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마이크로소프트가 82조 원에 블리자드 산 까닭은?

[박원익의 유익한 IT]

  • 박원익 더밀크코리아부대표 wonick@themilk.com

    입력2022-03-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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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버스 주도권 두고 세계 IT기업 격돌

    • 격전지는 VR기기·메타버스플랫폼·반도체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해 다양한 게임IP를 메타버스 플랫폼에 도입할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해 다양한 게임IP를 메타버스 플랫폼에 도입할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게임은 가장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플랫폼입니다. 메타버스(Metaverse·가상 세계) 플랫폼 개발에도 핵심적 역할(key role)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가 1월 18일(현지 시각) 밝힌 ‘액티비전 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미국 비디오게임 업체)’ 인수 이유다. 인수가 687억 달러(약 82조 원)로 IT M&A(인수·합병)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이번 딜(deal·거래)의 배경으로 메타버스를 지목한 것이다.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메타버스 산업의 패권을 둘러싼 기술 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명까지 변경한 ‘메타(Meta·옛 페이스북)’, 미국 시가총액 1위 빅테크 애플, 역대 최대 M&A로 이빨을 드러낸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이고 반도체 업계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인텔·퀄컴, 콘텐츠 제작도구 업체, 블록체인 스타트업까지 쟁쟁한 기업들이 일제히 메타버스 경쟁에 뛰어들었다.

    메타버스를 단순한 유행어(Buzzword) 혹은 거품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글로벌 기술업체들의 움직임을 보면 일시적 유행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메타버스라는 단어 자체가 힘을 잃거나 대체될 순 있지만 기저에 흐르는 기술·산업적 흐름을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미래의 메타버스 세상을 누가 지배할까. 혈투가 벌어지는 세 가지 핵심 영역을 중심으로 경쟁 진행 상황을 살펴봤다.



    전선 1: 하드웨어, 메타 vs 소니 vs 애플

    메타는 2020년 10월 오큘러스 퀘스트2를 발매했다. [오큘러스]

    메타는 2020년 10월 오큘러스 퀘스트2를 발매했다. [오큘러스]

    가장 눈에 띄는 경쟁은 역시 하드웨어 부문이다. 이 분야 선두주자로 역량을 꾸준히 구축해 온 메타가 손꼽힌다.

    메타는 2014년 머리에 착용하는 VR 기기(HMD) 업체인 오큘러스를 23억 달러(약 2조8000억 원)에 인수, 단숨에 업계 주도적 지위를 차지했다. 특히 2020년 10월 발매한 ‘오큘러스 퀘스트 2’로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큘러스 퀘스트 2는 299달러(약 36만 원)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 뛰어난 성능을 앞세워 출시 1년여 만에 1000만 대 이상 판매됐다. VR 기기 중심의 메타버스 경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기준 오큘러스 퀘스트의 VR 기기 시장점유율은 75%로 압도적 1위다.

    메타는 M&A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최근 3년간 21개 기업을 인수했다. 대부분 게임·VR 분야 관련 업체다. 지난해 12월 21일 인수 사실이 공개된 VR 기술업체 이매진옵틱스(ImagineOptix)가 대표적 예다.

    업계에서는 메타의 이런 적극적 움직임이 위기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메타 매출의 97%는 광고 매출인데,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 강화로 타격을 받고 있다. 메타의 지난해 3분기 매출액 증가율(35%, 전년 동기 대비)은 2020년 4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실리콘밸리 IT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메타는 신규 성장 동력 확보에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 아이폰 운영체제인 ‘iOS’,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사실상 종속돼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넘어선 새로운 하드웨어 기반의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메타의 이런 강박은 사명 및 브랜드 변경에 그대로 반영되는 추세다. 2021년 10월 회사 공식 명칭을 메타로 바꿨고, 1월 26일에는 VR 부문 트위터 공식 계정 이름을 오큘러스 퀘스트에서 메타 퀘스트(Mera Quest)로 변경했다. 브랜드 교체로 메타버스 사업에 더 힘을 싣겠다는 의도다.

    게임업계 강자 소니, 하드웨어 명가 애플 약진

    메타와 유의미한 경쟁을 벌일 업체로는 소니가 거론된다. 2016년 10월 출시한 1세대 제품 이후 아직 후속 제품을 출시하지 않아 시장점유율은 떨어졌지만, 1억 명 이상 월간 사용자를 확보한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을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게임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독점 VR 콘텐츠를 출시, 사용자를 끌어모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소니는 1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2에서 플레이스테이션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최신 VR 헤드셋 ‘플레이스테이션 VR2’ 제원을 공개했다. 출시일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2022년 출시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전작인 플레이스테이션 VR이 500만 대 이상 팔린 만큼 새 제품이 적정한 가격, 성능으로 출시되면 새로운 바람이 불 수도 있을 전망이다.

    하드웨어 명가 애플은 아직 관련 기기를 내놓지 않았으나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AR(증강현실)/VR 기업을 인수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실제 제품 출시도 추진하고 있다.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인 밍치궈는 “애플이 2022년까지 AR 혹은 VR 헤드셋을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블룸버그는 “공급망 문제로 애플의 AR/VR 헤드셋 출시 계획이 2023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선 2: 게임 플랫폼에 블록체인 가세 ‘춘추전국시대’

    로블록스는 메타버스 게임의 대표적 사례다. [Roblox]

    로블록스는 메타버스 게임의 대표적 사례다. [Roblox]

