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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만큼 무한가능성 지닌 미래 먹거리 ‘씨앗’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생명력만큼 무한가능성 지닌 미래 먹거리 ‘씨앗’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를 보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은 여인 중 한 사람이 씨앗 주머니를 가지고 다닌다. 끝없는 사막 너머 어딘가에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땅을 만나면 심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아름다운 영화적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마를 대로 말라 버린 씨앗이 온전히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니러 간 시댁에서 씨앗의 기적을 마주했다. 어머님께서 수년 동안 묵히고 묵혔던 들깨가 있어서 거름이나 되라고 스티로폼 텃밭에 뿌린 것이 어느 날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은 것이다. 내가 갔을 때는 무성한 깻잎 밭을 일구고 있었다. 어머님은 그 모습이 하도 기특해 이파리도 따 드시지 않고 무럭무럭 크게 두셨다. 우리는 여린 잎만 솎아 그날 밤 고기를 싸 먹었다.

단짠보다 쓴짠

해바라기씨는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다. [게티이미지]

해바라기씨는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다. [게티이미지]

식물의 종자 즉, 씨앗 자체를 먹는 일은 꽤 흔하다. 씨앗은 대체로 아주 작지만 우리에게 이로운 영양소와 섬유소를 가득 가지고 있다. 물론 너무 작아서 한 개씩 먹어서는 몸에 별 영향을 미칠 일이 없다. 씨앗은 날 것으로 먹으면 떫지만 가볍게 열을 가해 볶으면 맛도 좋아지고, 고소하며, 톡톡 씹히고, 특유의 향도 좋다. 요리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간식이나 토핑, 향유로 많이 쓰인다. 흔하게는 들깨, 참깨부터 호박씨, 해바라기씨, 헴프씨드(대마씨), 치아씨드와 회향(펜넬)의 씨 등으로 다양하다. 포도씨, 카놀라씨, 홍화씨, 아마씨처럼 기름을 얻는 씨앗도 꽤 있다. 기회가 된다면 호박씨 기름은 꼭 한번 맛보라 권하고 싶다. 올리브 오일보다 더 진한 녹색을 띠며, 풋풋하면서도 고소한 향이다. 떫다고 느껴질 정도로 쌉싸래한데 소금과 만나면 ‘단짠’보다 훨씬 매력적인 ‘쓴짠’의 조화를 이뤄낸다. 올리브 오일의 쌉싸래한 맛을 좋아하는 이라면 호박씨 기름 한입에 바로 반할 것이다. 아삭한 잎채소 샐러드에 뿌려 식초와 소금만으로 간을 하고, 사워도우처럼 맛이 또렷한 빵을 찍어 먹고, 짭짤한 수프나 스튜에 두어 줄 뿌리면 아주 잘 어울린다.

씹는 맛이 유난히 좋은 해바라기씨로는 감쪽같이 페이크 치즈를 만들 수도 있다. 해바라기씨를 물에 담가 푹 불린 다음 엿기름, 레몬즙, 소금을 넣고 곱게 간다. 얇게 누룽지처럼 펼쳐서 식품건조기에 하루 이상 바싹 말리면 된다. 바삭한 치즈 칩과 같아 그대로 먹어도 맛있고, 요리에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풍미와 질감이 가능한 것은 식물성 단백질을 엄청나게 품고 있는 해바라기씨의 특징 덕이다. 씨앗 중에 가장 먼저 ‘우유’가 된 것도 해바라기씨다. 아몬드와 귀리 다음으로 비건 밀크의 뒤를 잇고 있다.

건강 부르는 치아씨드

치아씨드는 다양한 식재료와 잘 어울려 요리에 널리 쓰인다. [게티이미지]

치아씨드는 다양한 식재료와 잘 어울려 요리에 널리 쓰인다. [게티이미지]

해바라기씨처럼 흔히 먹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재료가 바로 치아씨드다. 치아씨드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만큼 오메가3, 칼륨, 칼슘, 철분은 물론 식이섬유,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씨앗이다. 가장 특이한 점은 이 작은 씨앗이 제 몸의 10배에 달하는 점액질을 지니고 있다가 수분과 만나면 끈끈한 젤 형태로 배출한다는 것이다. 물 1컵에 치아씨드를 1작은술 정도 넣고 15분 내외로 두면 금세 젤리처럼 끈기가 생긴다. 치아씨드 자체에는 도드라지는 맛이 없으니 주스나 우유처럼 좋아하는 음료를 넣어 묽게 즐긴다. 물론 처음부터 우유나 주스에 불려도 된다. 불린 치아시드는 딸기나 망고 같은 과일과 플레인 요거트 등과 섞어 산뜻하게 즐겨도 맛있다. 불린 치아씨드에 바나나, 꿀 또는 메이플 시럽, 소금을 조금 넣어 가벼운 식사로 즐길 수도 있다. 소화도 잘 되며, 입안에서도 달콤 부드럽고, 다음 날 화장실에 가서도 즐거울 수 있다. 치아씨드 푸딩이라고 부르는 이 간단한 한 그릇은 어른아이 누구에게라도 좋을 건강식이다. 작게 썬 과일이나 잘게 부순 견과류를 불린 치아씨드와 섞은 다음 달콤한 맛을 내거나, 짭짤한 맛을 강조하면 곁들임 요리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릇에 치아씨드 푸딩을 펼쳐 깔고 신선한 샐러드나 구운 채소를 올려 낼 수 있다. 굽거나 튀겨서 조리한 고기나 해산물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치아씨드를 꼭 푹 불려서 먹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가만 알갱이를 보고 환공포증을 떠올릴 수도 있고, 점액질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밥 지을 때 쌀 위에 솔솔 뿌려도 되고, 물에 5분 정도만 짧게 불려 참깨나 호박씨처럼 요리의 토핑으로 쓸 수 있다.

가끔 씨앗이나 생선의 알을 먹을 때면 말 그대로 ‘씨를 말리나’ 싶어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이 그 정도의 대비도 없이 종자를 키워내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합리화해보며, 마음을 깊이 조아려 감사함만 전한다.





신동아 2022년 3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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