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당신의 가임력은 안녕하십니까

저출산 시대 늘어나는 ‘난임’ 공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2-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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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대 조기폐경 병원진료 급증

    • 난임 원인 성차 거의 없어

    • 부부 함께 난임 검사할 때 남자부터 받아라

    [사진 제공·차여성의학연구소]

    [사진 제공·차여성의학연구소]

    2018년 3분기 합계출산율이 0.95명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 1.68명에 크게 밑도는 것으로, 압도적인 꼴찌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아이를 채 한 명도 낳지 않는 초저출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 출산율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는 혼인 연령 상승, 독신 증가, 젊은층의 출산 기피 등이 꼽힌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싶은데 임신이 잘 되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도 적잖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난임(難妊)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0만8703명이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난임자 수가 2006년 14만8892명에서 연평균 3.1%씩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남성 난임자가 늘고 있다. 2013년 4만3094명에서 2017년 6만2468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건강한 남성의 건강하지 않은 정자

    김대근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교수가 남성 난임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김도균 기자]

    김대근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교수가 남성 난임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김도균 기자]

    제일병원 최진호(비뇨기과)·한정열(산부인과) 교수팀이 2011~2014년 임신 전 관리를 목적으로 비뇨기과 진료를 받은 남성 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명 중 1명꼴인 45.9%(28명)에서 정액 검사 이상 소견이 확인됐다. 당시 연구팀은 “병원을 찾지 않은 남성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 건강한 임신을 저해하는 원인을 가진 남성이 훨씬 많을 것”으로 분석했다.

    2005년 연세대 의대 한상원 교수 연구팀이 건강한 현역 군인 194명(평균연령 22.1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도 85명(43.8%)의 정자 운동성이 국제 기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는 당시 논문에서 “정자 운동성의 감소는 불임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젊고 건강하면 임신이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임신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임력(可妊力)에 관심을 갖고 좀 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근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비뇨의학과 교수는 “남성 난임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정계정맥류와 발기부전, 사정 장애, 내분비 장애, 고환 기능 문제 등 구조적인 원인이, 다른 하나는 운동 부족, 비만, 과도한 동물성 지방 섭취, 잦은 사우나, 흡연 등 생활습관적인 원인이다”라며 “어느 쪽이든 임신 시도 전 문제를 찾아내면 수술, 치료, 노력 등을 통해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담배를 끊고 △체중을 정상 범위 내로 줄이고 △좋은 식습관을 유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가임력 향상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결혼한 30대 초반 직장인 남성 A씨는 “주위에서 ‘황금돼지띠’ 아이를 낳으라고 권해 결혼 후 바로 가임력 진단을 받았다. 당시 정액 검사에서 정자 수가 기준치에 미달한다는 진단이 나와 바로 술·담배를 끊고 항산화제 등을 복용하며 몸을 관리했다. 그 덕분인지 임신에 성공해 올봄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액 1ml당 정자 수가 2000만 개 이하일 경우 ‘희소정자증’, 100만 개 이하는 ‘무정자증’ 진단을 받는다. 과거에는 임신이 어렵다고 봤으나, 최근에는 의학 기술로 정자를 찾아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신체 나이와 다른 난소 나이

    김란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교수는 건강한 임신을 위해 평소 가임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도균 기자]

    김란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교수는 건강한 임신을 위해 평소 가임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도균 기자]

    남성 난임 원인 중 1위로 꼽히는 정계정맥류 또한 수술을 통해 문제를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정계정맥류는 고환에 연결된 정맥이 늘어나 음낭 안에서 뒤틀리며 덩어리 형태를 보이는 질환으로 남성 약 10~15%가 걸린다고 할 만큼 흔하다. 전문가들은 정계정맥류가 모두 난임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고환 온도를 상승시켜 정자 생성 및 운동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난임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설명한다. 이런 환자 중 일부는 고환에서 통증이나 불쾌감을 느끼고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어 모르고 살아가는 쪽이 더 많다. 김대근 교수는 “결혼 후 임신이 안 돼 어려움을 겪다 뒤늦게 자신의 질환을 알게 되는 일이 흔하다”며 “제때 발견해 수술하면 정자 수, 운동성 등을 호전시킬 수 있는 만큼, 임신을 원하는 사람은 미리 관심을 갖는 게 좋다”고 밝혔다.

