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명분 없던 서초동 촛불 조국과 함께 꺼지다

2016 vs 2019 ‘촛불’의 비교정치학

  •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gmail.com

    입력2019-10-24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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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개혁과 조국 수호가 어떻게 한 묶음?

    • 文이 선택한 두 남자가 분열의 시작

    • 둘 중 하나 선택해야만 들 수 있던 ‘편 가르기’ 촛불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 개혁 촉구 집회. [뉴스1]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 개혁 촉구 집회. [뉴스1]

    조국 사태로 시작된 ‘서초동 촛불’로 거리가 술렁인다. 사법기관 앞을 꽉 메운 인파가 조국 수호를 외친다. 집회 참가 인원수를 두고 이쪽과 저쪽에서 큰 소리를 낸다. 국민 염원의 상징이던 촛불이 어느덧 분열의 불씨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범죄 혐의자 수호? 명분 없다”

    2016년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 [박해윤 기자]

    2016년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 [박해윤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한 시민들이 서초동 일대에서 ‘검찰개혁’을 외쳤다. 서초동 촛불집회의 키워드는 검찰개혁이지만 또 다른 핵심은 ‘조국 수호’다. 집회 참가자들은 검찰개혁과 조국 수호를 동일시하는 듯했다. ‘개혁’과 ‘인물’을 일체화해 의견을 피력하는 게 서초동 촛불 집회 특징이었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는 뜨거웠고 평화로웠다. 좌우가 구분되지 않았으며 논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수·진보 성향의 국민이 뒤섞여 촛불을 들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사과와 반성, 퇴진을 요구했다. 특정 정치인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도 않았고 특정 정당이 나설 수도 없었다. 정치 이념을 뛰어넘어 ‘국민의 상식’ 선에서 잘못된 것을 질타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촛불이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2016년 광화문 촛불은 전 국민적 동의와 참여를 바탕으로 한 반면 2019년 서초동 촛불은 대통령 지지자들만 참여했다”며 “표명하는 바, 대의 측면에서 본다면 광화문 촛불이 ‘이게 나라냐’로 시작해 ‘탄핵’으로 이어졌다면 서초동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수호하자는 것으로 명분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촛불을 들었으나 서초동 촛불은 광화문의 그 때와 비슷한 듯 다르다. 같은 정파를 지지하는 사람들만 모여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5만이니 200만이니’ 하는 집회 참가자 수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집회의 세(勢)를 특정 정당의 지지로 세력화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생각만 강요하는 촛불

    2016년 11월 1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왼쪽) 10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일대에서 야당 규탄 조국 수호를 위한 ‘우리가 조국이다’ 시민참여문화제가 열렸다. [뉴시스]

    2016년 11월 1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왼쪽) 10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일대에서 야당 규탄 조국 수호를 위한 ‘우리가 조국이다’ 시민참여문화제가 열렸다. [뉴시스]

    특정 인물에 기대지 않고, 민주적 방법으로 변화를 이뤄낸 광화문 촛불과 달리 ‘구명’과 ‘개혁’을 한 묶음으로 엮은 게 서초동 촛불의 가장 큰 특징이다. 권력기관 개혁은 내부적으로도 일부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입법기관에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도 서초동 촛불은 ‘인물’과 ‘개혁’을 동일시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2016년 광화문 촛불은 누구나 들 수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국민이 사과와 변화를 요구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과 장관직 수행에는 반대하지만 검찰 개혁에 찬성하는 많은 국민은 서초동 촛불을 들기 어려웠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016년 광화문 촛불은 진영 논리가 아닌 국민의 상실감, 실망감을 바탕으로 했으나 서초동 촛불은 이념적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광화문과 달리 서초동은 둘 중 하나를 극단적으로 선택해야만 들 수 있는 촛불, 한 가지 생각만을 강요하는 촛불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음과 동시에 시대적 사명인 검찰개혁과 조직쇄신 과제를 훌륭하게 완수할 것으로 기대한다.” 

