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목록 공개 없고 보관 상태도…
국보·보물 개인 소유 남겨둬
간송이 이 꼴 봤다면 뭐라 했을까
1월 27일 간송미술관이 K옥션에 경매로 내놓은 국보 제72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동아DB]
경매에 내놓은 국보 4점은 간송미술관(간송미술문화재단)에 소유권이 있는 물품이 아니다.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의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개인 소유인데 그렇다면 매매 수익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경매가 아니라 사적(私的)으로 조용히 거래하면 훨씬 더 수월할 텐데 왜 굳이 경매를 택해 이런 굴욕을 자초한 것인지.
국보 유찰만 네 번
서울 강남구 K옥션에서 2020년 5월 27일 간송가(家) 소장 보물 불상 2점이 경매에 부쳐진 가운데 경매사가 호가를 부르고 있다. [동아DB]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金銅癸未銘三尊佛立像)의 추청가는 32억~45억 원(32억 원부터 호가 시작)이었고, 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의 추정가는 28억~40억 원(28억 원부터 호가 시작)이었다. 경매는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대중성 또한 중요하다. 김환기(金煥基), 이중섭(李仲燮), 박수근(朴壽根)의 작품이 수십억 원에 팔리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런데 불상은 대중성이 있는 미술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에 불교미술 전문 컬렉터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이 정도의 가격에 관심을 가질 큰 손은 더더욱 없다. 타계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라면 모를까. 그런데도 이렇게 높은 가격을 책정했다. 간송미술관이나 K옥션은 정말로 이 가격에 낙찰이 가능하다고 본 것일까.
간송미술관 보물 2점이 경매에서 유찰되고 두 달 후인 2020년 7월,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해악팔경(海嶽八景) 및 송유팔현도 화첩(宋儒八賢圖 畵帖)이 K옥션 경매에 나 왔다. 이 또한 보물로 지정돼 있다. 당시 추정가는 50억~70억 원이었다. 낙찰되면 국내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추정가는 지나치게 높았다. 이 가격에 팔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겸재의 그림 자체가 대단하고 가치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는 다른 차원이다. 그런데 출품자와 경매사는 이런 현실을 무시해 버리고 50억~70억 원을 불렀다. 50억 원에서 호가가 출발했지만, 한 명도 응찰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두고 “정선의 굴욕”이라고 까지 했다.
간송미술관은 2년 전 보물 경매에 실패해 놓고(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약 30억 원에 두 점을 매입했으니 간송미술관으로서는 성공한 셈이지만) 이번에 또 국보 2점을 경매에 내놓았으나 이번에도 유찰됐다.
간송미술관의 국보와 보물 4점, 겸재 정선의 보물 화첩 1점은 결과적으로 경매시장에서 처참하게 외면당했다. 이는 간송미술관의 굴욕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국보와 보물에까지 굴욕을 안긴 꼴이 됐다. 국보든 보물이든 소장자가 매매하는 것은 자유다. 가격을 매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가격이 적정선을 넘었다는 점. 비싸게 팔린다고 국보인 것은 아니다. 국보가 꼭 비싸게 팔려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열관 내부서 벌레 발견되기도
2013년 10월 13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개막한 ‘진경시대 화원’전을 보러온 관람객들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동아DB]
여기서 그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선 2006년 6월 1일자 중앙일보에 당시 김병기 전북대 교수가 기고한 ‘간송 문화재는 간송만의 것이 아니다’의 일부.
“간송은 그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왜 연중 상설 전시할 방도를 연구하지 않고 1년에 딱 두 차례만 전시하는가. 연구자들이 소장 유물 열람을 아무리 간청해도 절대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시 장소를 좁은 간송만으로 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전시만 해도 그렇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국보급 청자와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의 ‘단오풍정’과 같이 유명한 작품을 전시하면서 전국에서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 이번 ‘간송 전형필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전’ 기획은 너무나 안일했다. 낙후한 시설, 좁은 공간에 그 이름난 국보들을 전시했기 때문에 국보의 아름다움은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2층 전시실 구석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조명이라곤 천장에 높이 매달린 둥근 주황색 수은등 12개가 고작인 전시실의 허름한 유리 진열장 안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시된 청자매병은 오히려 초라하게 보였다. 국보를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가. 게다가 1분이 멀다 하고 진열장에 사람이 부딪혔다. 누군가 진열장으로 넘어져 유물이 훼손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간송은 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고 스스로 거듭나야 한다.”
