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혼밥판사’의 한끼

카레우동과 독도

논란의 책 ‘반일종족주의’ 비판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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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19-11-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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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정재민 전 판사, 작가
    주말이면 동네 일본 식당에서 가족들과 카레우동을 즐겨 먹었다. 어릴 적에는 카레를 좋아하지 않았다. 맛과 냄새가 강하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일본에서 살다 온 분이 일본 가정식 카레를 예찬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은 카레를 솔(soul)푸드로 여기고 일주일에 서너 번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이치로는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중 하나가 시합 전주에는 매일 일본 카레를 먹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이후부터 일본 가정식 카레를 찾아서 먹게 됐다. 어릴 적 먹던 묽고 노란 카레가 아니라 뻑뻑하고 짙은 색이었다. 맛이 부드럽고 먹고 난 뒤에도 의외로 속이 편했다. 원래 우동도 좋아하는 터였다. 쫄깃쫄깃한 면발이 좋지만 푹 삶아서 퍽퍽한 굵은 면발도 좋다. 카레우동은 이 두 가지를 같이 즐길 수 있으니 어찌 싫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엊그제 아들을 데리고 카레우동을 먹으러 갔더니 가게가 문을 닫았다. 최근 고조된 한일 갈등 때문에 매출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내 가까운 친구는 일본식 선술집을 오래 했다. 그동안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모든 직원이 동시에 “이랏샤이마세!”라고 외쳤는데 요즘은 “어서오십시오!”로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도 매상이 줄어 힘들다. 이들이 이렇게 피해를 보는 것이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카레우동 대신 짜장면을 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베스트셀러 판매대 위에 있는 책이 눈길을 끌었다. ‘반일종족주의’. 이름은 익히 들었다. 한국인이 반일종족주의와 피해의식에 빠져 있어서 일본에 대해서는 매사 나쁜 쪽으로 왜곡한다는 것이 골자라고 들었다. 반일 감정 때문에 일본 음식점이 문을 닫는 와중에 반일 감정을 비판하는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하다니. 어리둥절했다.

    독도와의 인연

    필자가 쓴독도 관련 서적.

    필자가 쓴독도 관련 서적.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한일 갈등이 이렇게 심한 와중에 이런 책을 내는 것을 보면 기개는 대단하다 싶어 사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 책이 독도에 대해 기술한 내용 중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나는 독도와 인연이 있는 편이다. 군법무관 시절 국방부 국제협력관실에서 일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국회 독도 특위에 참석하면 독도 영유권 답변은 내가 준비했다. 독도 문제가 뜻밖에도 너무 복잡해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했다.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 독도 문제로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하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 ‘독도인더헤이그’다. 진짜로 소송을 하자고 쓴 책은 아니다. 반일 감정의 화염에 휩싸여 독도 문제를 다루면 그런 상황에 몰릴 수도 있으니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서 전략적으로 접근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책을 우연히 읽은 외교부 국제법률국장과 외교부 장관이 나에게 외교부에서 같이 일해볼 것을 제안했다.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대법원이 국익 차원에서 허가해준 덕분에 나는 2011년부터 외교부에 ‘독도법률자문관’으로 파견됐다. 외교부에 있던 2년 동안 기존 한일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 많이 있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고,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행을 요구했다. 2011년에는 위안부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그 영향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가 체결됐다). 2012년 5월에는 이른바 강제징용자의 배상청구에 대한 대법원의 첫 인용 판결이 나왔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증거

    [GettyImage]

    [GettyImage]

    반일종족주의는 말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한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공평무사한 법관들은 그렇게 판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제사법재판소의 법관들은 국제법에 따라 판단한다. 이 책에는 국제법의 기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역사학이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면 그것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어느 나라의 영토인지 판단하는 것은 국제법의 몫이다. 영토의 주인은 파편적인 사실 한 조각, 지도 한 조각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영유권은 영역 주권이다. 국제법상 영역 주권은 국내법상 소유권과는 다르다. 소유권은 재물 자체를 사용하는 권리지만 영역 주권은 해당 영역 위에 있는 사람을 지배하는 권한이다. 국제법에는 국내법의 등기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평화로운(다른 국가의 이의가 없는 상태) 주권 현시”의 실적이 얼마나 있는지를 기준으로 영역 귀속을 판단한다. 여기서 ‘주권 현시’는 세금을 징수하거나 체포를 하는 것 같은 정부의 권력적 행위로 드러난다. 그런데 극지방이나 무인도같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국가가 이런 행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국제 판례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의 경우에는 ‘매우 경미한 정도’의 주권 행사로도 만족해왔다. 

    나는 조선 정부가 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한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문헌비고’ 등 정부 공식 책자를 공공연하게 배포한 일이나, 일본 막부와 교섭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령으로 확정지은 일(울릉도 쟁계)이나,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1905년 일본이 독도를 편입한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본군 소속 독도”를 일본이 편입했다고 상부에 보고한 일 등이 국제법상 “매우 경미한 정도”의 주권 행사 기준에 넉넉히 해당한다고 본다. 그런데 반일종족주의는 이들이 모두 거짓이나 환상이라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과 무릉 두 섬은 본래 두 섬으로 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좋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는 우산국이라 칭했는데 울릉도라고도 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이를 두고 이 책은 우산국이 작은 섬인 독도(우산도)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지었을 리가 없으므로 우산도는 환상의 섬이고 세종실록지리지의 ‘두 섬’은 사실상 울릉도 한 섬이라 한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를 비롯한 우리 고지도에 그려진 울릉도와 독도의 방향이 부정확하다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동서남북을 혼동하도록 가르치는 폭거”라 한다. 