    “검찰개혁, 법무부 탈검찰화 등 핵심 국정과제를 마무리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질서를 확립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같은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임명한 인물들이 오히려 국가 분열의 장본인이 되는 형국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해왔고 권력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을 보여줬다”는 청와대의 평가로 검찰총장이 된 윤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조 전 장관 일가 의혹 수사로 논란을 빚으면서도 일관되게 검찰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윤 총장은 박근혜 정권 초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소신을 지키다 좌천성 인사 조치를 당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한 후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현재는 정권의 입맛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으로 조국 전 장관 의혹 수사에 매진하는 모양새다.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조 전 장관은 국회에서 호칭조차 ‘장관’으로 불리지 못할 만큼 야당의 푸대접을 받았으나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다. 가족 관련 의혹에 선을 긋는 발언으로 일관하며 가장의 책임과 공직자의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개혁’을 위해 가시밭길을 걷는 모습으로 비치는 측면도 있었다. 

    검찰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법무부와 검찰은 호흡을 맞춰가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첫 권고안을 내놨다. 대검찰청은 같은 취지로 법무부에 특수부 대폭 축소를 건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할 것 같은 기로로 내몰렸다. 

    ‘정치 실종’이 서초동 촛불을 촉발시켰으며 국민 분열에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국정 운영 주체인 여당과 야당의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고 조국 사태를 계기로 각 당의 ‘내로남불’ 행태가 본격화됐다. 조 전 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등처럼 국회 인사청문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대통령의 임명 강행으로 장관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은 22명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 노무현 정부 3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여야의 협치 실종은 장관급 인사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각종 민생 법안 국회 통과는 역대 최저 수준이며 국회 공전이 일상이 됐다. 각 당은 입장만 고수하고 주장할 뿐 ‘통 큰’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지지율 40%선이 무너졌다. 경기 침체가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한데다 조 전 장관 의혹마저 불거지면서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다.

    ‘통 큰’ 합의 사라진 정치

    정부의 국정 운영 동력 상실과 여야의 정치 실종 상태에서 서초동 촛불은 정치권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정치에는 실패해도 민심에는 자유로울 수 없는 국회와 정책을 이끌어갈 추동력이 필요한 정부에는 거대 민심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서초동 촛불집회를 여당이 반기는 것도, 맞불 성격인 광화문 집회에 야당이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실제로 서초동 집회 참가 시 당명과 로고 사용을 자제하자는 여당발(發) 문자메시지 발송 논란과 지역위원회 차원에서 상경 버스를 대절하고 집회 참석을 독려하는 SNS 메시지를 내놓은 것 등은 촛불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중시켰다. 사실상 집회를 지원하면서도 촛불 뒤에 숨어 있는 격이다. 거대 야당이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요컨대 ‘검찰개혁’과 ‘조국 수호’를 동일선상에 뒀던 서초동 촛불은 편가르기와 선택을 강요했다. 문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상징되는 민심은 더욱 양분화됐었다. 한쪽에선 ‘조국 수호’를, 다른 쪽에서는 ‘조국 사퇴’를 외쳤다. 문 대통령이 “법무부와 검찰은 크게 보면 한 몸”이라며 과열 양상으로 치닫는 민심을 달래기도 했으나 조 전 장관과 윤 총장 공히 문 대통령이 선택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로 인해 검찰총장이 사임하거나 청와대가 새로운 인물을 지명한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다. 정권에 반기를 드는 인사를 내치는 모양새로 비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해온 문 대통령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조 전 장관은 10월 14일 결국 사퇴했지만 정권의 핵심가치인 정의 평등 공정한 사회도 위태롭게 됐다. 향후 국정 운영의 동력 상실은 예견된 수순이다. 

    김민전 교수는 “범죄 혐의가 있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장관에 올라 문제가 생긴 것이다. 처음부터 임명하지 않았으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대통령이 문제라는 말들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과 대통령의 대결로 비화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는 광복 이후 찬탁·반탁 논쟁처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이슈도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큰 고민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대통령이 결단할 문제일 뿐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사회적 갈등 더욱 커질 것”

    신율 교수는 “17대 국회 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회의 마치고 소주도 같이 하던 여야 정치권에 단절의 골이 깊어졌다. 이러한 여파가 사회 각 분야에도 미쳤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 정권의 ‘갈라치기 정치’가 한몫해 사회적 골은 더욱 깊어졌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현 사태는 조국에서 촉발됐지만 중요한 건 그동안 누적된 갈등이다. 광화문에 나간 분들이 참다 참다 터져버린 것이라면, 서초동에 나가는 분들은 권력 갖고 있는 쪽에 대한 지지와 그간 느껴온 피해의식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사회적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편 가르기’ 서초동 촛불은 조국 전 장관 사퇴와 함께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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