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미래 권력’ 취약함만 노출
여권 결집, 중도 표심에 도움 될지…
“文이 尹 의도에 말려들어간 것”
尹, 정권교체 여론 거의 흡수할 수도
親文, 文의 유산 살려 대선 뒤 도모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월 9일 공개된 윤 후보의 중앙일보 인터뷰는 메가톤급 파장을 낳았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답했다. 그는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해야죠, 돼야죠” vs “분노를 표한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 오전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단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 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라며 타깃이 윤 후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말은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현직 대통령이 야당 대선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치적 효과는 또렷하다. 친(親)문재인계에는 투쟁거리가 생겼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현 정부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일 수 있다”(2월 14일, 연합뉴스)고 했고,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윤 후보가 검찰주의자의 속내를 드러냈다”(2월 13일, MBN)고 했다. 친문(親文)·친노(親盧) 계보에 없는 이 후보로선 아군의 결집력이 커졌다는 점을 호재로 볼만하다.
‘문(文)·윤(尹) 대전’ 직후 나온 여론조사 추이는 미묘하게 엇갈린다. TBS가 의뢰한 조사와 조선일보·TV조선이 의뢰한 조사를 똑같은 분량과 형식으로 소개한다.
① 2월 11~1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전국 성인 1005명에게 실시해 2월 14일 발표한 결과, 이 후보 지지율은 40.4%, 윤 후보는 43.5%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각각 7.8%, 3.5%로 집계됐다. 같은 기관의 2월 4~5일 조사와 비교하면 이 후보는 2.0%포인트 지지율이 올랐고 윤 후보는 1.1%포인트 내렸다. 응답자 47.7%는 “현 정부 국정 운영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를, 42.5%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를 택했다. 오차범위는 ±3.1%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② 2월 12~13일 칸타코리아가 조선일보·TV조선 의뢰로 전국 성인 1010명에게 실시해 2월 14일 발표한 결과, 이 후보 지지율은 33.2%, 윤 후보는 38.8%였다. 안 후보와 심 후보는 각각 8.4%, 3.1%로 집계됐다. 같은 기관의 2월 4~5일 조사와 비교하면 이 후보는 2.2%포인트 지지율이 올랐고 윤 후보도 3.3%포인트 올랐다. 응답자 53.4%는 ‘야당으로 정권교체’를, 36.5%는 ‘여당의 정권 재창출’을 택했다. 오차범위는 ±3.1%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與, 결집될 만큼 다 결집된 상태”
두 조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후보 지지율은 ‘정권 재창출론’에 거의 근접했다. 윤 후보 지지율은 ‘정권교체론’에 비해 작게는 4.2%포인트, 크게는 14.6%포인트 낮다. 이 후보는 자기 진지(陣地)에서 얻을 표가 별로 남지 않았다. 반면 윤 후보는 지지율을 더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이 후보가 이기려면 ‘정권교체론’에 호응하지만 윤 후보를 못미더워하는 유권자를 설득해야 한다. 이 와중에 ‘문·윤 대전’이 발발했다. 당장은 여권이 결집해 효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악재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설명이다.“중도는 특정 정치인이나 세력보다는 구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적폐 수사는) 윤 후보가 정권교체론 중심의 선거 구도를 만들기 위해 의도한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말려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과 윤 후보 간 싸움이 되면 이 후보의 존재가 사라진다. 마치 문 대통령의 대리인 인상을 주게 된다. 친문 중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여권의 표는) 결집될 만큼 다 결집된 상태다.”
‘문 대통령을 지키자’는 구호는 본선에서 유리할 게 없어 보인다. 경기지사 시절 이 후보는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그가 친문 핵심과는 결이 다르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보다 확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보가 실용을 강조한 것도 정권교체론을 희석하기 위한 포석이다. 막상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앞두고 현직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서 ‘유능 vs 무능’으로 선거 구도를 짜려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문·윤 대전’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는 초대형 악재다. 정권교체 여론이 윤 후보 쪽으로 쏠릴 수 있다. 이는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에 윤 후보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신율 교수는 “안 후보가 가진 운신의 폭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문·윤 대전’이 여권 내 역학 관계에 미칠 파장도 관심거리다. 이 대목에서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고려해야 한다. 앞선 KSOI 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도는 47.3%였다. 이 후보로서는 과거 대선의 성공 방정식인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택하기가 불가능하다. 개별 친문 정치인 처지에서는 ‘이재명 마케팅’보다 ‘문재인 마케팅’이 향후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유리하다.
낙선 시 친문에 밀려 재기 동력 찾기 어려워져
정치권에서는 친문의 행보가 대선 이후를 겨냥했다고 본다. 이는 주로 야권 쪽에서 나오는 얘기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핵심 관계자는 “이번 국면이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문재인의 민주당’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가 대선에서 이겨도 인기가 여전히 높은 문 대통령이 임기를 두 달 남겨두는 상황”이라며 “이 후보가 낙선하면 민주당이 비대위 체제로 개편될 텐데 문 대통령의 유산을 살려 비대위를 친문 중심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했다.그간 한국 대선에서는 생경한 풍경이다. 분석이 옳다면, 이 후보는 당선되고도 문 대통령에게 빚을 진 셈이 되고 낙선하면 친문에 밀려 재기의 동력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이 후보가 대권 고지 9부 능선에서 얄궂은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