성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선출자 이론으로 분석해보면 대단히 계획적이고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김정은 숙청이 잔인한 이유

    김정은의 숙청은 그 방식에서 과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그 범위가 대단히 넓고 지위 고하와 출신을 불문하며, 숙청 빈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그 방식은 지극히 잔인하고 공공연하다. 이러한 숙청 방식에 대해 선출자 이론은 다음 세 가지로 규정한다. △승리연합 구성원의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해 숙청으로 규모를 줄이고 선출자 집단 규모는 유지하는 방식 △승리연합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승리연합 규모는 유지하면서 선출자 집단 구성원들을 제거하는 방식 △누구라도 숙청 대상이 된다는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 두 집단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 그 것이다.

    김정은은 이 중 세 번째 방식을 택한 것이다. 또한 사회 전반에 자신에 대한 의구심 자체를 차단하고, 모든 국가 조직을 자신의 영향력하에 두었다. 최룡해의 승진, 강등, 투옥, 복권, 그리고 장성택의 공개 체포, 공개 처형 등을 통해 약한 권위와 부족한 사상적·정치적 배경을 보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김정은이 곧 국가인 시대’가 도래했을까. 선출자 이론으로 분석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장성택 처형은 승리연합 합작품

    2013년 12월 12일 특별군사재판에 나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출처·노동신문]

    2013년 12월 12일 특별군사재판에 나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출처·노동신문]

    독재자의 통치전략은 권력 쟁취, 죽을 때까지 권력 유지, 국가 자산 최대한 장악으로 나뉜다. 독재자는 집권 초기 가장 큰 위기를 겪는데 그 이유는 국가 자산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누구의 정치적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집권했고, 앞서 언급한 여러 약점으로 인해 권력층 내에 그의 집권을 둘러싼 의구심이 상당히 컸다.

    선출자 이론에 의하면 당시 김정은은 소위 ‘도전자’의 입장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도전자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현직 최고 권력자를 제거하거나, 국가 핵심기관을 장악하거나, 권력을 유지할 만큼의 충분한 핵심 지지세력을 확보해야 한다. 김정은의 경우 부친 사망으로 최고 권력자는 ‘자동으로’ 제거된 상태에서 장성택의 숙청으로 나머지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과 새로운 승리연합 간의 전략적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집권 초기 김정은은 위기였지만 반대로 기존의 승리연합에는 생존이 절박한 때였고, 새로운 승리연합이 되려는 자들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즉 상호 ‘딜(거래)’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주요 자원의 소재와 관리방법, 그리고 내각과 주요 경제기관들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장성택은 김정은 연설에 대해 건성으로 박수를 치는 등 종종 김정은을 경시하면서 마치 ‘내가 실권자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장성택은 김정은의 정치적 생존에 최대 걸림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충성심을 입증하고 새로운 승리연합에 진입할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핵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 등으로 심화되는 경제난과 김정은 정권의 상관관계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선출자 이론에 따르면 국가의 경제 위기는 최고 권력자가 정치적 충성심을 살 수 있는 자원을 고갈시키기 때문에 정치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 경제난 역시 김씨 정권에 큰 위협 요인이었지만, 김씨 정권은 그간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경제난을 교묘하게 피해왔다.


    독재자의 합리적인 조치

    우선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금권정치’를 잘 활용해왔는데, 이를 위한 재원은 불법적인 외화벌이 활동으로 충당했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2002년 김정일 정권은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발표하면서 배급제를 중단하고 각급 농장과 공장에 자체 운영권을 부여했다. 생산품도 국가의 몫을 제외한 나머지는 재량껏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12년 김정은 정권도 이와 유사한 ‘6·28 조치’를 발표했고, 더 나아가 경제 전반에 만연한 시장화도 방치하고 있다. 선출자 이론에 따르면 북한의 독재자들이 이렇게 경제를 운영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위기가 심각하더라도 핵심지지층을 보상할 여력만 있고 경찰, 군인 등의 물리적 강압력을 장악하고 있다면 독재자에게 큰 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즉 이러한 조치들은 만성적 물자 부족 상황에서 주민들의 생활경제는 방치하고 궁정(宮廷)경제와 군(軍)경제와 같은 전략 부문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또한 김정은은 당적 지도라는 제도를 강화함으로써 승리연합(적극 지지층)이 시장에서 스스로 이권을 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의 저항, 즉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왜 불가능했을까. 북한이라는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sultan cum totalitarian regime)’에서는 사회의 모든 부문이 절대 권력자의 전제적 간섭 대상이 된다. 그리고 절대 권력자가 메시아적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회적 믿음을 기반으로 통치 이념을 만들고 물리적 강압력으로 국가를 통치한다. 강압력은 정치적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모든 개인 간 조직 간 통신을 통제한다.

