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보호자 공격하는 반려견

개는 때릴수록 말 안 듣는다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입력2019-11-13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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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개가 행인을 공격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보도가 자주 나오다 보니, 사람들은 개가 보호자 아닌 사람을 주로 문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은 보호자를 무는 개도 상당히 많다. 개가 버려지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게 보호자에 대한 공격이다. 나는 이 문제도 이제 사회의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은 개물림 사고에 대해 잘 몰랐다. 당시라고 관련 사고가 없었던 게 아니다. 언론이 이 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였고, 이 분야 통계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요즘 이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반려견 문화 전반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자극적인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이 야기하는 부작용도 없지는 않다. 개에 대한 혐오감이 일고, 불특정 다수의 반려인이 고통받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관심이 더 좋은 반려견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려견의 보호자 공격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가 좀 더 알려지고 사회적 관심을 받아야 바람직한 해결책도 마련할 수 있다.

    맞을수록 거칠어지는 개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내용의 기사 아래는 주로 “그런 개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린다. 체벌을 통해 개의 공격성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대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의견에 단호히 반대한다. 

    과거엔 개의 공격성이 유전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최근엔 다르다. 개의 생육 환경, 보호자와 개의 상호작용 등이 개의 공격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특히 보호자의 체벌은 개의 공격성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게 많은 연구의 일관된 결론이다. 

    대만은 떠돌이 개가 매우 많은 나라다. 대만에서 진행된 한 조사에서 “지난 1년 사이에 가족 또는 지인이 개에 물린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17%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만의 떠돌이 개 문제 또한 우리나라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가정에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개가 버려져 길거리를 배회하다 행인을 공격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행된 연구 결과를 봤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 8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연구에서도 보호자로부터 체벌받은 개일수록 공격적 성향을 더 드러낸다는 점이 밝혀졌다. 체벌 횟수가 증가하면 공격성 또한 커졌다. 공격성의 범위도 점점 넓어졌다. 보호자에 대한 공격에서 출발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성, 그리고 다른 개에 대한 공격성으로까지 확대됐다. 

    안타까운 것은 개가 대부분 스스로 생각할 때는 정상적인 행동(짖기, 음식 주워 먹기, 물건 물어뜯기 등)을 하다 체벌을 당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개는 자신이 왜 신체적인 아픔을 겪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공격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리더와 보스

    리더와 보스의 차이점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 하나 있다. 그 그림을 보면 보스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다. 보스는 사람들 뒤에서 채찍질을 하며 그들이 무거운 것을 끌게 한다. 반면 리더는 가장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거운 것을 끌고 간다. 반려견 행동전문가들은 보호자에게 보스가 되지 말고 리더가 되라고 말한다. 개를 체벌하는 대신 필요한 자원을 컨트롤함으로써 충분히 리더가 될 수 있다고도 조언한다. 

    미국 동물행동전문의들은 이 방법을 리더십 프로그램 또는 NILIF(nothing in life is free)라고 한다. 나는 우리말로 ‘아·세·공(아이야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세·공’ 프로그램은 전에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 보호자를 무는 개를 둔 가족은 이 프로그램을 잘 익히고 실생활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아·세·공’ 첫 단계는 반려견과 갈등을 일으킬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공격성은 습관이 된다. 우리 개가 무엇을 싫어하고 언제 공격성을 보이는지 알면 보호자가 되도록 그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밥 주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반려견에게 먹을 것은 우리의 월급과 다를 바 없다. 공격성을 보이는 개의 보호자들은 보통 이 월급을 ‘공짜’로 준다. 밥을 항상 바닥에 두는 식이다. 그러면 개는 밥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안다. 보호자가 주는 소중한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반려견이 보호자에 대해 존경심을 느끼고 보호자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려면 가장 먼저 밥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 바람직한 밥 주는 방법은 이렇다. 

    ① 단 한 번만 ‘앉아’라고 말한다. ② 반려견에게 3초의 반응할 시간을 준다. ③ 보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밥그릇을 치우고 다음 밥시간까지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④ 3초 안에 잘 반응하면 밥을 준다. ⑤ 반려견이 15분 안에 밥을 다 먹지 않으면 남은 음식을 바로 치우고 다음 밥시간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만약 반려견이 저절로 앉는다면 ‘앉아’ 말고 ‘엎드려’ ‘기다려’ 등 다른 행동을 시킨다.) 

    이렇게 밥을 주면 개가 어떻게 생각할까. 밥이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소중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보호자 지시를 따라야 밥이 나오기 때문에 보호자의 리더십이 향상된다. 

    ‘아·세·공’ 세 번째 단계는 간식 주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많은 보호자는 반려견을 예뻐한다. 반려견이 잘한 행동 하나 없는데도 아주 큰 간식을 던져준다. 심지어 간식 달라고 떼를 쓰며 짖을 때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간식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하면 개는 짖어야 보호자가 맛있는 것을 준다고 생각한다. 문제 행동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나는 이런 경우를 ‘보호자가 개를 교육하지 않고 개가 보호자를 교육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간식을 줄 때도 밥을 줄 때처럼 원칙을 세워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려운 걸 시키라는 게 아니다.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보호자의 지시를 잘 따라야만 내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인식만 갖게 하면 된다. 

    처음에는 1개를 지시하고 잘 수행하면 간식을 준다. 나중에는 2, 3, 4, 5개를 연속적으로 시켜 모두 잘했을 때만 정말 작은 간식 하나를 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반려견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 신호를 딱 한 번만 줘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자 대부분이 반려견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실수를 한다. “앉아, 앉아, 앉아, 앉아”처럼 말이다. 이러면 안 된다. 우리는 존경하고 따르는 상사나 선배의 부탁, 지시를 한 번 만에 잘 따른다. 개들도 우리가 한번 말하면 듣도록 교육해야 한다. 한 번에 말을 듣지 않으면 네가 좋아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설명한 방법은 특별한 게 아니다. 반려견이 보호자에게 보이는 공격성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 이 방법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2~3개월 꾸준히 반복하면 반려견이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 있던 시절, 동물행동학 전문의 과정에 있던 한 학생이 정말 부끄러운 표정으로 교수님 조언을 구하는 걸 봤다. 유기견을 입양했는데 산책을 나가려고 하네스를 채울 때마다 자꾸 손을 물려고 으르렁거린다는 얘기였다. 그 때 교수님은 이 프로그램을 두 달 동안 꾸준히 하라고 조언하시면서, 그 과정을 꼭 촬영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그 영상을 보니 반려견이 정말 신기하게도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개 표정이 평온하고 즐거운 건 아니었다. 표정으로 딱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네스를 차는 건 정말 싫지만, 엄마가 하는 거니까 참을게.” 

    그렇다. 반려견이 보호자에 대해 공격성을 보이는 건, 대부분 개가 사람과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다. 개의 관점에서는 분명 하기 싫은 그 행동을 보호자가 할 때 참느냐, 아니면 참지 않고 공격하느냐의 차이다. 반려견이 절제력을 갖고 참을 수 있게 하려면 보호자가 현명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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