다음은 2012년 10월 1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한윤정 기자의 칼럼 ‘간송미술관의 딜레마’ 가운데 일부.
“최근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이 간송미술관의 문화재 훼손 문제를 지적했다. 신 의원은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목격자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10여 년 전 미술사학자인 고(故) 진홍섭 전 이화여대 박물관장이 간송미술관 수장고에 들어가 본 뒤 제자들에게 ‘큰일이다! 큰일! 다 썩었어’라며 ‘간송 측에 전적, 회화 관리 상태가 열악해 손질, 소독을 제안했으나 간송에서 거부했다’고 말했다는 것. 또 2008년 70주년 기념전을 관람한 한 언론인은 정약용의 ‘다산심획’첩 중간 부분이 너덜너덜 벗겨지고 심한 얼룩 자국이 있었다고 언론에 기고했고, 2009년 겸재 서거 250주년전을 관람한 한 한국화가는 ‘겸재 정선의 ‘필운대’ 진열관 내부에 살아 있는 벌레가 들어가 있는 것을 목격했다’ 증언했다는 사실이다.”
인용한 글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내용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사실. 그런데도 개선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다.
간송 컬렉션과 간송미술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해야 할까. 간송미술관은 그동안 연구의 기능은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는 최완수 소장(한국미술사)을 중심으로 여러 연구자가 모여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특히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1707~1769),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경),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 등 조선 후기의 서화(書畵)에 집중했다. 최완수 소장의 겸재 연구, 추사 연구를 필두로 연구자들은 풍성한 성과를 내놓았다. 그 연구 성과는 매년 봄·가을 전시로 구현돼 대중과 만났다. 전시 때마다 연구집 성격의 도록 ‘간송문화(澗松文華)’를 발간했다. 세상 사람들은 최 소장을 비롯한 연구자들에게 ‘간송학파’라고 이름 붙였다. 그들 연구의 중요한 근거는 간송 컬렉션이었다.
박물관 기능 취약
박물관으로서의 시스템과 기능은 매우 취약했다. 근대적 박물관의 기본은 공개와 공유다. 간송미술관은 봄·가을 2주씩 전시를 제외하면 외부에 작품을 공개하거나 공유하는 체계가 거의 없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상설 전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물관으로서의 시스템이나 기능이 필요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상설 전시를 하려면 1년 내내 소장품을 관리하고 전시 공간을 살피며 관객들과의 소통(관객 서비스)을 염두에 둬야 한다.간송미술관은 그러지 않았다. 봄·가을 전시만 짧게 개최하다 보니 전시 공간이 좁고 노후해도, 진열장이 낡아도, 온·습도 조절이 잘 안 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특히 수장고 시설에 대한 우려가 컸다. 온·습도에 취약한 서화류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전시 때마다 나왔다. 당연히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박물관 시스템의 결여다. 간송미술관은 전체 소장품 목록이 없다. 봄·가을 전시만 하다 보니 전체 목록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최근 들어 목록을 작성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5~6년 전까지는 목록이 없었다. 다른 박물관, 미술관은 모두 목록을 공개하는데 간송미술관은 박물관으로서 기본 작업을 외면해 왔다.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이라고 할 때, 그 핵심은 소장품의 공개와 공유다. 간송미술관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은둔의 미술관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간송 전형필이 이 상황을 목도한다면 뭐라고 할까.
