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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도시를 걷다

화산이 만들어낸 ‘백색 도시’

페루 아레키파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화산이 만들어낸 ‘백색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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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루 남부의 고원 도시 아레키파를 세운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페루의 그 어떤 곳보다도 토착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문화의 힘이 강하다. 화산 용암이 흐른 흔적이 남은 백색의 유문암으로 거의 모든 건축물을 지었기에 햇살 아래 아레키파는 언제나 하얗게 반짝인다.
지난해 11월 세계유산도시기구(Organization of World Heritage Cities) 제13차 세계대회 참석차 페루 아레키파(Arequipa)를 찾아가는 것은 정말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에 많이 알려진 도시라서 놀랐다. 아레키파는 이번 총회 개최를 계기로 제14차 세계대회를 유치한 경주와 자매결연을 했다.   
남부 고원지대에 있는 아레키파 주(Province of Arequipa)의 주도인 아레키파는 1540년 스페인 사람들이 건설했다. 페루에서 수도 리마(Lima)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87만 명 정도로 경기 용인시(86만 명)와 비슷하다.
아레키파는 해발고도 2300m가 넘는 고산에 위치했는데, 3개의 화산-미스티(Misti·5822m), 픽추픽추(Pikchu Pikchu·5669m), 차차니(Chachani·6075m)-이 만들어내는 도시 풍경이 압권이다. 문화적으로는 메스티소(mestizo, 토착과 스페인의 혼혈 문화)로 대변되는 여타 페루 도시들과 달리 토착적 성격이 강해 ‘토착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스페인 섬’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문학은 불꽃이다”라고 한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1936~ )가 이곳 출신이고, 지난 12월에는 세계적인 문학축제인 헤이 페스티벌(Hay Festival)이 이 도시에서 열렸다. 아레키파는 정부의 중앙집권화에 맞서 지역주의 선봉에 나서 ‘무장도시’라고도 불린다.
‘아레키파’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이렇다. 4대 통치자 메이타 카팍(Mayta Cápac·재위 1290~1320년)이 신하들과 함께 칠리(Chili)강 계곡에 도달했을 때 신하들이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기후가 온화한 이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청원하자 ‘그러시오, 머무르시오(Yes, Stay)’라는 의미의 케추아어(Quechua) “아리 퀴페이(Ari qhipay)”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신하들이 첫눈에 매료된 지역은 지금의 산 라자로(San Lazaro) 주거 지역이라고 한다.


‘토착’이라는 바다에 뜬 스페인 섬

아레키파 역사지구(Historical Centre of the City of Arequipa)는 뛰어난 보편적 가치 판단 평가기준 중 (i)과 (iv)를 충족시킨 것으로 인정받아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장식이 풍부한 아레키파 역사지구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전 지역의 문화적 표현으로서 무척 중요한 유럽건축과 토착건축의 창조적 융합의 걸출함을 나타낸다”고 판단돼 기준 (i)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을 대표해야 한다’를 충족했고, “자연조건과 토착민의 영향, 정복과 기독교화의 과정뿐만 아니라 웅대한 자연까지 극복한 식민지 정주(定住)의 뛰어난 예”라고 판단돼 기준 (iv)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예증하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경관의 탁월한 사례여야 한다’를 만족시켰다. 등재면적은 약 167ha다.
이 역사지구는 마치 뉴욕 맨해튼처럼 격자형의 도로망으로 돼 있다. 5800여 채의 건축물 중 건축유산으로 인정된 500채 건물이 산재한다. 이 중 250채 이상이 보호 대상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건축물은 석재를 방형으로 다듬은 두꺼운 석재 조적벽과 궁륭 천장으로 구성된다. 초기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은 대부분 1868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고, 19세기에 재건한 건축물들이 현존한다. 건축물 대부분이 실리아(Shilla)라고 하는 화산암인 유문암(流紋岩)으로 만들어졌기에 도시가 온통 하얗게 보여 ‘백색 도시’란 별칭도 있고, 돌 건축물이 하도 많아 ‘아메리카의 로마’라고도 불린다.
역사도시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한 블록 전체가 녹지이며, 아치 회랑, 시청, 대성당이 이 광장을 에워싼다. 역사지구 내 종교 건축유산으로는 14개의 성당 및 사원, 4개의 예배당, 5개의 수녀원, 3개의 수도원이 있다. 그 중에 건축적 백미로는 단연 바실리카 성당(대성당)과 예수회 콤파냐 성당,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을 꼽을 수 있다.

