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前 민주노총 정책통이 본 노조운동과 한국 경제

기득권 노조와 겁먹은 재벌, 이념팔이 정치가 경제 망친다

  • 이수봉 인천경제연구소장·前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lsb4581@naver.com

    입력2019-02-07 08: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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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사노위 문성현, 과거엔 노사정 참여 반대

    • 민주노총, 임금 극대화가 진보라고 믿어

    • 이중노동시장, 민주노총 기반 기득권에 가둬

    • 지대 추구하며 노동계에 설교하는 주류 세력

    • IMF 후 과감한 투자에 겁먹은 재벌

    • 노동계, 지대 추구 멈추고 약자 보호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1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및 본위원회 1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문 대통령, 손경식 경총 회장,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민주노총은 불참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1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및 본위원회 1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문 대통령, 손경식 경총 회장,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민주노총은 불참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위원장에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임명됐다는 소식과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소식에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내 그럴 줄 알았다! 이쯤 되면 돗자리 깔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10여 년 전 예측이 그대로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문 위원장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민주노총의 노사정 참여를 반대한 세력의 핵심 지도부였다. 필자는 2005년 당시 민주노총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노사정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측에 서 있었다. 2005년 1월 당시 민주노총 사무처 간부들은 노사정 참여 결의를 위한 대의원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진입하려는 200여 명의 조합원을 몸싸움을 벌이며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회의장은 반대세력에 점거당했고 누군가 뒤에서 두 팔로 필자를 감싸 안아 꼼짝 못하게 했다. 반대파가 소화기를 분사해 하얀 가루가 마치 밀가루처럼 몸을 덮었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무산을 주도했던 핵심 지도부 중 문성현 위원장이 있었다. 이때 그는 금속연맹 소속이었다. 필자는 당시 문 위원장에게 “나중에 세월이 흘러 당신이 노사정위원장이 되고 그때 민주노총이 불참하면 어떨지 한번 보자”고 ‘저주’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야 항상 존경하는 동지이지만 당시에는 조직 논리를 넘어설 수 없었을 것이라 이해한다.


    “고액연봉 조합원들이 머리띠 매고 투쟁”

    1995년 11월 11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 모습. [동아DB]

    1995년 11월 11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 모습. [동아DB]

    이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문제는 어렵다. 민주노총의 딜레마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민주노총의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대 추구형 기득권 계층에 속하게 됐다는 점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상위 10% 계층에 진입하기 위한 경계소득은 연소득 5141만 원이다. 여기에는 대기업, 금융권, 공기업 정규직 수준의 연봉자들이 주로 해당한다.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이들이 초기 민주노총의 중심 세력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들이 기득권화한 것에 반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보건의료노조나 서비스연맹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일부 산별조직을 제외하면 이런 인식에 항변하기도 어렵다. 1987년 당시에는 대기업 내 임금인상 투쟁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임금 동반 인상 효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업별 체제에서 임금 극대화 전략은 임금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영세 상인들의 불만, 지역건설노조의 충돌 등 일상적 사건으로 빚어지는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이런 반발을 보수 언론의 공작에 우리 국민이 세뇌된 결과라고 치부한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의 정규직 조합원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임금 극대화 전략이 ‘진보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자본과 정권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비해 합리화시킨다. 고액연봉 조합원들이 머리띠 둘러매고 투쟁을 외치는 모습도 어색하다.


    “구호만 급진적”

    물론 강력한 재벌엘리트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 주류 세력들이 노동계에 설교하는 모습은 더 기이하다. 이들은 스스로 지대추구 전략에 몰두하고 모범도 보이지 못하면서 귀족노조를 탓하고 케케묵은 ‘빨갱이론’을 꺼내며 민주노총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일부 고위 공무원과 보수 정치인의 실언 즉 ‘국민은 개, 돼지 혹은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 등의 해괴한 발언은 우연이 아니다. 보수 세력이 정말 노동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전체 맥락 속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현실에서는 ‘어색한 놈’과 ‘기이한 놈’의 싸움이 노사관계의 근본적 해결을 막고 있다. 노사 간 진짜 싸움은 저 높은 굴뚝 고공농성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용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법원에서, 그리고 정말 일자리가 없어 아침에 허허로운 발길로 전철을 헤매는 실업자들의 불안한 눈길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꼬인 노사관계의 실타래를 풀려면 노사 공히 진짜 싸움의 현장에 터를 잡고 그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또 다른 딜레마와 마주해 있다. ‘관념론’이 누적돼 노동운동의 전망(미래 비전)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필자는 1984년부터 인천의 용접, 프레스, 주물공장 등 하루에 한 번씩은 피를 보는 작업장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80년대 후반 학생활동가들이 공장에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 소위 NL(민족해방) 아니면 PD(민중민주) 노선을 따르는 정파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동자들을 각성시켜 혁명 전위대로 만든다는 패기가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미숙련공이었을 뿐이었다. 조급히 노조를 만들다 ‘왕따’ 당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나마도 소련이 망하면서 많은 학생 출신 취업자가 삶의 노선을 바꿔 고시를 준비하거나 학원으로 돌아갔다. 한국 사회를 거시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사회구성체 논쟁은 봄바람에 눈이 녹 듯 사라졌고 그 자리를 자유주의가 채웠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인의 독백은 쓸쓸한 가슴에 더 큰 구멍을 냈다.