    물리적 강압력의 효과는 정치적 효험, 의도적인 무관심, 독립된 통신 네트워크의 존재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적 효험(political efficacy)’은 자신의 행동이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개인의 믿음이다. 그런데 물리적 강압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대중은 정치적 효험을 잃고 자구책으로 ‘의도적인 무관심(deliberate indifference)’을 표출한다. 여기에 통신 네트워크가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면, 통신수단을 통한 대중의 교신, 결사, 집회는 제한된다.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2010년 아랍의 봄, 가깝게는 2017년 한국의 촛불시위로 인한 정권교체도 모두 정치적 효험과 자유롭고 독립적인 통신 네트워크가 있었고, 물리적 강압력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한 사회는 상호 불신으로 인해 협력보다는 서로에게 불리한 상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소위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과 전쟁에 대해서도 선출자 이론은 시사점을 던진다.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de facto nuclear state)’이라고 할 만큼의 수준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진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한 상태에서 재래식 무기로 한국을 공격한다면?

    우선 한미 연합 군사적 대응으로 많은 북한군 사상자가 나더라도 김정은 정권에는 큰 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소규모 승리연합에 의존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아무리 피해가 크더라도 물리적 강압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승리연합에 보상할 자원만 확보돼 있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정은 정권은 소위 핵 대(對) 핵 대응이 가능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달성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면전 발생은 쉽지 않다.


    핵무기 개발의 목적

    중국도 대규모 선출자 집단과 소규모의 승리연합으로 정권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정권의 생존을 위해 북한과 유사한 스탠스를 취한다. 즉 중국은 전쟁에 참여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방어 성격의 전쟁일 경우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미국은 대규모 승리연합에 의존해 유지된다. 따라서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강한 확신 없이 섣불리 전쟁을 일으키기 어려운 구조다. 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면 곧이어 불어닥칠 국내 정치적 후폭풍과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에 대한 우려도 크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지난 20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으로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렀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고 아프간 철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상황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재래식 무기는 북한의 핵무기 앞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으며, 미국 전략자산의 한국 내 배치는 중국과 충돌할 가능성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국내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벌어진 상황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강력한 군사도발은 김정은에게 가장 취약한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권위를 만들어줄 수 있는 훌륭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핵으로 인해 경제 담판도 가능하다. 김정은이 지난 몇 년간 일련의 도발 이후 최근 트럼프와 직접 담판 짓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즉 김정은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 가능성을 더욱 높여줄 핵 도발을 멈출 하등의 이유가 없다.


    김정은 정권의 미래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의 미래는 어떨까. 김정은 정권의 미래는 선출자 집단과 북한 주민들의 충성도 수준에 따라 △현 상태 유지 △탈북 △쿠데타 △붕괴라는 4개의 시나리오로 예상할 수 있다. <그림 참조>

    이에 따르면 현 상황은 선출자 집단과 주민들의 충성도 모두 조금씩 하락한 ‘탈북’과 ‘쿠데타’의 중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김정은 정권은 현 상황이 ‘쿠데타’ 또는 ‘붕괴’ 상황으로 바뀌는 것을 가장 걱정할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그간 새로운 승리연합 구축 및 전략적 공생관계 수립, 승리연합 규모 축소, 독특한 인사, 금권정치, 공포통치 등을 강화해왔다. 만성적 물자 부족 상황에서 민생경제보다는 승리연합을 보듬는 데 주력해온 것이다. 요컨대 김정은 정권은 물리적 강압력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군사력 증강과 대외적 위신 제고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생존 가능성을 높여왔던 것이다.

    다만 김정은 정권이 언제까지 독특한 인사와 공포정치에 의존해서 유지될 수 있을지, 나아가 언제까지 승리연합에 대한 김정은 자신의 연성권력(soft power) 또는 경성권력(hard power)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이러한 통치 스타일이 지속되는 한 승리연합 또는 선출자 집단의 개인, 집단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대체자를 찾고 사적재를 담보받으려고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


    ※ 이 기사는 2018년 Japanese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誌에 실린 저자의 논문 ‘Analyzing the political survival prospects of Kim Jong-un’s North Korean regime through the framework of selectorate theory’를 발췌 보완한 것임.



    이한희
    ● 1971년 출생
    ●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박사
    ● 킹스칼리지런던대 개발학 박사과정
    ● 前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前 세계은행 북한개발지원 기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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