외부 지원 거절 자존심인가, 폐쇄성인가
간송미술관은 그동안 외부의 지원을 거부했다. ‘지원을 받으면 운영에 간섭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간송 컬렉션에 대한 간송미술관의 자부심과 자존심의 표현이었다. 일제강점기 그 수난의 시기에 국가(정부)도 하지 못한 엄청난 일을 간송 전형필이 실천했으니, 그 자부심은 당연하다.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정부나 기업들이 숟가락을 얹으려 해서는 안 된다. 간송미술관의 이러한 자존심을 지지한다. 우리 사회가 존중할 덕목이지만 상황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갔다. 이러한 자존심과 자부심이 단절의 벽이 된 것이다.간송미술관은 2018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에 박물관으로 등록하지 않았다. 일정 요건을 갖춰 등록하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보, 보물과 같은 국가 지정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포함)는 정부가 관리 및 보수비용 등을 지원해 준다. 박물관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비지정 문화재 소장품이나 박물관 시설 및 인력에 대한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간송미술관은 2019년 10월에야 박물관 등록을 했다. 비로소 국가 지원이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미술관 경내에 수장고를 짓고 있다. 국비와 지방비 64억여 원이 들어갔다. 간송미술관 건물인 보화각은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가 됐고, 국비와 지방비 12억여 원의 지원으로 보수·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0~2021년에는 간송미술관의 비지정 문화재 197점에 대한 보존 처리와 훼손 예방 작업이 이뤄졌다. 올해 1월 25일 착공한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에도 국비와 지방비 400억 원이 들어간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금전적 지원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간송 컬렉션과 간송미술관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다. 매년 봄·가을 전시가 열릴 때면 언론은 큼지막한 특집기사를 앞다투어 내보냈고, 많은 이들이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전시 때가 아니더라도 신문·방송·책·강연 등으로 우리 사회는 간송 컬렉션과 간송의 후손들에게 경외감을 표했다. 한국 문화기관 가운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추앙받아 온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 비판할 것이 있어도 잘 드러내지 않고 늘 예의를 갖췄다. 이러한 무형의 경외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원이다. 이럴진대 “우리 사회가 왜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은 온당하지 않다.
국보·보물, 관장 개인 소유로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보화각) 전경. 현재 국비와 지방비 지원을 받아 보수·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광표]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도 본격화됐다. 간송미술관 브랜드를 빌려 대구시가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빌바오 구겐하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루브르박물관(아부다비루브르)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 기관은 대구시가 운영하는 것으로 국비와 지방비 400억 원이 지원된다. 간송미술관 측은 “대구의 시립미술관을 우리가 위탁받는 형식”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구 시민들은 간송미술관의 국보 보물 40여 건을 대구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이 자꾸만 경매 등을 통해 국보와 보물을 처분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재단 출범 이후, 간송의 2세에서 3세(전인건 관장)로 미술관 운영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소장품(간송 컬렉션)이 간송미술문화재단으로 귀속됐지만 국보와 보물은 개인 소유로 남겨뒀다. 그 가운데 일부가 경매에 나온 것이다.
간송 컬렉션 목록 보고 싶다
어찌 됐든 최근 수년 사이, 간송미술관은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수백억 원대의 지원을 받고 있다. DDP 전시비용 지원, 수장고 신축, 보화각 보수·복원, 비지정 문화재 보존 처리,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 등. 간송미술관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정부 지원 외에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장고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소장품을 팔 수도 있다. 그럼에도 좀 더 당당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매번 이렇게 한점 두점 내다 팔면서 사회적으로 부담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난 때문이라고 했으니 매매 수익도 관장 개인이 아니라 간송미술문화재단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재정난을 운운해선 안 된다.경매에서 국보가 유찰된 것은 간송미술관의 굴욕이자 수난이다. 더 큰 굴욕이 있다. 소장품(간송 컬렉션) 목록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간송의 굴욕의 원인은 명료하다. 근대적 의미의 컬렉션과 박물관의 본질에 치중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본질은 소장품의 공개와 공유다. 이것이 선행돼야 한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