    노동 현장에서 버티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에 대거 들어가 고군분투했다. 대중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민주노총 내부는 상대적으로 정파활동 자체를 부정하고 대중 정서를 고려하는 국민파(NL계열)와 상대적 급진계열인 중앙파(PD계열), 가장 급진적인 현장파(PD계열)로 나뉘게 됐다. 문 위원장은 이른바 중앙파에서 활동했고 필자는 국민파에 속했다.

    노동운동 핵심 정파들의 이론적 수준이 곧 민주노총의 수준이었다. 1987년 초창기의 혁명적 열기는 가라앉고 관성적 사업 방식이 점점 일상화됐다. 파업은 형식에 그쳤고 집회는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다. 구호는 급진적이지만 실제 행동은 임금 극대화 전략으로 일관했다.

    정파 지도부의 정세관은 관념적이었다.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의 일반 모순 혹은 미국 제국주의의 주요 모순으로 환원하고 신자유주의를 만악의 근원으로 파악했다. 이는 노사 간 야합에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직원 채용 시 노조 자녀 우선 채용 같은 전근대적 조항은 그것을 요구하는 노측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측 모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 라인 내에서 반값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모순 역시 기득권 노조와 사측의 타협에 의해 강화된다.

    필자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던 2008년 기본소득론을 제기한 건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임금 극대화 전략이 결국 기업별 이기주의를 강화하고 민주노총을 고립시킬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시급히 노동운동 철학을 재정립해야 했다. 4차산업으로 이행하는 변화 앞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주장해서는 노동운동도 수동적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결국 민주노총의 조직적 기반을 기득권층에 가두게 될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자 미래 비전은 직무급제 전환과 기본소득제를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다. 이를 위해 추진했던 노사정 대화의 가장 큰 내부 장애는 현장파와 중앙파의 소아병적 관념론이었다.


    “과감한 비겁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국 경제를 두고 ‘국가비상상태에 빠져 있고 그 핵심은 20년간 쌓인 투자 부족과 신기술 부족으로 주축 산업이 붕괴한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한국은 투자 부족이 아니라 투자 과잉이라 할 정도의 상황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투자율은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연구개발(R&D) 투자도 상위 5위권에 속한다. 문제는 투자 부족이 아니라 투자의 성격과 효용성이다.

    도대체 왜 한국은 투자효용이 낮은 것일까.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한국 GDP의 30% 정도가 투자인데, 절반이 효율성 낮은 건설 분야에 몰려 있다고 말한다. 또 대기업의 자본집약적인 설비투자, 비효율적인 지적 자본투자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런 투자만 하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답은 투자에 ‘정신(기업가정신)’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를 논하는데 뜬금없는 ‘정신 타령을 하느냐’고 타박할 사람이 많겠지만 한국 경제를 깊이 들여다본 나름의 결론이다. 한국의 재벌은 외환위기 한 번 맞고 나서 ‘겁쟁이’가 됐다. 과잉투자라고 욕먹긴 했지만 외환위기 이전에는 세계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겁 없이 세계시장에 덤비던 대우가 있었고 그 외에도 많은 도전적 기업이 있었다.

    그런데 선진국 자본의 처지에서 볼 때 한국 기업들은 이제 보호 대상이 아닌 경쟁 대상이다. 선진국 자본은 미국에서 공부한 주류 경제학자들을 총동원해 시장경제론을 설파하면서 담론적 헤게모니를 확보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만들어준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을 팽개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갔다.

    초등학생이 대학생에게 맞고 있는데 초등학생 부모가 대학생 편을 들고 있으니 초등학생은 이제 혼자 알아서 영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세계관’을 갖게 됐다. 한국의 재벌은 투자는 하는데 겁이 나서 함부로 선진국 자본에 덤비지 않았다. 투자 리스크를 비정규직이나 하도급 구조에 최대한 떠넘겼다. 이에 부동산 개발이나 중소 영세기업의 영역을 침범하고, 내부거래에 집착하는 방어적 기업전략이 대세가 됐다.

    이러다 보니 지표상 투자는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 투자가 경제 발전에 도움 되지 않는 모순이 나타났다. ‘과감한 비겁함’이라는 형용모순이 성립한 셈이다. 즉 ‘기업가 정신’이 겁먹은 게 비효율적 투자의 원인이다. 기업인들은 정치도 노동자도 이해해주지 않는 절박한 처지에 놓였다. 이에 이들은 안이한 지대추구형 구조에 빠져들었다.