    고문서나 고지도를 보면 울릉도와 독도 명칭에 일관성이 흔들릴 때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산, 울릉, 무릉 등의 명칭이 울릉도를 가리킬 때도 있고 독도를 가리킬 때도 있다. 일본 문헌도 오락가락한다. GPS도 없던 시절에 만든 500년 전 지도가 부정확한 것이 ‘폭거’라 할 정도로 흥분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지리학적으로는 명칭이 중요하겠지만 국제법상 중요한 점은 동해에 섬이 두 개 존재했고 조선이 그것을 우리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 문헌에서 두 섬이 ‘서로(相)’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섬이 물리적으로 두 개임이 분명한데도 이를 두고 이 책이 굳이 하나는 환상이라고 단정하는 논리를 수긍하기 어렵다. 동해에 섬이 수십 개가 존재하고 있었다면 몰라도 단 두 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조선 정부가 ‘두 섬’의 존재를 인식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게다가 다소간의 혼동이야말로 오히려 울릉도와 독도가 모두 조선 영역이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만약 울릉도만 조선령이고 독도는 일본령이었다면 지리서나 지도가 그 경계를 명확히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 대해서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않으면 서로 바라보임이 당연한데 굳이 ‘날씨가 좋으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 자체가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날씨가 좋을 때만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이 단서는 매우 실질적 의미를 가진다. ‘날씨가 좋으면(風日淸明則)’ 보인다는 것은 날씨가 흐리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 울릉도에는 관음도, 죽도 등 작은 부속도서가 수십 개 있으나 이런 섬은 날씨가 흐려도 보인다. 날씨가 흐릴 때는 보이지 않다가 날씨가 맑으면 보이는 섬은 독도가 유일하다. 

    이 책은 또한 안용복이 1693년과 1696년에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임을 주장하고 돌아왔는데 이런 말을 듣고도 조선 조정이 아무런 관심을 표하지 않았고 당장 독도를 탐사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들어 독도가 조선령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안용복으로 촉발된 조선과 일본 막부 사이의 영역 분쟁(이른바 ‘울릉도쟁계’)은 무관심은커녕 숙종실록이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기록할 정도로 핫이슈였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울릉도쟁계가 마무리된 직후 1696년 안용복이 또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독도가 조선령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일본은 물론, 조선도 추가 교섭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히려 양국 모두 울릉도쟁계 당시 독도도 포함됐다고 인식했다는 정황증거가 된다. 이때부터 1905년 독도 편입 이전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나온 대부분의 문서나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조선령으로 기록한다. 1877년 일본 태정관이 내놓은 지령도 울릉도쟁계를 검토한 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고 했다.

    우산도는 환상?

    1900년 고종 황제는 칙령 제41호로 울릉군의 구역을 “울릉 전도와 죽도와 석도를 관할한다”고 규정했다. 이 책은 “여기서 우산도가 종적을 감추었으므로 이로써 환상임이 판명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돌을 ‘독’이라 읽음)을 근거로 여기서의 ‘석도’가 ‘독도’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이 책은 “참담할 정도로 궁색하다”고 한다. 방언을 근거로 삼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방언보다 고종실록에 주목한다. 고종은 1882년 울릉도로 떠나는 이규원에게 “울릉도, 죽도, 우산도의 세 섬을 잘 살피라”고 했는데 이들 섬을 위 칙령에 대입하면 우산도가 석도로 인식된다.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해버리자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으로 편입됐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이것은 기존부터 대한제국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관리해오고 있었고, 칙령 제41호가 독도를 울릉군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다. 그런데 이 책은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 이는 독도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덧붙여 “일본에 외교권을 뺏긴 보호국이라서 그러했다는 변명은 곤란합니다. 제3국과 외교를 할 권리를 빼앗겼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을 상대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이의를 제기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당시는 차라리 제3국에 이의를 제기하는 게 쉽지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일본을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미 1904년부터 일본군이 한반도에 주둔해 있었고,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상태였다. 

    이 책은 바로 여기가 영토 분쟁의 ‘결정적 시점(critical point)’이라고 하면서 이때 “대한제국은 분쟁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오늘날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임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라고 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나는 왜 모를까. 국제법에서 말하는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은 국가 간의 영토 분쟁에서 판정 기준이 되는 날이다. 이후 발생한 사실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그러니 위 말대로 당시 대한제국이 분쟁을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결정적 시점이 도래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안 가는 것이다. 소송은 땅을 빼앗긴 사람이 제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 땅을 가진 사람이 제기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겨도 본전이니까. 

    종이가 부족하므로 나머지는 졸저 ‘독도인더헤이그’나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를 참고 바란다. 내 책 제목도 ‘반일독도주의’나 ‘지금부터 반일종족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지었다면 더 팔렸을까.

    [신동아 11월호]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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