    여성의 경우 가임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난소 기능이다. 보통 여성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임신 가능성이 떨어지지만, 젊더라도 선천적 또는 후천적 요인으로 가임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김란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산부인과 교수는 “얼마 전 20대, 40대 여성 두 명을 같은 날 검진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난소 기능 수치가 동일하게 나왔다. 40대 분은 임신을 사실상 포기하려는 마음으로 왔다가 상대적으로 좋은 수치에 기뻐한 반면, 20대 분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깜짝 놀랐다”며 “가임력은 한번 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언젠가 아이를 갖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리 자기 상태를 확인해 난자 냉동 등 가임력 보존 방법을 마련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여성 가임력을 판단하는 지표로 널리 쓰이는 건 혈중 AMH 호르몬 수치다. 수치가 높을수록 난소 기능이 좋고 앞으로 배출될 난자가 많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AMH 수치는 약 4~5, 30대는 2~4, 40대는 1 이하다. 이 수치는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간단 검사로 가임력 체크 가능

    최근 의료기술 발달로 난임 극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제공·차여성의학연구소]

    최근 의료기술 발달로 난임 극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제공·차여성의학연구소]

    한편 전문가들은 생리주기나 생리량의 경우 가임력을 판단하는 중요 지표가 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상당수 여성이 생리주기가 규칙적이면 가임력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체내에 난자가 남아 있어도 질(質)이 떨어지면 수정되기 어렵고 착상 후 유산 확률도 높아진다는 게 일반적 설명이다. 이 때문에 30대 중반 이후에는 난소가 건강한 난자를 배출할 수 있는지 검사해보는 게 필요하다.

    생리불순을 곧 난임과 연결 짓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30대 초반 여성 직장인 B씨는 “최근 4개월째 생리가 없어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생리유도주사를 맞았다. 최근 20~30대 여성 중 오랜 기간 생리를 안해 조기폐경을 걱정하는 이도 적잖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주요 포털사이트 질문 게시판에도 조기폐경의 두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조기폐경(원발성 난소기능부전)으로 병원을 찾은 30대 여성이 2095명으로 2012년(1414명)보다 48.2% 증가했다. 20대 여성은 같은 기간 48.4%(475명→705명), 10대는 51.5%(103명→156명) 늘었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생리불순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판단이다. 김란 교수는 “생리불순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상당수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생리가 멈췄을 때 조기폐경이라고 여기며 임신을 포기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원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자신의 가임력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각종 검사는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에서 받을 수 있다. 차여성의학연구소는 지난해 서울역센터에 ‘가임력 체크업 클리닉’도 열었다. 여성의 경우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자궁 크기 및 내막 두께, 근종 기형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갑상샘 기능 및 호르몬 검사로는 배란, 생리 및 임신주관 신체 기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남성은 정액 검사로 정액량과 정자 수 및 운동성을 확인한다. 또 호르몬 검사를 통해 고환 기능 이상 여부를 알 수 있다. 검사 시간은 1시간 내외, 검사 결과는 약 1주 후 받을 수 있다. 김대근 교수는 “가임력 검사는 남성 쪽이 다소 간단하다. 여성 나이가 35세 미만인 난임부부라면 남성이 먼저 가임력 검사를 해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난임을 둘러싼 속설, 진실 또는 거짓
    (도움말·김란 산부인과 전문의, 김대근 비뇨기과 전문의)


    △ 정액 검사 결과가 나쁘면 되돌릴 수 없다? 거짓

    꾸준한 운동과 바른 영양 섭취로 개선할 수 있다.

    △ 생리가 멈추는 건 난소 기능이 저하돼서다? 알 수 없다


    생리량 변화나 생리불순이 난소 기능 저하로 인한 것인지는 정밀검사로 살펴봐야 알 수 있다.

    △ 정액량 늘면 정자 수도 늘어난다? 절반의 진실

    정자 수는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임신에 더 중요한 건 1ml 당 정자 수다.

    △ 난임 원인은 대부분 여성에게 있다? 거짓

    난임 원인 중 40%는 남성에게 있다. 원인이 여성에게 있는 경우 45%, 원인 불명이 15%다.

    △ 난자 채취 시술을 받으면 난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거짓

    원래 난자는 한 달에 한 개만 배출된다. 과배란을 유도, 채취하면 난자가 소진되기는 한다. 그러나 난소 내 난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줄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 무정자증 남성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거짓

    경우에 따라 자기 정자로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정밀검사 결과 ‘폐쇄성 무정자증’으로 판별될 경우, 고환 내부 정자를 채취해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행할 수 있다. 폐쇄된 부위를 치료해 정자를 발견할 수도 있다. 비폐쇄성 무정자증은 고환 내부에서 미세다발성 고환 정자 채취 수술을 통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남성 가임력 높이는 생활 수칙 3
    (도움말·김대근 비뇨기과 전문의)


    1. 담배는 반드시 끊는다.

    흡연은 정자 DNA 손상과 운동성 감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임신율을 떨어뜨리고, 유산율은 높인다. 담배는 한 대도 피우지 않는 게 좋다.

    2.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자전거 타기는 고환 온도를 올리고 전립선을 압박해 정자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를 제외한 규칙적인 운동은 가임력 개선에 도움이 된다.

    3. 식단은 지중해식으로 구성한다.

    과도한 설탕 및 동물성 지방 섭취는 가임력을 떨어뜨린다. 햄, 소시지 등 가공육도 좋지 않다. 생선과 채소, 과일, 견과류를 주로 먹고, 홍삼이 체질에 맞는다면 홍삼도 섭취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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