    “이념·갈등팔이 정치권력”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왼쪽)이 2018년 4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제2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앞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왼쪽)이 2018년 4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제2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앞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런 경제구조에서 정치는 문제를 더 키웠다. 정치의 고비용 구조와 후진적 정당 시스템은 기업의 지대추구 전략에 기생했다. 기득권 구조에 편승해 기생한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감추는 방법은 치열하게 싸우는 척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비토그라시 즉 ‘거부권정치’가 일상화됐다. 상대 정파의 정책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게 한국 정치의 생존조건이 됐다.

    한국에서 양당 구조가 유지되는 비법은 바로 ‘척’에 있다. 싸우는 척, 무슨 이념이 있는 척, 서민을 대변하는 척하면서도 기득권 체제의 본질적 이해관계를 건드리지 않도록 선을 잘 타는 것이 한국 정치의 ‘묘미’다. 당권을 쥔 자는 당내 민주주의를 교묘히 회피하며 기득권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공천기술을 예술적으로 발휘한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9단이라 불린다. 정치9단들 때문에 정당은 국민 요구를 정책에 반영할 의지도 능력도 상실했다. 

    정치 지형에서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대립했다. 정작 경제 지형에서는 구산업에서 신산업으로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정치권은 사실상 노동을 버렸다. 촛불혁명의 과실을 독차지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역시 노동계의 진정한 발전을 원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민주당이 사회정책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들의 계급적 존재 자체가 그런 문제에 별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노동운동이 진정한 개혁을 하고 국민적 신뢰를 얻는 상황이 정치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정치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진보정당으로 권력이 넘어갈 위험도 있는데 말이다. 

    정치만 문제가 아니다. 소위 금융마피아, 재경부마피아, 해수부마피아, 교육부마피아 등등 온갖 엘리트 세력이 이권연합을 형성해 국가 재정을 빼먹는 복마전이 펼쳐졌다. 이런 구조에 돈 쏟아 넣는다고 경제가 좋아질 리 만무하다. 투자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 노동계층 일부가 휩쓸리면서 노동운동 역시 ‘정신’을 잃어버렸다. 

    지금 한국에는 트라우마에 지배받는 정신질환 증세가 만연해 있다. 6·25 전쟁과 5·18 광주민주항쟁의 시대적 상처로 국민통합 가치가 심각히 무너졌다. 태극기부대와 민주화항쟁 부대가 화해하지 않고 청년들의 길을 막고 싸우는 상태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까?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심리를 이용하는 이념팔이, 갈등팔이 정치권력을 두고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을까? 

    추격자 모델에서 선도자 모델로 옮아가기 위해서는 프레임 시프트가 필요하다. 지대추구 행위가 범죄라는 공적 원칙을 세우고, 반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룰이 서야 경제 참여자들이 일할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서민의 집단지성을 조직하고 실패에 대한 안전망을 만들어주면서 창조자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 이런 질서를 국정의 우선과제로 제시했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도 적었을 것이다.  

    “정치·재벌이 못 하면 노동계가 해라”

    실업자나 하청 노동자가 보기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얼마나 부러운 존재인지 민주노총 당사자들은 모른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재벌의 갑질을 보면서 부당한 처사에 분노하며 재벌 탓만 한다. 대한항공 땅콩회항사건 등은 그런 심리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반면 재벌은 불안한 투자환경 속에 어렵게 경영하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정치권은 양쪽 눈치를 보면서 지대추구 행위를 돕거나 이에 기생한다. 유일한 희망인 청년 학생들은 이런 세상을 보면서 공무원을 희망 1순위로 삼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시장경제론의 철학은 각자 이기심에 따라 열심히 살면 좋은 세상이 된다는 가르침 아니던가? 문제는 그게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철학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자기 상처만 아프다고 하고 있을 것인가? 정치권이 양당 구조 속에서 못 한다면, 그리고 재벌이 겁나서 못 한다면 먼저 노동계가 나서면 되지 않는가?

    노동계는 첫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하에 임금체계 개편에 착수해야 한다. 지대추구적 기득권을 포기하고 산별노조의 책임성을 높여 경제주체로서의 참여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독일 경제 부흥의 주축이 독일 산별노조이듯 한국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둘째 한국형 링컨법 즉 부당재정환수법을 추진하고 내부고발센터를 두는 등 한국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자기 기업에서는 비리와 지대추구 행위에 동참하면서 외부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다. 별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셋째 각 지역 자영업체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자발적 연대기금을 조성해 지역 영세상인들과 공생관계를 맺어야 한다. 정서적·문화적으로 지역 주민과 녹아들지 않는 운동은 고립을 피할 수 없다.

    노동계가 진정한 진보 개혁적 집단이라면 한국 사회에 가장 긴요한 핵심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 핵심 고리는 재벌엘리트 카르텔을 깨고 비기득권층의 이해를 보호하는 일이다. 민주노총이 남 탓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과감한 개혁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수봉
    ● 1961년 부산 출생
    ●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서강대 경제대학원 석사
    ●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 사무차장, 금속연맹 사무차장
    ●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대변인
    ● 새정치민주연합 직능수석부의장,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인천시당위원장
    ● 現 인천경제연구소장
    ● 저서 :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 ‘민주노조운동 20년 쟁점과 과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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