바실리카 성당
Basílica Catedral de Arequipa



아르마스 광장 북쪽에 위치하며 시청을 마주 본다. 우뚝 솟은 쌍둥이 종탑과 신고전주의 파사드는 이 성당이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유럽식 신고전주의 건축물임을 보여주기에 손색없다. 현 건물은 1844년 대화재 이후 재건축된 것이다. 이 성당은 지진 피해를 여러 번 입었는데, 특히 1868년과 2001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어 지속적으로 복구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그럼으로써 현 건축물이 더욱 빛나게 됐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1540년 도시가 시작됐을 때 교회터가 십자가로 표시된 후 1544년 성당 건축이 시작됐고, 16세기 말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복구했으나 17세기 초 화산 용암 분출과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다. 17, 18세기 여러 번의 지진으로 거듭 망가지다가 1844년에 대화재가 발생한다. 19세기 중엽 건축가 루카스 포블레테의 설계로 재건축되며 1854년 영국 시계와 벨지움 오르간, 목조로 된 열두 제자상이 설치된다. 19세기 말에는 프랑스 출신 조각가 뷔지느-리고의 작품 ‘날개 달린 악마(winged Devil)’가 받치고 있는 목재 설교단이 아레키파 출신 부자의 부인이 기증해 설치됐다. 이 설교단은 성령의 말씀으로 악마를 누른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1868년 지진으로 상당 부분 파괴됐는데, 당시 대주교 고예네체 가문의 도움으로 복구가 진행된다. 198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해 교황청 깃발이 걸린 세계 100대 성당 중 하나가 됐다. 2001년 지진으로 좌측 종탑이 무너지고 우측 종탑도 손상됐다. 2002년 보수를 종료했지만, 현재도 부분적으로 복구 중이다. 2011년에는 대성당 박물관을 개관했다.
이런 과정을 겪다보니 하나의 건축물 안에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경험주의, 그리고 모던주의까지 혼재돼 있다. 성당 꼭대기에서는 도시를 둘러볼 수 있다.





라 콤파냐 예수회 성당 및 수도원
Iglesia Y Claustros de la Compañia, Arequipa


아르마스 광장의 남서쪽 모퉁이에 자리하며 내부 중정이 있어 광장과의 공간적 연속성을 느낄 수 있다. 아레키파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로, 건축물 전체를 유문암으로 지었다. 토착 문화와 서구 문화가 공생한 건축물의 백미로 평가된다.
이 성당은 아레키파의 다른 성당 건축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안데스 남부 지역에서부터 볼리비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성당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의 한 역사학자는 순수 메스티소 예술이 이 성당의 문턱에서 시작되었으며, 스페인-아메리카의 문화변용(transculturization)이 성공적으로 정점에 이르게 한 좋은 예라고 평가했다. 평면이나 배치 등은 스페인에서 왔지만, 재료의 가공이나 조각 등은 토착적 기법으로 완성됐다는 뜻이다.
성당 내부는 예수회 바실리카 평면에 가깝다. 양측에 중앙보다 좁은 익랑이 있고 교차궁륭, 샤프티드 볼트, 성소 및 성물안치소, 합창석 등을 갖췄다. 돌출된 네모난 기둥 벽에 이오니아식 반기둥이 붙어 있어 마치 반기둥이 기둥 벽을 나눈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기둥 벽이 아치를 나눈 것처럼 돼 있다. 전에는 내부 공간이 화려하게 채색됐다고 하는데, 현존 내부에는 장식이 없다. 채색된 공간은 과거 성소였던 이그나시우스 채플에만 남아 있다고 한다.
성당 주 제단은 스페인 거장 조각가의 작품으로 셔리거레스크(churrigueresque, 순수 스페인 바로크 양식)라고 한다. 제단에는 삼나무, 참나무, 회나무로 된 447개 조각이 있고, 또 21개의 버드나무 가지와 요케 나무(lloque, 해발 2300m 이상에서 자라는 나무)가 사용됐다고 한다. 이 멋진 조각 위에 금도금을 해서 햇빛이 비치면 마치 제단에서 불빛이 나오는 것 같다. 은을 엠보싱한 감실(龕室)도 스페인 대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성당과 붙은 콤파냐 예수회 수도원은 3개의 중정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큰 규모의 중정 회랑은 장식뿐 아니라 웅장함과 독창성에서도 아레키파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축물이다. 리마 출신의 페루 건축가 에밀리오 하트 테레가 “이보다 더 진정성이 높고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격찬했을 정도다. 지붕 꼭대기에 올라서면 도시가 한눈에 보이고, 3개의 설산도 볼 수 있다.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 및 성당
Iglesia Y Convento de Santa Catalina