    두 번째 전선은 플랫폼 분야다. 사용자들이 아바타 형태로 가상공간에서 교류하고, 경제활동까지 하는 게임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로블록스, 제페토 같은 업체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업체까지 등장, 경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로블록스(Roblox)’는 지난해 9월 ‘메타버스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라는 제목의 비전을 발표하며 “로블록스가 메타버스 시대 대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사용자들이 수동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게임 및 아이템을 직접 만들어 즐기고, 이를 자유롭게 거래하는 로블록스야말로 제대로 된 메타버스 플랫폼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2021년 11월 기준 로블록스의 일일 활성 사용자 수(DAU)는 5000만 명으로 2020년(3260만 명) 대비 53% 늘었다. 2021년 4월 기준 월평균 이용자 수(MAU)는 2억200만 명. 180개국에 사용자가 있다. 한 해 동안 사용자들이 새롭게 생성한 가상 아이템 수만 2500만 개다. 로블록스는 구찌 같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만든 가상 공간 및 아이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로블록스 세계 내에서 사용자가 1만 번 이상 방문한 게임만 10만7737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인 브룩헤이븐(Brookhaven)의 방문 횟수는 122억 회에 달한다.

    블록체인 없는 메타버스는 가짜

    마이크로소프트가 2014년 인수한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 모장(Mojang)이 개발한 ‘마인크래프트(Minecraft)’ 역시 로블록스와 함께 차기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자주 거론된다. 2021년 4월 기준 MAU는 1억4100만 명. 다만 사용자가 게임 혹은 아이템을 직접 만들어 즐기는 참여 부분에서는 로블록스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손자 회사 네이버제트가 개발한 제페토 역시 MAU 1200만 명 수준에 도달,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경쟁의 경우 하드웨어와 달리 뚜렷한 강자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로블록스 같은 기업이 앞서나가고 있지만, 생태계를 장악할 정도의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를 만들지는 못했다. 스마트폰 기반 앱 생태계에서 무수히 많은 SNS(소셜미디어)가 탄생하고 사라졌듯이 메타버스 분야에서도 앞으로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나 무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에 도전장을 던진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도 주목할 만하다. 더 샌드박스(The Sandbox),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가 대표적이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은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플랫폼은 많지만, 개방성(openness)·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하나의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과 아무런 제약 없이 서로 호환되는 성질)을 확보한 건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작동하는 플랫폼뿐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메타버스(real metaverse)’는 블록체인 기술로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디센트럴랜드 내 가상 토지의 경우 해당 게임 내에서만 작동하는 일반적인 게임 아이템과 달리 오픈씨(OpenSea) 같은 외부 NFT(대체불가능토큰) 거래 플랫폼에서 거래할 수 있다. 미국 IT 분석매체 스트래트처리(Stratechery)의 설립자 벤 톰슨은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이 낮다는 이유에서 로블록스를 ‘마이크로버스(Microverse)’로 규정하며 “로블록스는 (메타버스가 아니라) 로블록스일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선 3: 원천기술, 엔비디아 vs 퀄컴 vs 인텔

    마지막 전선은 원천기술이다. 3D 이미지·그래픽 기반 중심으로 구축된 메타버스 플랫폼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고성능 칩이 필수적이다. 처리해야 할 데이터 양이 많고, 변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실사와 가까운 AR/VR 환경을 만들 때도 역시 칩이 중요하다. 특히 개별 기기에 탑재되는 칩의 경우 성능뿐 아니라 발열, 무게, 에너지 효율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안전, 착용감, 사용 가능 시간 등이 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결국 칩 설계 능력이 메타버스 생태계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퀄컴은 2018년 세계 최초로 AR/VR 기기에 사용할 수 있는 확장현실(XR) 전용 칩 ‘스냅드래곤 XR1’, 2019년 XR2를 선보인 데 이어 1월 CES 2022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으로 AR 전용 칩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인텔 역시 2021년 12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PC, 모바일에 이어 도래할 메타버스 시대는 현재보다 1000배 향상된 컴퓨팅 성능이 필요할 것”이라며 “성능이 향상된 새로운 아키텍처(설계)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옴니버스로 재구성한 BMW 자동차 공장. [Nvidia]

    엔비디아의 옴니버스로 재구성한 BMW 자동차 공장. [Nvidia]

    “주문형 칩 시대 반도체 기업 경쟁 격화”

    엔비디아의 경우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대용량 병렬 데이터 처리에 특화된 칩을 확보하고 있으며 고성능 GPU ‘RTX’ 기반으로 구동하는 메타버스 제작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도 제공하고 있다. 옴니버스는 B2C(소비자 대상) 게임 플랫폼과는 성격이 다른 B2B(기업 간 거래) 플랫폼이다. 옴니버스를 활용하면 ‘디지털 트윈(가상 환경에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드는 것)’ 기술로 가상 공장을 구축, 시뮬레이션을 거쳐 생산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메시(Mesh)’ 역시 B2B 메타버스 협업 도구다.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이 일제히 칩 설계에 직접 나선 것은 칩 설계 역량 확보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실리콘밸리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출신 권기태 반도체 칼럼니스트는 “필요한 칩을 직접 설계해 위탁생산하는 주문형 칩 시대(Custom Chip Era)가 시작됐다”며 “거대 기업이 각자 영역에서 서로 겹치지 않고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에픽게임즈, 유니티 같은 게임엔진·콘텐츠 제작 솔루션도 메타버스 생태계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B2B, B2C 플랫폼 구축에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원천기술로 평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디지털 트윈 가상 공장 구축을 위해 유니티와 MOU(업무협약)를 체결했고, BWM는 엔비디아 플랫폼 옴니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킴 리브레리(Kim Libreri) 에픽게임즈 최고기술책임자(CTO)는 1월 26일 게임즈비트 서밋에서 “5~6년 안에 (에픽게임즈 언리얼 엔진으로) 현실과 구별하기 어려운 강력한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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