이곳은 아레키파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이다. 밖에서는 담이 너무 높아 요새같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크기의 중정 및 회랑이 연결돼 있고, 여러 빛깔로 채색을 해놔서 지루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햇볕이 잘 들어 환하고, 꽃들도 잘 가꿔놔 정겹고 아름다웠다. 이 수녀원은 1597년 처음 건립된 후 17세기에 2만㎡ 규모로 증축됐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수녀원이다. 북쪽의 일부 공간이 현재도 수녀원으로 사용된다.
중세 때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는 장남은 군대에, 차남은 신학교나 수도원에, 딸은 수녀원에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 수녀원은 스페인 혈통의 최상류층 자녀들을 위해 지어진 곳으로 전성기에는 450명이 동시에 거주했다고 한다. 실제 수녀는 150명 정도고 나머지는 하녀 및 노예였다. 많은 지참금을 내면 하녀를 대여섯 명까지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고, 개개인이 따로 거처를 두고 원하는 물건을 가져가서 생활했다고 한다. 세상과는 단절된 하나의 소규모 도시였던 셈이다.
1871년 교황은 수녀원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 도미니칸 수녀를 파견해 지참금은 돌려보내고 하녀들에게는 계속 거주하거나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1960년대 지진으로 크게 부서져 관광기금 및 세계유산기금으로 복구하느라 1970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강렬하게 채색된 벽들은 기독교 문화와 무슬림 문화가 섞인 무데하르(Mudéjar)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입구 면회실과 빨래터,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골목길 등이 매우 특징적이다. 면회실은 신체 접촉을 막기 위해 창살을 이중으로 해놨고, 대화를 감시하기 위해 2인1조로 면회했다고 한다. 물건은 작은 회전선반을 통해서만 반입할 수 있었다. 빨래터는 하나의 물줄기를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손으로 물줄기를 막으면 물이 방향을 돌려 다른 쪽으로 가도록 했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생활의 지혜가 엿보였다.

산 라자로 전통 주거지역
Barrio de San Lazaro Arequipa Historia


숙소와 가까운 산 라자로 골목길을 무심코 걷다보니, 이곳은 전통 가옥이 보존된 서울의 북촌 같은 곳이었다. 유문암으로 지은 주택들이 좁은 골목길에 죽 이어지는데, 집집마다 화분을 매달아놓았고 깨끗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아레키파의 초기 건물은 아도비(adobe) 점토와 돌을 이용하고 지붕은 짚과 막대기, 혹은 진흙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런 초기 건물들이 산 라자로에도 일부 남아 있다.

아냐슈와이코 채석장
Las Canters de Añashuayco


아레키파 북서쪽 계곡에 있는 ‘스컹크 계곡(Skunk Valley)’이라는 뜻의 마을. 여기서 유문암을 캐낸다. 스페인 사람들은 처음에는 궁륭에만 유문암을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건물에 이 돌을 쓰기 시작했다. 1687년 지진이 도시를 덮친 이후 주거 건축 등에서 유문암 사용이 급격하게 늘었다. 따라서 도시 근처에 채석장이 개발됐고, 그중 하나가 아냐슈와이코 채석장이다.  
작가이기도 한 아레키파 출신의 페루 대통령 호세 루이스 부스타멘테 이 리베로(1945~48년 재임)는 유문암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의 집합적 심리의 상징. 화산의 숨결을 녹여 바위와 혼에 생명을 부여하는 불의 혼합물.”



조 인 숙
●1954년 서울 출생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성균관대 석·박사(건축학)
●서울시 북촌보존 한옥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現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역사건축구조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위원회 국제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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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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